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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드는 바람/읽고

인간성 수업(마사 누스바움/정영목, 문학동네, 2018) - 꼭꼭 씹어 읽기 (3)

이 책의 1장에서 누스바움 선생은 '소크라테식 교육'을 아래와 같이 요약하고 있는데

 

1. 모든 인간을 위한 것: 성찰하는 삶을 위해서는 비판적이면서 철학적인 특정한 종류의 교육이 모든 인간에게 필요함. 선택된 소수를 이론적 명상의 삶으로 이끌거나 특별한 정신 능력을 갖춘 엘리트를 고등교육과정에 진입하게 하는 것을 지양함.

2. 학생의 상황과 맥락에 어울리는 것: 철저히 개인의 조건에 맞추어져야 함. 개별화된 가르침을 목표로 해야 하며, 학생들의 환경과 배경은 물론 지식과 믿음의 현재 상태, 자기성찰과 지적 자유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장벽까지 고려해야 함.

3. 다원적인 것: 상이하고 다양한 규범과 전통에 관심을 가져야 함. '어떤 생활방식이든 똑같이 좋다'는 문화상대주의와는 구별됨. 인간이 이성적으로 옹호할 수 있는 것은 고수해야 하지만 변할 수 있음.

4. 책이 권위가 되지 않게 해야 함: 무비판적 내면화에 반발하고 능동적 추론의 기치를 따라야 함. 책에 대한 숭배와 수동성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추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함.

 

앞의 세 가지도 중요하지만 저 '네 번째'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줄을 너무 많이 그었다...다 옮기면 너무 많아지는데ㅋㅋㅋㅋㅋ 대체 이 포스팅은 언제 다 끝날까ㅋㅋㅋㅋㅋ


기억하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르다. 기억한다는 것은 기억에 맡겨진 어떤 것을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다는 것은 텍스트에 의존하지도 매번 선생을 살피지도 않고, 모든 것을 하나하나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중략) 너 자신과 책 사이에 거리를 두어라.

 

지나치게 책에 의존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면서 누스바움 선생은 세네카의 말을 인용한다. 그저 누군가의 말을 잘 기억해서 어떤 상황에 써먹는 것으로는 '내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누스바움 선생이 '책을 읽지 말아라'라고 하는 건 아니다. '위대한 책에 담긴 논리를 헤쳐나가면 정신이 더 명민해지고 엄격해지고 활발해질 수 있다. 그 과정을 거치면 정신은 중요한 문제들과 관련한 다양한 범위의 선택지들을 마주할 수 있다.'고 선생은 말한다. 즉 책이란 '정신을 위한 훈련용 포환'으로 써야 하는 것이지 '너무 쉽게 숭배와 존경의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책의 권위에 쉽게 따르곤 하는 내게 굉장히 인상적인 문장이었다.

 

 

논리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해주지는 못하겠지만, 공감을 거부할 심산으로 합리적인 듯 논거를 꾸며대는 짓을 중단하게 해줄 수는 있다. 나아가 논리적 분석은 우리에게 시민으로서 건강하게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근거 없는 주장과 반박을 주고받는 대신, 우리는 비판적으로 관점을 교환하고, 서로의 추론을 검토할 수 있다.

 

논리적 사고와 공감적 사고를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누스바움 선생은 논리적 사고가 공감적 사고를 가로막는 '짓'을 중단하게 해준다고 설명하며 논리와 공감 간의 연결 고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명확한 근거 대신 '생각'을 근거로 내세워 서로를 물고 뜯는 감정싸움을 멈출 수 있게 해주는 데도 논리적 사고는 유용하다는 점을 명료하게 제시해 준 문장이다.

 

 

어떤 사회에서 소수집단의 정당하지만 인기 없는 요구가 얼마나 존중되느냐 하는 것은 이성이 그 사회에서 존중되는 수준에 비례한다.

 

'정당하지만 인기 없는 요구'라는 말이 너무 정확해서ㅠㅠ 너무 서글프다. 한국 사회는 얼마나 이성과 먼 곳인가...하는 생각이 들어 슬퍼지기도 하고. 나 역시 뭐 얼마나 이성적이겠냐만은.

 

 

우리는 개념을 형성하는 데 권력과 이해관계가 차지하는 역할을 인정한다고 해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할 거라고 절망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단지 정당한 이해관계를 정당하지 않은 이해관계와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중략) 이런 구분 때문에 소크라테스적인 삶이 좀더 복잡해지기는 하지만, 그 어떤 의미에서도 불가능해지지는 않는다.

 

언어는 권력과 이해관계의 반영이기에, 언어로 어떠한 개념/사고를 형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해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결국 '그 어떤 개념/사고도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세상에 옳은 것/타당한 것/바람직한 것은 없다. 다 똑같이 권력과 이해관계의 산물이니까...나는 이런 사고가 진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게 좋은 거', '다양성이 중요하니까 모두 다 존중해야 함',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니까 어떤 말이든 다 해도 됨'이야말로 가장 큰 권력을 지닌 이에게 가장 유리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무분별한 상대주의'를 누스바움 선생은 뚜렷이 비판한다. 우리는 '정당함'과 '정당하지 않음'을 구분해야 하고 구분할 수 있고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것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다고.

 

 

부단한 자기 성찰과 권위에 대한 비판적 사고. 두 가지를 두루 연마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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