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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드는 바람/읽고

[리스트] 2008년을 함께한 책들 - 국내소설.


이제 2008년이 2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75권 이상 읽기!를 목표하고 올해를 시작했었는데 과연 그 목표에 얼마만큼이나 다가갔는지, 그리고 올해는 예년보다 어느 정도나 편식했는지(워낙 소설 중심, 여자 작가 중심, 추리소설 다독, 이 세 가지 취향으로 편중된 터라;) 정리해 보려 한다. 포스팅 하나로는 좀 힘들듯 싶어 국내소설/국외소설/국외추리소설/기타등등-_-으로.


* 2008년에 읽은 국내소설 (작품명 순)

감기
(윤성희/문학동네)

거기, 당신?
(윤성희/문학동네)

그녀의 눈물 사용법
(천운영/창비)

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문학과지성사)

내 여자의 열매
(한강/문학과지성사)

달려라,아비
(김애란/창비)

달을 먹다
(김진규/문학동네)

달의 바다
(정한아/문학동네)

동백꽃 외
(김유정/문학과지성사)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문학과지성사)

빛의 제국
(김영하/문학동네)

사랑을 믿다 외
(2008 이상문학상 작품집)

수상한 식모들
(박진규/문학동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창비)

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문학동네)

엄마의 집
(전경린/창비)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조경란/문학과지성사)

이현의 연애
(심윤경/문학동네)

채식주의자
(한 강/창비)

천년의 왕국
(김경욱/문학과지성사)

친절한 복희씨
(박완서/문학과지성사)

태평천하
(채만식/문학과지성사)

퀴즈쇼
(김영하/문학동네)

환절기
(박정애/우리교육)

총 24권이니 한달에 두 권 정도 읽은 셈이지만 사실 3월과 9월엔 너무 바빴어서 거의 책을 읽지 못했고 12월은 지금 진행 중이니  대충 열 달간 읽은 책들이라 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 싶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빼고 작가의 성비를 따져보면 여:남=16:7. 올해도 여전히 읽은 국내소설 중에는 여성작가의 것이 많다. 뭐 매년 그랬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네 권을 제외하고는 전부다 도서관을 통해 읽은 책들이지만 아홉 권 정도는 구입하려고 생각 중.

위의 책들 중 <달을 먹다>와 <밤은 노래한다>는 지금 읽고 있는 중이니 제외하고, 나머지 22권 중 Best 5를 꼽아 본다면 <엄마의 집>, <달의 바다>, <거기, 당신?>, <친절한 복희씨>, <그녀의 눈물 사용법>.

<엄마의 집>, <거기, 당신?>, <달의 바다>는 큰 기대하지 않고 집어들었던 책들이다. 윤성희 책은 언제 읽어봐야지 읽어봐야지 하면서 항상 못 읽고 있던 중이었고, <달의 바다>는 '82년생 작가'의 소설이라는 점 때문에 읽을까 말까 읽을까 말까 망설이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집>은......음. 사실 언제부턴가 전경린의 책을 읽지 않았었다. 그녀 소설 속의 여성들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느껴졌달까. 세상의 거친 바람을 그저 맞고만 있을 뿐, 씩씩하게 헤쳐나가지 못해 마모되어버리고 만다는 느낌, 그리고 갈수록 그 마모의 강도가 심해진다는 듯한 느낌. 그녀의 문체가 아깝다는 생각도 좀 들었었다. 표현은 너무 아름다운데 내용은 어렸을 때 <나나>에서나 본 순정만화와 다를 바 없이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 그 느낌이 극에 달했던 게 아마도 <첫사랑>이었을 거다-_-

그런 내게 <엄마의 집>은 전경린을 다시 보게 한 작품이었고, <거기, 당신?>은 '아, 윤성희 책 좀더 일찍 읽을걸!'하는 생각을 하게 해 준 작품이었으며, <달의 바다>는 작가가 전하려는 진실이 작품 속에 조화롭게 녹아들어가 있다면 그의 나이 따위 중요하지 않다는 뻔한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게 해 준 작품이었다. 세 작품 모두 억지스럽지 않고, 가식적이지 않고, 멋있는 척하지도 않는 대신 참 아름다운 공동체를 그려보여주어서 읽는 내내 가슴이 벅찼다. 푸근했고, 많이 웃었고, 종종 눈물을 닦았다.

앞의 세 권과 달리 <친절한 복희씨>와 <그녀의 눈물 사용법>은 어느 정도의 기대를 갖고 읽은 책들이다. 박완서씨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주위에 꽤 많다만(아마도 김수현의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인간들의 못난 모습을 따끔한 바늘로 한땀 한땀 지면에 수놓는듯한 박완서씨의 작품을 보는 것이 내게는 아직 즐거운 일이기에 '도대체 복희씨가 얼마나 친절하기에?' 생각하면서 책을 펼쳤더랬다. 제목과 표지도 맘에 들었었고. 하지만 솔직히 가장 큰 기대를 하면서 읽었던 책은 <그녀의 눈물 사용법>! 2000년 이후 등장한 수많은 국내 소설가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천운영씨의 신작인데다가 타 작품집을 통해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를 읽고 '아 역시 언니 멋져ㅠㅠ'하며 감동받았던 터라 책 표지만 보고도 울컥울컥했으니 이를 어쩌면 좋아 ㅎㅎ

<그녀의 눈물 사용법>을 읽는 것은 예상했던 것처럼 아팠다. <바늘>과 <명랑>과 <잘 가라, 서커스>를 읽을 때 그랬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담담한 목소리로 인물들의 신산한 삶을 얘기하고 또 얘기하는 서술자의 목소리를 따라가다가, 차마 못 보겠다 싶어 몇 번이나 책장을 덮어 버렸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헛기침을 해 본 다음 다시 책을 펼쳤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속도도 다른 책에 비해 느려졌었다. 이번에도 여러 번 그랬다. 특히 <노래하는 꽃마차> 읽을 때는 마음이 너무 많이 아팠다. 그런데, 예전과는 조금 달랐다. 피냄새가 물씬 올라오는 것 같던 그녀의 글이 점점 투명해지는 것 같다는 느낌? <알리의 줄넘기>나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의 엔딩은 예전 그녀의 작품에 비해서 참 많이 긍정적이었고 힘찼고 밝아서 한껏 구겨졌던 마음의 주름이 좍 펴지는 것 같았다. 정말 말 그대로 울고 웃으며 읽은 책.

그에 비해 <친절한 복희씨>는 쓱쓱 읽어내려갔다. 입담좋은 할머니 혹은 아주머니가 재미나게 들려주는 얘기 같아서, 멈추지않고 페이지를 휙휙 넘겨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도 예의 박완서씨 책과는 좀 달랐다. 잘난 것 하나 없으면서 잘난 척하고 유세부리는 사람들의 껍데기를 콕콕 집어 벗겨내던 박완서씨의 책을 보며 조소하거나 자조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이번에는 훨씬 부드럽고 따뜻했다. 잘난 것 하나 없으면서 잘난 척하는 게 예뻐 보일 이유는 하나도 없지만, 이 힘든 세상 살아가려면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니-하면서 포용해주고 이해해주는 느낌이었달까. '세상을 바라보는 노년의 여유롭고 성숙한 시선'이란 멘트를 보면서 참 뻔한 립서비스다 싶어 고개저었었는데, <친절한 복희씨>를 읽고 나서는 그 말이 진심으로 마음에 와닿아 스스로 깜짝 놀랐다. 나도 이렇게 나이들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고, 존경스럽다는 느낌도 들었고.



아 이거 뭐 이렇게 길어졌담-_- 어쨌든 천운영씨 정말 좋고. 박완서씨 훈늉하시고. <그녀의 눈물 사용법>과 <친절한 복희씨>는 작가의 말도 꼭 읽어줘야 한다. 윤성희 정한아 좋아하게 되었고. 전경린 다시보았고. 한 강과 심윤경과 정이현도 좋다. 김애란은 음, 다들 좋아하는 작가인 것 같지만, 사실 나는 왜 그렇게 많이들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좋긴 한데 아주 좋은 건 아니다(솔직히 나는 <달려라 아비>보다는 <낭만적 사랑과 사회>가 더 좋더라). 김중혁, 박진규, 김영하, 김경욱 책은 모두 나름 괜찮게 읽었고 박정애 책도 참 좋았다. 은희경 책은 최근 몇년간의 은희경 책들 중 제일 나았던 것 같고 조경란 책은 예의 조경란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금 읽는 김연수 책이 참 좋다. 맨 처음 읽었던 김연수 책이 <굳빠이 이상>이었고 그때는 참 재미없어하며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그때 왜 그랬지 싶어 그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그분이 쓴 책 제목들도 맘에 들고 책 표지들도 맘에 들고 이름도 맘에 들고 인상도 맘에 들고 암튼간 이것저것 묘하게 모두다 맘에 들어서 이제는 기분이 이상할 정도다; 김연수씨, 이런 저를 만나주시겠어여? 으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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