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읽기 목표: 본격 책장 파먹기 & 한강작가님 전작 다시 읽기 🙌🏻

2025. 1. 31. 21:12흔드는 바람/읽고

새해가 된 지 한 달이 됐으나 책을 한 권도 사지 않았다. 1월에 책을 사지 않는 해는 매우 드문데(20대 이후로는 거의 없었던 듯) 올해 1월에는 사지 않았다.

 

살 책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달에 알라딘에서 '21세기 최고의 책'을 선정하는 이벤트를 했는데 믿고 읽는 여러 저자분들이 추천해주신 책 목록 중에서 너무 당연하게도 안 읽은 책이 수두룩빽빽하였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놓고 '언젠가는 저걸 반드시 읽어야지'라는 다짐을 새기기에 부족함이 없는(읭)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한 권의 구입도 없이 한 달을 보낸 것은 2025년을 시작하며 결심한 바가 있기 때문이었는데, 바로 '올해는 새 책을 덜 사고 있는 책을 많이 읽자'라는 것이다. 사실은 매년 하는 결심이지만ㅋㅋㅋㅋㅋㅋ 언제 내가 저런 생각을 했냐 싶게 바로 새 책을 사버리곤 하는 것이 매년 1, 2월의 비슷비슷한 꼴이었었다. 특히나 연초에는 각종 인터넷 서점에서 물욕을 자극하는 굿즈를 내놓기도 하기 때문에 금세 또다시 새 책을 집에 들일 수밖에 없었는데(라고 쓰니 상황의 불가피성이 지나치게 부각된 느낌이다. 비겁하다 나새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올해는 잘 참아보았다. 2월이 되자마자 직장 업무에 필요한 책을 사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바로 들긴 하지만...으음 결국은 조삼모사인 것인가🙄🙄🙄🙄🙄🙄🙄

 

그러다 보니 이번 달에는 오래 전에 사놓고 읽지 못했던 책을 주로 읽었는데, 열거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저 중에서 지금 다시, 헌법은 아직 다 못 읽었다. 주석 빼고 507쪽까지 있는데 100쪽 정도가 남았다. 재작년부터 지인들과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데 1월에 함께 읽고 2월에 이야기를 나누기로 해서 다음주까지 다 읽으면 된다. 123 내란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안 읽었을지도 모르는 책이다. 생각해보니 평생 법 관련 책을 읽은 적이 없더라 거참. 맨날 소설만 읽어가지고 거참22. 하지만 헌법에 관한 책이다보니까 어렵지 않게 잘 읽힌다. 읽으면서 '오!' 하기도 하고 '읭?' 하기도 하고 '이것은 내란수괴에게 해당될 만한 내용이군' 하기도 한다.

 

운명이다작별하지 않는다,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는 셋 다 쉽게 읽지 못했던 책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나오자마자 샀는데 읽을 용기가 안 났고, 운명이다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는 나오자마자 사지도 못했다. 그래도 운명이다는 매년 읽어보려고 시도하긴 했다. 5월은 늘 오니까. 하지만 책장에서 책을 뽑아들고 나면 표지를 바라보다가 다시 집어넣곤 했다. 손을 번쩍 들고 웃는 그의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복잡해졌다. 저 표정을 지었던 순간에는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하지 못했을 텐데, 왜 그렇게 되어야만 했을까, 꼭 그렇게 되어야만 했을까...싶어 서글퍼지곤 했고, 때로는 원망스러워지기도 했다.

 

다 읽고 나니 읽기 전보다 더 슬펐다. 들어가는 글도 읽기 힘들어서 길지도 않은 글을 몇 번씩 멈춰 가며 읽어야 했는데, 마지막 4부를 읽을 때는 참담하다는 심정까지 들었다. 그가 남긴 질문도, 저자가 남긴 질문도, 모두 무겁고 어려워서 한동안 막막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의 '동료 시민'이란 과연 누구이며, 누가 될 수 있을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나는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을까. 그에게 인간적인 친밀함이나 친근감을 느끼고 환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모르겠다. 나는 자신이 없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강작가님의 다른 책이 그렇듯이 읽기 힘든 책이었지만 굉장히 아름다운 책이었다. 나에게는 소년이 온다를 읽는 것보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는 게 더 어려웠던 것 같다. 두 책 모두 인류의 귀한 유산이겠지만 한강작가님의 고유한 세계가 좀더 잘 드러나는 건 작별하지 않는다가 아닐까 싶다. 뭐 당연한 말 같기도 하네. 최근작일수록 작가의 넓어진 지평을 더 잘 반영하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도 읽기 쉽지 않았지만 읽기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미처 몰랐던 내용들, 혹은 알기 두려워 외면해왔던 내용들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유가족분들과 생존자분들의 상황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었고. 이태원 참사의 진상이 속속들이 밝혀지는 때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은 왔으면 좋겠다. 제발, 부디.

 

쓰게 될 것무엇이든 쓰게 된다, 믿을 수 없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게 억지스러운은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최진영작가님의 소설집을 처음 읽은 거였는데(세상에나) 기대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아름다운 얘기들이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할 수 있는 책이 한권 더 늘었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 무언가를 창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쓰고 싶다는 욕망보다 읽고 싶다는 욕망이 훨씬 강한 인간이기에(창작은 내 영역이 아니라고 믿음. 좋은 독자가 되기에도 부족한 인간이라서ㅠㅠㅠㅠㅠㅠ) 김중혁작가님의 유머러스함을 즐기며 읽었다. 믿을 수 없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게 억지스러운은 다른 직업을 지닌 사람들의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막상 읽다보니 나의 직장과도 유사한 점이 많아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란 본질적으로 비슷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라는 연대감 비슷한 것이 들었다.

 

얼마 전 집회 관련 뉴스를 보다가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환경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한 인터뷰이께서 하시는 걸 보고 엄청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그 말이 정말 맞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나'에게만 '나'이지, 타인에게는 '그의 환경'이 될 수밖에 없다. 좋은 '나'가 되는 것과 좋은 '환경'이 되는 것은 별개이다. 내가 자유롭게 한 어떤 행동이 타인에게 나쁜 환경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그래서 누군가에게 좋은 동료 시민이 될 수 있도록 애쓰는 것이 필요하다. 타인이 나에게 나쁜 환경이 되는 것, 나에게 좋은 동료 시민이 되어주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물론 어렵지만.

 

뉴스 링크와 함께 갈무리해둠. ㄱㅇㅂ선생님 감사합니다ㅠㅠ 선생님 말씀에 저는 진심으로 감동받았습니다ㅠㅠㅠㅠㅠ

 

 

올한해 또하나의 목표는 한강작가님 작품을 쭉 읽어보는 것이다. 여러 플랫폼에서도 진행하고 있던데, 저는 제 페이스에 맞춰서 혼자 알아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다행히 작가님의 작품을 대부분 가지고 있기 때문에(아하하하하하 자랑 맞다)(그림책은 없다ㅠㅠ) 책 발간 순서에 맞춰 읽으려고 마음먹었고 여수의 사랑부터 시작했는데 1월에 표제작 하나밖에 못 읽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라이. 삶을 고통과 동일시하는 인물(이라고 말해도 되나 모르겠긴 하지만)이 감각하는 아픔이 생생하게 그려진 소설이다 보니 표제작 다음 소설로 넘어가질 못했다. 물론 이것은 비겁한 변명.

 

그러므로 2월의 목표는 여수의 사랑을 다 읽고 검은 사슴으로 넘어가는 것. 여수의 사랑 개정판을 읽어보고 싶기도 한데(몇몇 표현이 바뀌었다고 하여) 우선 가진 책부터 다 읽고 생각해보기로 하자 나자신아. 그리고 때가 때인 만큼 김민하선생의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나 장하준선생님의 국가의 역할도 다시 좀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알라딘에서 품절된 현대문학 특별판은 언제 교보 가서 사야지...아 집회날 광화문 들렀다가 사면 되겠구만ㅋㅋㅋㅋㅋㅋ 이놈의 내란사태 빨리 종식돼서 마음 편히 뉴스 덜 보고 책 더 많이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쓰고 있지만 넷플릭스를 신나게 보고 자빠져 있을 게 뻔하다...에라이22).

 

 

오른쪽과 왼쪽은 내가 가진 책의 표지. 가운데는 '여수의 사랑' 개정판 표지. 내가 가진 '검은 사슴'은 2판 1쇄인데 2005년 1월 25일에 출간됐다. 딱 20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