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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드는 바람/보고

[영화] 정직한 후보, 2020

이다혜의 21세기 시네픽스에서 90번째로 추천해주신 작품이었던 정직한 후보를 보았다. (이다혜의 21세기 시네픽스 1-100편 목록은 지난번에 포스팅함: "여기")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찔끔찔끔 대충의 내용을 접했던 터라 큰 기대 없이 봤는데, 의외로(?????) 나는 재미있었다ㅋㅋㅋㅋㅋ 영화를 다 본 후에 어 이 감독님 뭔가 이름이 낯익은데 하면서 찾아봤더니(필요한 배경지식 대신 쓸데없는 스포에만 노출됐던 사람=나) 김종욱찾기의 감독님이셨다. 아하!

사실 나는 그 전까지 공유배우와 임수정배우의 출연작을 거의 본 게 없다. 공유는 음 으음 으으음…슈슈슈퍼스타 가가감사용? (그나마 특별출연) 드라마도 뭐 어느멋진날 초반의 몇 회만? (뒷쪽에는 뭔가 내용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안봄. 그리고 원래 드라마 잘 안 보기도 하고ㅠㅠ) 커피프린스도 전혀 안 보다가 주변 사람들이 너무 좋아해서 몇 번 대충 보고 거의 짤로 봤다. 임수정배우도 크게 다를 게 없어 뭐 음 …ing????? 근데 …ing는 준석님의 음악과 승열오라버니의 기다림 들으려고 본 것이고…나는 미안하다사랑하다도 안봤고(그때 아일랜드 봤던가 그랬음) 어쩌다보니 임수정배우가 활발히 작품을 찍던 시기와 내가 영화를 안보게 된 시기가 겹쳐서 진짜 임수정배우 작품을 제대로 본 게 없다. 지금 보니까 진짜 황당할 정도로 안 봤네;;;;; 

 

그런 와중에도 신기하게 김종욱찾기는 봤는데.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너무 뻔하게 보이는 내용이 생각보다 담담하게 전개되어 어 신기한데? 하는 기분이 들었던 게 기억난다. 지우의 첫사랑이고 뭐고 당연히 기준과 지우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일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제일 하기 쉬운 선택은 두 배우의 '매력적인 외모'를 부각하는 방식일 거 같단 말이다. 근데 그 방식 대신 두 배우의 '일상적인 모습'이 부각되는 느낌이었다. 특히 지우가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이 강조되는 것 같아 좋았다. '매력적인 외모'를 지닌 배우들이기에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약간은 우스꽝스러워보일 수 있는 모습도 예쁘게 보이는 거라고 하면 딱히 할 말 없다만. (뭐 어쩌란 말이냐?)

 

장유정감독님의 두 번째 작품인 부라더는 안 봤지만(뭐 쓸 때마다 본 게 없구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하늬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준 영화! 라는 평을 여기저기에서 봤었다. 이하늬배우 역시 임수정배우처럼 매력적인 외모를 지닌 여성인데, 그 외모를 극대화하거나 대상화하지도, '그 외모를 지닌 여성이기에 맡을 수 있는 역할'을 부여하지도 않고 고유한 서사를 가진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냈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이, 세 번째 작품인 정직한 후보에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라미란이라는, 아주 매력적이면서 대체불가한 배우를 원톱으로 한 영화라는 점부터 좋았다. 2012년에는 엄정화배우 옆에서 '남성 정치인의 아내의 친구' 역할을 맡았던 그녀가 남성 정치인의 아내도 아니고 여성 정치인으로! 그것도 4선을 바라보는 여당의 의원으로!! 그로 인한 열등감과 소외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남편의 고통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쓰이는 것도 아니고 당당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게 너무 좋았던 것이다!!!! '정치판=거짓말이 판치는 곳'이라는 도식화/단순화는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거짓말도 불사하고 개싸움-_-을 하는 이들 틈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다가 어느새 그들의 모습을 닮아버린 사람-어떻게 보면 남성화된 여성, 즉 남성의 논리를 내재화하고 자신을 커버링하는 여성-을 초반의 주상숙 캐릭터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단정한 짧은 머리 가발을 쓰고, '자기 당 의원의 당선'을 위해 상대 후보와의 협잡질도 서슴지 않는 당대표의 기분을 맞춰주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초반의 주상숙.
(진짜) 집에서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자신이 진짜로 입고 싶었을 우아한 옷을 입지만, 집 밖에서는 단정하면서도 여성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무채색의 정장에 당을 상징하는 보라색 블라우스를 입고, '낡은 느낌'을 주기 위해 양쪽 구두를 굳이 '밟힌'단 말이다.

그러다가 거짓말을 못하게 된 후의 주상숙은 남편과 함께 출연한 라디오 생방에서 온갖 방송사고를 저지르게 된다. 나는 이 설정 자체가 진짜 웃기다고 생각했다. 어떤 남성 정치인이 선거를 앞두었다고 아내와 함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나? 남편과 함께 출연하는 방송이라는 거 자체가 '여성 정치인'이니까 '그다지 이상하지 않게' 보이는 것 아닌가. 이 자리에서 '정치인이긴 하지만 아내나 어머니로서도 모자람 없는 사람임'을 증명하라는 거겠지. 그런데 주상숙은 이 자리에서 '여자 정치인이 하면 안 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말'을 거침없이 한다.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지만) 그 모습이 나에게는 매우 유쾌했다. 이후 가발을 벗어던지는 것 역시 흥미로웠다. 가발을 벗어던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에게 강요되던 틀을 벗어던지는 것을 상징하지 않겠는가…????? 이제 더이상 가발을 쓰고 거짓말을 하며 남성들의 언어와 논리에 자신을 끼워맞추는 사람, 주위 남자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사람으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보이기도 하고 탈코가 떠오르기도 해서 속이 다 시원했다. 

 

거짓말은 못하게 됐지만 아직 가발은 쓰고 있던 때.
그에 비해 후반부의 선거 운동 때, 머리를 풀어헤치고 흰 옷을 입은 주상숙의 모습은 훨씬 더 유쾌하고 즐거워보인다. 주상숙이 남편과 쇼윈도 부부로 나온다는 평도 봤는데, 내 눈에는 쇼윈도 부부 같지 않았다. 그냥 서로 애정이 있는 부부 같던데…????? 근데 부부로 살아본 적 없는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인 것도 같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주상숙이 거짓말을 못하게 된 이유가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해서 벌을 받음', '남편이 바랐기 때문', '알 수 없는 이유' 같은 게 아니라 '우리 착한 상숙이 거짓말 안하고 착하게 살게 해 주세요'라는 할머니의 기도 때문이라는 설정 역시 나는 좋았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다가 결국 잃어버릴 지경까지 간 주상숙에게, 그녀의 가장 중요한 조력자였던 할머니가 원래의 목소리를 돌려준 거니까. 그러면서 그녀가 정치를 시작할 때 가지고 있던 마음도 다시 찾게 해 주고, 안 보고 혹은 못 보고 있었던 '자신의 문제/책임'도 다시 보게 해 주고, 자신이 가진 것들이 어떤 희생과 부조리 위에 세워진 것인지 깨닫게 해 주었고.

 

무엇보다 그 할머니 역할을 라미란배우만큼이나 존재감 있는, 대체불가한 여성 배우인 나문희배우가 분했다는 점 역시 좋았다. 라미란과 나문희라니 세상에!!!!! 너무 멋진 캐스팅인데 아마 투자받기 엄청 힘들었겠지 흑흑흑흑흑. 다들 망할 영화라고 투자하지 않겠다고 했겠지 흑흑흑흑흑.

 

아름다운 투샷이구나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라미란배우의 첫 원톱영화로, 나문희배우와 함께하는 영화로 밀고나가 완성한 장유정감독님 멋지시다고 생각함.

왼쪽 가운데 계신 분이 장유정감독님.

물론 이 영화의 모든 점이 다 맘에 드는 건 아니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딨겠는가. 게다가 이 영화는 '가볍게 볼 수 있지만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는 코미디 영화' 아닌가. 복잡한 얘기가 너무 단순화됐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 너무 간단히 훑고 지나간 거 아닌가 하는 부분도 있고, 굳이 어머니로서의 주상숙이 이렇게 강조되었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 이 역할이 조금 더 부각됐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도 당연히 있다. 윤세아배우가 맡은 방송국 PD 역할이 조금더 매력적으로 그려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좀 있고(온주완배우가 맡은 역할을 그냥 윤세아배우가 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조수향배우가 연기한 신지선이 주상숙과 적대적인 관계처럼 묘사된 부분이 약간은 아쉽기도 하다. (근데 그에 비해 '슬기학생'의 어머니와는 또 너무 안 적대적인 관계처럼 그려졌고…'어머니'로서의 정체성/정서를 공유한 결과처럼 보이는 부분은 약간 미묘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장면이 나는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비현실적인 요소를 차용한 영화인 만큼, 그냥 주상숙이 끝까지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으로 나오고, 4선 의원도 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근데 이은철의 말처럼 저 두 가지가 함께 이루어지긴 힘들었을 것 같다. 주상숙이 할머니를 선거에 '활용해' 왔다는 걸 상대 후보 측에서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상숙의 약점으로 삼으려 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권력을 쥔 여성, 그 권력으로 개인에게나 사회에게나 모두 의미 있는 가치를 실현해내는 여성의 모습은, 보고 싶다. 꼭 주상숙이 아니더라도.

 

하지만 주상숙 대신 신지선이 당선되어 '유력 정치인'으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결말 부분에 보여준 것, 그리고 더이상 기성 정당에서 남의 목소리를 대신 말하는 꼭두각시 역할을 하지 않게 된 주상숙이 무소속으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후보 토론회에서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장면으로 영화를 마무리한 것 역시 나는 마음에 들었다. 예전과 같은 생활을 더이상 할 수 없고 하지 않음에도 여전히 '돈 달라'며 징징거리는 남편과 아들은, 주상숙에 비해 얼마나 대책없고 한심한가. '슬기로운 감방생활'을 써내고 그 책을 판 돈으로 '슬기학생'을 꾸준히 돕는 주상숙이 훨씬 멋지다.

 

개인적으로 또 재미있었던 장면은, 주상숙과 시어머니 간의 관계가 묘사되는 부분이었다. 거짓말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된 주상숙은 남편 앞에서 시어머니에 대한 속마음을 가감없이 얘기한다. 처음에 남편은 잘못 들었나 생각하고, 나중에는 충격을 받기도 한다. 주상숙은 입을 막으며 마음을 숨겨보려 하지만 그 마음이 숨겨지질 않는다. 반찬을 주러 왔던 시어머니 역시 큰 충격을 안고 (자신의) 집에 돌아간다.

 

보통의 영화였으면 주상숙이 남편에게 엄청 미안해하거나 이 일로 인해 주상숙과 남편이 갈등하게 될 거다. 근데 이 영화에서는 주상숙이 자신의 신나는 마음을 도저히 감추지 못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어머니가 돌아간 이후, 허탈해하는 남편 옆에 무표정하게 누워있다가, 곧 만면에 함박웃음을 띠며 '네 어머니가 앞으로 우리 집에 안 올 게 너무 좋다!!!!!!!!!!!'고 신나한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장면이 나는 왜이렇게 웃기던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시어머니 개인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챙겨주기 위해 반찬을 만들어 오는 게 아니라는 건 너무 자명한 일이지 않은가. 저정도 나이 먹은 아들이면 엄마 반찬 없어도 밥 잘 먹을 수 있으니 그만 챙기셔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수많은 아들어머니들…자기 집처럼 아무때나 들어오는 것 역시 안될 일이고요. 심지어 아들의 아내가 '나라 일' 하는 사람인데, 그 아내에게 아들 잘 챙기냐고 잔소리하시는 것도 곤란하기 짝이 없음. 이런 불만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대신, 주상숙의 환호하는 모습으로 한방에 날려버린 게 나는 너무 재미있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다고 시어머니가 엄청 상심하신 것도 아님. 나중에 또다시 반찬을 들고 오시기 때문. 진짜 아들어머니들이란 휴…알아서 사먹으라고 해요 제발ㅠㅠㅠㅠㅠ 하지만 곧 '내가 그날 죽었어야 하는데…' 하면서 반찬을 놓고 다시 가시는데, 그 장면도 너무 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 엄격하고 무서운 시어머니를 너무 잘 연기할 것 같은 김용림배우가 그 역할을 하는 것도 너무너무 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만 보면 엄청 슬퍼하는 것 같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결론적으로 나는 이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봤고! 나중에 삶이 팍팍한 날 다시 한 번 볼 생각까지도 있음. 라미란배우 더 흥하셨으면 좋겠고(아니 라미란배우의 원톱영화가 이거 하나라는 게 말이 되냔 말입니다!!!!!) 장유정감독님이 앞으로도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다채롭게 그려내주셨으면 좋겠다. 투자도 많이많이 받으셨으면 좋겠고ㅠㅠ

'거짓말 못하는 주상숙'을 보며 동병상련의 심정이 들기도 했음. 나도 마음에 없는 말을 못하는 인간이라ㅠㅠ 이런 걸 '사회성 없는 인간'이라고들 하지요.

영화 스틸을 검색하다가 영화 개봉 전후로 라미란배우가 김무열배우와 함께 찍으신 마리끌레르 화보 사진을 봤는데, 이것이 또 아름답고 멋져서 같이 포스팅해봄. 라미란배우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우신데 김무열배우 또래의 배우 혹은 더 어린 배우와 멜로영화라도 하나 찍으시면 참 좋겠다. 나이 차이가 얼마인데 무슨-_-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두 배우의 나이 차이는 일곱 살밖에 나지 않음. 나영언니가 열 살 차이나는 이종석배우와 드라마 찍은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음(아주 예뻤다고 생각함). 여튼 라미란배우님 앞으로도 꾸준히 변함없이 더더욱 흥하시길 다시 한 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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