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20. 03:40ㆍ흔드는 바람/읽고
작년에 소설 보다 2024 겨울을 매우 인상 깊게 읽었다. 세 편의 소설이 실려 있었는데 앞의 두 작품도 섬찟했지만 마지막 소설인 최애의 아이가 매우 강력했다. 그로테스크한데 슬픈 느낌이었다. 이렇게 파괴적이고 폭력적이며 강력한 사랑이라니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 싶어 찾아낸 게 성소년이었고


정말 계속 절레절레하며 읽었다. 괴물같은 소설이네 싶었다. 예정되어 있는 파국을 향해 최고 속도로 달려가다가 결국 쾅 하고 터져버리는 이야기 같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 에너지가 그때의 나에게는 좀 버거웠던 것 같다. 덧붙여 최애의 아이에서는 우미 혼자 달려가는데 성소년에서는 우미의 광기어린 애정이 네 명의 인물에게로 나뉘어지니까 읽으면서 좀 덜 집중하게 됐던 것 같다. 그리고 뭐 기본적으로 장편을 읽으며 단편만큼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건 힘드니까...그리하여 아 나에게는 최애의 아이가 좀더 재밌는 걸 보니 최근작을 읽어봐야겠다 생각하며 성소년과 헤어졌는데
이희주작가님이 이효석문학상을 받으시는 바람(!)에 사과와 링고를 읽게 됐고. 이 소설이 또 너무 재밌었고. 그러다 보니 크리미(널) 러브를 읽지 않을 방법이 없었지 뭐.


소설집을 하루에 몰아 읽는 건 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다양한 소설이 묶여 있으니까, 몇 편 읽다 보면 '아 좀 쉬고 읽자'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이 책은 하루만에 다 읽었다. 와 미쳤네...이 다음은 또 뭐야? 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수록작 전체를 쉬지 않고 쫙 읽었다. 이미 읽은 최애의 아이와 사과와 링고도 처음 읽었을 때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 나머지 여섯 편도 다 재미있었다. 이렇게 전체 소설이 다 재미있는 소설집도 많지 않은데 말이죠.

아주 거칠게 요약해보자면,
'사거리의 미소년'을 만나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유리와 희주, '최애의 아이'만을 가지고 싶어하는 우미, 버추얼 휴먼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심리적 갈등을 해소하고자 하는 친구의 소망을 절벽 아래로 날려버리고 스스로를 지키는 '나', 해변 지도로부터 탈출하고자 하지만 탈출하지 못하고 또다시 해변으로 돌아오는 미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려 하다가 어머니에게 아버지를 돌려주기로 마음먹는 딸, '자기 몸을 부수는 사랑'을 통해 '진정한 미래'를 만들겠다는 유리와 그 때문에 아이를 낳는 우미, 서로에 대한 열등감과 적대감으로 서로를 부숴버리는 사라와 사야,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 나왔던 케이팝의 여성팬들과 무기를 들고 법원을 부쉈던 유리 사이에서 영하를 떠올리는 우미...가 등장하는 여덟 편의 소설들이다.
우미와 유리라는 이름이 계속 등장해서 처음에는 302♡와 최애의아이와 천사와 황새가 다 이어지는 이야기인가 했다ㅋㅋㅋㅋㅋㅋㅋ 아하 이렇게 유리가 연예인이 된 거구나 하면서 읽어가지고 천사와 황새 읽을 때 '읭 유리가 연예인 그만두고 의사가 됐어...?' 하다가 세 작품의 유리와 우미가 모두 별개의 인물임을 깨달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그랬으면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읽으면서 '아니 유리가 이런 학교 다니지 않았는데 왜이래????' 했겠지 멍충이처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중에 궁금해서 찾아보니 '우미'와 '유리'는 특정한 캐릭터를 쓸 때 이희주작가님이 쓰시는 이름이라고 한다. 그 '특정한 캐릭터'의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난 건 아무래도 최애의 아이겠지만.


황정은소설가님 이후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는데(지금도 아름다운 작품을 계속 쓰시는 분이신데 이후라고 하니까 좀 그래가지고ㅠㅠ)...2010년대 중반 이후 여성 서사가 한국소설의 메인으로 떠오르면서 아름다운 얘기들을 많이 봐 왔다. 이런 얘기들은 기본적으로 굉장히 섬세하고 PC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은 최은영작가님이시고 쇼코의 미소가 러브 레플리카가 내게는 시작 같은 책이었던 것 같다. 사회적으로 가장 이슈가 됐던 건 역시 82년생 김지영이었겠지...캬 그러고 보면 2016년 대체 무슨 해였던 것인가ㄷㄷㄷ 김초엽작가님 정세랑작가님 김화진작가님 한정현작가님 백수린작가님 조우리작가님 서장원작가님 기타등등...이 섬세한 표현으로 써주시는 존재와 존재 간의 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감사한 마음으로 잘 읽고 있다.
그에 비해 이희주작가님은 훨씬 신랄하고 거침없다. PC함 없고 성찰 없고 선악과 미추가 뚜렷하다ㅋㅋㅋㅋㅋㅋ 나의 최애는 아름답지만 그를 욕망하는 나는 추하고 욕망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라서 나의 사랑은 매우 육(肉)적이다. '육체적'이라고 썼을 때의 느낌과 다르다. 그냥 살덩이 그 자체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이 책의 인물들이 말하는 사랑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는다. 악취에 가까운 땀냄새와 몸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온 피냄새가 진동한다면 모를까.
그래서 (작품 해설에 언급된 것처럼) 살벌한 이분법으로 재단된 현실 인식이 도덕적, 윤리적 선악 구분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음...피프틴 피플을 읽으면서 내가 알 수 없던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그에 대해 공감하며 존재의 아름다움/의미를 발견하며 감동하는 방식의 읽기와는 다른 읽기가, 크리미널 러브를 읽을 때는 요구된다고 느꼈다. 왜이렇게 표현들이 거칠어? 라며 미간을 찌푸리고 평가하는 읽기 대신, 그 거칠어보이는 표현이 인간의 일그러지고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얼마나 생생하게 포착해내는지 느끼는 읽기가 필요하달까. 그러한 형태의 욕망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 존재 자체가 지극히 인간적인 것임을 선명히 증명해내고 있음을 느끼는 읽기.


그래서 나는 마유미나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 최애의 아이나 사과와 링고의 결말을 비난하지 못하겠다. 이야기가 도달한 끝에 죽음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비도덕적이고 반윤리적이어서 이 소설들이 불편하고 불쾌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타인을 환대하고 그와 기꺼이 연대하고자 애쓰는 삶, 이해하고자 노력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넓혀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보통의 나는 좋아하지만, 절대 선하다고 말할 수 없는 욕망도 분명히 있으며 그것은 때로 지극히 자기파괴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들이 불쾌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현실의 나는 자신을 혹은 나의 일상이나 생활을 파괴하면서까지 그 욕망을 이루려 하지 않는다. 욕망을 이루겠다는 의지 자체가 그렇게까지 강하지도 않다. 그보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나의 일상과 생활을 지금과 유사한 정도의 게으름과 안정감 위에서 지속해나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크리미널 러브 속의 인물들에게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그 무엇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의 일상과 생활과 관계를 산산이 파괴하면서까지 강렬하게 욕망을 추구한다. 뒤돌아보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의 욕망이 악하다고 말할 수 있나. 그들의 욕망은 한때 나의 욕망이기도 했는데. 지금도 때때로 나의 욕망인데. 내가 뭐라고 그러한 욕망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도덕적으로 또는 윤리적으로 단죄할 수 있나. 당연히 없지.
물론 그 욕망이 진짜로 현실이 되어 어떠한 결과를 낳는다면-그때는 그에 대해 도덕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지.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일들도 수많고(!). 근데 이건 소설이고 그러니까 이야기고-이야기란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매체(in 알쓸인잡)'라는 김영하작가님의 정의를 따르자면, 이 이야기들은 욕망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인간이 자신의 생존(=욕망의 실현)을 위해 어떤 행동까지도 서슴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떠한 욕망은 인간을 어떠한 모양으로까지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들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행동의 선악을 고려하지 않고, 그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피해를 줄지 고려하지 않고.


아무리 이야기더라도 그런 인간은 이기적이고 반사회적이기에 호감을 줄 수 없고 독자의 공감도 살 수 없다-고 한다면, 뭐 그것도 맞는 말이지. 근데 그 인간은 사실 '고려하지 않는' 인간이 아니라 '고려할 수 없는' 인간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동생이 소중히 여기는 존재를 소멸시키는 존재가 동생에게 어떤 피해를 줄지, 언니는 고려할 수가 없는 거다. 그걸 고려할 만한 정신적 여유도 심리적 거리도 없는 거다. 절벽 끝에 서 있다가 실족사라는 결론을 맞았던 현주처럼,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서 있어서, 그러지 않으면 생존을 지속할 수 없는 거다. 따라서 그들은 누군가에게 호감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공감이나 연민의 대상도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진 그 욕망이 내게는 전혀 없었다고 나는 말할 수 없기에-나는 그 중 누구도 단죄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뭐, 소설에서의 서술자/중심 인물이 늘 호감의 대상일 필요는 없다고도 생각한다. 좋아할 수 없는 인물 혹은 싫어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 서술자/중심 인물로 등장하는 소설을 독자들이 끝까지 읽게끔 하는 소설이야말로 진짜 지독하게 매력적인 것일 수 있겠지. 같은 이유로 작년에 예소연작가님이나 이미상작가님의 여러 소설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고...이희주작가님의 소설도 이런 비슷한 느낌이 있다ㅋㅋㅋ 하지만 (작품 해설에 언급된 것처럼22)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한 약자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파시즘과 연동될 위험성 때문에 언제나 위태로운 경계선을 타고 흐르는 이야기들임을 뚜렷이 인식하며 읽어야 하는 소설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서술자를 무비판적으로 신뢰해버리지 말고. 그래 예쁘면 아이돌 해! 좋은 정자 팔아! 다 죽여!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소설들이 절대 아니니까...(-_-)


하지만 해변 지도로부터의 탈출의 미도는 나에게 큰 호감의 대상이었으며ㅠㅠ 이 작품에서 가장 슬픈 소설이 나는 이 작품이었다. (그다음으로 슬펐던 건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였음) 아 정말 소설을 읽다가 몇번이나 앞장을 다시 넘기며 미도의 (생물학적) 성별을 확인하고 슬퍼하고 또 슬퍼했는지ㅠㅠㅠㅠ 시스젠더인가 아닌가에만 집중한다면 미도의 감정을 내가 온전히 이해하긴 불가능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거다. 그러나 미도가 한 어떠한 행동들은 어린 시절 내가 했던 어떠한 행동들과 완벽히 일치하기도 하여, 나는 소설을 읽다가 문득 수치심이나 자책감 비슷한 감정을 느꼈고, 그러다 문득 그때 왜 그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했었는지 생각하게 됐고, 미도가 안타까워졌고, 그 시절의 나도 안쓰러워졌다.
어떠한 이야기를 읽든지간에 한 가지 정체성으로만 특정한 인물을 보지 않는 것, 한 명의 인간이 수많은 겹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잊지 않을 것, 해변 지도로부터의 탈출을 읽으며 새삼 중요하다고 느꼈다.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를 읽으면서도 이 생각을 또 했고...)


아 짧게 쓰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가지고(-_-) 책을 두번 세번 읽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긴 독후감을 쓰는 것이 맞나 싶기도 하지만 현재까지 '2026년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 일등'이기에 길게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제까지는 윌리엄 해즐릿의 에세이였는데ㅋㅋㅋㅋㅋㅋ (물론 올해가 아직 20일밖에 안됐다는 것이 포인트) 개인적으로는 작년이 '와 이거 뭐야 뭐야'하고 감탄하며 읽은 책이 최근 몇년 중에 가장 많았던 해였는데 올해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희주작가님이 '망치로 벽을 깨서 성 밖의 사람을 다 불러 모'아서 '말들이 범람하고 서로 뒤엉키는 걸' 꿈꾼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하셨던데, 그 말씀처럼 '새롭고, 멋지고, 더럽고, 엉뚱하고, 끔찍한' '전부인 모든 것을 문학 안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길 독자로서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이희주작가님이 NCT WISH와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덕질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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