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동물원 (강태식, 한겨레출판, 2012)
2013. 2. 8. 13:02ㆍ흔드는 바람/읽고
꿈과 환상의 나라 세렝게티.
야생이 살아 숨 쉬는 세렝게티.
행복해요, 세렝게티.
즐거워요, 세렝게티.
우리는 언제나 세렝게티.
한겨레출판에서 나오는 한겨레문학상 수상작들 중 16회 수상작까지 총 네 권의 책을 읽었다. 4분의 1 꼴이니 겨우 25퍼센트 읽은 거라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에는 이러이러한 특징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만, 내가 읽은 네 권은 모두 유머러스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물론 그 유머의 느낌은 모두 달랐다만-때로는 유쾌한 상상력에서 발현되는 것이었고, 때로는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것이었으며, 또 때로는 지독한 현실을 비틀어 짜낸 유머였다-어쨌든 '읽는 과정'에서는 몇 번이나 피식 피식 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굿바이 동물원> 역시, 웃으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 예상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직관적인 문장들로 쓰인 소설은 참 잘 읽혔다. 깊이 숨겨진 뜻을 음미하면서 복잡하게 고민할 필요 따위 없었다. 삭막한 세상 속을 빈곤하게 살아가느라 사람 구실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니 우울할 법도 한데, 작품 전체에 어두운 느낌은 거의 없었다. 돈이 지배하는 현실을 매우 직설적으로 토로할 때는 이응준의 소설이 떠오르기도 했고, 소심하면서도 고집 있는 30대 남자의 얼굴이 문득 보일 때는 김중혁의 <악기들의 도서관> 속 몇몇 단편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중간 중간 맞닥뜨리게 되는 발랄함에서는 박민규나 박 상의 초기작들을 오랜만에 떠올렸다. 하지만 이 소설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들은, 그냥 아는 선배의 넋두리 같은 부분들이었다.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수업 한두개 같이 듣고 밥도 몇 번 같이 먹은 적 있는 선배가, 조금은 쭈뼛거리면서도 용기를 내어 자기가 살아온 얘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뭐 이런 것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먹고사는 건 왜 이렇게 힘이 든 걸까? 왠지 모르게 후유, 한숨이 나오는 한때였다. (p.65)
요즘은 눈 뜨고 있어도 장기 빼가. 자기만 잘 살면 장땡이라고. 안 그래? 남이야 장기가 있든 없든 자기 밥그릇만 무사하면 만사 OK야. 요즘 세상이 그래. (p.195)
울고 싶은 날에는 마늘을 깐다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소설은 총 5부 10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 및 부의 분량은 동일하지 않다. 1부(울고 싶은 날에는 마늘을 깐다)는 세렝게티 동물원에 들어가기 전의 이야기이고, 2부(세렝게티 동물원)부터가 본격적인 동물원 생활의 시작이다. 1부의 배경인 김영수 부부의 집과 2부부터의 가장 주요한 배경인 세렝게티 동물원은 서로 대응하는 장소처럼 보인다.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내가 그려본 구조도는 이러했는데…
VS 세렝게티 동물원 & 사람답게 살고 싶어요
왼쪽은 김영수가 사람으로 살아가던 현실적인 공간, 인간들이 살아가는 바로 이 사회라면 오른쪽은 김영수가 동물의 탈을 쓰고(특히 고릴라의 탈을 쓰고!) 살아가야 했던 비현실적인 공간, 인간 대신 동물로서 존재해야만 하는, 자연을 본뜬 유사 자연의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김영수는 실직자이고 생계 곤란 처지에 내몰려 온갖 부업을 한다. 마늘을 까고 인형 눈알을 붙이고 바비의 속눈썹을 붙인다. 그래도 사는 건 나아지지 않고 아내는 계속 통장을 깨야 한다. 견디기 힘든 김영수는 본드를 불고 꿈을 꾸면서 깐 마늘과 빅베어와 타짜의 주인공과 바비와 달빛 공주를 만나며 판타지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나름 즐거운-_- 모험을 한다.
하지만 꿈은 그야말로 꿈, 일 뿐이다. 본드를 부는 그 순간이 황홀할지라도, 꿈을 깬 후의 세상은 시궁창이다. 게다가 그 꿈이 김영수에게 되풀이해 일러주는 건 약육강식의 법칙에 지배받고 있는 건 꿈 속 세상이나 현실 세상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두 명 이상 존재하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간에, 강자가 살아 남는 법이고, 강자란 돈을 가진 사람임을, 타짜의 주인공은 끊임없이 김영수에게 알려준다.
그래서 김영수는 남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남 죽여 내가 사는 세상에서 약자인 자신의 앞가림을 하기에도 벅찬 그가 남의 삶에까지 신경쓸 수는 없다. 여력도 없고 여유도 없다. 체육공원에서 만나 인간적인 정을 나눈 송 과장이 서글픈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걸 알아도 그를 말리지 않는다. 남자가 여자 상대로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아줌마가 툴툴대며 불평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줌마를 상대로 온 힘을 다해 체력을 겨루며 경쟁한다. 그래야 살아남으니까.
사람 구실은 못하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이 동물원이야. 웃기지?
사람 구실 하겠다고 사람답게 사는 걸 포기해야만 했던 그 사회를 떠나 김영수가 도착한 세계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 아니니까 사람 구실 같은 건 안 해도 되는 세계다. 동물의 옷을 입고, 동물의 행동을 하며, 동물의 먹이를 먹음으로써 돈을 벌 수 있는 곳이다. 마치 자연으로 돌아간 듯 평화로울 것 같고, 그냥 빈둥대며 철창 안을 굴러다니면 될 것 같아 편할 것 같지만, 이 동물원 역시 자본주의적 도시의 산물이기에 그들은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면 안 된다. 관람객이 원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더 많은 관람객을 끌어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 김영수는 빌딩(이라고 설치된 구조물) 위에 올라가고, 가슴을 탕탕탕 치고, 관람객이 던져준 바나나를 꾸역꾸역 먹는다. 그래서 이 곳은 자연이라기보다는 유사 자연이다. 현실에 존재하기 힘든, 지극히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김영수와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를 위해주고 배려해 준다. 물론 현실에서 김영수가 지극히 이기적인 인물이기만 했던 건 아니다. 그의 삶에 개입하진 않았으나, 송 과장에게 짠한 연민을 느낀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동물원에서 김영수는 더욱 적극적인 인물이 된다. 다친 조풍년을 위해 버저를 눌러주고, 도서관에서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는 영희에게 밥을 사주겠다고 하고, 동물원을 떠나겠다고 하는 만딩고를 꽁꽁 묶어두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렇게 인간들은 고릴라가 되어, 인간으로서의 정을 나눈다. 가짜이기에 진짜 내 모습으로는 살 수 없고, 그래서 영원히 머물 수 없는 이 공간이 진짜 내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내 마음을 온전히 보존하며 살 수 없는 현실보다 훨씬 더 나를 위무한다는 건 기막힌 아이러니다.
그것은 어쩌면 고릴라가 된 이들에게 현실이 너무나 가혹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자기 안의 또다른 자기가 진짜 자기를 죽이는 것을 경험한다. 합마공과 귀식대법, 강시공이라는 무공을 연마해야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며 감정과 표정을 잃고 자신의 존재감을 잃으며 몸의 감각까지도 잊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시체에 가깝다. 조풍년은 오물처리반에서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인다. 그럼으로써 살아남게 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추악해 진정한 자신을 사랑하던 사람들의 두려움과 혐오를 사게 되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믿는다. 남파 간첩인 만딩고는 딱 중간만 하려는 회사원 되기가 간첩 훈련을 받을 때보다 백배는 더 힘들다고 느낀다. 사람 취급 받지 못하는 자신은 기계도 될 수 없기 때문에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 지내다가, 자신을 팔아먹으려는 연락책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나를 죽이고, 남을 죽이고, 그러다 결국 남에게 죽임당할 지경에 이르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라는 곳의 실상임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계속 살다보면 우리는 죽을 때, 영희의 말처럼 "어쩌면 그때 전 인간이 아니었는지도 몰라요."라는 말 이외에는 남길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인간으로 도저히 살 수 없게 하는 세상보다는 오히려 고릴라의 탈을 입고 돈을 버는 동물원이 더 인간적이라고. 그래서 아무거나라는 이름의 안주와 안중근 소주를 나누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들어줄 수 있는, 불꺼진 동물원의 휴게음식점은 고릴라들에게 '함께 살아감'을 경험하게 하는 곳이 된다. 또한 만딩고가 찾아가는 콩고는 가짜인 내 모습으로나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그럼으로써 가짜인 내 모습을 진짜로 바꿔 주는 곳이 된다. 어쨌든 우리는 기계가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사람의 옷을 입고 살아야 하니까, 동물원은 결국 가짜니까, 진실이 아닌 공간에서 인간끼리 진실된 정을 나누며 영원히 산다는 것은 동화일 뿐이니까…시간은 흐르고, 고릴라들은 인간이 된다. 사람처럼 살아보겠다고, 영희는 낑낑대며 도서관에 간다. 죽을 때까지 동물원의 앤으로는 살 수 없으니까, 다시 현실로 나오기 위해, 그곳에서의 시간을 악착같이 견딘다. 만딩고도, 조풍년도, 동물원 밖으로 떠난다. 남는 건 가장 늦게 들어온 김영수뿐이다. 결국 동물원은 굿바이, 해야 하는 곳인 게다. 그래서 아마도 작가는 '안녕'이나 '굿모닝' 대신 '굿바이'라는 말을 동물원 앞에 붙여 제목을 달지 않았을까-하고 추측해 본다.그런데 왜 그들은 그 고달픈 현실로 굳이 돌아가야만 했을까. 동물원의 거짓 평온이 불만족스러웠다면, 모두 함께 그곳을 뒤엎어버렸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니면 모두 함께 콩고로 떠났어야 하는 건 아닐까. 현실로 돌아간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약육강식의 법칙이었을텐데, 그 안에서 그들은 또다시 강자가 되려고 피튀기게 싸우며 남과 자기를 모두 즈려밟고 있진 않을까. 그렇게 그들이 현실로 돌아가 멋지고 예쁘고 화사한 모습으로 김영수 앞에 나타났다는 것은, 김영수 역시 이곳을 떠나 그렇게 멋지고 예쁘고 화사한 모습이 되기 위해 경쟁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걸 말해 주기 위함이었을까.
하지만,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결말 자체가 하나의 아이러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한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이 막막한 세상, 유쾌하게 이야기를 마무리짓기 위해 작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란 영원히 동화 속에 머물 수 없는 인간들을 위해 새로운 출발 지점을 마련해 주는 거였을 테다. 다친 너를 위해 내가 버저를 눌러 주고, 너를 붙잡고 싶은 나의 마음을 네가 행복해지기 바라는 마음으로 억누를 수 있는 경험을 한 그들은, 돌아간 세상에서 희망 혹은 삶의 동기라 불릴 수 있는 지점들을 하나 하나 찾아나가며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해도, 틀리진 않을 게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영희와 조풍년이 김영수를 보러 동물원에 돌아갔다는 건, 어쩜 그들이 언제라도 자유롭게 고릴라와 인간을 왔다갔다 할 수 있게 된 것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인간이 싫어지면 동물원으로 가고, 고릴라가 싫어지면 인간 세계로 가는, 얽매임 없이 자유로운 존재들이 된 건 아닐까. 물론 이 생각이 너무 과하지 않나 하고도 생각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네…마지막으로, 구구절절 깨알같이 공감되던 책 속 일부분을 옮겨적어 본다. 나도 직장에서 경우 없는 어른들 보며 저런 생각을 자주 하는지라 이 부분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ㅋㅋㅋㅋㅋㅋㅋ 이 부분 말고 광장 패러디 부분("제 3국!")이나 동물들의 태업 부분 같은 장면도 재미있었다ㅋㅋㅋ 다음 작품도 기대할게요, 펜으로 글을 쓰신다는 강태식 작가님 :)
생각해보면 동물들에게 뭘 집어 던지는 사람들도 참 안됐다. 얼마나 쌓인 게 많았으면 동물원까지 와서 저럴까 싶다. 어떻게 사는지 안 봐도 비디오다. 직장에서는 스트레스만 받는다. 전쟁터가 따로 없다. 위에서는 찍어 누르지 밑에서는 치고 올라오지, 하루하루가 총알이 빗발치는 사선의 최전방이다. 아군은 없다. 적군뿐이다.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긴장감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다고 집이 편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집에 와도 발붙일 곳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배우자의 얼굴을 보면 짜증만 난다. 신비감 같은 건 사라진 지 오래다. 더럽고 치사하고 냄새까지 난다. 내가 저 인간하고 왜 사나 싶다. 자식도 자식이 아니라 원수다. 걸핏하면 대든다. 따박따박 말대답하는걸 보면 머리가 나쁜 것 같지는 않은데 공부는 왜 그렇게 못하는지 모르겠다.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들을 때는 용돈 달라고 손 벌릴 때뿐이다. 어려서는 안 저랬는데, 저게 왜 저렇게 컸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 싶을 때는 띵하니 뒷골이 땅긴다. 은근히 건강이 걱정된다. 이게 또 스트레스다. 지나친 흡연과 과도한 음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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