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30. 23:27ㆍ흔드는 바람/읽고
내가 독서 후에 하는 것들로는 이런 것들이 있다.
1) 사진 찍어서 개인기록용 블로그에 올려놓기
2) 인스타에 감상 적기
3) 인덱스 붙였거나(종이책) 밑줄그어둔 부분(전자책) 필사해놓기
4) 블로그에 기록 남기기
저 중 가장 좋은 건 4다. 책이든 콘텐츠든 읽거나 보고 나서 그에 대한 감상을 쓰기 시작하면 생각이 정리되거나 확장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쓰기는 사고 과정이니까요...그러나 현생이 바쁠 때 4는 거의 하지 못하고ㅠㅠ 3도 못할 때가 많고ㅠㅠ 그래서 1이나 2라도 빠짐없이 하려고 노력하기는 하는데 올해는 그것도 잘 못한 것 같다ㅠㅠ 인스타 피드를 참고하여 돌이켜보니 50권 정도 읽은 것 같음. 엄청 적게 읽은 줄 알았는데 예년과 비슷하네 거참ㅋㅋㅋㅋㅋ 내년엔 좀더 많이 읽고 싶기도 하고 2보다 4를 좀더 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올해 읽은 책들 중 베스트를 꼽아보려...고 했는데
올해는 이상하게 재미있는 책이 너무 많았어가지고 베스트를 꼽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다 거참(-_-) 어쩔 수 없어서 그냥 순위 같은 거 없이 마음대로 나열해보기로 하였다. 진짜 어쩔 수 없다 책을 읽다가 충격받았던 적이 유독 많았으므로...
1. 2025년에 가장 믿고 읽은 작가님: 정보라작가님 & 예소연작가님


올해 두 작가님의 소설이 없었으면 내 삶은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ㅠㅠ 직장을 옮긴 후 적응과 업무로 삶이 건조해질 때마다 두분의 책을 찾아 읽었다. 재미없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읽을 때마다 놀랐다. 이건 왜이렇게 재밌고 이건 또 왜이렇게 재밌나 하며 매번 감탄했다. 정보라작가님의 글에 익숙해지고 나니까 예전엔 뭐야? 하며 읽었던 저주토끼도 재미있었다 거참ㅋㅋㅋㅋㅋㅋ 정보라작가님 책을 멀리했던 과거의 내가 2025년의 나를 보면 얼마나 깜짝 놀랐을깤ㅋㅋㅋㅋㅋㅋㅋ
한밤의 시간표를 읽고 호를 읽고 여자들의 왕을 읽고 밤이 오면 우리는을 읽고 너의 유토피아를 읽고 창문을 읽고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도 다시 읽고 아무튼 데모도 간간이 다시 읽었는데 전부다 재미있었던 와중에 밤이 오면 우리는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다른 책은 처음부터 다 재미있었는데 밤이 오면 우리는은 처음에 세계관을 잘 이해하지 못해 뭐야?? 하며 읽기를 포기할 뻔했기 때문. 아냐 재미없을 리 없어 다시 읽어보자...하며 천천히 다시 읽었더니 진짜 재미있었다. 올해 읽은 정보라작가님 책들 중 가장 비극적이면서 박력 넘치는 책이었다. 너의 유토피아에 실린 너의 유토피아와 여행의 끝을 이 책과 같이 읽으면 더 좋다고 생각함.
예소연작가님은 이상문학상 수상집으로 알게 됐다. 진짜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집 역대급으로 좋았어ㅠㅠ 그 개와 혁명이 너무 좋아서 진짜 깜짝깜짝 놀라며 읽었고 바로 사랑과 결함을 샀다. 영원에 빚을 져서와 소란한 속삭임을 읽었고 어느 순간을 가리키자면도 읽었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은 아직 다 못 읽었는데 내년의 내가 읽겠지...정보라작가님은 그동안 쓰신 책이 꽤 있어서 앞으로도 읽을 책들이 남아 있고 번역서까지 치면 아주 많아져서 닥치는 대로 읽었는데 예소연작가님은 저 책까지 읽고 나면 더이상 읽을 책이 없기 때문에 나름 아껴 읽고 있는 것(이라고 변명함...대체 누구에게 변명하는 것인가......).
정보라작가님 글은 박력이 넘치고 직설적인 것 같으면서도 신기하게 능청스럽고 위트가 있다. 독자로서 소설을 읽다 보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하며 예측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정보라작가님은 늘 내가 예측하는 것보다 한발짝(또는 열발짝 백발짝...) 더 나아가신다. 그런데 과한 느낌이 없고 자연스럽다. 내 상상력의 범위가 협소했구나 싶어 웃게 된다. 예소연작가님 글에는 내가 익숙하다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감정과 상황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아주 낯설면서도 새롭게 그려져 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외면하고 싶어했던 무언가가 적절하거나 적확한 표현으로 펼쳐져 있어서 어떻게 이 감정을 이렇게 잡아내시지? 하고 놀라워한다. 무엇보다 정보라작가님의 소설도 예소연작가님의 소설도 다 재미있다!!!!!! 너무 재미있다!!!!!! 세상사람들이 다 읽었으면 좋겠고 두분 다 많이 버시고(읭) 많이 써주시길 바랄 뿐임.
2. 2025년에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외국 소설: 생식기 & 정욕
아사이 료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가을즈음이었다. 책을 사러 알라딘에 들어갈 때마다 생식기 광고가 떴다. 정말 관심을 가질래야 가질 수 없는 제목이었다. 생식기라니 뭐 제목을 이따위로 지었어(-_-) 하며 쳐다도 보지 않았었는데 몇달 후 도서관에서 이 책이 신간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보았다. 신간은 무조건 집어오는 못된 버릇이 있어서 제목은 마음에 안들지만 읽어볼까 하고 빌려왔는데...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바로 빠져들었고 그날 하루 저녁에 후루룩 다 읽어치웠다ㅋㅋㅋㅋㅋㅋ 세상에나 뭐 이런 괴물같은 책이 다 있어......


다 읽고 나서 찾아보니 굉장히 유명한 작가님이었고ㄷㄷㄷ 바로 전작인 정욕을 샀다. 와 이 책도 너무 충격적이야...하며 후루루룩 읽어치웠다. 출근길에 걸어가면서도 전자책을 계속 읽었다. 길에서 핸드폰 하며 고개 숙이고 가는 사람 싫어하는데 하이센스 터치라이트를 들고 가는 나 역시 그런 꼴이었겠지ㅋㅋㅋㅋㅋㅋ 대체 이 얘기 어디로 가는 거야ㅠㅠ 싶어 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존중한다고 '생각해 온' 다양성이라는 것 역시 사회적으로 구성된/인정된/허용된 개념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 머릿속이 매우 복잡했다. 생식기는 깔깔대며 혹은 낄낄대며 읽었고 정욕은 굉장히 심각하게 읽었다고나 할까요. 연말에는 죽을 이유를 다해 살아간다도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다(아직 구입하진 않음).


보통 나는 작품을 좋아하지 작가에겐 큰 관심이 없다. 음악이나 영화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내가 덕질을 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보통'의 수준을 매우 뛰어넘은 것임) 근데 아사이 료의 책을 읽고는,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정상성'의 한계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경계를 마구 교란시킬 수 있을까...싶어 그분의 삶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은데 실제로 알아낸 건 거의 없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말에는 누구를 샀고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처럼 아껴 읽고 있다. 다시 한 번 태어나다와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도 읽고 싶은데 둘다 절판되어 읽을 수가 없다ㅠㅠ 다행히 동네 도서관엔 다 있는 것 같으니 새해에 다 읽어야지...
3. 2025년에 가장 인상 깊게 읽은 한국 소설: 최애의 아이 & 이중 작가 초롱
최애의 아이는 2024년 소설 보다 겨울의 가장 마지막에 실려 있었다. 소설 보다의 좋은 점은 수록작이 모두 좋지 않더라도 셋 중 한 편은 무조건 좋다는 것인데ㅋㅋㅋㅋ 최애의 아이는 좋다기보다 충격적이었다. 와 세상에 이거 뭐야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 거야...하다가 결말까지 읽고 나서는 와 세상에 내가 지금 뭘 읽은 거야...하며 크게 한 방 맞은 듯한 기분에 표지도 제대로 못 덮었다. 보통 이런 느낌은 SF를 읽을 때 오는데(와 어떻게 이런 세계를 상상할 수 있지...?? 하며 충격에 빠지곤 함...정보라작가님 책을 읽을 때도 그렇고 김보영작가님이나 김초엽작가님도...) 이 소설은 SF도 아니고 말이죠. 너무 놀라서 그다음주에 바로 성소년을 빌려 읽었는데 성소년도 충격적인 작품이지만 그래도 최애의 아이가 더 인상 깊었다. 성소년을 먼저 읽었다면 충격이 더 컸을텐데ㅋㅋㅋㅋㅋㅋ
나중에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최애의 아이를 또다시 만났고 여전히 충격적ㅋㅋㅋㅋㅋㅋ 매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면서 '올해도 나는 대상 아닌 소설이 제일 좋구나'하고 생각하는데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최애의 아이가 제일 인상 깊었고 리틀 프라이드가 오래 기억에 남았고...근데 리틀 프라이드는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먼저 읽은 소설이다 보니 결국 책을 읽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두 편이 가장 좋았던 셈. 뭐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중작가 초롱은 2022년에 나왔을 때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너무 읽고 싶어서 못 읽고 있었다...고 쓰니까 이상한뎈ㅋㅋㅋ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집중해서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정신상태여야 진짜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가지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러다가는 영영 못읽겠구만 싶어 전자책을 사서 한편씩 읽기 시작했는데
진짜 이 책도 미쳐가지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어떻게 이 이야기를 이렇게 쓸 수 있지?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쓸 수 있다고>? 이렇게까지 쓴 이야기가 왜이렇게 재밌어??? 하는 기분이었다. 예소연작가님 소설 읽을 때랑 좀 비슷한 기분이었는데, 예소연작가님 소설이 소재는 다를지언정 다 읽고 나면 아 이거 사랑(연애 감정으로서의 사랑 말고 인류애적인 개념으로서의 사랑) 이야기네...싶어 다 읽고 나면 쓸쓸하면서도 서글픈 와중에 여운이 남는 느낌이라면 이미상작가님 소설은 압도적인 신랄함 때문에 와 진짜 인간 왜이모양이짘ㅋㅋㅋ 아 너무 부끄러워ㅠㅠㅠㅠㅠㅠ 하게 된달까.


근데 놀랍게도(!) 작년에 주간 문학동네에서 이미상작가님과 이희주작가님의 공동 연재를 기획해서 진행함ㅋㅋㅋㅋㅋㅋㅋㅋ 매번 낄낄거리며 읽었고 그 연재를 기획하신 편집자님 정말 리스펙합니다. 전자책 나오자마자 살 것임.
4. 2025년에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책: 안녕이라 그랬어 & 작은 일기


안녕이라 그랬어는 2025년에 내가 읽은 책들 중 가장 완성도가 높고, 가장 잘 쓰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재미있는 책도, 가장 충격적인 책도, 가장 놀라운 책도, 가장 세계관을 많이 넓혀준 책도, 가장 위로를 많이 해준 책도 아니지만, 가장 훌륭한 책이다.
정보라작가님 책을 있는 대로 찾아 읽다가, 아 예전의 나는 어떤 작가를 좋아하게 되면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순서대로 쭉 읽던 독자였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던 날이 있었다. 그 시절을 지나온 지금의 내가 여전히 찾아 읽는 소설을 쓰시는 작가님들의 이름을 떠올려 봤는데, 의외로(!) 많지 않았다. 김연수소설가님, 배수아작가님, 윤성희작가님, 황정은작가님, 이기호작가님, 김애란작가님, 한강작가님...정도? '이 작가님 소설은 내가 한 권도 안 빼먹고 다 읽었다'는 작가님들만을 꼽자면 김연수소설가님과 김애란작가님, 한강작가님밖에 남지 않는다. 그리고 그 중 나와 같은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작가님은, 김애란작가님밖에 없다.
달려라 아비부터 침은 고인다, 두근두근 내인생, 비행운, 바깥은 여름, 이중 하나는 거짓말,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으며, 한 번도 이게 특정한 개인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늘 '우리 세대'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너무 잘 읽히는 이야기이자, 읽기 힘든 이야기였다. 허구의 이야기라는 걸 알지만 이 사람들은 허구일 리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고 어떤 부분과 어떤 장면에서의 모습은 너무 나 같아서 거울치료를 받는 듯한 기분까지 느끼곤 했다.
'매일 편의점에 가'던 청춘들은 월세인지 전세인지 자가인지의 여부로 타인을 평가하는 중년이 됐다. 안녕이라 그랬어를 책장에서 꺼내어, 풍요로운 부에서 비롯하는 귀족적 무구함과 순진함을 지니지 '못한' 인물이 자신의 계급에 대한 열등감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이를 자각할 수 없게 만드는 허영의 순간들을 계속적으로 욕망하거나 실현한 뒤 만족 대신 초라함과 허탈감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는 박완서선생님을 떠올리기도 했다. 지금처럼 김애란작가님이 성실히 꾸준히 훌륭한 책을 계속 써주신다면, 나보다 젊은 독자들이 김애란작가님의 이름을 박완서선생님과 같이 기억할 날이 분명 있지 않을까. 읽는 내내 어쩌면 이렇게 잘쓰지, 어쩌면 이렇게 훌륭하지, 하며 작가님에 대한 존경심이 무한히 커지는 기분을 느꼈던 책이 올해의 내게는 안녕이라 그랬어였다.
그에 비해 작은 일기는 올해 읽은 책들 중 가장 훌륭한 책이나 가장 잘 쓰인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만, 2025년을 얘기할 때 절대 빼먹을 수 없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년말부터 시작된 내란 정국에서 내가 '느꼈지만 언어화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렇게 표현해준 책이 없었고,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현실을 이렇게 시의적절하면서도 담담하게 기록해준 책이 없었다. 어쩌면 이토록 나빠질 수밖에 없을까 싶을 때마다 깊은 위로를, 희망 비슷한 것을, 가능성 같은 것을, 이 책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가능성만을 바랄 수 있을 뿐인 세계는 얼마나 울적한가. 희망을 가지고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기가 너무나 어려운 세계, 그 어려움이 기본인 세계는 얼마나 낡아빠진 세계인가. 너무 낡아서, 자기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세계. 다만 이어질 뿐인. 이라는 구절을 읽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다가도
내가 이 세계를 깊이 사랑한다.는 황정은작가님의 고백 앞에서 늘 무너지곤 했다. 이따위 세계를 깊이 사랑하는 작가님의 마음에 늘 감동했고, 경이로움을 느꼈다.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을 때처럼 작가님에 대한 존경심이 무한히 커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던 것 같다. 읽을 때마다 고맙고, 그래서 자꾸 찾아 읽게 되는 책.


새해에는 또 어떤 책을 만나게 될까. 우선 설자은 3권이 좀 나왔으면 좋겠고(정세랑작가님 믿습니다ㅠㅠ 100권 써주셔야 돼요ㅠㅠㅠㅠ) 김기태작가님 신작이 나온다고 하니 기다려보고 무엇보다 김연수소설가님 신작이 나올 거 같으니 열심히 소설가님 따라다니며 덕질해야겠지...부디 너무 시간 없을 때 나오지 않기를 기도해야겠다(9월초 이런 거 안돼요ㅠㅠㅠㅠㅠㅠㅠㅠ). 올해처럼 재미있는 책들을 많이 만나는 한 해가 되기를. 그리고 나새끼 넷플릭스 작작 보고 책 좀 열심히 읽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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