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008, 메이데이) 中 <촛불의 정치, 몇 가지 쟁점들>

2009. 7. 13. 00:22흔드는 바람/읽고

벌써 '끝난 일'이 되어버린 촛불집회-그 축제같은 저항(혹은 저항같은 축제)의 시간이 갖는 의의를 이론적/현실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앞으로 촛불-대중-민중이 나아갈 길을 전망해 본 책이다. 처음 이 책을 선택한 데에는 저자 명단에 끼어 있던 목수정 씨의 이름이 큰 영향을 미쳤다. 여성적 감수성/문화적 상상력을 촛불집회에서 발견해 낸 그녀의 글을 가장 먼저 읽었고, 꽤 재미있게 읽었다. 목수정 씨가 언급했던 온라인 커뮤니티의 활동을 익히 알고 있는 바였으며, 나 역시 매우 긍정하고 있으므로 더더욱. 

그에 비해 '촛불집회에서의 쟁점'과 '민주공화국의 미래와 현재'에 대한 세 편의 글(목수정 씨 글 앞에 실린)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워낙 많은 분석과 전망과 비판과 찬미가 난무했던 터라, 식상한 얘기들이 나열되리라 생각하면서 무심하게 읽기 시작했다. 민주정치라는 말을 그저 허울좋은 껍데기처럼 느끼고 있기 때문에, 선거 참여를 통해 내가 옳다고 믿는 바를 현실화하는 것이 점점 더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 것처럼 느끼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란 것이 과연 나의 현실에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할 수밖에 없는 여지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작년의 그 촛불이 '결국은 무엇을 남겼단 말인가?'라고 반문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상황이기 때문에, 무덤덤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곧 긴장하게 되었다. 내가 알지 못해 깨닫지 못했던 의미들이 페이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민주주의와 공화정치와 비폭력과 저항이란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개념 그 자체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는, 영문모를 패배감에 젖어 내가 어느새 그것들을 나의 삶에서 멀리 떼어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더 많이 배워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절망의 가장 큰 적은, 어쩌면, 내 안의 무지인지도 모르겠다. 

줄을 그어두고 싶은 구절들이 꽤 많았는데, 오래 두고 보기 위해 적어두려고 한다(본문 강조는 자의적). 카피레프트를 천명해 준 메이데이 출판사에 감사를 :)

  

<촛불의 정치, 몇 가지 쟁점들> (남기현) 中

우리나라의 헌법에는 저항권 조항이 없으나, 4.19 혁명의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전문에 되어 있어, 잘못된 공권력에 대한 저항과 항쟁의 정치, 혁명의 정치가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압제에 대한 저항은 동학농민혁명, 3.1운동, 4.18혁명, 광주민중항쟁, 6월항쟁 등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해방의 정치사에서 가장 중요한 계기를 이루고 있으며, 어떠한 의회 정당정치에 견주어 그 중요성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단상에서 토론하고 표결하는 민주주의는 처절하게 피흘리며 투쟁한 민중의 피값으로만 가능해진 것이며, 위기에 처할 때는 다시 민중의 저항으로 살려져야 하는 것이다.


비폭력 무저항을 주장하면서 간디를 예로 드는 경우가 있었는데, 간디의 주장은 비폭력 무저항이 아니라 '비폭력 저항non-violent resistance'이다. 간디가 주장한 비폭력 투쟁은 저항의 한 방법으로 채택되었으며, 영국의 도덕성과 민주주의의 허구성을 세계 만방에 폭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간디 일행은 소금세에 반대해서 400km를 행진했다고 하는데 영국 경찰의 폭력에 굴하지 않고 행진하였고, 오직 부상과 죽음만이 그 행진을 멈추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그는 영국의 허울 좋은 민주주의의 껍데기를 벗기고, 그 속에 숨겨져 있는 폭력성을 폭로했던 것이다.

만약 간디 식의 비폭력 저항의 방법이 채택된다면 물대포, 군홧발, 경찰 곤봉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로의 행진은 멈추어져서는 안되며, 부상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저항을 지속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저항에 방점이 찍혀 있다면, 비폭력 저항은 저항의 방법으로 택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로서 상황에 따라서는 폭력적 저항과 그리 대척점에 있는 방식이 아니다. 간디의 비폭력 주장은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영국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드러내놓고 마구잡이로 폭력성을 행사하는 폭압적 장치에 대해서는 비효과적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민주주의의 외피를 쓰고 있지 않아서 3.1 만세 운동에 나선 민중을 학살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이러한 일제에 대해 우리 선조들은 무장독립군으로 싸웠다. 안중근 의사, 김구 선생 등은 의혈단을 조직해 요인 암살, 폭탄 투척을 했다. 전두환 군사독재에 저항하여 광주 시민은 시민군을 조직하여 총을 들고 싸웠다. 이들은 당시에는 폭도, 살인자로 몰렸고, 안중근 의사는 살인을 했기 때문에 당시 카톨릭에서 파문되었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에도 1917년의 러시아 혁명 뿐만 아니라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 1783년의 미국의 독립 등은 전쟁이나 내란을 불사하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나라들에서 '저항권'을 헌법적인 권리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저항적 폭력은 지배자의 권력이 항시 마지막에 기대는 수단은 물리력이라는 점-그것이 공적으로 조직된 폭력, 즉 공권력이든 사적인 폭력, 즉 백색 테러이든간에-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지배자 정치는 항시 억압과 동의가 배합된 형태로 등장하지만, 벌거벗은 물리력을 사용한 정치적 억압은 최후의 수단으로서, 지배의 위기 상황을 보여주는 가장 저질의 정치이다.

이와 같은 경우 저항 세력이 사용하는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폭압적 정치에 대한 정치적 판단이 항시 전제되며, 이러한 면에서 폭력은 정치의 하위에 배치되어야 할 것이다. 지배자의 폭압에 대한 저항적 폭력은 정치적 저항과 상관없는 살인, 방화, 사적 조직 폭력과 구분되며, 폭력 그 자체에 대한 페티시즘-폭력 지상주의-은 배격되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