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박민규, 창비, 2006)
2006. 10. 4. 01:04ㆍ흔드는 바람/읽고
못. 나는 못이다. 그렇게 불린다. 쿵 쿵. 치수가 내 머릴 때릴 때 멀리서 보면 꼭 못이 박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야, 못! 하면 이상하지만, 그외의 별명은 가져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 좋거나 싫다는 생각이, 그래서 들지 않는다. 쿵 쿵. 하지만 정말 못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벽에 기댄 채 머리를 맞다보면, 절대로 그렇다, 기도한다. 다음엔 못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못이라면, 일생에 한번만 맞으면 그만일 테니까.
알파벳의 가장 긴 단어가 무엇이었더라? 나는 생각했다. 기네스북에도 오른 단어가 있는데, 또 산소통을 지지 않고 에베레스트에 오른 최초의 인물이 누구였더라, 게다가 인류가 도달한 심해의 최저 수심은 과연 몇미터인가, 라이트 형제는 몇번의 실패 끊에 시험비행에 송공했으며, 가장 지름이 긴 꽃의 이름은 무엇인가, 역사상 열대우림지역의 최대 강수량은 얼마였으며, 사하라는 과연 언제 어느 때 바다의 밑바닥이었나, 를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과는 아무 상관 없이 나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
즉 너와 나 같은 인간들은 그냥 빈 공간이란 얘기지. 그렇지 않을까? 즉, 보이지 않는 거야. 멀리서 보면 그저 아무것도 없는 캄캄한 공간...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렇게 존재해. 그럼 우린 뭘까? 보이지도 않고, 아무 존재감 없이 학살이나 당하고...영문도 모른 채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고...뭐 그래서 서로에게 의지하기도 하지만... 실은 우리도 200km는 떨어져 있는 탁구공과 같은 게 아닐까? 또 그 사이는 역시나 비어 이쓴 게 아닐까? 왜일까...말하자면, 어쩌라는 걸까?
길고, 아득한 0:0이었다. 잠이 들거나, 다시 잠을 깨거나 해도 0:0의 핑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나는 더이상 랠리를 지켜볼 수 없었다. 가만히, 가만히 있고 싶었는데...가만히, 가만히 있어도 좋았는데...가만히, 맞기만 해도 괜찮은데...가만히, 가만히 죽어도 좋은데...가만히, 순백의 허공을 올려다보며 나는 펑펑 울음을 터트렸다. 가만히, 모아이의 손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지구의 축을 통과한 에스키모의 손처럼, 가만히, 그렇게.
…책장을 덮으면서 문득
지금 당장 이 세상이 누군가에 의해 언인스톨되려고 한다 해도
변명할 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못, 그리고 모아이, 쎌러브레이션.
나도 낙지가 불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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