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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드는 바람/읽고

대합실의 추억 (이경훈, 문학동네, 2007)

대합실의 추억
이경훈 지음/문학동네

<대합실의 추억>은 한국 일제 강점기의 문학을 당대의 풍속과 관련지어 다룬 평론집이다. 저자가 2003년에 쓴 <오빠의 탄생>에 이어지는 책인데, <오빠의 탄생>이 풍속 쪽에 좀더 무게를 두었다면 <대합실의 추억>은 풍속과 문학 간의 연결 지점에 더욱 집중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경훈의 평론집은 매우 독특하다. 문학평론집이라면 텍스트를 중심에 놓고 텍스트를 둘러싼 콘텍스트가 텍스트에 미친 영향에 대해 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하나의 텍스트를 상정한 후 그 외의 것들을 콘텍스트로 두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평론집에서는 연구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들-문학 작품은 물론이요, 작가의 삶과 작가를 둘러싼 문화적/제도적/풍속적 현실 등-텍스트이자 동시에 콘텍스트로 기능한다. 덕분에 논의는 더욱 풍성해지고 다양해지며 재미있어진다. 

이는 매우 정밀하고 성실한 연구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있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춘원과 '창조'>의 경우, 저자의 논의는 김동인과 전영택이 '이광수가 언제 '창조'의 동인으로 참여했는가?'라는 질문에 부정확한 답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왜 김동인과 전영택의 회고가 부정확한지 추적해 나가면서 이광수와 다른 '창조' 동인들과의 관계를 밝혀내고, 이광수에게 있어 '창조'는 어떤 존재였는지, 또 김동인을 비롯한 당대의 '후배 문인'들에게 '선배 이광수'는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간다. 이를 위해 저자는 '창조'라는 텍스트와 '창조'에 대해 언급한 '창조' 문인들 관련 텍스트를 분석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창조' 동인들 간의 관계와 '창조' 동인들을 둘러싼 주위 사람들(대표적으로 이희철과 같은)에 대한 조사까지도 꼼꼼하게 수행해 낸다. 연구자의 성실함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작업이 아닐까. 

대부분의 글이 재미있었는데, 특히 <대합실의 추억 - 식민지 문학의 백수들>과 <최후의 모던 보이, 모던 보이의 추억>이 기억에 남는다. 취직하기 힘들던 조선과 동경의 모습에 대한 묘사를 읽으며 '하아...이게 하루이틀 일이 아니로구나'하고 무릎을 치기도 했고, '인텔리'란 'Ready Made 인생'이라는 표현에서는 머릿속이 번쩍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총망'한 삶을 강조하면서 직업과 교육을 강조하던 근대의 논리가 오히려 무직자와 실업자, 룸펜을 낳고 마는 아이러니 앞에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이광수와 그의 문학에 관해 논한 2부도 재미있었는데, "꽃 한 송이를 보자면 벌레 백 마리를 죽여야 하오"라는 그의 선언을 읽고 좀 아찔해지기도. 

이경훈은 저자의 말에서 자신의 작업이 <텍스트의 크고 작은 모든 요소들을 가능한 한 자유로이 활동하게 함으로써 그 외연과 내표를 계속 갱신해내려>는 일이라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의 작업이 'A=이것', 'B=저것'이라는 답 하나를 달랑 던져주는 대신, '하나의 텍스트와 다수의 콘텍스트가 존재한다'는 고정 관념을 탈피해 문학 작품 속에서 풍성한 의미를 발견해나갈 수 있도록 독자들을 유도해 주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텍스트의 탈중심화와 콘텍스트의 조직화를 동시에 가능케 하는 그의 성실하고 꾸준한 작업에 박수를 보낸다. 흥미로운 그의 '풍속적 읽기'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http://blueingreen.tistory.com
2008-10-19T10:11:16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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