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트(Sirât, Oliver Laxe), 2025

2026. 1. 29. 22:25흔드는 바람/보고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다 스포인 글)

 

어제 아트하우스모모에서 이 포스터를 받았다! 침실에 붙여 두었다.

 

 

시라트를 보고 난 뒤, 사실 마음이 잘 가라앉지 않았다. 사실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나는 계속 긴장해 있었다. 군대를 피하기 위해 세 대의 차가 산길로 올라갈 때부터는 긴장도가 더욱 높아졌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가는데 어지러운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멀미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멀티플렉스에서 보는 것도 아닌데 이런 기분이 들다니 나도 좀 과하다...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랬다. 그 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차 안에서 자던 에스테반이 밖으로 나왔을 때부터, 왠지 에스테반이 죽을 것만 같았다. 피파가 에스테반에게 달려오는 걸 보는데 아찔했다. 피파가 에스테반과 장난치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될 줄은 몰랐고(하...)

 

차가 굴러떨어지는데, 너무 당연하다는 듯 굉음이 울려퍼져서 그 어떤 인물의 울부짖음보다 더 무시무시했다.

 

아들을 잃은 루이스가 사막에서 방황하다가 쓰러졌을 때는...루이스가 죽는 줄 알았다. 아니면 죽음에 가까워지는 일이 생기는 줄 알았다. 그래서 또 긴장하고 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날이 개고 차를 세우고 스피커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자 춤을 추기 시작했다...그렇게 춤을 추며 끝나는 건가 했다. 이들은 더이상 어디로도 갈 수 없어 보이고, 어디로 간들 의미가 있는 건가 싶기도 해서, 파티를 찾으러 간 이들이 사막에서 만난 것은 세계의 끝이었던 건가...하고 생각했다. 전쟁과 죽음으로부터 도망가려고 끝까지 발버둥치는 게 인간의 본능이라면, 멸망해가는 세계에서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건 세계의 진실이라고 말해주는 걸까...라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 굉음이 영화관을 채웠고

 

믿을 수 없다는 기분이 들기도 전에 또 굉음이 울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는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무섭고 또 무시무시해서. 내 귀에 울려퍼진 소리들이 계속 가슴을 뛰게 해서. 눈에 보이는 장면은 오히려-물론 잔인하지만-소리보다는 덜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그 소리들은, 계속 머릿속에서 반복되어 재생되면서, 섬뜩한 기분이 들게 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볼 때야 겨우, 신음을 낼 수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내가 뭘 본 걸까, 싶기도 했다.

 

스테프, 조쉬, 비기, 루이스.

 

영화를 보고 나서 집에 돌아오며 머릿속에 질문들이 계속 떠오르는 걸 느꼈다. 왜 에스테반은 죽고 루이스는 살아야 했지? 이전 세대가 죽고 미래 세대가 살아남는 것이 맞는 것 아냐? 루이스와 에스테반에게 가장 호의적인 것처럼 보였던 자드는 왜 가장 먼저 죽었지? 그리고 토냉의 죽음이야말로 무슨 의미가 있지? 자드의 죽음이 실감되지도 않는 순간에 토냉까지 죽어야 할 이유가 있었나? 비기는 죽고 스테프랑 조쉬가 살아남은 건 왜지? 아니, 애초에 이들을 이렇게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유가 뭐지? 감독은 대체 무슨 메시지를 주려고 한 거지? 같은 질문이 가시질 않았다.

 

나름의 이유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루이스와 에스테반, 자드와 토냉과 스테프와 조쉬와 비기는 레이브 파티에 군인들이 와서 사람들을 피신시킬 때 군인들을 따라가지 않고 도망친다. 군인들을 따돌리는 데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자드이고, 루이스에게 자드를 따라가자고 말한 사람이 에스테반이다. 그래서 이 둘이 가장 먼저 죽어야 했던 걸까? 영화 속 세계에서는 전쟁이 벌어졌고, 그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류가 절멸할 위기다. 나만 안전하고 편안한 데로 피할 수는 없다. 근데 이들은 무모하게도 피하려고 했기 때문에, 가장 적극적으로 도망치고자 했기 때문에, 그래서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건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하지만 그럴 리 없다. 말도 안 된다.

 

한 손을 잃은 비기와 한 발을 잃은 토냉은 왜 자신들이 손과 발을 잃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의족을 들고 노래하는 토냉을 보며, 반전과 비폭력을 말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지뢰로 가득한 사막은 그들의 삶이 계속되는 전쟁과 폭력 속에서 이어져왔음을 보여준다. '3차 세계대전'이라는 이름만 지금 붙었을 뿐, 인류의 궤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한 현실을 잘 알고 있는 인간은 그 누구도 죽음으로 향하는 길에 자진해서 서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길을 벗어나 자유롭게 다른 길로 달려가고 싶어한다. 그건 어쩌면 의지나 소망이 아닌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 본능이, 혹은 의지나 소망이, 죽음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죽어야 했을까...그리고 나는 왜 이런 질문들이 풀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좋다고 느끼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을 제대로 언어화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제 오늘 계속 이런저런 리뷰들을 찾아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확실한 건, 어쨌든 나는 이 영화에 설득됐다는 것이다. 여전히 귀에서 굉음이 울리는 듯 여운이 가시지 않아 폭력적이라는 기분이 들 정도이지만, 불쾌하지도 불편하지도 않다. 무력감이나 허무함을 느끼지도 않는다. 단지...삶과 죽음의 거리가 아주 가깝다는 게 또다시 느껴져서 문득 등골이 서늘해지곤 할 뿐이다. 삶에 미련이 크게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죽음이 내 곁에 있다는 생각을 무시무시하다고 느끼는 나 자신이 새삼 낯설게 느껴질 뿐이다. 그래서..텅 빈 사막에서 마지막으로 춤을 추던 자드의 모습이 자꾸 떠오를 뿐이다.

 

자드 그리고 토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