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흔드는 바람/읽고

책을 읽고 인스타그램에 후기를 올린다는 것.

원래는 최근 읽은 소설에 대해서 포스팅을 할 생각이었다(블로그에 책 얘기를 너무 가끔 써서). 근데 글을 쓰다보니 다른 생각이 더 많아져서ㅋㅋㅋㅋㅋㅋ 아예 제목부터 바꿔버림. 이것은 인스타그램을 책 읽은 후의 감상을 짤막하게(아닐 때도 많음) 남기는 SNS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북스타그램 혹은 책을 주제로 하는 SNS 또는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긴다는 것'에 대해 떠들어보는 포스팅이 될 것 같음. 그래서 이 글을 '읽고' 카테고리에 넣어두는 것이 맞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지만 책 읽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니 그냥 집어넣고 써보자면...

 


 

보통 북스타그램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인스타그램을 사용한 지 몇 년 됐다. 2019년에 승열오라버니가 '존 레논의 말'을 펴내시면서 계정을 만들었었는데 어찌어찌하다보니 계속 쓰고 있다.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대부분이 인스타를 과거의 공식 홈페이지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어 계정을 만들긴 해야 할텐데 생각하던 차에 승열오라버니 번역서가 나온 격이라고 해야 되나. 

 

처음 계정을 만들었던 게 2019년 1월 17일. 존 레논의 말, 자기만의 방,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톰 키튼 이야기, 어머니의 나라가 순서대로 올라가 있다.

 

게을러터져가지고 꼬박꼬박 꾸준히 글쓰는 거 쥐약인 주제에 한번 포스팅을 했다 하면 끝없이 길어지는 몹쓸병을 평생 버리지 못하고 있어서 그런지 책 읽은 감상을 짧고 산뜻하게 써야지! 하고 마음먹은 후에도 어느새 책 말고 다른 얘기를 주구장창 쓰고 있거나 책 내용을 하나하나 착즙하고 있는 스스로가 지긋지긋해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이 아직 완료되지 않은 한 문장...절레절레)

 

책 읽은 내용을 짧게 메모해둘 수 있는 SNS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주 오래전부터 했었다. (지금은 거의 로그인을 안하고 있는) 오래된 트위터 계정에는 읽은 책에 대한 트윗을 가끔 남기기도 했었어서 아예 독서후기용 트위터 계정을 따로 파서 써볼까 생각도 했었음. 그런데 트위터는 트위터라서(...) 자꾸 '인상적이었던 문구' 중심으로 트윗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나쁠 건 없다. 책을 읽은 후 뭐든 기록해두는 건 기록하지 않는 것보다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다크 데이터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인식하게 된 지금은 과연 기록이 무조건 좋은가????? 하는 생각이 안 드는 바도 아님. 내가 생산하는 기록이 얼마나 되겠나 하는 마음으로 합리화하고 있긴 하지만ㅠㅠ 휴 인간 뭐지 진짜ㅠㅠㅠㅠㅠㅠ) 그렇지만 그렇게 문구 중심으로 후기를 남기다 보면 문장만 남고 맥락이 증발된다.

 

물론 그것도 나쁠 건 없다22 어차피 읽은 책을 머리에 다 남겨둘 수 있을 만큼 내가 총명한 것도 아니니 인상 깊은 문장이라도 한 두개 남으면 좋지. 하지만 내가 아포리즘을 좋아하는 독자도 아니고🙄 이 책을 통해 인생에 꼭 필요한 격언을 얻어보겠숴!!! 하며 책을 파는 독자는 더더욱 아니며🙄🙄 무엇보다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문장을 골라 트윗한다는 행위 자체가 좀...음......남이 하는 걸 보는 건 상관없는데(심지어 도움이 되기도 함), 내가 직접 하기에는 쑥스럽고 버거운 감이 있다🙄🙄🙄 그 행위에 담긴 자기과시욕망 혹은 인정욕구(나는 이런 문장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이야!)(내가 남긴 문장을 좀 봐!)(보고 감탄하며 리트윗하거나 하트를 붙여!)를 나자신이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음이 자꾸 인식되어서 꼴보기 싫달깤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결국 트위터는 접고. 비교적 짧은 글과 사진 중심으로 후기를 남길 수 있는 인스타를 시작함. 소소하고 가볍게 올려보자는 마음의 북스타그램이었는데 역시 가벼운 마음은 유지되기 쉬운 것이라 벌써 3년 이상 쓰고 있다. 갈수록 책 후기보다 스토리를 더 많이 올리고 있긴 하지만 뭐 어쩔 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작년 마지막 독서, 올해 첫 독서의 피드.

 

인스타로 책 후기를 쓰는 것의 장점을 나열해보자면,

 

1) 기본적으로 '가볍게 쓰자'는 마음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진짜 가볍게 쓸 수 있었다. 각잡고 앉아서 긴 후기 쓰지 않음.

2) 책은 좋았는데 뭐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을 때나, 읽긴 읽었는데 많이 좋지 않았을 때나, 쓰고 싶은 게 있긴 한데 바빠서 지금은 못쓰겠다 싶을 때(보통 '지금' 못하는 것은 '영영' 못하게 되지만...)는 그냥 책 사진만 찍어 올린다.

3) 나 요즘 책을 너무 안 읽는데...?? 싶을 때 피드를 쭉 훑어보며 독서 부족이 사실임을 확인해볼 수 있다.

4) 이때 뭘 읽었지??? 싶을 때도 확인할 수 있다.

5) 오래 전에 읽은 책은 표지가 잘 기억 안날 때도 있는데(아주 가끔) 사진 찍어 올려놓으면 기억할 수 있다.

6) 결국 인스타에 올리는 책도 좋았던 책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즉 안 올리는 책들도 종종 생겨서) 피드를 쭉 보며 그래 이 책 참 좋았었어...라고 만족스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

7)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할 때 그렇게 만족을 주는 책들 중 한 권을 골라잡을 수 있다.

8) 트위터처럼 잘못했다가(-_-;;;) 엄청 지적을 받거나 엄청 영업이 되어서 예상치 못한 후폭풍을 겪는 일을 예측하지 않아도 된다.

9) 읽으려고 했는데 결국 못 읽은 책(보통 빌린 책)의 존재를 확인하며ㅋㅋㅋㅋ 소비 욕구를 잠재울 수 있다.

10) 책 구입한 후에 산 책을 세워놓고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하는데, 그 사진들을 나중에 보며 '헐 이거 아직도 안 읽었어ㅠㅠ'라는 깨달음을 얻고 소비 욕구를 잠재울 수 있다22.

 

뭐 생각나는 건 이 정도. 그에 비해 단점이라 할 만한 건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렇게 계속 쓰고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나에게는 인스타에 게시물을 올리는 것이 '독서의 마지막' 같은 느낌이 좀 덜하다. '뭐 읽었는지' '우선 간단히 메모'해놨다는 느낌에 더 가깝다. 진짜 잘 읽은 책은 나중에 제대로 블로그에 올려야지, 하는 생각을 아주 자주 하는데 문제는 내가 그만큼 부지런하고 성실하질 못해서(아니 이 말 아까도 쓴 거 같은데???????? 싶어 위로 올라가봤더니 비슷한 표현이 역시나 있음ㅋㅋㅋㅋ) 블로그에 제때제때 포스팅을 못한다는 것. 그렇게 '써야지...쓸 거야...쓰겠지...써야 하는데...쓸 수 있을까.......'로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보면 결국 읽은 책은 묻히고 나의 기억은 증발되고 내 마음에는 찜찜함만 남는다ㅋㅋㅋㅋㅋㅋ 아 나는 왜이렇게 책 읽은 후기 하나도 제대로 제때제때 못쓰는 인간인 걸까 하는 자기반성과 함께..........................

 

그리고 또 아쉬운 건 글 검색이 안된다는 것. 가끔 '하 내가 그때 어딘가에서 엄청난 문장/내용을 보고 인스타에 올려놨던 것 같은데 뭐지.............?'하는 궁금증이 들 때 검색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다. 사진을 한장한장 넘겨가며 그때의 내가 '그 페이지'를 찍어놨길 기대하는 수밖에.

 

한동안은 따로 '인상적인 구절'을 적어놓는 공책을 따로 만들어두고 옮겨적기도 했었다만

→ 이것 역시 맥락 없이 문장만 남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멈추고 있다가

→ 안되겠다 내용을 요약해 정리해놓는 공책을 따로 만들어둬야겠다 생각하고

→ 내용 요약하는 공책도 추가로 만들었으나

→ 포스팅도 부지런히 안하는 내가 '더 손이 가는' 옮겨적기와 요약정리를 제대로 할 리가 없지...

 

그래서 이 역시 책상 한구석에 자리잡고 '야 나 앞쪽 몇 페이지 빼고 아직 새 공책이다 응??? 기억하고 있냐 응?????'하는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나의 가해의식이겠지 흑흑 피해의식 아니고 가해의식...미안하다 공책들아...이런 식으로 내가 앞쪽 페이지만 쓴 공책들만 모아도 산을 이룰 것임). 독서가들이 안내하는 방법들을 찾아보면 엑셀 파일에 써놓으라든지, 에버노트 류의 노트 앱에 메모해두라든지, 사진을 찍어서 모아놓으라든지 등등이 있긴 하더라만 문제는

 

😶 엑셀 파일 만듦 →  파일 정리 미룸

😶😶 노트 앱에 메모해둠 →  메모한 내용 정리해야 하는데 정리 미룸

😶😶😶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어 놓음 → 찍은 사진을 정리해야 하는데 정리 미룸

 

모두 다 같은 맥락이라는 것ㅋㅋㅋㅋㅋㅋㅋㅋ 게다가 전자책 같은 경우엔 책을 읽으며 하이라이트 표시를 따로 해두는데, 그러면 그것들이 모두다 저장이 된단 말이다. 근데 그걸 종이책 메모와 합치려면 또 공책에든 엑셀에든 앱에든 정리를 해야 돼😣😣😣😣 그러고 보면 진짜로 중요한 건 메모 그 자체가 아니라 메모에 대한 '정리'인 것 같다. '메모'는 어떻게든 해도 '정리'를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계속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또 발생하고 또또 발생하여 결론적으로 읽은 책은 묻히고22 나의 기억은 증발되고22 내 마음에는 찜찜함과 자기반성이 또다시 짙게 남는 것22222222222 절레절레 나새끼...


 

포스팅을 하다 보니 '나는 왜 책에 직접 메모를 하지 않게 되었는가'로도 생각이 넘어가서 그에 대한 내용도 좀 덧붙여보자면.

 

나는 책에 손을 잘 대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표지를 쫙 접지도 않고 아껴서 본다. 보통은 커버도 씌우고ㅋㅋㅋㅋ 줄을 긋는 대신 포스트잇이나 인덱스를 붙인다. '책은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어릴 적부터 갖고 자라서-왠지 모르겠음;;;;;; 물론 문제집 같은 건 예욐ㅋㅋㅋㅋ 아주 너덜너덜해지도록 썼었닼ㅋㅋㅋㅋ-줄도 안 긋고 메모는 절대 안한다.

 

보통 색깔 구분 안하고 붙이는 편인데 이 책(공정 이후의 세계)읽을 때는 '이건 좀더 생각해봐야 할 여지가 있다'고 여긴 부분에만 주황색을 붙였었다. 포스트잇을 통째로 붙이면 글자가 가려지기에 보통은 가늘게 잘라서 붙임.

 

스무살 즈음에는 책을 읽으며 페이지 상하좌우에 메모하는 독서가들의 글을 읽고 멋지다고 생각해 시도해봤었다. 그때의 그 어설픈 시도가 지금도 기억남;;; 그래서 기형도시인의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20대 초반에 진짜 여러 번 읽었음)'에 메모를 했었고 그 이후에도 몇 권의 책에 시도했었는데(왠지 모르겠지만 시집이 많았음), 나중에 그 책을 다시 보니까 진짜 너뭌ㅋㅋㅋㅋㅋ 너무너무너무창피한 거다ㅠㅠㅠㅠㅠ 예전의 기록을 보면서 아 과거의 내가 이랬지 후훗 이때를 거쳐 지금에 왔지 후후훗 할 정도로 긍정적인 자아상과 넓은 수용 범위를 지닌, 여유있는 사람=나라면 참 좋겠는데 실제의 나는 거리가 멀다. 어릴 적 일기나 다이어리 정리하면서 어우 창피해 어우 미쳤나봐 탄식하며 다 버리는 사람=나. 쓰다보니까 나라는 사람은 수치심을 느끼는 정도가 높은가 보네 하는 생각이 드는군.

 

지금의 나나 그때의 나나 문학을 주로 읽다보니 메모도 시집이나 소설이나 에세이에 주로 남겼었는데. 좀 지나서 읽어보니 와나 진짜...뭐야 나 왜이래 싶은 말들투성이였달까.........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쓸데없이 센치한 옷을 거추장스럽게 입고 있는 글자들을 보며 와 나는 안되겠다 싶어 다 지워버림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 이후로 '책에다 직접 메모하기'와는 연을 끊었다. 따라서 이것은 그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 문제. 그래서 그 이후로는 쭉 포스트잇/인덱스를 붙인다. 지금은 없어진 창비 팟캐스트에서 황정은작가님이 '나는 포스트잇을 붙인다'고 하셔서서 따라하기 시작한 것ㅋㅋㅋㅋㅋ인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까지 잘 따라하고 있음.

 


 

맨 처음 '글쓰기'를 클릭할 때는 최근 읽은 소설 몇 편에 대해 짧게 쓰려고 했었는데(물론 안짧아졌겠지) '완료'를 누를 시점에 돌아보니 참ㅋㅋㅋㅋ 왜이렇게 됐는가 하는 생각만 든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나를 나도 모르겠는데 내가 누굴 알겠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의 의도와는 전혀 달리 '정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버린 걸 보니 오늘의 결론은 '쌓아만 놓지 말고 정리를 잘하자'인 듯ㅠㅠ 이를 도와주는 도구로서, 지금 내게는 인스타그램이 효용을 발휘하고 있다는 생각도 함께 든다. 자기포장을 위해서 쓰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잘난 척하며 쓰지 말고, 있어 보이려고 하지 말고, 대단한 척하며 쓰지 말고, 지금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소소하게 꾸준히 써나가야겠다. 물론 블로그에 책 읽고 후기 쓰는 것도 좀더 부지런히 하고...ㅠㅠㅠㅠㅠㅠ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의 피드 사진이나 하나 붙여봄.

 

 

김연수소설가님과 진은영시인님 신간은 뭐 말할 필요도 없고... 올해 읽은 책 중 저 책이 진짜 좋았다.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 빌려 읽었는데 살 것이고 선물도 할 것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