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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드는 바람/보고

산타클라리타 다이어트 (1) - 정주행 완료🧟‍♀️

넷플릭스의 장점이자 단점은 계속 뭔가를 추천해준다는 것이다. 어떤 기준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다만(한번 찾아볼까 싶네) 내 취향과 x퍼센트 일치하는 콘텐츠라며 낯선 제목과 썸네일을 자꾸 보여준다. 굿 플레이스는 99%,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은 98%, 힐 하우스의 유령은 97%, 모던 패밀리는 96% 등등. 찜해놓은 작품 리스트가 늘어날 수밖에 없고 하나를 다 보고 나면 또다른 하나를 바로 또 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A 다 보면 B 보고 B 다 보면 C 보고 C 다 보면 D 보고 하는 식으로 보고 보고 또 보고… 이렇게 영상매체중독자가 되는 것.

숫자를 아주 믿을 수도 없다. 정직한 후보가 85%인데 극한직업이 71%라고 매겨놓은 걸 보면 맞는 것 같다가도, 내 인생 최고의 영화인 8월의 크리스마스와 최근 5년 동안 본 영화 중 최고의 영화였던 윤희에게가 60%대로 매겨져 있는 걸 보면 뭐야 이새키 싶으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다 보고 났더니 온갖 범죄물들을 좌르륵 추천해줬고(물론 모든 범죄물이 다 재미있을 순 없다)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를 다 보고 났더니 그와 비슷한 코미디들을 와장창 추천해줘서 이새키 날 뭘로 보고 있는 거야 싶었는데, 그 와중에 자꾸 보이는 이름의 콘텐츠가 산타클라리타 다이어트였다. 다이어트??????? 다이어트라고??????????? 체중 감량하는 얘기야?????????????????

다행히 아니었다. 부부 중 한 명이 우연한 기회에 언데드가 된 이후 진행되는 얘기들이라고 했다. 아휴 됐어 좀비...하고 화면을 바꾸려는데 배우 목록에 드류 배리모어가 보였다. 헐 드류 배리모어라니. 이 귀여운 언니가 나오는 시리즈라니. 그럼 좀비떼가 나와도 볼 가치가 있지 하고 바로 선택. 그리고 홀린 듯이 시즌 1부터 3까지를 좌라락 정주행했다. 넷플릭스새키도 문제지만 내가 제일 문제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따라서 지금부터는 모든 것이 다 스포.


산타클라리타 다이어트의 타이틀 화면. 정갈하게 차려진 식탁 위로 핏방울 하나가 똑 떨어진다.

시즌 1부터 3까지를 다 보고 나서 이걸 시간 순서대로 한번 다시 정리해봐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을 만큼, 극의 시간적 배경은 생각보다 짧은 기간이다. 대충의 줄거리를 일별하면…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하고 있는 쉴라(드류 배리모어)와 조엘(티모시 올리펀트) 부부는 산타클라리타라는 캘리포니아의 교외 지역에서 딸 애비와 함께 살고 있다. 옆집에는 댄이라는 LA 카운티 보안관과 릭이라는 산타모니카 경찰이 가족들과 산다. 댄과 릭의 사이는 좋지 않고, 댄의 성격이 릭보다 훨씬 나쁘다. 조엘 역시 댄보다 릭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댄은 좋아하지 않고 릭과는 친하다.) 댄의 아내인 리사(댄이 세 번째 남편임), 릭의 아내인 알론드라는 둘다 괜찮은 사람들. 물론 내 눈에 괜찮은 것이므로 누군가의 눈에는 노답으로 보일 수 있음ㅋㅋㅋㅋㅋㅋㅋ

시즌1 1화 시작 부분에 나오는 산타클라리타의 조감.
왼쪽 집이 알론드라와 릭의 집, 오른쪽 집이 리사(와 댄)의 집, 가운데 집이 쉴라네 가족의 집. 댄을 괄호 안에 넣은 것은 시즌1에 바로 죽기 때문👻
왼쪽부터 리사, 쉴라, 알론드라. 아시안인 알론드라가 가장 크다는 것도 맘에 드는 부분. 이건 시즌1 4회 초반부 장면이다.
시즌1 시작부분에서의 리사. 에릭은 리사의 아들이다. 저 말 보고 아 저 엄맠ㅋㅋㅋㅋ 노답이넼ㅋㅋㅋㅋㅋㅋ 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쉴라와 조엘의 딸인 애비. 귀엽고 파워풀하다. 시즌1 1회 앞부분에 나오는 장면인데 끝나고 나서 다시 보니 저 대사가 정답이었다. 엄마 죽었어 애비야...하지만 다시 살아났지!

시즌 1 1회가 5분 정도 지나자마자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부동산 중개인인 쉴라와 조엘은 코비 부동산이라는 곳에서 일하는데, 피터슨이라는 사람의 집을 팔기 위해 고객을 만난다. 성격이 더러운 상사가 반드시 팔아오라고 지랄지랄을 하기 때문에 꼭 팔아와야 한다. (사실 나는 저 상사가 시즌 1-3 중에 죽을 줄 알았다. 엄청 권위적이고 전형적인 성차별주의자라서🤨) 즉 중요한 자리인 것.

쉴라에게 소리소리지르는 상사놈. 차별주의자새키🤬🤬🤬🤬

근데 아침부터 속이 좋지 않았던 쉴라가 고객 앞에서 큰 사고를 친다. 엄청난 구토를 하는 것. 와 진짜 처음에 이 장면 봤을 때는...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싶었다. 아니 이렇게 대놓고 입에서 구토물을 뿜어내도 되는 건가? 괜찮은 건가 이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진짜 한국이었으면 더럽다고 욕하는 글 천만개 올라왔을 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침부터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저러려고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쉴라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 근데 사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대부분의 상황이 다 저런식😅 사진 출처는 www.coloradodaily.com과 vulture.com임.

저게 끝이 아니었음을 이어 보여준다. 진짜 충격적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화장실 전체가 쉴라의 구토물로 범벅이 되어 있고 바닥에는 쉴라가 구토물을 뒤집어쓴 채 누워 있다. 놀란 조엘은 쉴라의 심장 박동을 확인하는데
심장이 뛰지 않는다!!!!!!!! 놀란 조엘이 황망해 쉴라를 끌어안자 쉴라는 조엘의 품 안에서 깨어난다. (이때까지는 조엘과 쉴라가 진짜 사이좋은 부부인지 아닌지 감이 잘 안 잡혔다. 쉴라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의 조엘 표정이 웃는 것 같아 보여가지고🤭🤫)
쉴라의 저 말처럼 정말 화장실잌ㅋㅋㅋㅋ 도배 수준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벽과 바닥과 장에 묻어있는 것들이 모두 쉴라의 구토물ㅋㅋㅋㅋㅋㅋㅋ 비위 약한 사람들 절대 보지 말아야 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닥에 떨어진 저 '붉고 둥근 것'도 쉴라가 토한 것. 장기의 일부인가 하고 쉴라는 궁금해한다.
저렇게 자기 옷을 다 버려가면서 쉴라를 끌어안고 부축하는 걸 보면서 음 둘이 사이가 좋은 건가보다 했음. 나라면 못한다 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쉴라는 괜찮다고 하지만 조엘은 쉴라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온다. 그런데 병원에 다녀온 후 쉴라가 자신의 심장 박동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조엘이 슈퍼에서 청진기를 사오는데, 청진기로 들어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다. 손에 상처를 내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붉은 피가 흐르지도 않고, 찐득찐득한 검은 소스 같은 것이 찢어진 부위에서 배어나온다. 성적 욕구는 치솟는다.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본 애비는 '전문가'라며 옆집의 에릭을 찾아간다.

에릭은 동공 반응을 관찰하더니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나서, 쉴라가 '언데드'가 되었다고 말한다. 조엘이 좀비가 됐다는 거냐고 묻자, 에릭은 '그 단어는 너무 부정적이라 싫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 드라마는 언데드라는 표현을 쭉 사용하고, 좀비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어감을 주고 싶을 때 쓴다. 그러면서 에릭은 이런 말을 한다.

보통 새로운 바이러스는 동물을 통해 감염되죠. 원숭이나 박쥐처럼요. 인간이 서식지를 파괴하니까 생소한 질병에 노출되는 거예요. 우리야말로 좀비 아닌가요. 원하는 뭐든 소비하죠. 닥칠 일은 생각지도 않고요. 지구를 파괴하면 인간도 끝장나고 말죠.

'좀비'가 등장하는 매체를 볼 때마다 '저들도 한때는 인간이었던 존재인데, 저렇게 다뤄도 되나'하는 마음에 심란한 마음이 들곤 한다. 죽었으면 죽어야 하는데 안 죽고 움직이는 시체=좀비라고 다들 생각하니까, 외형도 당연히 흉측하다. 말도 제대로 못한다. 생각도 하지 못한다. 인간을 먹이로 생각해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아무리 먹어도 만족을 모른다. 그러니 어떤 무기를 써서든,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든, 죽여야 하고 죽여도 된다...는 게 내가 이제까지 본 좀비 영화에서의 좀비에 대한 '합의'의 내용이다.

그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좀비 자체가 악이니까 그 악을 처단하는 방법이 아무리 폭력적이고 아무리 파괴적이어도 상관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무조건 죽여도 되는 존재'가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콘텐츠라면 아무리 재미있어도 인간에게는 해악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더 심란할 때는 좀비가 장애를 가진 사람이나 '사회적 기준에 맞는 아름다움'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였다. 못생긴 사람을 여자를 마녀로 몰아 죽였던 중세 시대의 야만까지 떠오르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아 내가 또 오버하고 있구나...' 싶어 더이상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진다.

그런 내게, 저 장면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 괴로워하는 조엘에게 '인간이 생소한 질병에 노출되는 이유는 자연의 서식지를 인간이 파괴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에릭의 모습을 보며, 그냥 현대 사회 그 자체에 대한 진단 같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불평하는 현대 사회의 모든 것이 사실은 인간에 의한 것이니까. 3년째 이어지고 있는 팬데믹 상황이야말로 그 대표적인 사례일 테고. (여전히 나는 '세상의 종말을 인간이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것이 현재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좀비라는 존재를 세계의 가장 큰 해악처럼 다루는 한편 희화화하고 악마화해 오락거리로 삼는 것이 인간이지만, 사실 가장 지구에 큰 해악이 되는 건 인간이겠지.

'인간이야말로 좀비 아니냐'고 묻는 에릭을 보며, 산타클라리타 다이어트가 그저 '웃기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좀비를 등장시키는 이야기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첫 순간이 바로 저 장면이었던 것. 다 보고 난 지금은,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쉴라, 조엘, 애비, 에릭, 이 네 명이 남은 이야기들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들.

아니 아직 시즌1의 1회 얘기도 다 못끝냈는데 저 스크롤 무엇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 진짜 나새끼 말많아서 내가 나때문에 살 수가 없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선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고 남은 이야기는 다음에....................... 절레절레 나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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