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흔드는 바람/읽고

『파도가 바람의 일이라면(김연수, 자음과모음)』속 '점들'.

 

좋아하는 책이나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고 감상을 적는 건 어렵지 않다. 책을 혹은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무언가를 쓴다는 '노동'을 즐겁게 할 마음 자체가 들지 않으니까. 이야기를 읽고, 그것이 허구임을 알면서도 이야기 속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생각을 정리해 보는 작업을 자진해서 하고 싶게 하는 책. 그런 책과의 만남은 참 기쁜 경험이다.

하지만 매우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고 감상을 적는 건 어렵다. 주인공이 어떤지, 배경은 어떤지, 내용은 어떤지, 하나도 알아보지 않고 오직 작가 이름만으로 선택하는 책을 읽기 전에는 불안함과 싸우게 된다. 이 책이 내 기대보다 못하면 어떡하지? 그 작가가 맨날 또는 자주하는 그 얘기를 반복하는 데 불과한 책이면 어떡하지? 심지어 이 책을 읽고 그 작가가 덜 좋아지면 어떡하지? 하는 데까지 발전하는 불안함. 그리고 그 맞은편에 서 있는, 이 책이 내가 가장 좋아했던 그 작가의 다른 책보다 더 재미있기를, 그래서 내가 꼽는 그 작가의 대표작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함. 이 두 가지 마음이 똬리를 틀고 서로를 견제하고 물어뜯고 뒤엉키면서 '이성적이고 차분한 독서'를 방해한다.

내게 이런 마음을 들게 하는 작가(당연하게도 '생존 작가'이다!) 중 첫 번째는 너무 어렸을 때부터 그의 책을 읽어온 탓에 이제는 딱히 불안함과 간절함의 경계를 가르기도 애매해진 무라카미 하루키일 테다. 그 다음으로 꼽을 만한 작가가 우라사와 나오키. 한국 작가 중에서는 배수아와 한강. 그리고, 상대적으로 가장 최근(2007년 이후), 나의 '그 작가' 목록에 이름을 추가한 분이, 바로, '연모하옵는 아름다우신 작가님'이라 부르기를 주저치 않는, 김연수작가님.


이 책 『파도가 바람의 일이라면(김연수, 자음과모음)』을 책장 중앙에 꽂아 놓고도 한동안 책을 펼치지 못하고 작가님의 라디오 인터뷰와 신문 인터뷰를 반복해 듣고 읽으며 뜸을 들인 건, 그 둘의 부딪힘이 워낙 격렬했던 터다. 김연수작가님의 책 중 최고를『나는 유령작가입니다』와 『밤이 노래한다』로 꼽았던 나는, 솔직히, 『세계의 끝 여자친구』와 『원더보이』를 아무 데나 펼쳐 뒤척이기만 했을 뿐, 처음부터 끝까지 아직도 제대로 읽지 않았단 말이다. 혹시나 실망하면 어쩌나, 와 내 최고의 작품이 바뀌면 어쩌나, 의 극단적인 부딪힘이 그러한 게으름 혹은 미적댐을 가능하게 했으리라.

하지만 EBS 라디오소설로도 이미 들었고, 낭독의밤에도 다녀왔고, 작가님의 라디오인터뷰도 반복해 들을 만큼 들은 상황에서, 『파도가 바람의 일이라면』가『원더보이』의 전철을 밟게 하는 건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9월의 끝자락에서 결국 이 책을 다 읽었다. 군데군데 멈춰가며 눈물을 떨어뜨렸다 닦았다 해 가면서.

그렇다면 이 책이 내게 새로운 김연수작가님의 최고작이 될 것인가?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머릿속 마음속 소용돌이치는 느낌이 좀 잠잠해지고 나서야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지금은, 조각조각 떠돌아다니는 느낌들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 보면서, 카밀라에 대해, 지은에 대해, 정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작가님은 절대 좋아하시지 않을 것 같지만!) 이 소설 속에서 90년이라는 시간 동안 점점이 흩어져 있던 일들을 시간 순서대로 놓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지은을 좀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의 발현이라면, 작가님도 너무 불쾌해하지는 않으시겠지. 음.


 

 

『파도가 바람의 일이라면(김연수, 자음과모음)』 연대순 정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