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2005년, 올해의 책.

2005. 12. 19. 22:20흔드는 바람/읽고

연말을 맞아, 여기저기에서 '올해의 책 베스트 몇'이 앞다투어 발표되고 있다. 이런 랭킹이 나올 때면 내가 읽은 책이 몇 권이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책은 몇 위에 있을까, 뭐 그런그런 생각으로 은근히 눈길이 많이 간다. 한편으로는 베스트셀러 목록이라는 의미 이상의 어떤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좋아하며 읽은 책이 높게 랭킹된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게 또 사람 마음인지라.

아주 좋아하는 작가가 아닌 한 유명한 작가의 책은 좀 꺼리고(나온지 한참 지나서 읽는다;) 유행타서 많이 팔리는 책도 꺼리는(역시 한참 지나서 읽거나 안읽는다;) 성격인데, 이에 더해 올해는 헌책방에서 책사기를 즐겨한 탓에 더더욱 신간을 많이 읽지 않았다 ^^; 하지만 올해를 정리하는 느낌으로 나열해 본다. 혹시나 이 리스트를 나중에 보고서는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느지막히 책을 주문할 수도 있는 거니까.

아, 리스트는 절대 문학 중심 ㅋ


1. 모닝365의 '올해의 문학 10선'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다 빈치 코드/ 댄 브라운
모모-비룡소 걸작선 13/ 미카엘 엔데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시리즈 6부/ 조앤 K. 롤링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도쿄타워/ 에쿠니 가오리


2. YES24와 엠파스 공동 주최, 제 3회 네티즌 선정 올해의 책 2005의 문학부분 후보작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미실/ 김별아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위트 상식사전/ 롤프 브레드니히 저 보누스
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문학의 숲을 거닐다/ 장영희
부모님 살아 계실 때 꼭 해드려야 할 45가지/ 고도원
장외인간/ 이외수
지문사냥꾼/ 이적
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개/ 김훈
비밀과 거짓말/ 은희경
카스테라/ 박민규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바람의 그림자/ 카를로스 루이스
쇼퍼홀릭/ 소피 킨셀라
나니아 연대기/ C.S. 루이스
쨍한 사랑 노래/ 박혜경, 이광호 엮음
꿈꾸는 책들의 도시/ 발터 뫼르스
꽃게 무덤/ 권지예
유림/ 최인호
불안/ 알랭 드 보통


3. 2005 중앙일보 선정 올해의책 문학부문 : 카스테라/ 박민규
- 중앙일보의 문학분야 자문위원 5인 중 4인의 추천을 받았다고 한다. 허허.



그리고 한겨레의 '올해의책 50'은 리스트가 제대로 안 떠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뭐냐 한겨레-ㅅ-;) 대략 김연수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에드아르노 갈레아노의 <불의 기억>, 허수경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선옥의 <유랑가족>, 김윤식의 <내가 살아온 20세기 문학과 사상>, 그리고 카스테라 등의 책이 포함되어 있는 듯. 교보문고와 네이버가 함께하는 '올해의 책 150권'은 27일에 발표된다고 한다. 


보아하니 정말 올해 읽은 게 왜이리 없냐 -ㅁ-; Yes24의 25권 중 5권 읽었군. 20퍼센트?; (게다가 지문사냥꾼은 서점에서 서서 읽었다 ㅎㅎ)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비밀과 거짓말은 '아주 좋아하는 작가가 아닌 한 유명한 작가의 책은 좀 꺼려서 나온지 한참 후에 읽는' 성격 탓에 아마도 내년쯤 읽게 될 것 같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꽤 읽고 싶었는데, 그 때 서점에서 <꿈꾸는~> 1,2권과 미실 & 파이 이야기 중 뭘 살까 고민하다가 후자를 선택하는 바람에...하하;

파울로 코엘료는 유명하시지만 특별히 읽고 싶다는 생각은 안들고. 모모는 예전부터 한번 제대로 읽어보고 싶었는데 삼순이 때문에 너무 히트치는 바람에 또 안읽어버렸고(...계속 성격 나온다;).


어쨌든 올해 읽었던 책들 중 개인적으로 최고라 생각하는 것은 단연 카스테라.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세 번 읽을 때의 느낌이 계속 다른 책이다. 전반적으로 되게 유쾌해 보이지만 매우 슬픈 이야기. 특히나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나 '갑을고시원 체류기' 는 카스테라가 나오기 전 계간지를 통해 접했을 때보다(뭔 책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것이, 역시나 서점에 서서 읽었기 때문에...;) 소설집을 통해 접했을 때 훨씬 더 슬프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비루하고 초라하기 때문에 따뜻히 보듬어줄 수 있을 것 같은, 그리고 보듬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다.

남자 작가들은 별로 신뢰하지 않지만-그래도 박민규에게 믿음이 가는 것은 점점 나아지고 있는 모습이 꽤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지구 영웅 전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그리고 <카스테라>를 나란히 세워 놓고 보면 약간은 안하무인격으로 방방 뛰었고 거칠었던 말투와 이야기 흐름과 구조 따위가 자연스러워지고 정리되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방방 뛰고 거친 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무슨 말을 할지 너무 뻔해 보인다는 점에서 매력은 좀 덜했었다고나 할까. 꽤 노골적이었고 약간은 마초적이었으며 백퍼센트 남자 이야기라서 꺼려지는 면도 없잖았는데, 나아지거나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보통 내가 남자 작가들에게 기대하는 건 '뻘타만 치지 말아 줘!' 정도인데, <카스테라>는 그런 면에서 꽤 양호했었다는 ㅎㅎ.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여급들의 '웃음'을 묘사한 부분을 읽을 때는 '오호, 이거 봐라?'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

그리고 작품집이 하나하나 늘어 갈수록 등장 인물들에게 더 깊은 연민을 느낄 수 있게 되는데, 이는 단지 책 속의 인물에 대한 단순한 느낌에 그치지 않고 나 자신과 내 주위 사람들에 대한 연민으로 확장되는 것 같다. 결국은 작품과 독자의 공감이 점점 그 폭을 넓히고 있다는 느낌. 굉장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더 많은데, 너무 길어져서 그만 쓴다 ㅎㅎ)


미실도 개인적으론 괜찮았고. 어둠의 저편도 하루키의 오래된 팬으로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문학사상사의 표지 디자인과 책 홍보 멘트는 꽝이었다.처음에 추리소설인줄 알았단 말이다 -ㅅ-++ 아무래도 어둠의 저편은 점점 변화하고 있는 하루키의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책 하나만을 딱 떼어서 '최고의 걸작'이니 '21세기의 명작'이니 하고 광고하는 것은...뭐랄까, 어둠의 저편으로 하루키를 처음 접할 수도 있는 독자들에게 '...뭐야 이게, 속았잖아!'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는...(으휴, 문학사상사 밉다) 파이 이야기도 좋았다. 식충 섬 부분은 좀 끔찍했지만 파커와 헤어지는 부분은 살짝 눈물 나기도 했음 ㅋ


그리고...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은 별로였다. 왜 이 책이 그렇게 인기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하긴 내가 류시화 감수성에 잘 안맞아서 그럴수도; 이 책 가지고 싶으신 분은 말씀해 주시면 드릴 수도 있다. 헌책방에 팔아버릴까 생각 중이라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