2009년 5월 23일, 긴 하루.
열 시, 엄마의 목소리에 깨어났다.
잔뜩 긴장한 표정의 앵커가 전하는 뉴스를 5분쯤 지켜보았다.
멍한 기분으로 방으로 돌아와 읽다만 <청춘의 문장들>을 펼쳤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내 머리 위로 내 청춘의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뒷장의 표지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첫 장을 읽던 때의 세상은 더이상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한 장이 끝났다, 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갑자기 훌쩍 나이를 먹어버린 것 같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두 시간인가 더 잤다.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대한문으로 갔다.
시청역 입구부터 전경들이 가득 늘어서 있었다.
그들 중 누구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표하지 않았다.
그저 방패를 앞세우고 무표정한 얼굴로 사람들을 밀어댈 뿐이었다.
검은 옷을 입고 온 사람들의 목소리에 분노가 담겼다.
그리고, 점점 소리가 커졌다.
사람이 죽었는데 왜 향도 못 피우게 해?
5.18때 광주 쳐들어간 군인들이 너희랑 뭐가 다르니?
동네 이장님이 돌아가셔도 이렇게는 안 해 이새끼들아!
차 밀고 들어오지 마! 사람들 들어오게 해 줘! 막지마! 밀지마!
사람 깔려! 깔려! 깔린다고! 비켜! 비키라고!!!
국화꽃 한 송이를 올려놓고 돌아서는데 너무 부끄러웠다.
이 나라가, 이 시대가, 이 5월이.
부끄럽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기에 한참을 울었다.
왠지 죄스러워 소리내어 울 수는 없었다.
돌아오는 길, 謹弔.
전경들과 닭장차로 세 방향이 모두 막혀버린 대한문.
홍대로 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시청역 2번 출구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출구를 막고 늘어선 전경들을 보며 누군가가 혼잣말처럼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야, 너무한다, 2년 전만 해도 대통령이었는데.
갑자기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아직 2년도 안 되었구나.
그 2년 사이에 이렇게나 많은 일이 벌어졌구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의 일 앞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이기용의 멘트를 곱씹으며
홍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라디오에서는 김광석의 '부치지 못한 편지'가 흘러나왔다.
김연수에게 청춘의 노래였던 김광석의 노래,
나에게는 청춘 이후의 노래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짙게 밀려왔다.
언 강 바다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이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눈물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한 때 지지했으나
지지했던 시간보다 수 갑절이나 긴 시간 동안 실망하고 원망하며 미워했던 이.
그러나 지금은 실망도 원망도 미움도 묻어두고 그가 택한 길에 애통한 마음을 전할 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