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11. 20:40ㆍ흔드는 바람/읽고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위에서 언급했듯이 '빨간책방' 덕분이다. '음식으로 보는 예술과 사회' 편에서 이 책과 <라블레의 아이들>이 함께 소개되었는데, 내 소박한(!) 취향에는 이 책이 더 맘에 들었다. 소울푸드라는 말도 신비로웠고(음식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니!!!!), 오랜 세월 차별받아온 사람들이 먹고 살아가기 위해 발전시켜 온 식문화를 살펴본다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차별받는 사람들이 '그래도 살기 위해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발전시켜간다는 건 당연한 사실인데, 음식이라는 부분에서 그 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먹는 게 가장 먼저, 가장 본능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건데 말이다.
차별받은 식탁을 한 마디로 설명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책의 표지에 쓰인 '흑인 노예부터 일본 부락민까지 제대로 된 삶에 고픈 자들의 음식 문화사'라는 말을 그냥 가져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다섯 나라의 차별받아온 사람들, 인간다운 삶을 오랜 세월 누리지 못했거나 현재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식탁을 엿보고 있으니까. 1973년생인 저자 요시히로 씨는 오사카의 사라이케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가 살던 마을은 '부락'이라 불리는 곳인데, 부락이란 '일반 지역과 격리되고 차별받아온 억압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사라이케 주민들이 대부분 식육업에 종사해 왔다고 하니, 우리 나라로 치자면 사라이케란 백정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락에서 살던 사람들은 죽은 소와 말의 뒷처리를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고기를 먹기 쉽고 오래 보관할 수 있게 하는 여러 방법들을 강구해 냈다. 그 중 하나가 요시히로의 페이보릿(!)이라 할 수 있는 아부라카스. 소 창자를 튀긴 이 음식을 좋아했던 요시히로는 우연한 기회에 이것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것', 즉 부락민들의 음식이라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지만 자라면서 서서히 자신이 자라온 환경에 긍지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널리스트가 되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부락에 대해 취재하게 되었고, 자신과 유사한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프롤로그의 내용.
본격적으로 1장부터 5장까지를 살펴보면-미국의 흑인들, 브라질의 흑인들, 불가리아와 이라크의 가잘(집시), 네팔의 불가촉민(시라크), 그리고 일본 부락민들의 음식과 삶과 사람들이 놓여 있는 풍경과 그 풍경에 뛰어든 요시히로 씨가 느끼고 생각했던 내용들이 펼쳐진다. 프롤로그만 보고서는 차별받아온 사람들의 비극적인 역사와 '어쩌면 이럴 수 있어!'라고 분개를 불러일으키게 할 만한 사례들이 절절하게 나열되어 읽는 이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예상했는데, 실제 내용은 예상보다 훨씬 드라이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소수자들의 이야기'인 까닭에 중간중간 '어이구 그렇지...;'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만한 부분이 아예 없을 수는 없는 일. 특히 내가 혐오감을 느꼈던 건 미국 앨라배마 주의 셀마라는 도시에서 흑인 시장이 선출되자 백인들이 마을의 공동 묘지에 KKK의 창설자 중 한 명인 포레스트 장군의 동상을 세웠다는 얘기와 물건을 사러 온 네팔의 불가촉민에게 주인이 '옛다!'는 식으로 손 위에 물건을 던지고 돈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아, 21세기고 자시고 떠들어 봤자 세계 곳곳에서는 아직도 이런 일들이 당연하게 일어나고 있는데...'라는 생각에 참담한 기분이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 내 주변에서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일들 아닌가. 전두환 기념관을 세운다든지, 5.16 쿠데타는 구국의 혁명이며 당시로서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라 비호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든지, '불결하고 비위생적인(서민들로 가득한)' 시장 음식을 태어나 먹어본 적도 없다든지...하이고 생각하니 짜증나네.
아무래도 영원할 것만 같은 이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차별받는 사람들은 계속 생겨날 것이고, 더 다양해질 것 같은데, 그렇다면 결국 중요해지는 것은 차별받는 사람으로서의 감수성을 잃지 않고, 공감하며 연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시히로 씨가 미국과 브라질의 흑인들이나 이라크와 불가리아의 집시들 사이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냈던 것처럼, 소수자로서의 정체성과 감수성을 늘 예민하게 갈고 닦아야 권력을 쥐고 차별하는 사람(같지도 않은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네팔의 불가촉민인 지테가 요시히로 씨에게 툭 던진 한 마디가 참 뭉클했다. 뒷표지에 쓰인 말. "저희 집에 와주어서 정말 기뻤어요. 지금까지 일부러 저희 집을 찾아와준 사람도 없었고, 함께 소고기를 먹어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어요." 브라만을 만나면 땅에 꿇어앉아 절을 해야 했고, 이름 대신 '사르키'라는 계급으로 불려야 했고,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불결한 대상으로 취급받아 눈총을 받고 욕을 먹고 돌에 맞아야 했던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들의 음식을 함께 먹어 준 사람이 있었다는 게 '고마운' 경험이었던 거다. 사실, 그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건 요시히로 씨일텐데.
'빨간책방'에서 이동진씨나 김중혁작가님은 이 책이 약간 허술한 감도 있고 '뭐 이렇게 끝나냐'는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그 '허술함'이야말로 이 책의 미덕이 아닌가 싶다. 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책을 읽을 때는 그 내용이 무엇이든지간에 연민하거나 동정하거나 죄책감을 느끼거나 슬퍼하거나...하게 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만약 이 책이 완벽하게 기승전결을 갖추어 빡빡하게 쓴 글이었다면 다 읽고 난 후 감정적으로 피곤해졌을 것 같다. 여기 나오는 음식들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었을 것 같고(아니 그렇게 아픈 역사를 가진 사람들의 슬픈 음식들을 내가 감히 어떻게 먹고 싶어 해! 라는 생각을 했겠지...;;) 그렇지 않았기에 이 책에 나온 얘기들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할 수 있었고, 이 책에 나온 음식들을 먹어 보고 싶어할 수 있었지 않나 싶다.
그러나 사진에 대한 아쉬움 부분은 100% 동의. 보통은 화려하게 보여주는 게 뭐 중요해! 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음식 책인데 음식들 사진이 정확하게 잘 실려 있어야 할 것 아냐. 프라이드 치킨이나 스키야키나 오뎅 국수 사진 같은 게 먹음직스럽게 실려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심지어 실려 있는 사진들 중에서도 '이게 도대체 뭔가......이게 음식인가......'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있어 좀 아쉬웠다. 네팔의 사누촌도라 씨, 이라크의 가잘 어린이들, 미국의 홉킨스 씨 사진 같은 것도 실려 있으면 얼마나 좋아. 편집 과정에서 없어진 건지 원래부터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아쉽다ㅠㅠ
책날개에 쓰인 저자 소개를 보니 요시히로 씨가 쓴 책 중에 <코리안 부락>이라는 책이 있던데, 이 책도 궁금하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소개되지 않은 듯 한데 번역본이 나오면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말, '제대로 된 삶에 고픈 자들의 음식 문화사'라는 말을 가져오는 건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는 것. 왜냐하면 그들의 삶이 '제대로 된 삶'이라 할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으니까. 세상에 '제대로 된 삶'과 '제대로 되지 않은 삶'이란 건 없고, 그걸 나눌 수 있는 기준 따위도 없으니까. 그렇다면 어떤 말이 더 좋을까............이건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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