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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드는 바람/읽고

[리스트] 2006년 11월, 읽은 책들.

지난 한달 컴퓨터 상태가 매우 안좋았던 관계로(지금 웬일로 인터넷이 5분 이상 문제없이 지속되어 점점 불안이 증폭되고 있는 중) 본의 아니게 책을 많이 읽었다. 보고서들 때문에 읽어야 하는 책이 많았던 이유도 있고; 뭐 그러그러하여. 한달동안 읽었던 책들 중 학교 수업과 관련 없는 것들을 빼놓고 나열하자면


* 나의 아름다운 정원, 달의 제단 -심윤경
* 나는 공부를 못해, 방과 후의 음표 -야마다 에이미
* 빅 슬립, 안녕 내 사랑 -레이먼드 챈들러
* 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 마술은 속삭인다 -미야베 미유키
* 여성 문학을 넘어서 -김미현
*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태혜숙


<밤의 피크닉>과 <마술은 속삭인다>를 빼고는 모두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 더불어 지금 읽고 있는 건 <브로크백 마운틴>(생각날 때 단편 하나씩 찔끔찔끔, 왠지 팍팍 진도가 안나가는 책이다)과 <하이 윈도>(챈들러). 써놓고 나니 너무 막무가내인 취향처럼 보여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내가 책을 선택하는 기준의 우선순위는 역시 '재미'와 '호기심'인 것 같다.


재미만으로 치면 나는 공부를 못해나의 아름다운 정원이 좋았다. 야마다 에이미의 <공주님>을 몇 년 전에 읽고 나름 매력적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방과 후의 음표>를 읽은 후의 느낌도 <공주님>을 읽은 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음...역시 내 스타일은 아닌가보군' 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권 더 읽어볼까? 하고 집어든 게 나는 공부를 못해였는데, 앞의 책 두 권을 합친 것보다 이것 한 권이 더 재미있었다. 마음에 와닿는 구절도 많아서 알라딘 위시 리스트에 넣어두었다(꽤 마음에 들었다는 뜻).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성장소설이라는 것까지만 알고 빌렸는데...읽다 보니 화자가 소년이라 깜짝 놀랐다(당연히 소녀려니 했다;; 성별이 정확히 나오지 않은 화자가 대충 보니 착한 사람 같고 해서 마음에 들면 여자라고 지레짐작해버리는 이 버릇 -ㅅ-;;). <새의 선물>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은데...개인적으론 이 책이 더 마음에 든다. 나는 나를 웃겨주는 무언가에 매우 약하고, 이 책은 많은 부분 키득대면서(특히 주리 삼촌 나오는 부분) 읽을 수 있었던 책인지라.


의외로 오래 마음을 툭툭 건드리는 건 달의 제단. <나의 아름다운 정원>과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읽는 시간도 앞의 책보다 더 걸렸고. 이 책에서 가장 중심적인 갈등을 형성하는 두 축은 단연 상룡과 조부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읽은 후 마음에 남는 캐릭터들은 각자 다른 한을 가지고 다른 삶을 살았던 여성들이라는 점이 좀 신기하기도 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정실'이라는 캐릭터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은 <붉은 손 클럽(배수아)>의 한나를 보고 느꼈던 기분과 비슷. 마냥 사랑스럽거나 마음에 들거나 공감되거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캐릭터는 아닌데 계속...연민인지 여운인지 하는 느낌이 남아 그냥 책장을 넘길 수 없었던, 그런 느낌. 만약 남자 작가가 쓴 책이었다면 되게 전형적인 캐릭터가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각 장 내용에 덧붙여지는 손녀와 할머니의 언간도 자꾸 기억에 남고.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는 올해 여섯 권 모두 다 읽을 생각이다. 내년엔 읽고싶은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때이니ㄷㄷㄷ 내용보다도 문체가 맘에 든다. 하드보일드한 문체라는 게 어떤 건지 잘 와닿지 않았는데 챈들러 책을 읽고 있으려니 조금 알 것도 같다는 기분이 든다. 가지고 싶은 문체이기도 하고. 특히 말로의 괴팍한 유머는 너무 내 취향이어서 버스 안이나 지하철 안에서 읽다가 막 낄낄대버린다. 당장이라도 어딘가에서 총알이 날아올 것 같은 심각하고 진지한 상황에서의 뻔뻔할 정도로 생뚱맞은 소리나 정치적으로는 올바르지 않고 전혀 착하지도 않지만 너무 솔직해서 유쾌한 느낌이 드는 직유. 예를 들면 이런 거,

* 매력적인 중년 부인으로 얼굴은 진흙 양동이 같고, 쿨리지가 두번째 임기를 지낸 이후로 머리를 한 번도 감은 적이 없을 겁니다. 내 말이 틀렸으면 차 스페어 타이어와 그 테두리까지 다 먹어 보이지요. 그 여자는 대답을 피하더군요. 결국 무스 맬로이가 출감했다고 하자 나를 싫어하는 기색이었어요. 나를 싫어하다니, 그럴 수 있는 일입니까?

* 짜증이 치밀어올라 욕지거리를 뱉어내는데, 날카롭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조금 열고 난잡한 욕설을 퍼부어준 다음 다시 문을 쾅 닫고 싶게 만드는 짜증스런 노크였다.

* 랜들 : 당신을 이틀동안 찾아 헤맸지.
   말로 : 아팠거든요. 병원에 있었죠.
   랜들 : 어느 병원?
   말로 : 동물 병원이요.

그는 옆으로 쓰러지면서 책상 구석을 움켜잡더니 뒤로 누워 굴렀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얻어맞는 것을 보는 건 기분을 전환하기에는 좋은 일이었다.



아, 쓰다보니 너무 길어지는군;; 다른 책들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고 싶을 때 해야겠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솔직히 안 하게 될 가능성이 98%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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