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5. 20:22ㆍ흔드는 바람/읽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참 익숙한 말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제까지 항상 '민주주의'만을 생각했을까. '공화주의'에 대해서는, 왜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참 신기한 일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화주의/공화국'이라는 개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현실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었던 글. 더불어 정말 공부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뼈저리게 할 수 있게 해 준 글. 그래서 읽는 내내 고마우면서도 조금은 가슴 밑바닥이 콕콕 쑤시는 듯한 느낌이 참 많이 들게 해 준 글.
무엇보다도 나에게 위안이 되었던 것은, 민주주의란 목적의식적인 운동으로 존재할 뿐이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에게는 완성이 없고, 오직 결핍과 지체만이 있을 뿐이라는 선언.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이 정권 출범 이후 내내 회의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나에게 그 말은 각성제와도 같았다.
정당이나 정권, 정부 등의 실제적인 정치적 주체들이 '완벽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모습을 찾을 수 없다 해도 나는 끊임없이 그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이 세계에서 온갖 차별과 배제가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한, 만족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내가 직접 받는 차별과 배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그로 인해 신음한다면 나의 것처럼 아파하면서, 연대와 호혜의 마음을 잊지 않고!
<촛불 정치와 민주주의, 공화국의 미래> (이광일) 中
다시 확인하건대 민주주의는 인민대중의 자기지배이다. 그것은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동일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원리와 현실 민주주의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존재한다. 왜 그럴까? 이미 언급하였듯이 특정한 사회는 비대칭적 사회관계들과 권력관계들로 이루어진 다층적 복합체이다. 이것은 주권자인 대중 가운데 그러한 관계들을 매개로 수탈, 배제, 억압, 차별받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부장제에 시달리는 여성, 장애인, 성 소수자 등이 바로 그들이다. 신자유주의 지구화로 인해 이주노동자들 또한 그 대상 가운데 하나로 급부상되어 있다. 계급, 성, 인종, 민족, 지역, 섹슈얼리티 등은 그러한 현실을 정당화하는 척도로서 기능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자기지배를 실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현실의 부당한 장애들과 사회관계들을 해소, 극복해나가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다양한 영역의 비대칭적 사회관계들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또한 그것을 자신의 문제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들을 해소, 극복하고자 하는 목적의식적인 운동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통받는 사람들이 내는 목소리voices 그 자체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본령이다.
루소가 말한 것처럼 자기지배의 실현으로서의 민주주의는 미래에도 현존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오직 현재의 긴장을 모순, 해소, 극복해나가는 운동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실현된 사회는 해방된 코뮨일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현실의 비대칭적 관계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의미하는데, 거기에 어떻게 완성과 과잉이 있을 수 있는가.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에게는 오직 결핍과 지체만이 있을 뿐이다.
현실의 민주주의, 현실의 민주공화국은 그 구성원 모두에게 동질적인 대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이의 고통이 다른 이의 꿈이 되는 그런 정치체제이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그것을 먹어야 하는 가난한 대중에게는 건강권, 생명권을 부정하는 인간 모멸의 고통을 상징하지만, 축산 자본과 그에 기생하는 권력들에게는 부를 보장해 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그들의 피눈물은 자본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부의 원천이다. 이것이 현실의 민주주의, 현실의 민주공화국의 모습이다. 따라서 그것은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에 의해 끊임없이 부정당하고 재구성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민주주의에는 그 어떤 완성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결국 이 사회에 존재하는 수탈, 배제, 억압, 차별의 장애들과 그것을 재생산하는 사회관계들이 해소, 극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향한 행보를 멈출 수 없는 것 또한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지닌 '운명'이기도 하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국가와 사회, 정치와 경제가 형태적으로 분리되어 있고 바로 이것을 반영하여 국가, 정치가 관장하는 일은 '공적인 것'으로, 이른바 시민사회, 경제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사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것은 국가가 시민사회의 사적인 것들을 조정하는 중립자라는 위상, 즉 불편부당한 국가라는 위상에 의해 뒷받침된다. 따라서 국가가 중립자로서의 위상을 지니지 못한다면 이러한 범주의 적실성은 확보되기가 어렵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공적인 것'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성격이 미리 어떤 대상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긴장과 모순의 사회관계들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는 점을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즉 국가는 이른바 '중립적인 조정자'가 아니라 계급, 계층들 사이의 긴장과 모순이 다층적으로 응집되어 있는 곳이고 그런 의미에서 그 성격과 위상은 끊임없이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를 간과한 채 국가를 포함하여 그 어떤 동질성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는 공동체를 강조하는 것은 그 안에서 수탈, 배제, 억압, 차별을 생산하는 경계와 장벽을 간과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 최초로 긍정성을 부여한 루소는 자기지배의 실현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 공화국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장애에 대해서도 이미 고민한 바 있다. 그리고 그 핵심 원인으로 불평등한 사유재산을 지목하였다. 바로 그것이 공적인 것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할 주권자로서의 인민대중의 인륜을 제한하고 그 실천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재산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이 자의이든 타의이든 공적인 일에 개입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루소는 '일정한 정도의 재산을 지닌 시민들로 구성되는 반산업적 도시공화국'을 자신의 모델로 삼았다.
하지만 이런 모델은 현실화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불평등한 사유재산이 과거와 달리 자본의 운동과 그것이 지배하는 시장에 의해 구조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이전처럼 '기회로서의 시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생산성, 경쟁, 이윤이라는 모토를 내건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의 강제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과거처럼 필요한 것을 찾아 서로 교환하던 시장, 그리고 여러 사회관계들과 함께 병존하는 하나의 부분으로서의 시장이 아니라 모든 사회관계들을 자신의 발밑에 복속시키고자 하는, 이윤에 굶주린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인 것이다.
이것은 민주공화국이 사적 자본의 욕망과 그것에 연결된 국가권력의 힘을 제어하는 것에 반비례하여 실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민주공화국을 외치는 촛불대중들의 요구가 공유재의 사유화 반대로까지 이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존재한다.
민주주의는 '연대'와 '호혜'를 자신의 본질로 할 수밖에 없다. 연대는 기존의 사회관계들과 권력관계들에 의해 고통당하는 상이한 영역의 대중들이 서로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여 기존에 자신이 지닌 동일성을 끊임없이 재구성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호혜이다.
연대와 호혜는 특정한 영역의 운동이 그 운동을 중심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하는 단위의 소유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반도 대운하 문제는 환경, 생태운동가들이 독점하는 의제일 수 없다. 또한 공기업 민영화 문제도 단지 그 부분에 종사하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문제일 수 없다. 여타 부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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