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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드는 바람/보고

[영화] 고고70, 2008 - 휠링 충만, 쏘울 충만!


시사회 다녀온지 한참 됐는데 바쁘다는 핑계로-_- 이제서야 쓴다.


우리 방준석음악감독님의 올해 네번째 영화, 고고70. (준석님 제발 몸생각하셔서 쉬엄쉬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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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큰 기대 없이 응모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시사회에 다녀왔다. 천년만의 메가박스행. 피로에 찌든 금요일 저녁에 일산에서 강남까지 가려니 몸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으나, 준석님의 음악을 듣겠다는 일념으로 꾸역꾸역 찾아갔다. 하지만 결국은 늦었고; 원래 보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7시 30분 영화 대신 8시 40분 영화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늦었으니까 꺼지세요' 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어휴.

2. 나름 VIP시사회라고 방송사 카메라도 보이고 어설프게나마 카펫도 깔려 있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연예인 오는지 보자고 모여 있었지만, 나는 계속 '혹시 우리 음악감독님은...'하고 두리번두리번. 그러나 음악감독님은 머리카락도 못 봤고ㅠㅠㅠㅠㅠㅠ 대신(?) 최호감독과 배우들의 무대인사를 보았다. 그러고보니 무대인사 본 것도 오랜만이었군. 최호감독은 생각보다 많이 점잖아 보이셔서 조금 놀랐고, 신민아는 얼굴이 무지하게 작았다(양편의 좌조우차승우들때문에 더 그래보였는지도). 많이 꾸미지 않은 듯한 조승우는 편안해보였고 흰색 정장을 차려입고 나온 차승우는 역시나 씩씩하고 귀여웠다! 손경호씨는 "여기 나오는 사람들이 모두 친구로 보여야 맞는 겁니다"라는 말로 나를 웃겼고 ㅋㅋ

3. 영화는 기대했던 것만큼 즐거웠다.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데블스의 무대를 보면서 헤드뱅잉을 하게 되더라는;; 70년대라고 하면 통기타 가요들이나 민중가요 또는 이른바 '건전가요'를, 밤무대라고 하면 빤짝이옷을 입고 부르는 트롯 메들리 무대를 떠올렸었는데...이렇게 휠링 충만, 쏘울 충만했던 밴드들과 함께 밤을 불태웠던 청춘들이 있었다니!!! 부러움이 마구 치솟아올라오면서 당장 홍대로 달려가 밤새 공연이나 봤으면 참 좋곘다 싶었다.

중간중간 당시의 참으로 무식하고 교양없던 '그 정권'의 못된 짓거리들이 화면을 채울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놀아보자고 악으로 깡으로 부딪친 그들의 젊음이 마음을 울려 뭉클해지기도 했다. 특히 목욕탕 신과 라스트 신 같은 부분. (이거 좀 스포?)

4. 조승우는 역시나 그만큼의 이름값을 또 해냈구나-하는 느낌이었고 "질러부러!"라며 냅다 달리던 차승우의 경쾌함은 꽤 인상적이었다. 포스터나 팜플렛에 차승우와 신민아의 이름이 거의 비슷한 크기로 쓰여 있어서 설마 했는데, 예상보다 차승우는 정말 많이도 나왔다! 그리 심하게 어색하지도 않았고. 차승우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음 저 껄렁껄렁하게 행동하고 말하는 애는 그냥 신인배우?'라고 비춰보였을 듯. 데블스 멤버들이 함께 있는 모습들도 꽤 자연스러워서, 그들 모두 정말 '그 밴드'의 멤버들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씬수'나 '컷수'와 상관없이 이 영화 속에서 내 눈에 가장 반짝반짝 빛나보이던 인물은 신민아! 굉장히 질척질척하거나 신파스럽거나 뻔할 수 있는 캐릭터였으나 참으로 사랑스러웠다(그녀를 대하던 상규의 태도가 가진 폭력성은 눈에 거슬렸으나-_- 이제는 '그 정도는 남자감독 영화에서 기본' 정도라고 생각하고 들어간다. 젠장). 그녀의 미미는 자칫 마초스럽거나 구질구질하게 느껴질 수 있었던 이야기가 끝까지 발랄함을 이어갈 수 있게 해 주었던 중심이었다고 생각한다.

5. 가장 큰 관심사였던 음악-준석님의 음악!!!!!!!!!! 이제까지의 준석님 영화 중에서 밴드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은 두 번째 영화(첫 번째 영화는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까지 치면 세 번째가 되겠지만 <님은 먼 곳에>를 밴드 영화라고 해도 될지 잘 모르겠고...흠)이긴 하지만 준석님이 혼자 음악감독에 이름을 올리시면서 밴드 얘기를 풀어나가신 걸로는 처음이다. 그래서 더 기대가 컸었는데...내 귀에는 참 좋았다 으하하하하. 데블스가 쏘울 브라더스라고 자칭하기는 하지만, 무대신의 대부분은 락 넘버들이었고 내 취향엔 이게 잘 맞았다 ㅋㅋ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찡했던 건, 이 영화 찍는 내내 준석님 머릿속에는 '저 밴드의 한 명'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있지 않았을까, 싶었던 탓. 자신도 상규처럼, 만식이처럼, 마음 맞는 친구들과 '질러불고' 싶었을텐데. 휠링 충만한 음악을 보란듯이 하고 싶었을텐데. 그러지 못했던 자신의 20대가 떠올라 작업하는 중간중간 손이 멈추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한숨이 나왔다. 하아.

영화 끝나고 크레딧 올라갈 때 보니 준석님이 작업하신 노래가 일곱 곡이나 있더라. 괜히 뿌듯해지던 이 마음, OST 나오자마자 달려가리라 굳게 다짐했다 ㅋㅋㅋ '청춘의 불꽃'도 뮤직비디오로 볼 때보다 영화 속에서 볼 때가 더 찡하고 좋았지만(앞 장면과 연결되는 이야기가 있다보니 더더욱 느낌이 좋았던 것. 앞 장면 얘기하면 스포가 되니 피하겠지만 ㅋㅋ) 내 귀에 제일 맴맴 돌았던 건 '우리가 누구? We're Devils! 우리가 누구? Soul Brothers!'라던 'We're Devils'였던 것 같다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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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다 스포에 가까워서 접은글로 씀.

 

6. 서전음과 이지형을 비롯, 이런저런 뮤지션들이 꽤 많이 나온다는 얘기를 미리 듣고 간 터라 '과연 그들이 어떻게 나오나...' 궁금해하면서 봤는데! 아 진짜 딴사람은 몰라도 윤철님은 충격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긴 파마머리에 선글라스까지 쓰셨을 때 완전 카리스마 넘치셨는데 나중에 머리 잘리고 끌려오신 모습이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녀팬들을 몰고다니는 최고의 흥행카드이자 싸이키델릭의 황제 휘닉스~로 나오시는데 서전음 세 분들은 저 소개가 얼마나 쑥스러우셨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면서 내가 다 화끈거리고 ㅋㅋㅋㅋ 딴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심하게 웃지 않았지만 나는 참을 수 없어서 혼자 꺄하하하하 웃어버렸다.이지형은 생각보다 너무 덜 나왔고 더 느끼했다만 이지형이 부른 노래가 준석님의 곡이라서 잠시 깜짝 놀랐다. 자신의 2집 수록곡을 부를 거라고 생각했던 터라. 물론 이 영화는 문샤이너스나 서전음 이지형 더캔버스에 대해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이지만 그 밴드들에 대해 원래 알고 있다면 보는 재미가 배가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윤철님이나 이지형 나올 때 남들은 조용했지만 나는 웃었단 말이지-_-)//

 

7. 아, 그리고 서전음은 준석님의 오리지날 스코어 대신 종소리와 핑키의 노래를 불렀다. 스크린에서 만나는 핑키의 노래라니, 반갑지 않았다면 절대 거짓말!!!!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아 우리 승열오라버님이...아 우리 준석님도 좀...' 하는 아쉬움이 자꾸 남았다는 거 ;p

 

8. 위에서도 신민아의 이야기를 잠시 했지만, '의외로' 이 영화를 끝까지 즐겁게 볼 수 있었던 힘 중 하나가 '미미'라는 캐릭터였다. 남자 감독의 영화고, 남자 냄새 가득한 밴드의 이야기다보니 미미를 훑고 지나가는 영화의 시선이나 미미와 상규와의 관계 같은 부분에서 눈살 찌푸려지는 부분은 분명히 있었다. 특히 세 부분이 생각나는데, 첫 번째는 상규가 미미를 얼마나 막 대했는지에 대해 데블스 멤버들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상규가 미군이 가진 외국 음반을 몰래 빼돌리기 위해서 미미를 그 미군의 방에 집어넣었다-_-는 내용이 나오는 부분. 미미를 팔아 넘길만큼 상규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던거다! 라고 해석해주기에는 너무 짜증스러웠다. 두 번째는 상규와 미미가 처음 서울에 올라와 한 달 즈음이 지나고, 상규가 미미에게 자기를 떠나라고 하면서 '너 혹시 나랑 한 번 잔 것 때문에...'라고 하는 부분. 처음 잔 남자에게 자신의 순정을 바치는 여성이라니, 너무 진부하면서도 마초스러운 상상력이잖아. 마지막은 고고땐스 교본을 만들면서 미미에게 가슴을 심하게 흔들라고 시키는 부분. 여성의 신체를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이 어떠한지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줘서 '아니 이거 뭐야'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그런 눈살 찌푸려지는 부분들 속에서도 미미가 빛나는 순간들이 있었다는 거다. 상규의 입영 통지 소식에 기가 빠져있는 데블스 멤버들 앞에서 '플레이보이컵 록크밴드 경연대회' 광고를 보여주며 "상금이 백만원이다!! 서울 가자!!"라고 씩씩하게 멤버들을 부추기는 것도 미미고, 데블스의 첫 데뷔 무대를 위해 해골 의상을 친히 만들어 입히는 것도 미미고, 한 달 동안 아무 스케줄도 못 잡고 있는 데블스 멤버들을 어떻게 먹여살려 보겠다고 밀가루로 음식을 만들고 <주간 서울>에 가서 '일 좀 달라'고 매달리는 것도 미미다. 서울에서 날리고 있던 휘닉스나 템페스트에 밀려 우울하게 라면이나 끓여먹고 있는 데블스 멤버들과는 달리 '서울 애들 춤 되게 촌스럽게 춘다'며 직접 안무를 짜와 죽어가던 데블스에 불을 붙이는 것도 미미다. 밴드 뒤에서 걔네들 뒤치다꺼리 하면서 '우리 오빠가 잘되면 나도 잘되는 거'라는 정신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대신, 자기가 추고 싶은 춤을, 자기 느낌 가는 대로, 자기가 만든 옷을 입고 멋지게 춰 버림으로써 무대를 살려버리는 사람이 미미인 거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미미의 매력'이 감독이나 이야기의 힘이었다기보다는 배우 신민아의 역량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미미가 '소울'과 '서울'도 제대로 구분 못하면서 '오빠는 나의 소울이다'라고 그 작은 얼굴을 스크린 가득 채우고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두 눈을 깜빡일 때, '으아아아악!!!!!!!!!!!'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러면서도 그녀는 마냥 예쁘고 귀엽기만 하지 않았다. 와일드 캣츠의 리더로 무대를 사로잡을 때는 도발적이면서도 화끈했고, 죽은 멤버의 집에 찾아가 할머니를 토닥이며 눈물을 흘릴 때에는 쓸쓸하면서 처연했다.

 

9.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상규를 면회하러 왔을 때의 모습. 처음 부분에 상규 얼굴을 마주할 때, 공연을 하러 갔다가 호텔로 끌려 갔던 얘기를 하고 나서 '내가 도망치기 선수잖아'라고 말하며 웃을 때, 상규와 헤어져서 돌아가던 때-마지막 공연을 모의한 직후였던 듯-, 미미의 감정이 매우 섬세하게 변해가는 부분이었는데, 그 설레임과 걱정스러움, 씁쓸하면서도 명랑함, 감춰지지 않는 즐거움이 모두 느껴졌다. 그 와중에 자신의 본명을 부르던 간수에게 욕 한번 날려 주기도 하고 ㅎㅎ 적극적이고 진취적이기까지 하면서도 발랄하고 씩씩하고 다정다감한 미미가 있어서, 이 영화를 보는 재미가 더욱 컸다. '양갈보'라는 말을 쓰던 여관집 딸에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정색하던 장면도 은근히 오래 기억나고.

 

10. 어쨌든 우리 준석님이 작업하신 영화니 당연히 잘됐으면 좋겠고, 무엇보다도 OST가 대박나길 바란다. 준석님 고고70 끝나면 좀 쉬신다고 하셨는데 쌈싸페 준비하시느라 또 못 쉬시는거 아닌가; 이걸로 연말에 음악상 하나 받으시면 더더욱 좋을텐데 으하하하하하. (어째 생각하는 거라곤 늘 이런식-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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