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 28. 19:52ㆍ💙/너의 이름
이승열이 4년만에 돌아왔다. 이 문장의 방점은 '4년 만에'에 찍혀 있다. 솔로 데뷔 전, 그의 공백기는 무려 7년이었다. 이 때문에 4년이라는 기간이 짧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1년에 한 장 이상의 앨범을 내는 가요계의 작태 속에서 4년은 완성을 위한 인고의 세월이라 부를 만하다. 그리고 그 4년과 7년이라는 긴 쉼표의 사이에는 각각 하나씩의 커다란 음악적 대양이 끼어있다.
2003년의 처녀작 <이 날, 이 때, 이 즈음에...>에서 이승열의 음악적 비행은 1인칭의 고립된 날개짓이었다. 제 몸을 스스로 때리며 그는 대양을 건너 나아갔다. 도착한 섬에서 그는 혼자 노래하며 자족을 꿈꿨지만 그러한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섬을 떠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 반한 무리들이 주변에 하나둘씩 모여들어 군집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비행 연료가 오직 자기를 매질하는 행위에서 발생하는 것만이 아님을 서서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다시 대양을 향해 비상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어느 새 수백의 동료들이 함께 날아올라 그와 함께 편대를 이뤘다. 이처럼 2인칭의 비행이 막 시작된 시점에서 그가 고백한 깨달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러한 궁금증에서부터 이 인터뷰의 서두는 시작되었다.
▷ 글 배순탁(greattak@izm.co.kr)/ 사진 전기홍
앨범 커버에서 확연히 드러나듯, 1집이 '다크 블루'라면 신보
이번 앨범은 4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 완성된 상태에서 연기된 것은 절대 아닙니다. 2004년 겨울 즈음에 이미 2곡을 써놨고, 그 이후부터 계속 레코딩을 진행해왔어요. 하지만 믹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두세 버전씩 따로 갈 정도로 사후 작업이 길어졌습니다. 외부 엔지니어에게도 맡겨보다가, 수정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이 과정에서 곡을 선별해나가니, 2월 경에 딱 14곡이 남았습니다. 그 중 또 한 곡을 탈락시키고 13곡으로 2차 마스터링에 돌입했지요. 또 가끔씩 '플럭서스'가 패밀리 공연을 치르거나 사운드트랙을 준비해야했던 것도 발매가 미뤄진 이유였습니다. 두세 가지 것을 멀티로 병행하지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조금씩, 꾸준히 하다 보니이렇게 된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마지막에 성격 얘기를 하셨는데, 그렇다면 이승열씨 본인이 느끼기에 자신은 어떤 사람 같나요?
- 변덕이 많아요. 우울하다가도 기분이 좋아지고, 심지어는 모든 것을 닫고 혼자 있을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 앨범들을 녹음하면서 많이 바뀐 것도 같아요. 아직까지 예전의 습성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많이 고쳐진 편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사고의 전환이 2집의 색깔에 영향을 미친 측면도 있는 것 같네요.
마니아들에게는 이미 친근한 호명, 더 나아가 음악적 우상일 것이지만 이승열은 일반 대중에게는 아직 낯선 존재다. 이처럼 그가 골수들의 독점적 사랑을 받아온 근간은 솔로 독립 이전부터 그 터가 닦여졌는데, 이제는 전설로 회자되는 듀오 그룹 유앤미블루(U&Me Blue)가 바로 그 모태였다. 지금은 영화음악가로 잘 알려진 방준석과 의기투합해 1993년 결성한 유앤미블루는 한국적 모던 록의 가능성을 탐사하며 언론매체의 주목을 이끌어낸 밴드였다. 비록 단 두 장의 작품을 선보이고 해체했지만, 두 장 모두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한 때는 경매 사이트에서 10만원에 거래될 정도로 희귀성도 높았다. 이후 재발매되었지만 현재는 그마저도 다 소진된 상태. 이렇듯 과거 팬들에게 유앤미블루는 이승열과 방준석이라는 두 개별성들의 약진 덕에 지금도 현재진행형의 약속으로 남아 있다.
2집 얘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죠. 음악적인 방식에 있어서 전작과 어떤 차이를 뒀습니까?
- 간결해진 느낌이랄까요. (음악적으로) 정리가 더 잘된 것 같습니다. 미술에 비유하자면, 1집이 하얀 벽면에 갖가지 물감들을 쏟아 부은 뒤 이쪽 저쪽 정리한 형태라면,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구획을 그리고 시작한 거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때문에 무언가 빼내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단점도 있었지요. 예를 들어 편곡에서 아예 악기를 지운 곡도 있고, 극단적으로 'Trumpet Call'의 경우에는 아우트로만 살리고 다 없앴습니다. 어쨌든 잔디 손질하듯이 세세하게 매만진 음반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곡 얘기가 나왔으니 몇 곡을 구체적으로 짚고 가 보죠. '친구에게, 나에게'는 팬들에게 주는 메시지이자 궁극적으로는 이승열씨 본인을 향한 다짐처럼 들립니다.
- 맞습니다. 처음에는 주변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쓴 곡인데, 완성하고 들어보니 팬들 전체로 확대해서 생각할 수도 있겠더군요. 그리고 그것이 '포기하지 마'라는 후렴구에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격려로 돌아오는 거지요. 앞서도 말했듯이 팬들이 없었다면 결국 지금의 나도 없었겠구나 라는 생각을 근래에 참 많이 했어요. 그랬기에 나온 결과물인 것 같습니다.
'아도나이'(이스라엘의 신 '야훼'를 의미)는요? 정치가들을 비판하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던데요.
- 정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이 세상이 이렇게 되어왔구나 하는 식의 생각을 풀어본 곡이에요. 좋았던 시절이 분명 있었을 것인데, 점점 더 각박해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노래로 불러본 겁니다.
이승열을 정의하는 거시 장르가 모던 록이었다면 몇몇 곡에서 출몰하는 재즈적 요소는 다소 의외입니다. 2집에서는 '곡예사'가 대표적이죠. 개인적인 관심사이기도 한데, 이승열 음악에 있어서 재지함의 요체는 뭔가요?
- 사실 재즈는 제가 탐하고 싶은 장르에요. 가끔 일종이 학문적 벽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그 벽을 타고 넘어서서 힐끔 엿보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지요. 음악을 하면서 블루스, 재즈가 더욱 매력적으로 들리는 것도 그 이유일 수 있겠네요. 하지만 재즈처럼 음악 언어를 현란하게 구사하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저한테 온전히 맞는 옷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벽을 타고 잠시 빌려와서 그것을 제 스타일로 컨트롤하는 거지요.
유앤미블루 시절 형성된 진골 팬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이승열이 보다 많은 대중에게로 다가설 수 있던 동인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목소리 덕분이었다. 사실 유앤미블루의 레코드들에서는 오버 더빙된 기타 사운드에 묻혀 그의 목소리를 감상할 공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는데, 솔로로 전향하면서부터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음악적 주체로 부각시켜 더욱 넓은 팬심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의 성공은 곧 이승열 목소리의 승리와 동격이라는 귀결로 수렴되어 지금까지 여러 평단의 공통된 찬사를 획득하고 있다.
유앤미 블루 시절과 지난 솔로 1집 사이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기타 사운드를 중시했던 그룹 때와는 달리 목소리를 소리의 앞면에 배치한 것이 완연히 다른 특징이었는데요.
- 밴드 때와는 달리 싱어송라이터로서 명함을 바꿨기에 목소리의 존재감이 커야 한다는 판단이 그 이유였습니다. 사실 녹음 당시에는 유앤미블루에서는 안 들리던 제 목소리의 세밀한 부분들이 다 잡혔기에 연주에 묻어갈 수가 없어 힘이 많이 들었어요. 제대로 된 뉘앙스를 타기 위해 계속 다시 노래했지만 쉬이 만족이 들지 않더군요. 조금만 더해보면 세련되게 부를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이번 2집 역시도 지난 번보다 시간이 덜 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려웠습니다. 심지어 성악 전공자의 조언을 구하기도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게 들었던 곡들 중 하나가 '탕!'입니다. 변화된 이승열을 상징하는 곡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 곡 외에 1집과 다른 성격의 트랙들을 꼽는다면요?
- 일단 '스물 그리고 서른'은 신보의 성향, 즉 간소하면서도 정돈된 사운드를 대표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말씀하신 '탕!'은 2004년 겨울에 홍대 클럽에서 연주하기도 했는데, 데모 때부터 '탕!'이라는 제목이 바로 떠오른 곡이죠. 특히 '세상을 살아가는'이라는 부분이 마치 '세상을 사랑하는'처럼 들릴 때 기분이 좋아져요. 또 비슷한 경우로 'Buona Sera'를 들 수 있습니다. 역시나 데모 작업에서부터 입에서 저절로 흥얼거린 타이틀인데, 이탈리아어로 초저녁 인사를 뜻하는 거라고 해요. 라이브로 연주하면 어떨지 가장 궁금한 곡이기도 하구요.
지금은 굳건히 뿌리를 내린 레이블 '플럭서스'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뮤지션과 레이블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에서 '플럭서스'는 이승열이라는 아티스트에게 어떤 음악적 동지입니까?
- 유앤미블루 때 송홍섭씨를 알게 된 것도 그랬고,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제가 여러 레이블의 프로포즈를 받은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다른 대안이나 방면으로 잴 이유도 없었습니다. 물론 '다른 환경이었다면 내 음악이 어땠을까?'는 궁금증은 있지만, 내 음악을 전적으로 보호받고 있기에 정말 만족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플럭서스'라는 레이블 아티스트들이 공유하는 지점, 즉 '플럭서스'만의 특징이 있다면요.
- 각각의 팀마다 다들 자기 색이 강하죠. 그러면서도 대중에 대해 꽉 막혀있지 않다는 점이 좋습니다. 뮤지션 각자가 원하는 용량만큼의 실험이 가능하면서도 그것을 튠(tune), 즉 곡조 안에서 풀어내는 능력도 있구요. 일단 모두들 욕심이 그렇게 많지 않고 항상 모든 가능성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로 임합니다. 전체적으로, 회사하면 떠오르는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의 민주적 구조로 운영된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이승열씨가 경험한 한국 대중음악계에 대한 소회를 듣고 싶네요. 예전 인터뷰를 보니 유앤미블루 때에는 개인적인 불만 같은 것도 제법 있었던 듯 싶던데요.
- 우선 지금의 불황에 대해 얘기를 하자면 나라 면적이 갑자기 커지거나,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지 않는 한 해결되기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그 전에 문화에 대한 인색함을 말하고 싶어요.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공연을 보는 것이 비일상적인 행위이고, 이 때문에 뮤지션이 콘서트를 여는 것 자체가 엄청난 모험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저도 유앤미블루 때에는 신윤철씨와 조인트로 첫 공연을 하고, 학전 소극장 무대에도 서보는 등, 지금 생각해 보면 호화로운 대접을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하지만 뮤지션에 대한 충성심이랄까요, 누구를 좋아했으면 나이가 들어서까지도 지지해주는 그런 마음이 좀 모자라지 않나 하는 느낌은 있습니다.
그의 언급과 비슷한 시선에서 바라보면, 주변에 어느새 음악이란 그저 들을거리에 불과한 오락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사실이 그렇다. 지구촌 전체를 뒤흔든 음악은 너바나(Nirvana) 이후 실종 상태이며, 그나마 한 개인의 세계에 충격적인 질문을 던질 음악조차 만나기 쉽지 않다. 모든 것이 비지니스의 시각 속에서 재단되는 머니 게임의 사슬 속에서 진실한 음악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 여전히 음악은 미래를 예시하는 나침반이며 자기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승열은 음악으로 왜곡된 세계와 대치하는 전통적인 예술가의 개념에 가장 잘 부합되는 뮤지션이다. 누구나 쿨한 취향을 내세우는 스타일 과부하의 시대에 그는 고집스럽게도 예술의 본질과 진실을 말한다. 그는 '핫'한 아티스트다.
그 뜨거운 열정을 바탕삼아 이승열은 이제 막 2인칭의 관문을 통과해 넓게 펼쳐진 '3인칭'의 대지로 비행을 떠나고 있다. 더 많은 동료들이 그의 뒤를 따를 것이니, 도착 예정 시간은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비록 그것이 세상이 정해놓은 규격 안에서의 안전한 비행은 아닐 것이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팬들의 성원을 등에 업은 단독자의 포스라면 그것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 오이스트리트 2007년 6월호, <인터뷰 - 이승열>. 역시나 노가다. 올해가 가기 전에 올리고 싶었다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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