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흔드는 바람/읽고

부지런한 사랑(이슬아, 문학동네, 2020)

작년에 이슬아작가님과 남궁민작가님의 공저인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를 매우 인상 깊게 읽었다. 네가 이런 말을 해 줘서 나는 참 좋았어! 고마워! 우리가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되어서 정말 기뻐! 같은 식의 말을 성인들이 그것도 작가들이 주고받는다고 생각하면 많이 별로인데(이슬아작가님의 표현을 빌자면 꽤 느끼한데)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자신이 보는 세계를 전달하며 공감해달라고 요구하는 대신, 상대가 보는 세계가 자신이 보는 세계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얘기하며 서로의 다름을 환기하는 내용들이 좋았다. 특히 '당신은 어떠한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이슬아작가님의 태도랄까 자세랄까… 같은 게 참 좋다고 생각했다. 그 덕분에 주고받는 글 속의 텐션이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듯.

이번에는 부지런한 사랑을 읽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띠지의 '글쓰기 교사의 숙명'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숙명이라는 단어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직업인이라면 그 직업이 무엇이든간에 명확한 책임감과 일정 정도의 사명감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긴 한다. 동시에 어떤 직업이든 '그 직업을 지니고 사는 사람의 숙명/운명'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부지런한 사랑'의 표지.

숙명이라는 단어의 뜻은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 또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한다. 내가 정말 원한 것이 아니더라도 정해져 있는 것이고 피할 수 없는 것이니까 닥치고 받아들여라, 라는 강요의 느낌이 '숙명'이라는 말에 들어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운명'도 비슷하고) 첫 표지를 넘길 때는 마음에 가볍지 않았는데, 프롤로그를 읽자마자 그 마음이 사라락 녹았다.

 

프롤로그의 첫 페이지. 인터넷 서점에서 미리보기로 프롤로그는 다 읽을 수 있더라.

10대 때 글쓰기 스승들을 너무 사랑했던 나머지 그들과 비슷한 일을 하는 20대가 되었다는 말은 감동받을 만큼 아름다웠다. 나자신이 이렇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애정을 담뿍 담아 말할 수 있는 '직업인'에 대한 부러움을 늘 가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거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나에 대한 사랑 대신 타인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됐다는 고백을 여러 번 읽어보면서, 글쓰기 스승들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스승들이 이슬아작가님에게 주었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글쓰기 스승들에 대한 사랑은 그들이 아닌 타인과 세계에서 사랑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었을 테고, 결국은 스스로에 대한 사랑도 가능하게 해주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이슬아작가님이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었던 아름답고 따뜻한 선생님들은, 저 문장을 보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격변하는 세계이자 나빠지는 세계 속에서 글쓰기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날마다 생각한다는 문장에서는 자신의 일에 대한 진지함과 숙고가 느껴졌다. 주어를 바꿔가며 글을 쓰는 것도 '글쓰기를 통해 할 수 있는 무엇'에 다다르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에게서 남으로 시선을 옮기게 함으로써, 그가 있던 자리에 가보게 함으로써, 타인과 세계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는 것. 이것이 격변하며 나빠지는 세계에서 인간이 다른 인간과 조금이나마 덜 싸우고 조금이나마 더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갇히지 말고, 내 속에 나만 너무도 많지는 않도록 해서, 모두가 처음 맞이하는 미래를 조금이나마 덜 냉혹하고 덜 불친절하고 덜 폭력적이고 덜 파괴적으로 만들려고 애쓰는 것, 그것이 어른의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부지런히 쓸 체력과 부지런히 사랑할 체력. 결국 답은 체력인 것인가!

그래서 이 책을 '글쓰기'에 대한 책으로만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어른의 할 일, 즉 어른으로서 타인과 세계를 대하는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에 대한 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체계적으로 수업을 구상하는 방식이라든지 효율적으로 input을 투입하고 효과적으로 output을 산출하는 노하우, 글쓰기 과정에 따라 단계적인 수업을 커리큘럼에 맞춰 진행하는 팁 따위는 이 책에 한 글자도 없다. 오히려 '교사가 학생/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해 내라고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려준다. 내가 먼저 털어놓는 사람이 되어 나의 소중한 것을 내주고 질문을 해야 그에 대한 답이 돌아올 수 있다고 가르쳐주고, 교실에서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이 선생님일 수도 있음을 일러준다. 그러니 내가 뭐 대단한 걸 주는 사람인 양 거들먹거리지 말고, 권위를 내세워 일방적인 기대를 퍼붓지도 말아야 한다고, 깨우쳐준다.

중간중간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린이라는 세계의 가장 큰 미덕은 어린이가 그저 나와 다른 존재일뿐만 아니라 나보다 더 깊고 넓고 섬세하고 상냥하고 친절하고 현명한 존재임을 계속해서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부지런한 사랑에 실린 아이들의 글을 읽을 때도 그런 느낌이 자주 들었다. 가스레인지의 불 맨 밑에 보라색이 있다는 김지온의 글을 읽으며 나 역시 설득당했고, '제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세윤이 채윤이 형제의 글을 읽으며 '더 잘살아야 할 것 같았'다는 기분을 나 역시 알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직장에서 나보다 연차가 적은 동료들에게, 혹은 팀원들에게 '당신처럼 되고 싶다'거나 '당신이 나의 멘토이다'라는 말을 듣는 일이 (믿을 수 없게도) 가끔 생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굉장히 고맙지만 많이 부끄럽다. 나에게 너무 과분한 평가를 해주어 고맙다는 마음이 제일 먼저 든 다음에는 "하지만 저는 그런 말을 들을 정도의 사람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꼭 하게 된다. 내가 보는 나 자신은 늘 부족하고 게으르며 계속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사람이지 누군가에게 배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럴 거다. 하지만 사실 인간은 더 잘난 사람에게서만 무언가를 배우는 게 아니겠지. 내가 더 많이 가졌을 때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 한 명의 인간이 모든 걸 다 가지고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으니까, 갖지 않은 걸 남에게 받고 모르는 걸 남에게 배우는 게 당연한 거겠지. 그렇다면 이런 말들을 너무 부담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동료들이나 팀원들로부터, 나도 많은 걸 배웠고 많은 걸 받으면 되는 게 아닐까. 그러면 더 잘살 수 있지 않을까.

'엄마는 나를 좋아하니까 밤이 되면 괜찮아지겠지'라는 양휘모의 노래를 처음 글자로 읽었을 때는 갈등을 해결하려 하는 대신 도망가려는 사람의 목소리 같다고 느꼈지만 다시 읽을수록 '밤이 되면 괜찮아지겠지'보다 '엄마는 나를 좋아하니까'라는 말이 눈에 잘 들어왔다. '엄마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신하는 양휘모이기에 엄마와 화해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믿는 거겠지. 그럼에도 엄마에게 빨리 화해하자고 보채는 대신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이려고 노력하는 양휘모의 모습이 왠지 뭉클했다.

아이들에게는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잘해서, 일을 잘해서, 예뻐서, 키가 커서, 옷을 잘 입어서, 글자를 빨리 떼어서 사랑받는 건 '내가 잘하지 못할 경우 나는 사랑받을 수 없어'라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 조건 없이 사랑받는 경험이 아이의 마음을 튼튼하게 만들어주고, 세계와 타인에게 조금 더 친절한 어른이 될 수 있게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양휘모는 그런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인 것 같았다. 완성한 글을 이슬아작가님에게 기꺼이 보여준 아이들 역시, 그런 사랑을 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의 사랑이 아이들의 마음 바닥을 든든히 다져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인간에게 할 수 있는 한 가장 따뜻한 격려를 해주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쉽지도 않을 것이다. 우선 나부터도 그렇다😣 하지만 이슬아작가님의 말처럼 어른이 되기 전의 아이들에게는 사랑과 격려를 받으면서 스스로의 용기를 북돋는 경험이 많을수록 좋다고 여긴다. 그래야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에 사로잡혀 자신의 상처만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고 타인의 마음을 함부로 대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 테니까. 나를 찾아온 사람들을 귀찮아하지 말고 궁금해하는 것, 따뜻한 호기심을 지니고 질문하며 대화하고 격려하는 것,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 어른들에게도 조금 더 친절하자고도 다짐한다.

글쓰기의 윤리와 태도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하는 부분들도 당연히 많았다. 무심코 지나친 남의 혼잣말조차도 다시 기억하는 것이나 나 아닌 사람의 고민도 새삼 곱씹는 것글쓰기의 가장 좋은 점일지도 모르겠다는 글을 읽으며 나를 내 자리에 가두지 않고 타인의 자리에 집어넣을 수 있으려면 '어떤 글쓰기'를 해야 할까 고민했다. 최근 몇 년 간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이 지극히 부족한 인간임을 나 자신에게서 발견할 때마다 굉장한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 고민이 더 깊다. 자기가 가진 정보를 신중하게 선별해서 말해야 할 의무, 생각나는 것을 죄다 말하지 않는 윤리라는 구절도 인상 깊었다. 솔직한 게 좋다는 단순한 이유로 생각나는 것과 아는 것을 죄다 말하는 태도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잊지 말아야지. 조심해야지.

'귀찮음을 극복해야 시작할 수 있'는 일을 하게끔 하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일을 하게끔 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지금은 답을 잘 모르겠다. 그저 부지런한 사랑 속에서 내게 중요한 이 질문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데 의의를 두어야 할까보다. 대신 문장을 다양한 방식으로 써보는 것, 장면을 선물하는 글을 써보는 것, 불필요한 접속사를 최대한 쓰지 않는 것을 나부터 연습해야겠다.

내가 읽은 책은 1판 4쇄였는데 지금은 몇 쇄까지 나왔는지 모르겠네. 이슬아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늘 배우는 게 많다. 쭉 건필하시고, 좋은 글 많이 써 주시길. 꾸준히 오래 하는 것이 가장 큰 재능이라고 나 역시 굳게 믿는다. 잘 읽었습니다 :)

 

 

 

 

+

사족1. '어른여자 글방' 파트의 글도 재미있었는데, 특히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일요일 밤 열시까지 이어진 글쓰기 수업을 마치고 "가야지" "그래, 가야지"하며 외투를 챙기다가 소형 냉장고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커다란 냉동 쓰레기통"이라고 집에 있는 대형 냉장고를 정의내리는 선생님들. 상상만 해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장면이다.

사족2. 책보다 영상 매체를 더 자주 접하고 있는 요즘이라 그런지, '감정의 고양 상태', '감정의 소진상태', '안정화'라는 말이 눈에 확 꽂혔다. 책을 읽으면 뭔가 배웠다는 느낌이 훨씬 많이 드는데도 자꾸 책보다 태블릿을 집어드는 건 '안정화'를 통해 안온한 일상을 유지함으로써 스스로를 고착화하고자 하는 부정적 욕망이 내 안에 득시글거리기 때문인 것인가. 마음이 또 복잡해진다ㅠㅠ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