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한 잔의 붉은 거울
도망갈 곳이 한 곳도 없어, 나 역시. 한 잔의 붉은 거울 -김혜순 네 꿈을 꾸고 나면 오한이 난다 열이 오른다 창들은 불을 다 끄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밤거리 간판들만 불 켠 글씨들 반짝이지만 네 안엔 나 깃들일 곳 어디에도 없구나 아직도 여기는 너라는 이름의 거울 속인가 보다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다 고독이란 것이 알고 보니 거울이구나 비추다가 내쫓는 붉은 것이로구나 포도주로구나 몸 밖 멀리서 두통이 두근거리며 오고 여름밤에 오한이 난다 열이 오른다 이 길에선 따뜻한 내면의 냄새조차 나지 않는다 이 거울 속 추위를 다 견디려면 나 얼마나 더 뜨거워져야 할까 저기 저 비명의 끝에 매달린 번개 저 번개는 네 머릿속에 있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다 네 속에는 너밖에 없구나 아무도 없구나 늘 그랬듯이 너는 ..
2010.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