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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드는 바람/보고

[영화] 밀레니엄 3부작 (Noomi Rapace 주연) - 리스베트는 진리야ㅠㅠ

잉여포텐이 폭발중인 1월초ㅋㅋㅋ 얼마전 직장선배님께 밀레니엄 얘기를 듣고 한번 봐볼까 하던 중 우연히 좋은 기회+_+로 밀레니엄 스웨덴판을 보게 되었다. 처음엔 스웨덴판 1편을 본 후 헐리우드판을 보고 둘을 비교해보는것도 재밌겠다 생각했으나 스웨덴판 1편을 보고 꽂혀서 헐리우드판은 집어치우고 3부작을 이틀간 독파. 역시 세상이 넓든 좁든 멋있는 여자들은 너무너무너무 많구나. DVD 나오면 일뜽으로 사서 끌어안고 잤으면 좋겠는데 한국엔 안 나올 것 같아ㅠㅠㅠㅠㅠㅠ

밀레니엄 3부작의 두 주인공, 미카엘Michael과 리스베트Lisbeth. 밀레니엄3 때의 스틸.


* 여기서부터는 폭풍스포 *  1편을 다 봤을 때만 해도 그냥 리스베트라는 천재여자해커(라는 말로는 리스베트를 설명하기가 너무너무너무너무 모자라구나)가 미카엘이라는 언론인을 만나 함께 사건을 해결해가는 얘기 정도겠구나 싶었다. 근데 2편 시작하면서부터 헉, 이게 아닌 거라. 1편이 리스베트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시킨다면 2, 3편은 리스베트의 존재에 대한 관객들의 의문을 해소시켜준달까. 그 해소 과정에서 리스베트를 평생동안 괴롭힌 '그자들'은 철저하게 깨부숴지고. 물론 리스베트도 상처를 받으며, 상처를 주고받는 과정의 상당 부분은 상호 폭력에 의해 진행되지만, 그래도 보는 순간엔 참 속시원했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1부, 용문신을 한 소녀2부,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3부,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

1편은 리스베트와 미카엘의 인연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미카엘이 대기업과의 소송에서 패소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리스베트는 빙예르 그룹 회장의 의뢰를 받아 미카엘에 대해 조사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판단한다. 이 판단을 신뢰한 빙예르 그룹 회장은 미카엘에게 수년 전 실종된 그의 조카 하리에트를 찾아달라고 의뢰한다. 미카엘의 컴퓨터를 해킹하고 있던 리스베트는 미카엘이 흐릿한 실마리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을 알게 되고, 메일로 힌트를 보냈다가 미카엘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 협조하게 된다.

강렬한 리스베트의 눈빛.

유능하기까지 한 리스베트님bbb 미카엘 블룸키스트님의 랩탑에 접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뭐 여기서부터는 보통 추리물과 유사한데ㅋㅋ 둘 간에 애정 비슷한 감정이 싹트고(육체적 관계도 물론 갖고) 이런저런 어려움 속에서도 사건을 훌륭하게 해결해 낸다. 그리고 리스베트는 미카엘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대기업에 대한 온갖 정보들을 미카엘에게 주어, 미카엘이 명예를 회복하도록 돕는다. 아래 영상은 이 1편의 미국 개봉 버전 트레일러ㅋ

 

이 사진은 좀, 극단적으로 미카엘과 리스베트가 대조된 느낌. 영화볼 때 이정도까진 아니었는데ㅎ


이렇게 끝난다면 해피엔딩. 그러니까 2편에선 또 리스베트가 미카엘을 만나 새로운 사건을 해결하겠군! 이 2편을 보기 전의 예상이었다. 그리고 또 멋지게 해결을 할 줄 알았지. 그러나 이야기는 이제 리스베트 외부가 아닌 내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1년 후를 배경으로, 리스베트가 자신도 모르는 이들에 의해 누명을 뒤집어쓰게 되는 내용이 주로 진행되지만 사실 그 누명은 단순한 개인적 원한이나 사건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리스베트의 삶/존재 전체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초반에는 
단순한 강간범처럼 보였던 뷰르만이 리스베트의 삶을 파괴하려는 세력과 연관을 가진 인물이었음이 드러나고, 중반부터는 '잘라'라는 인물을 리스베트가 찾아가는 과정이 계속된다. 그 과정에서 가장 공포를 자아내는 자는 괴물(말고 다른 말을 쓸 수가 없어ㅠㅠ) 같은 외형과 괴력으로 리스베트의 애인과 친구를 폭행하는 금발 남자. 그는 신체적 통증을 느낄 수 없다는 장애를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에게 잡힌 사람들의 격렬한 저항에도 정말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그의 장애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보기엔 참 끔찍했다;

잘라의 정체를 찾아가는 리스베트.

2편에서는 긴 머리로 나온다.


그리고 결국 밝혀지는 잘라와 금발 남자의 정체가 2편의 후반 내용. 
결국 1편에서 살짝 보여줬던 몇몇 장면들-누가 봐도 리스베트겠거니 하고 짐작할 법한(외모는 크게 닮지 않았지만 눈동자 가득 어린, 정체 모를 분노 때문에!) 어린 소녀가 차에 불을 지른다든지, 그 소녀가 병원에 감금된다든지, 또 리스베트가 엄마를 엄청 오랜만에 만난다든지-은 이 시리즈 전체를 이끌어가는 플롯의 일부였던 것을 깨닫게 해 준다.
 

2편 끝날 즈음의 리스베트는 정말ㄷㄷㄷㄷ 온몸이 피로 뒤덮이도록 총맞고 두드려맞고 생매장까지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베트는 땅을 파고 올라와(악!!!) 자신을 파멸시키려 했던 가부장을 도끼로 내려친다. 이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도록 때리고 미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까지 몽땅 파괴하려 한 '잘라'에 대한 정당 방위이자 복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동시에 자신의 삶을 지키고자 한, 뜨거운 싸움.

밀레니엄의 주인공, 리스베트 살란더.


3편은 총상을 입은 리스베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세상에 가족이라 할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극단적으로 고독하여 남은 것이라곤 자기 자신밖에 없는 것 같은 존재. 도대체 '그자들'은 왜그렇게도 리스베트를 괴롭히는지, 왜 리스베트를 끊임없이 궁지에 몰아넣고 결국은 죽이려 하는지, 꽁꽁 싸매져 있던 리스베트의 가족사가 드러나고 진실이 밝혀지면서 '그자들'은 소탕(!)된다.
 그리고 목숨이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던 피투성이 리스베트는 새카맣게 눈화장을 하고 코에 피어싱을 하는 일상으로 복귀한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리스베트가 죽음에서 삶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3편에서 리스베트만큼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미카엘의 동생인 애니카였다. 변호사로서 성실하고 현명하게 의뢰인의 삶을 지켜낸 애니카. 하지만 그녀는 단순히 '착한 우리편'이 아니라, 세상에 혼자 남은 것처럼 보였던 리스베트에게 (오빠 때문이긴 했지만) 기꺼이 손을 내어주고 공격적이고 퉁명스럽고 어떤 이들에겐 반사회적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리스베트의 말을 들어준 인물이었다. 경청의 가치를 보여주는 인물이었달까. 그러면서도 질척이는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가식적인 위로를 건네지 않았다. 아마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였다면 애니카가 리스베트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듯한 장면을 보여 주거나 아예 애니카의 역할을 블룸키스트의 보조 같은 역할로 만들어놓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다면 당연히 내게 애니카는 별 매력이 없었겠지ㅋㅋㅋㅋ

성실하고 현명한 애니카.


자신을 도운 애니카에게도 매우 쿨하게 대하는ㅋㅋㅋㅋㅋ 리스베트.

 

사실 볼 때는 리스베트에게 완전 감정이입해서 아무 생각도 못했고, 다 보고 나서도 한동안 눈앞에 리스베트가 아른아른해 별 생각 없었지만 며칠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리스베트의 폭력성-가끔은 비인간적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을-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리스베트는 사람에게 도끼질을 했고 못질을 했고 총질을 했으니 나쁜년'이라고 비난하기엔 그녀가 3부작 내내 보여준 삶에 대한 열정이 감동적일 정도로 강렬했다. 그래서 나는 리스베트를 비난하지 못하겠다.

물론 폭력과 비폭력이라는 방식이 두 가지 있다면 폭력보다는 비폭력을 선택해야 하는 게 맞겠지. 하지만 나는 폭력에 대한 여러 이슈들이 '그러니까 폭력은 나쁜 것이다. 따라서 폭력을 쓰면 나쁜 사람이다.'라는 방식으로 귀결될 때마다 폭력이라는 보편적/추상적인 것이 행위로써 형상화되는 현실 자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즉 거대한 권력을 쥔 다수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존하고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한 인간의 삶을 마구잡이로 파괴하기 위해 정의롭지 못한 방식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것과 그들에 의해 삶 자체가 몽땅 망가질 수도 있었던 인간이 그들에게 맞서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폭력을 활용할 수밖에 없을 때 그 둘은 구별되어야 하지 않는가 싶은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폭력의 대상이 폭력의 주체보다 약자인지 강자인지에 따라 그 폭력의 가치를 더욱 냉정하게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보다 약한 자를 억압하기 위한 폭력과 강한 자에 대한 저항 수단으로써의 폭력은 '같은' 폭력이지만 분명 '다른' 것이지 않나. '남을 때리면 나빠'라는 것 하나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서로 다른 폭력의 상황들을 같은 것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약자에 대한 억압과 강자에 대한 저항을 같은 등위의 것으로 가치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리스베트의 '폭력'은 분명 폭력이지만, 도끼질을 했고 못질을 했고 총질을 했으니 벌을 받아야겠지만, 그녀가 폭력을 가한 대상 중 그녀보다 약한 이는 없었다는 이유를 들어 그녀를 옹호하고 싶다. 매우매우 강력하게.

또한 그녀가 매력적이었던 건 그녀의 캐릭터가 이전까지 내가 대중 매체를 통해 본 여성 캐릭터들 중 가장 독립적이었으며 유일하리만큼 전형적이지 않았다는(오히려 전형을 때려부쉈다는!) 이유 때문이다. 1편에서 깡패 무리들이 시비를 걸어왔을 때 소리지르며 맞설 때부터 '오 이거 봐라?'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3편까지 다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더더욱 강해지더라. 퀴어이자 가부장에게 소속되고 억압되기를 거부한 '어머니의 딸'이며 성폭력 피해자임에도 뜨거운 싸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구해낸 생존자. 남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지만 그에 의존하지 않으며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들도 이용할 줄 아는 현명함. 규격화된 통념이나 타인의 편견에도 전혀 기죽지 않는, 지극히 자유로운 영혼!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냔 말이다. 특히 3편에서 그녀가 처음 재판장에 등장했을 때는 영화보다가 너무 감탄해서 막 소리질렀다ㅋㅋㅋㅋㅋ


1편만 나온 헐리우드판은 리스베트보다 블룸키스트를 중심으로 진행된다는데-이미 이 3부작을 보고 난 나는 아마도 헐리우드판을 견뎌내지 못할 것 같다ㅋㅋㅋㅋ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는 스웨덴판 밀레니엄 3부작의 DVD 발매를 기원하면서, 스티그 라르손의 원작을 주문해야겠다. 개정판이 구판보다 '표지'는 마음에 드는데 '제목'은 맘에 안 들어서 좀 짜증스럽긴 하지만. 설마 원작이 영화보다 실망스럽진 않겠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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