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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드는 바람/보고

옷소매 붉은 끝동 👀 - 11회 감상 후기 ②

지난번 글에 이어지는 11회 후기. '세손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너무 슬픈 덕임이'가 너무 멋있다는 얘기를 하면서 지난번 글을 마쳤는데...

 

11회의 덕임이를 좀더 잘 이해하려면 앞부분의 덕임이를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11회 앞부분을 보면서 "궁녀의 마음 따윈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아." 라는 덕로의 말(+비웃음)을 듣고(+보고) 어이없어하던 5회의 덕임이가 생각났다. 그때 덕임이가 터덜터덜 돌아오면서 이렇게 혼잣말을 했었다.

끌어당기면 다가오고, 밀면 멀어져야 해. 생각도 의지도 필요 없어. 그게 궁녀야.

그리고 7회. 고뿔에 걸렸다고 하는 자신의 말을 듣고 이마에 손을 짚어보며 걱정하는 세손을 떠올리며 혼자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짓던 덕임이는 제조상궁의 부름을 받는다. 제조상궁은 자신이 통솔하고 있는 700명의 궁녀들을 지켜내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를 세손 저하의 후궁으로 올리고 싶어.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궁녀들을 위해. 우리 중 하나가 저하의 여인이 되어 우리를 위해 나서준다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할까? 너를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나. 그때부터 나는 네가 마음에 들었다.

 

세손이 '명문가의 여인에게서 후손을 얻겠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는 걸 계례식 날 들었던 덕임이는 여관으로서 세손을 주인으로 모시고 지키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하지만 산이가 덕임이를 좋아한다는 걸 너무 티내기 때문에(7회에서 극에 달했지...) 덕임이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일. 자기를 끌어당기는 산이에게 자꾸 다가가던 덕임이는 제조상궁의 말을 듣고, 자신의 운명이 '쟤를 세손의 후궁으로 만들겠다'는 제조상궁의 의도에 따라 결정된 것은 아니었을까 의심하게 되었으리라. 스스로가 자기 삶에서 제일 중요하고, 가능한 한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고 싶었던 덕임이에게, 세손을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스스로의 선택이었어야 한다. (아마 제조상궁을 만나기 전까지의 덕임이는 그렇게 믿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선택에 대해서만도 따로 천만자 포스팅을 해야 하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 과몰입자같으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알고 보니 자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게 타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덕임이가 느낀 무력감과 허망함은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 자신이 동궁의 서고에 배속된 것도, 필사일을 핑계 삼아 세손의 서책을 배우게 만든 것도, 다 제조상궁의 큰그림이었음을 깨달은 덕임이는, 아마도 후궁이 되지 않겠다는 마음을 더 굳게 먹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어찌됐든 자신은 세손의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마당이니 '세손을 위해'가 아니라 '궁녀들을 위해' 나서라는 제조상궁의 말은 덕임이에게 절대 따를 수 없는 것. 그래서 덕임이는 거절하고, 풀잎으로 배를 만들어 띄운다.

갓지인연출가님의 연출력이 빛나는 아름다운 장면ㅠㅠ 너무 아름다운데 너무 슬픈 장면이어서 마음에 너무 남았었다.

근데 이와 장면이 11회에 또다시 반복된다. 세손에게 큰일이 생겼다는 얘기를 영희에게 듣고 대전으로 뛰어가지만 들어갈 수가 없다. 좌익위를 만나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덕로를 만나 약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지만 덕로는 차갑기만 하다. (진짜 덕로 야망캐섭녀재질절레절레...) 또다시 덕임이는 풀잎으로 배를 만들어 띄운다. 하지만 덕임이의 마음도, 덕임이의 결정도 그때와는 다르다. 아주 다르다.

덕임아ㅠㅠ 아니야ㅠㅠㅠㅠ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야ㅠㅠㅠㅠ 하며 이 장면을 봤었다... 맴찢................

너의 보잘 것 없는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전에 '움트려 하는 무언가'를 잘라내 버리려고 했던 덕임이는, 사실 알고 있다. 잘라낼 수 없다는 걸. 그래서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거겠지. 보잘 것 없는 자신이라도, 뭔가를 한다면, 하지 않는 것보다 세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까지의 경험을 통해 덕임이는 충분히 깨달았을 거다. (그리고 사실 덕임이는 세손을 여러 번 구했고. 이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도 따로 포스팅을 해야 하는 소재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작은 일이라도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스스로가 바보 같겠지. 그래서 배를 띄워버리려 한다. 자신의 인생을 지켜야 되기 때문에 배를 띄우는 게 아니라, 자신이 세손을 지킬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배를 띄우려 하는 거다.

하지만 그 배를 떠나보내지 못한다. 먹지 않으려고 했던 쓸데없는 마음이 사라지질 않으니까. 뭐라도 해야 하는데, 뭐라도 하고 싶은데, 그래서 세손을 지키고 싶은데, 하는 마음이 덕임이에게 너무 크니까. 품지 않으려고 했던 그 마음이 이미 덕임이에게 너무 크고 너무 중요한 것이 되었기 때문에 덕임이는 결국 배를 붙잡는다. 그리고 일어난다.

그러나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은 없기 때문에 덕임이는 속상해한다. 세손의 상황에 슬퍼하고, 자신의 상황에 속상해한다.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아도 되는 서상궁마마님께 진심을 얘기하며 우는 덕임이만큼이나, 덕임이를 조용히 끌어안고 눈물을 닦아주는 서상궁마마님이 나는 참 좋았다. 많이 찡했다.

울고 있는 덕임이 귀에 들려온 말 "방도를 알려준다면, 네가 해내겠니?"

이렇게 간절한 덕임이이니, 최종보스같은 박상궁마마님의 도움을 받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덕임이가 먼저 박상궁마마님을 도왔기에 가능한 전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덕임이가 박상궁마마님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은 서상궁마마님을 지키겠다는 덕임이의 굳은 결심이 있었기 때문.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위기에 빠졌을 때 모른 체하거나 안타까워하기만 하지 않고, 직접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자 최선을 다했던 덕임이의 충성심과 행동력과 의지와 용기가 있었기에 덕임이는 세손을 지킬 수 있는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열쇠를 받는 것이다. 뭐랄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같은 느낌이었달까.

최종보스같은 박상궁마마님, 따뜻하고 인간미넘치는 서상궁마마님, 그리고 옷소매의 히어로 덕임이가 함께 있는 장면도 나는 참 좋았다ㅠㅠㅠㅠㅠㅠㅠㅠ

여기서 참 좋았던 게 서상궁마마님의 존재다. 남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사람. 남의 감정을 함께 느껴주고 함께 아파하는 사람. 남을 따뜻이 보듬어주는 사람. 이해하는 사람, 공감하는 사람의 모습이 서상궁마마님을 통해 잘 드러나서, 저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자란 덕임이 역시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으로 자라났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덕임이가 멋있는 건 그저 주체적이고! 당당하고! 씩씩해서!!일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 자체가 넓고 깊은 캐릭터이기 때문이라는 것.

박상궁마마님이 '지킨다'는 표현을 계속 사용하는 것도 참 인상깊었다. 사도세자를 지켜야 하는 사람은 박상궁마마님이 아니라 영조이고 영빈인데, 둘 다 사도세자를 지키지 않았고 지키지 못했다. 근데 누구나 '궁녀 따위'라고 생각하며 우습게 봤을 그녀는, 사도세자를 지키려고 했고, 지키지 못해서 평생 그 괴로움을 안고 살았다. 덕임이가 산이를 지키고 싶어하듯이, 과거의 박상궁마마님 역시 사도세자를 지키고 싶어했다. 궁 안에서 제일 힘 없고 제일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가, 자신의 주인을,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지키려 했고, 지키고 싶어했다. 그 마음이 나에게는 참 감동적이었다.

 

이러니 이후에 펼쳐지는 덕임이의 대모험이 흥미진진하지 않을 리 있나. 사실 나는 금등지사라는 걸 처음 들어봐서(무식자) 처음엔 되게 어리둥절했었고😲😲😲 아니 그래도 그렇지 덕임이 몸에 새겨져 있던 글씨가 그거였다고????????😲😲😲😲하는 기분도 들었었지만 이때의 덕임이가 너무 멋있고 혜빈의 저 표정이 너무 마음아파서 그냥 납득하기로 했다. 뭐어때 픽션인데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나중에 금등지사에 대해 검색해본 후 실제로 이런 게 있었던 데다가(기사에는 '금등지서'라고 되어 있긴 했음) 그걸 영조가 숨겨뒀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는 걸 깨닫고 살짝 충격받았다. 내가 가장 '와 소름'하는 기분으로 읽었던 기사는 2019년 한국일보에 한양대 정민교수님이 금등지서에 대해 쓴 것인데, 그 중 일부를 인용하자면 이렇다.

피 묻은 소매, 피 묻은 소매여!
누가 안금장(安金藏)과 전천추(田千秋)인가.
오동나무여 오동나무여!
내가 망사지대(望思之臺)를 후회하노라.
(血衫血衫 혈삼혈삼, 孰是金藏千秋 숙시김장천추. 桐兮桐兮 동혜동혜, 余悔望思之臺 여회망사지대.)

“사도세자의 피 묻은 적삼, 누가 과연 충신인가? 오동나무로 짠 뒤주. 나는 세자 죽인 일을 후회한다.” 영조가 사도세자 신주 아래 깔아둔 요의 솔기를 뜯고 그 안에 간직하게 했던 진짜 속내가 이렇게 해서 비로소 세상에 드러났다. 오랫동안 칼집에 들어있던 칼이 스르렁 소리를 내며 빠져 나오자, 대신들은 심장과 뼈가 다 덜덜 떨렸다.

 

헉 요의 솔기 안에 문서를 숨겨놨었어 소름... 그렇다면 휘항과 혜빈의 가락지와 덕임이의 어깨에 글씨를 새겼다는 것도 그냥 그러려니 하자... 하는 기분에 사로잡혀버림. 그리고 무엇보다 저 다음 장면에서 덕임이가 혜빈에게 금등지사의 존재를 다시 설명할 때, 혜빈이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강말금배우님의 혜빈 연기를 나는 쭉 좋아해오고 있었다. 10회에서 혜빈이 화완옹주를 한방 먹일 때 아주 속시원하고 좋았다. 근데 이 11회에서의 혜빈 연기는 그냥 좋은 수준이 아니라 충격 그 자체였다. 휘왕에 새겨진 峰 자를 보며 혼잣말처럼 박상궁에 대해 말하다가 세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터뜨리는 혜빈을 보며, 와, 나는 그냥 울어버렸다. 계속 원망하고 미워했던 사람이 사실은 원망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는 회한과 미안함이 너무 깊이 와닿았다. 그에게 미안하다고 또는 용서해달라고 말하고 싶어도, 이미 죽어버린 지 한참 된 사람이라 아무 말도 전할 수가 없다는, 그 슬픔도 한꺼번에 몰려왔다. 클립이 없어 첨부할 수 없는 게 아쉬울 뿐ㅠㅠ

그 이후에 이어진 이야기들-그러니까 덕임이가 산이와 아주 짧게 만나는 장면('고할 것이 있습니다'를 하지 말고 그냥 말을 해!!!!!!!!!!!! 라고 내적절규하며 봄), 덕임이가 중전을 찾아가 도움을 구하는 장면, 그리고 이날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편전에 나간 산이'의 이야기 역시 모두 흥미진진했어서 11회 내내 어찌나 집중하며 봤던짘ㅋㅋㅋㅋㅋㅋㅋㅋ 11회가 끝나자마자 "와 진짜 오늘 찢었다"라고 감탄. 덕임이와 산이가 함께 있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아도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니!!!! 역시 8회가 덜 재미있었던 건 덕임이와 산이가 함께 있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광한궁 서사가 투머치 나오면서 '했던 말 다시 하고 그 말 또 하고'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어!!!!!!!!! 앞으로는 제발 그러지 말아주세요!!!!!!!!! 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

 

그리고 산이와 영조의 서사(하 진짜 보는 것만으로도 없던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은 기분임ㅠㅠㅠㅠㅠㅠ), 덕임이와 중전의 서사, 덕임이와 혜빈의 서사에 대해서는 다 나중에 따로 포스팅을 할 생각이 있으므로......... 11회에 대해서는 우선 여기까지. 진짜 미친사람처럼 길게 썼다 도른과몰입자=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씨 12회 얘기는 언제 쓰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3회 보기 전까지는 도저히 못쓰겠네 젠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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