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역시 5월처럼 '한 권의 책'에 제대로 정신집중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저녁 늦게까지 직장에 있는 시간이 올해 부쩍 많아진 탓인 것 같다. 직장에 있는 동안에는 나의 독서보다 직장일이 우선이므로, 신경쓸 데가 계속 생기다보니 단편 하나 제대로 읽기가 힘들다.
7월엔 그동안 잘 가지 못했던 동네 도서관에도 종종 갈 수 있겠군! 신간이 좀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 6월에 가장 좋았던 책 :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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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 감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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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마지막 의식 : 이언 매큐언, 미디어2.0
이렇게 말하면 나의 배경지식없음이 너무나 역력히 드러나 좀 민망하긴 하지만; 사실 난 이 책이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덤덤하게 쓴 남자 작가의 평범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방부 처리된 페니스를 가지고 있는 남자 이야기'로 시작되는 <입체기하학>부터 시작해 여동생을 강간하는 소년의 이야기 <가정 처방>, 소녀를 강간하고 죽게 만든 <나비>까지...예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이자는 로리콤인가 아니면 이거참 김기덕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굉장히 냉정한 시선으로 자신이 묘사하는 그 인물들을 조롱하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해서 불편한 느낌은 그다지 없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아, 그래서 이 제목이었구나'라는 걸 마지막 반전으로 확실히 알려준 <여름의 마지막 날>과 묘하게 연민을 자아내던 <벽장 속 남자와의 대화>. 이언 매큐언의 다른 책들도 좀 읽어본 후에야 호오를 판단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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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네가 있으니까 : 김연수 외, 마음의숲
나는 기본적으로 '그래도 세상은 따뜻하며 살만하단다!'는 TV동화 행복한세상류의 따뜻미지근한 책들을 좋아하지 않으며 수필은 거의 읽지 않는 편인데, 김연수와 박민규의 이름이 저자목록에 있는 걸 보고 집어들었다(사진 않았다, 빌렸다). 김연수 글은 예전에 <여행할 권리>에서 봤던 미국에서의 얘기였는데 기대보다는 그냥 그랬고, 박민규 글은 '청춘'에 관한 것이었는데 괜찮았고(하지만 '아 부인님은 좀 곤란하실지도'하는 생각이 안 든건 아니었다) 의외로 마음에 와닿았던 글은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권대웅의 글.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는 말이 마음에 팍 꽂혔다. 애들이 읽으면 좋을 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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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을 질주하는 법 : 가스 스타인, 밝은세상
오랜만에 '파리에 간 고양이'를 여러 번 떠올리게 했던 책. <파리에 간 고양이>가 피터 게더스라는 인간의 시각으로 자신과 함께 살았던 고양이 노튼에 대해 적은 글이었던 데 반해 <빗속을 질주하는 법>은 엔조라는 개가 서술자로 등장해 자신과 주인인 데니의 삶에 대해 적은 글이다. 고양이와 개라는 점에서 다르고, 동물에 대해 얘기하는 주인과 주인에 대해 얘기하는 동물이라는 데서 다르고...동생은 이 책을 읽고 나서 '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데, 나는 '이렇게 인간중심적으로 개의 생각과 감정을 지어내도 되는 건가(물론 작가니까 그래도 되겠지만)'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이거참 뭐라 해야 할지-_- 하지만 책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엔딩은 뻔하지만 그래도 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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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 오가와 요코, 이레
워낙 유명한 책인데 제목이 마음에 안 들어서(어떤 박사의 사랑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어떤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는데 고생고생하면서 여자는 남자를 공부시키고 남자는 박사가 되어 이제 좀 잘살아보나 했더니 여자가 갑자기 병에 걸려서...'류의 얘기일 줄 알았다. 이놈의 지멋대로 상상하는 병이 갈수록 깊어간다-_-) 안읽고 있었다가 그냥 가벼운 일본소설이 읽고싶다!는 마음으로 집어들었는데, 아, 생각보다 참 좋았다. 6월에 읽은 책들 중 가장 느낌이 좋았다. 차갑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수학을 이토록 정감어리게 그려내다니! 추상적인 수학이 마음좋은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 같았다. 역시나 예상했던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부분에선 눈물도 핑 돌았다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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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 공지영, 푸른숲
공지영의 책들은 '팔릴만큼 다 팔리고 나면' 읽게 된다. 내가 굳이 나오자마자 찾아 읽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많이 읽어주는 책이다보니 빨리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든달까ㅎ 이 책은 애들이 워낙 좋아하기에-_- 도대체 얼마나 좋은지 보자 하고 읽었다. 아무리 공지영이 작가의 글에서 '이 글은 허구다'라고 밝히고 있다해도 논픽션처럼 느껴지는 걸 어쩜 좋담. 어쨌든. 공지영이 과대평가되는 부분도 있겠고 그녀의 대중적 인기를 폄훼하는 사람들도 적잖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혼한 여자=문제있는 여자', '죄를 지은 놈=죽여 마땅한 놈'이라고 생각하는 이 나라에서 세번씩이나(!!) 이혼한 여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낸다는 점이나 사형 폐지의 주장을 담은 이야기를 베스트셀러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나는, 그래도 괜찮은 작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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