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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이즈음에

221123, 이즈음에.

오늘 당인리 책발전소에 다녀왔다. 그 유명한 전 MBC 아나운서 김소영씨가 대표로 계시는 그곳이다. 김연수소설가님 북토크가 있었다.

 

 

 

1.

사실 나는 뽑히지 못했다. 너무 늦게 신청해서 신청 설문에 답하면서도 나는 틀렸다고 슬퍼했다. 진짜로 행사 전날까지 내일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문자가 오지 않았다. 실의에 찼다. 물론 누군가가

 

야 너 이번 가을에 김연수소설가님 행사 여러 번 갔다왔으면서 너무 욕심내는 거 아니냐🤔

 

라고 한다면 사실 '그렇죠 제가 욕심부리는 거죠'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덕질이라는 것은, 덕질의 대상을 한 번 볼 수 있다면 한 번 볼지라도 세 번 볼 수 있으면 세 번 보고 열 번 볼 수 있다면 열 번 다 보는 것…!!! (이거랑 비슷한 문장을 아주 최근에 블로그에 쓴 기억이 나는데????) 여튼 그러므로 나는 이제까지 소설가님을 몇 번 뵀든, 앞으로 몇 번 더 뵐 수 있든 간에 오늘 또 뵙고 싶었다. 북극서점에서 뵌 김연수소설가님과 파랑새극장에서 뵌 김연수소설가님과 아람누리도서관에서 뵌 김연수소설가님 모두 같은 분이라면 같은 분이지만, 그날 그곳에서의 소설가님은 고유하고 유일하니까. 2022년 11월 23일 당인리발전소에서의 소설가님도 유일하고 고유할 것이며 그곳에서 소설가님을 뵐 수 있는 기회가 내 평생 또다시 올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으니까.

 

게다가 오늘은 11월 23일 아닌가. 1123으로 날짜가 적히는 날. 1월 23일과 11월 23일은 123이 나란히 적히는 날이라 그냥 넘기기 힘들단 말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 날이란 말이다. 그 일이 좋으면 좋을 수록 좋겠는 날이란 말이다. 물론 221122로 날짜가 적히는 어제만큼이야 특별하지 않겠지만ㅋㅋㅋㅋㅋ 어제 같은 날은 진짜…내 인생에 딱 한 번 만나는 날이겠지. 2122년까지 살지 않는 한 221122로 날짜가 적히는 날을 내가 어떻게 만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2122년에 나는 살아 있을 리 없고ㅋㅋㅋㅋㅋ)

 

 

2.

오늘 소설가님을 꼭 뵙고 싶었던 나는, 평소에 잘 안 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바로 읍소하기.

 

평소엔 무언가에 매달리며 아쉬운 소리 하느니 깔끔하게 관두는 인간=나이지만 덕질할 때의 나는 그렇지 않지. 그때의 나는 '내가 이러는 게 얼마나 민폐가 되겠는가?'라는 생각을 집어치운 채 질질 매달리는 인간이므로(즉 에너지가 훨씬 넘친다는 뜻. 매달리는 것도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혹시라도 모를 행운이 찾아오기를 무작정 바라며 구걸을 시전했다. 그럴 리 없겠지만 있을 수가 아예 없지는 않잖아 하는 심정으로. 그리고

 

너무너무너무 운이 좋게도!!! 못 오게 되신 분이 계셔서!!!! 마지막 티켓을 잡을 수 있었다😂😂😂😂😂 끝까지 기회가 안 생기면 그냥 서점 앞까지 가서 소설가님 보고만 올까???? 까지 생각했었던지라 너무너무 감격스러웠다ㅠㅠㅠㅠㅠ <되면 하자 아니면 관두자> <일단 노력은 하고 안되면 말자> <어차피 인생은 될놈될 안될안이고 내 팔자는 될놈될일 리 없으니 너무 실망하지 말자> 같은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왔지만 이렇게 될 때도 있고ㅠㅠ 이렇게 될 때의 대부분은 덕질과 관련된 일들인 것이고ㅠㅠㅠㅠ 덕질은 결국 사랑인 것이고ㅠㅠㅠㅠㅠㅠㅠ 그렇다면 결국 나에게 세상이 웃어주는 경험은 타자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하는 것이겠구나 하는 심정으로 경의선을 타고 망원역으로 갔다. 그리고 행복한 저녁을 즐겼다.

 

행사가 있던 2층에 소설가님 책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아주 좋았음...!!!

 

 

3.

가면서 생각했다. 망원역에 올 때마다 좋은 일이 있구나 하고. 올해는 생각의여름 공연을 보러 두 번 왔었고 이다혜 작가님 북토크를 보려고 한 번 왔었다. 다 너무 좋았지. 이다혜작가님 북토크가 있던 때는 직장 선배 때문에 내적 갈등이 엄청 심했었는데(너무 좋아하는 사람인데 너무 싫기도 해서ㅜㅜㅜㅜ) 이다혜작가님께서 따끔하지만 큰 득이 되는, 그야말로 화이자같고 아스트라제네카같은 조언을 해주셔서 엄청 큰 깨달음을 얻었었다. 그 깨달음에 따귀를 맞은 기분으로 망원동에서 홍대까지 걸어왔던 밤이 생생하게 기억남…!!!!

 

생각의여름 공연도 당연히 너무 좋았었다. gaga77page에서의 공연은 여름이었고, 코멘터리룸을 제외하면 손과손 발매 이후 첫 공연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듣고 싶었던 생각의여름 음악과 종현님 목소리에 푹 잠겨있을 수 있었다. 편안히 앉아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는 종현님의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들었더니 더운 날이 청량해진 기분이어서 굉장히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었다. 무엇보다 종현님의 노래가 따뜻하고 밝아졌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 종현님 행복하신 가 보다 싶었고, 많이 행복하셨으면 좋겠다고 열렬히 바랄 수 있었다.

 

가을에 본 벨로주에서의 공연 역시 너무 좋았는데, 종현님이 부르시는 다른 가수들의 노래들도 너무 좋구나 싶어 크게 감동받았었다. 예전 룰루랄라에서의 밥 딜런 헌정 공연 때 커버하시는 종현님을 본 적이 있고, 빵에서 종현님이 부르시는 항해를 들으며 와, 나 이 순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 라고 확신했던 기억이 있긴 하다. 그리고 언젠가 종현님이 이렇게 ' 애창곡을 부르시는 공연'을 또 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날도 이날처럼 종현님의 고운 고음을 많이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종현님이 불러주시는 강아솔님의 안부인사를 듣는데 세상에 없는 그리운 사람들이 떠올라서 눈물이 너무 많이 났었다. 아빠 생각 나고, 준석님 생각나고, 이태원 생각도 나고, 또 많은 것들이 생각나고...그러다보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4.

나는 '집 밖에 나가는 게 싫다'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아주 오랫동안 만족스럽게 살아왔다. '나는 집 밖에 나가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 침대 위에 있는 게 다른 어떤 곳에 가는 것보다 훨씬 행복하고 안락하고 평온하다.'는 건 내게 딱 떨어지는 인과 관계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나는 나가지 않을 수 있다면 무조건 나가지 않는 쪽을 택했다. 나갈까 말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무조건 안 나가는 거였으니까🤔 많이 기다렸던 만남이 있을 때도 당일날 약속 장소로 나가기 직전이 되면 모두 다 취소하고 집에 누워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약속이 취소되면 내심 좋았다.

유일한 예외는 덕질할 때. 그때는 안가도 되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도 않고 무조건 갔으니, 사랑이라는 게 인간을 원래의 자신 혹은 보통의 자신과 다른 존재로 만든다는 말은 진리인 것 같다…만, 어쨌든 나는 평생을 집순이로 살았고 보통 집순이도 아닌 파파파파파워집순이였고 집순이로서의 삶이 만족스러웠으므로 평생 이렇게 살다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도 볼게 너무 많고 할 게 너무 많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사람=나라서 집에만 있으니 심심하다는 말 같은 건 평생 남의 일이었다(이건 지금도 마찬가지). 그러다가 코로나가 왔다.

 

내가 원해서 내 방에 가만히 쳐박혀 있는 건 너무 좋은데, 그걸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니까 별로 즐겁지 않았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도 남이 시키면 하기 싫어 죽는 게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 심지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도 남이 시키거나 참견하면 재미없어하는 인간이라서 내 덕질에 대해 남들이 아는 것도 엄청 꺼리는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괜히 남들이 이러니 저러니 말 얹으면 하기 싫어지기 때문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좋아하는 대상은 불변하는 것이 아닌데, 누군가가 나를 '누구누구 좋아하는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도 되게 부담스럽다. (물론 블로그에 따로 카테고리를 판 대상들은 다 불변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기나길었던 야구 덕질의 역사가 나를 이런 인간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10대 시절의 나는 전국의 야구장을 돌아다니며 ㅎㅎㅇㄱㅅ 경기를 보러다니는 게 소원이었으며, 10*n년 후의 내가 이렇게 'ㅎㅎㅇㄱㅅ를 좋아했던 게 내 인생 제일 큰 실수'라고 생각할 줄 꿈에도 생각 못했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시절을 떠올리면 대부분이 빡치는 기억인데 그 중 선명히 기억나는 건 여름방학 마지막날 민철오빠가 이종범에게 만루홈런 맞고 패전투수 돼가지곸ㅋㅋㅋㅋ 그다음날 학교 가서 너무 힘들었던 것(밤새 울고불고 하느라 제대로 못잠)과 민철오빠가 정민태와 맞대결해 패전투수 됐는데(이것은 민철오빠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타선의 문제 때문이라고 지금도 확신함. 95% 정도...) 다음날 학교에서 정민태와 정민철을 구별 못하는 애들이 정민태 승리 뉴스를 어디서 주워보고 축하 인사를 엄청 많이 해줬던 것. 아 쓰기만 해도 너무 어이가 없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애니웨이

 

 

5.

'남이 시키는 일이면 좋아하는 일도 하기 싫어지는 인간'이 나라는 것과 함께, 몸이 슬슬 여기저기 아파와서 걷기라도 안하면 죽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들었다는 것 역시 코로나 첫해부터 내가 본격적으로 동네 산책을 시작한 이유다. 죽을 때 죽더라도 살 때는 덜 아파야 할 거 아닙니까ㅠㅠ

 

그전에도 걷는 것 자체는 좋아했고 즐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오늘 좀 걸어야겠네'라는 생각이 드는 날 걷는 거였지 습관적으로 걷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걷는 건 좋아하지만 산책은 하지 않았다고 해야겠네. 쓰다보니 야근이야말로 산책의 적이라는 확신이 드는 기분이다. 신촌-이대-아현, 충정로-광화문-종로, 신촌-홍대-합정까지를 늘 걸어돌아다니던 대학생~직장인 이전 시절에는 야근 같은 것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 일산을 좀 더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꽤 오래 전부터 했었지만 워낙 야근을 많이 하다보니 평일엔 걸을 여유가 없었다. 퇴근이 열신데 빨리 집에 가야지 무슨ㅋㅋㅋㅋㅋ

 

그런데 코로나가 되면서 야근이 줄었고 심지어 재택근무를 하는 날까지 생기면서! 간간이 밤 또는 저녁에 동네 산책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세상에 내가 직장이 아닌 집 근처를 이 시간에 걷고 있어...라는 사실이 묘하게 감격적이었다. 덕분에 나는 집 가까이 있지만 일년에 열 번도 안 갔던 호수공원엘 다니고 동네를 돌고 삼호선 라인을 따라 쭉 걷고 한 번도 안 가봤던 옆동네도 가 보고...그러면서 멀다고 생각했던 곳이 생각보다 안 멀다는 것도 알게 됐고, 그렇게 멀지 않다고 생각했던 곳이 생각보다 엄청 멀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러다보니 언젠가부터 아, 나갈까 말까 싶을 때는 무조건 나가는 게 좋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안 나가도 좋다. 나는 여전히 자는 걸 너무 좋아하고 침대 위에서 뒹굴면 행복해지는 사람이라 내 방에 안락하게 쳐박혀서 캔디크러시 사가를 하거나 넷플릭스나 쿠팡플레이나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아주 평화로워진다. 고독한 미식가를 본다면 그보다 더 마음이 평온해질 수가 없닼ㅋㅋㅋㅋ 책을 읽다 잠드는 것 역시 언제나 너무 좋아하는 일. 하지만 고로상과 굿플레이스와 유튜브와 캔디크러시를 뒤로 하고 슬리퍼 대신 운동화를 신고 나가면, 나가 있는 모든 순간이 다 즐겁진 않지만(인간을 보니깤ㅋㅋㅋㅋㅋ) 하나라도 좋은 일이 생기거나 하나라도 마음에 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러면 그날 나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 몇 개 덧붙여보면,

 

올 가을 기억나는 순간 하나: 호수공원에서 너구리 만난 밤

 

올 가을 기억나는 순간 둘 더: 넋 놓고 노을 바라봤던 저녁

 

올 가을 기억나는 순간 중 둘 더: 북극서점을 나오며, 교보문고로 향하며

 

 

6.

김연수소설가님이 올 가을에 이런 말씀을 몇 번 하셨다. 코로나19가 오고, 모두다 이게 위기라고 했고, 소설가님도 처음에는 마음이 많이 불안하셨고, 거리두기가 처음 시행된 날 작업실 근처의 가게들 불이 10시에 다 꺼진 것을 보시며 세상의 종말 같은 걸 느끼셨다고. (아마도 라페스타 옆 먹자골목을 염두에 두신 말씀이 아니었을까 생각함. 내가 늘 '일산의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이라고 여기는ㅋㅋㅋㅋㅋ) 하지만 좀 지나다 보니까 어 이거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드셨다고.

 

나 역시 그렇다. 직장 업무의 90% 정도가 인간을 대면하고 상대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던 터라, 코로나 처음에는 많이 혼란스러웠다. 계획했던 한 해의 일이 다 뭉그러졌다. 1년이 아닌 '그 날'의 계획을 하루에 몇 번씩 바꿔야 했다. 꼼꼼하고 계획적인 인간이 못 되기 때문에 반드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아우트라인을 잘 잡아놓아야 하고, 의식적으로 계속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그 모든 것들이 다 의미 없어지는 때가 너무 자주 왔다. 아오 뭐 어쩌라는 거야ㅠㅠ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하지만

 

코로나 덕분에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작년부터는 정말 획기적으로 줄었다. 그러면서 직장일에 너무 많이 연연하던 나는 좀 달라진 것 같다. 어렸을 때 참 좋아했던 직장 선배가 '자꾸 직장에서 자아실현하려고 하지 마...자아실현은 그냥 네 삶에서 해...'라고 하셨었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대충 알았지만 어려웠다. 지금은 좀 알겠다. 직장이 나에게 주는 의미나 보람도 분명 없지 않으나, 그것이 내 삶의 유일한 의미나 보람이 되어선 안 될 거 같다. 그리고 직장에서 내가 실현하는 '자아'가 나의 '온전하고 고유하며 유일한 자아'여서는, 절대 안 될 것 같다.

 

물론 내년이 되면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다시 많이 늘어날 것 같지만ㅋㅋㅋ 코로나 3년 간 나도 조금은 달라졌기 때문에, '다시 직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나'는 '늘 직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던 나'와 분명 다를 것 같다. 계속 일만 하고, 바쁘고, 여유 없고, 헥헥대겠지만, 그래도 틈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예전보다는 더 하지 않을까.

 

 

7.

올 봄의 나는, 올해가 나에게 2012년 이후로 가장 괴로운 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라는 골로 갈 것이고 혐오는 극단화될 것이며 차별은 극대화될 것이고 갈등은 끊임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준석님까지 돌아가셨다. 직장 일은 작년보다 3배 정도 더 많았다. 2022년이 하루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봄을 보내고 여름을 맞았다. 그러고 나니 생각의여름 앨범이 나왔다. 종현님의 공연에 기대어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여름이 덜 덥고 가을이 일찍 찾아온 것도 좋았다.

 

그후론 더 좋아졌다. 김연수소설가님 신간이 나온다고 하여 기대하고 있었는데, 김연수소설가님 행사를 갈 기회가 생각보다 꽤 많이 생겼다. 이번주만 해도 소설가님을 일주일에 세 번 뵐 수 있다(수, 금, 토요일. 모두 다른 장소에서!). 근데 아직도 날씨는 가을이다. 수능이 지났는데도 크게 추워지지 않아서, 와 올해 가을 너무 길어서 너무 좋다-고 자주 생각한다. 내 생애 이렇게 긴 가을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2022년 망해버려...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가득 담고 있었던 나에게, 올해 내가 김연수소설가님을 이렇게 여러 번 뵐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줬다면, 나는 과연 믿었을까. 못 믿지 않았을까. 가장 좋은 게 나중에 온다는 믿음은 내 것인 적이 없으므로, 아마도 '꿈 같은 소리 하네'라며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했을 거다. 근데 이런 나에게도 좋은 여름이 왔었고, 기적같은 가을이 왔다. 심지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 경이롭다.

 

그렇다. 나에겐 은은한 사랑의 기미로 온 세상이 울렁거리던 여름이었고 가을이었다.

 

8.

내가 사는 여기가 천국일 리는 없다. 하루하루 갈수록 지옥에 조금씩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맞을 거다. 실제로 내 생각의 기반을 이루는 것도 아주 깊은 비관과 비관에 대한 확신이다.

 

내가 일을 열심히 하는 건 타인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이고(이건 20대 시절 운동을 하면서 겪은 경험들 때문에 더 깊어진 것도 같다😑 여성주의와 여성주의자 모두다 소중하지만 여성주의 운동판은 휴...) 업무를 확인하고 검토하고 또 확인하고 또 검토하며 편집증 환자처럼 반복해 챙기는 건  나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친절히 대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어차피 그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든 말든 관심이 없고, 그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할 거라는 기대가 없다. 그러므로 나에게 친절하지 않은 인간에게도 친절하게 대할 수 있다. 결국 나의 '친절하고 성실해 보이는' 사회적 자아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인간에 대한 깊고 짙은 '믿음도 기대도 없음'이다.

 

그러나 소설가님 말씀대로, 다들 힘들고 피곤하지만, 자기 인생이니까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게 맞겠지. 나는 힘들고 피곤해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남들은 힘들고 피곤하다며 대충 살고 있는 것처럼 보는 게 훨씬 쉬운 일이고, 사실 그래 보이는 사람이 주변에 훨씬 더 많긴 하지만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모두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 나름의 고단함과 피곤함이 삶의 주름 모든 곳에 묻어 있겠지. 그 고단함과 피곤함만큼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들도 곳곳에 묻어 있겠지.

 

그러니 '믿음도 기대도 없는' 나는, '믿음도 기대도 있는 사람'인 양 행동하려고 더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달까지 걸어갈 수는 없겠지만 달까지 걸어가는 사람인 양 걸어갈 수는 있는 게 사람이니까, 타인에 대한 믿음도 기대도 없는 나 역시 타인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많은 사람인 것처럼 타인을 대하려고 애써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더 많이 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더 많이 하고, 좋아하는 소설을 더 많이 보다 보면, 좋은 생각도 더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소설가님이 독자들에게 올 가을 남겨주셨던 편지의 내용처럼.

 

 

 

9.

사실 나는 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의 포인트가,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감독, 좋아하는 작가에는 다 '좋아하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하지만 '좋은 생각'은 '좋아하는 생각'이 아니라, '좋은 생각'이다.

 

내가 '좋아하는 생각'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오늘도 이상한 짓거리와 헛소리를 해서 아 저인간 역시 그럴 줄 알았어...나의 확신을 더더욱 강화시켜주는 것, 또는 인간이 다 멸망해버리고 지구에 인간 아닌 생명들이 남아서 생태계를 복원해나가는 뭐 그런 것...에 더 가깝지만(;;;;;) '좋은 생각'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좋아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건 쉬운 일이겠지만, '좋은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건 엄청 어려운 일이리라고 생각한다. 그 어려운 일을 하라고, 열심히 해보라고, 어렵지만 그래도 멈추지 말고 계속 해보라고, 소설가님이 이번 가을 나에게 여러 번 반복해서 말씀해주시고 또 말씀해주시고 또또 말씀해주셨던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나에게 김연수소설가님은 그냥 많은 작가 중 한 명이 아니라 '사모하는 김연수소설가님'이시니까!!!!! 그분의 말씀대로 해보려고 노력해야지. 그게 소설가님을 덕질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세일 거고, 나는 언제나 덕질에 진심이니까🤭

 

 

10.

아름다운 가을이었다. 이제 곧 저물어가겠지만, 아름다운 가을이었다는 기억은 오래 마음에 남을 것이다. 이렇게 기적 같은 가을을 선물해주신 김연수소설가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름다운 가을이다. 

 

 

올 가을에 만났던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 밤에 산책하다 나무를 보고, 와 이 나무 안에 모든 계절이 다 들어 있잖아-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벅찼었다. 이것도 '산책하는 습관이 생긴' 코로나 이후의 내게 찾아온 선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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