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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이즈음에

20221225, 이즈음에.

성탄 아침이니 기분 좋은 글이라도 써제껴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수가 없다. 김연수소설가님을 계속 뵀던 10월과 11월이 지나자마자부터 마음이 힘들어지는 일들이 몰려오기 시작해서ㅋㅋㅋㅋ 지난주에 정점을 찍었다. 금요일 오전부터 계속 꽤 우울한 상태라 가고 싶던 공연도 가지 않고 이틀 동안 가라앉아 있었다. (그 와중에 어제 코로나 백신을 맞아서 그나마 의미 있는 일 하나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까지 코로나 한번도 안 걸려봤고;;; 끝까지 걸리지 않고 싶다ㅠㅠ) 이제까지 내가 맞은 모든 백신이 화이자라는 것도 어제 알았다. 작년부터 어제까지 화이자를 네 번 맞은 것.  애니웨이,

 

보통 직장 일로 이렇게까지 우울해지진 않는데 이번에는 굉장히 우울감이 깊다. 단순히 일 때문이 아니다. 사람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이렇게 먹어도 사람 보는 눈이 이것밖에 안 되다니 어쩌면 좋은가 하는 생각이 처음에는 먼저 들었는데, 생각을 거듭할 수록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와 함께 지낸 시간이 길어진다는 건 그와의 관계가 계속 변해간다는 거다. 그 과정에서, 예전엔 보이지 않았던 모습을 볼 수밖에 없다.

 

 


음.

너무 뭉뚱그려서 쓰고 있다. 

이러면 아무 효과가 없을 것 같다. 그냥 쓰자.

 

 


1년 단위로 속해 있는 팀과 부서가 바뀌고 업무가 바뀌는 직업을 지니고 있다보니, 2년 이상 어떤 팀원과 같은 팀에 속하게 되는 경우가 드문 편이다. 저경력 시절에는 첫 해보다 둘째 해 때 사이가 더 좋아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게 일반적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직장에서부터 반대되는 경험을 자꾸 하게 됐다. 그러면서 굉장히 지쳤다. 원래도 사람을 안 좋아하는데, 그 해에는 '안좋아함'의 정도가 굉장히 심해서 직장에 싫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얘도 보기 싫고 쟤도 보기 싫고 그냥 다 보기 싫었다.

 

어느 날 보기 싫은 사람들 하나하나를 꼽아 가며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그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변한 게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은 예전에도 비슷했는데, 그때의 내가 그걸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이었다. 내가 '어?' 하고 그냥 지나쳤던 순간들이, 사실은 다 그들의 캐릭터를 일관성 있게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가장 싫은 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점을 꼼꼼히 열심히 열정적으로 싫어하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이런 식으로는 그 직장에 더 있지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직장을 옮겼다. 그곳이 지금의 직장이다.

 

하지만 한국 모든 곳이 다 그렇듯 내가 일하는 분야 역시 넓은 바닥이 아니다 보니, 지금의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전의 직장 사람들과 관련된 사람들이다. 한두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들은 너무 많고, 원래 알던 사람도 있다. 그 중에 F라는 선배가 있었고, 나는 지난 직장에서 재작년에 경험했던 그 감정을 작년과 올해 2년에 걸쳐 계속 경험하게 돼 버렸다...그러니까, 좋아했던 사람에게서 좋아할 수 없는 점을 발견하고, 내가 잘못 봤겠지 생각하고 잊어버리려는데, 또 그런 점이 보이고, 그래서 내가 잘못했구나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꾸짖고, 그런데 좋아할 수 없는 점이 갈수록 더 커지고 더 뚜렷해지고, 이건 내가 잘못한 게 아닌 것 같고, 실망하고, 실망이 커지고, 커져서 찰랑찰랑 차오르고, 그러다 터져버리는, 그런 일들이.

 

특히 올해 8월부터는 F선배의 말과 행동 때문에 화가 나고 실망감이 드는 일들이 계속 반복됐고, 금요일에는 결국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어떤 장면을 봤고, 더이상은 F선배를 좋아하지 못하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좋아했던 선배였고 배울 점이 많은 선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배울 점과 좋은 점을 가루로 만들어버릴 만큼의 실망감이 몸 안을 가득 채웠다. 와, 일 못하겠는데, 하는 기분이었지만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억지로 마음을 추스리려고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을 듣다가 결국 감정이 터져 버렸다.

 

 

 

브로콜리 너마저-커뮤니케이션의 이해

 

 

설명하려 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어

그렇지만 그게 왜인 건지 내가 이상한 것 같아

나의 말들은 자꾸 줄거나 또다시 늘어나 마음속에서만 

어떤 경우라도 넌 알지 못하는 진짜 마음이 닿을 수가 있게

꼭 맞는 만큼만 말하고 싶어

 

이해하려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있어

그렇지만 욕심 많은 그들은 모두 미쳐버린 것 같아

말도 안 되는 말을 늘어놔 거짓말처럼 사실 아닌 말로 

속이려고 해도 넌 알지 못하는 그런 건가봐 생각이 있다면

좀 말 같은 말을 들어보고 싶어

 

나의 말들은 자꾸 줄거나 또다시 늘어나 마음속에서만

어떤 경우라도 넌 알지 못하는 진짜 마음이 닿을 수가 있게

좀 말 같은 말을 해보고 싶어

사실은 엄청 주절주절하는, 긴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 조카 이를 닦이다가, 이런 말들을 다 보이는 데 내놓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를 닦는 조카를 거울로 바라보며 "**아, 만약에 **이 친구가 **이가 싫어하는 걸 자꾸 하면 **이는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었다. 조카는 "뭐를?"이라고 반문했고, 나는 "**가 싫어하는 말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친구들을 귀찮게 하거나...뭐 그런 거?"라고 대답했다.

 

조카는 양팔을 반으로 접더니 몸에 통통 부딪쳤다. 그리고 말했다. "옆에 가서 이렇게 할거야!" "응? 친구 옆에 가서 하지 말라고 한다고?" "응!" "그냥 모른 척 안하고?" "응!"

 

"우와, **이는 용감하다..."하고는 거품을 헹구는 조카 옆에서 같이 입을 헹구다가, 문득 지난 여름에 사랑니를 뺐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위아래를 한꺼번에 뺐고 아랫쪽 사랑니는 뺄 때도 아팠는데 빼고 나서도 한동안 아파서 나름 고생을 했었다. 볼이 퉁퉁 붓고 턱이 아픈 건 물론인데다 말하거나 웃을 때 아프기도 했고, 음식물이 자꾸 발치한 공간으로 들어가 먹는 것도 양치하는 것도 귀찮고 아팠었다. 그런데 그 부분이 거의 다 메워져 있었다. 도저히 메워지지 않을 것처럼, 깊이 뚫려 있었는데.

 

아 그래...그렇게 아팠던 것도 다 메워지는 거지...사랑니를 뽑았던 자리가 흔적만 남고 사라지는 것처럼, 사라지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자, 왠지 위로가 됐다. 이 실망감도, 속상한 마음도, 결국은 가라앉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F선배가 다시 예전처럼 좋아지는 일은 없겠지. 한번 닫힌 마음은 다시 열리기 어려우니까. 사랑니가 있었던 공간이 메워졌다고 해도, 사랑니가 아예 없었던 때처럼 되는 건 아니니까. 사랑니가 있었고, 뽑혔고, 아팠던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고, 사랑니가 남긴 흔적도 어떻게든 남아 있으니까.

 

그러면 나는 어떡해야 하지, 싶어 올해 읽었던 책들을 뒤져보았다. (이럴 때 인스타의 기록이 유용하다는 걸 느낀다ㅠㅠ)

 

 


 

가장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인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올해가 가기 전에 한 쪽이라도 더 읽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모든 감정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렌즈를 통해서 더 크게 자라난다. 감정은 우리의 가슴에, 육감에, 손끝에 있다고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생각에 있으며 대개는 타인의 생각에 대한 나의 추측과 추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F선배에 대한 내 실망도, 그 실망으로 인한 슬픔이나 분노도 어쩌면 결국 '그에 대한 내 추측과 추론'에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F선배에게 실망한 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놓았던 'F선배'의 '이미지'를 진짜로 믿어버리고 'F선배가 할 리 없다고 생각한 행동'을 규정지어버렸는지도 모른다. F선배가 왜 그랬을까, 이런 건 알아봤자 아무 의미도 없다. F선배 자신도 모를 지 모른다. 나 역시 내가 무슨 행동을 왜 했는지, 늘 다 아는 게 아니니까. 나도 내 마음을, 내 행동의 이유를, 내 행동의 의도와 목적을, 언제나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남의 마음을, 남의 행동의 이유를, 남의 행동의 의도와 목적을, 정확히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넘겨짚고 실망하고 화내지 말아야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은 이런 생각보다 앞서서 먼저 가슴에 불길을 지펴버리지. 그렇다면 나는 그 화를 부정적으로 표현해버리지 않기 위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여름에 읽었던 적정한 삶을 뒤져보았다.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하지 말고, 긍정적인 행동을 해 버리는 것이 낫다. 그것도 아주 작고 만만한 놈으로 골라서 말이다. 
심리학자들은 화가 난 장소에서 피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고 한다. 한 가지 팁을 더 주자면 천천히 걸어서 나오지 말고 최대한 빠르게 달려서 잽싸게 도망쳐 나오는 것이다. 우리 뇌는 몸을 움직이는 동작을 더 적극적인 의지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걷는 시간은 3분이면 충분하다. 단 3분이라도 다른 장소에 머물다 보면 '저 사람은 항상 왜 나를 화나게 만드는가?'에서 내가 왜 화를 내고 있지?'로 경계선이 그어진다.
심리학자들은 마음이 불안할 때 종이를 꺼내 글을 쓰라고 권한다. 말은 언제나 글보다 빠르다. 게다가 마음이 급할수록 말은 더 빨라진다. (중략) 글은 말에 비해 속도감이 현저히 떨어지는 작업이다. 행동의 스피드가 줄어들면 생각의 속도도 조절이 된다. 

 

참고로, 얼마 전 김연수소설가님께서 해 주신 어드바이스도 있었다. 사람을 보면 화가 나니까 나무를 보라고 해주셨다. 나무가 흔들리는 걸 보라고. 나무가 흔들리지 않을 때는 흔들릴 때까지 보라고. 그러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그래서 요즘은 그 말씀을 자주 떠올리고 있었다. 

 

나무를 보는 것, 화가 나는 장소에서 나가버리는 것, 말을 하지 말고 종이에 글을 쓰는 것, 이것이 내가 '부정적인 표현'이나 '긍정적인 생각' 대신 할 수 있는 '긍정적인 행동'일 거 같다. 그리고 다행히 직장에는 내 감정에 대해 귀를 기울여주는, 빛 같은 동료가 있다. 행운이다.

 

올해 가장 좋았던 책 중 하나인 브래디 미카코 선생의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2도 뒤적여보았다. 읽을 때도 마음에 박혔던 이 문장이, 여전히 나를 또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를 곰곰이 생각한다는 건 그 사람을 존중한다는 뜻이니까.

 

브래디 미카코 선생의 아들 말처럼, 그때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 지금의 나는 사실 모른다. 나한테 일어나는 일은 매일 바뀌고, 내 마음도 매일 바뀌고, 그렇게 나는 바뀐다. 그것이 '라이프'라고, 그래서 후회하는 날도 있고 속상한 날도 있고 화가 나는 날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 날도 있고. 그게 계속 반복되는 게 '라이프', 인생이고. 인생은 계속 변하는 것이고, 인간 역시 계속 변하는 것이고. 그래서 나 역시 계속 변할 것이고,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도 변할 것이다.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사실은 좋아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까지 비난해야 하잖아. 이렇게 별로인 사람이 좋은 줄 알고 좋아했던, 멍청하고 사람 보는 눈 없는 예전의 나를 비난해야 하잖아.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다. 그냥, 그때는 그 사람이 나에게 내가 좋아할 만한 모습을 보여준 거라고 믿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늘 내가 좋아할 만한 모습만 보여줄 수는 없는 일이지.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또 생각해보면 늘 내가 싫어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항상 실망하는 것도 아니잖아. 물론 나는 많이 실망했고, 실망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앞으로 나에게 늘 실망감만 줄 것도 아닐 거 아냐. 그러니, 나는 그냥 그때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고, 곰곰이 생각해야지. 바로 생각해버리고, 바로 화내지 말아야지.

 

를 또 실망시키지 말아주기를 지나치게 바라지도 말고, 나를 또 실망시킬 것이라고 확신하지도 말자.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을 실망시킬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자유까지도 존중해야겠다. 나 역시 어떤 행동을 할 때 '내 행동으로 인해 누가 나한테 실망하지 않을까?'를 고려하지 않잖아. '이게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인가?'를 고려하잖아. 남들 역시 마찬가지지. 

 

나 자신이 '여러 나'를 지니고 있는 집합체라고 생각하듯이, 남도 그렇다고 생각하자. 남이 보여주는 실망스러운 모습이 그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건 그냥 내 감정만 극단화할 뿐이니까. 그러지 말자.

 

어느 것 하나가 '진짜 나'라고 굳게 믿을 필요도, 누군가로부터 '이게 진짜 당신의 얼굴이다.'라는 말을 들을 이유도 없다.
특정 상태에서 누군가의 얼굴이 어떤 식으로 보인다고 해도, 그것은 상대가 가진 하나의 얼굴에 불과하다. 그 사람에게 다른 얼굴(역할)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고의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

  

 


마음이 좀 정리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다행이다.

 


직장에서 가깝게 지내는 동료와 금요일에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눌 때, 동료가 이런 말을 했다. 내일 모레가 크리스마스인데 세상에 밉고 꼴보기 싫은 것들이 너무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좋은 것들을 억지로 보자고.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야 계속 살아갈 수 있으니까.

 

다행히 직장의 모든 사람들이 다 싫은 건 아니다. 좋은 사람들도 있다. F선배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 선배도 있다. (사실 12월 되고 스트레스가 계속 쌓여서 그랬는지ㅋㅋㅋ 그 선배님을 덕질하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기도 하닼ㅋㅋㅋ) 그리고 나는 하늘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어딘가에 누우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니까, 요즘은 나무를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나를 기분좋게 해 주는 것들을 보면서 부정적인 에너지를 너무 많이 가슴 속에 쌓아두지 말고 살아야지. 물론 스트레스 받는 상황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나는 조금이나마 달라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올해 내가 얼마나 많이 수고했는지,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안다. 이렇게 열심히 잘 해왔다는 데 만족한다. 실수도 많고 잘못도 많았지만 그래도 어쨌든간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가자. 이제 일주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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