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희망
희망 지구가 돈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야. 누가 그런 걸 믿겠어. 누가 그걸 봤어? 지구가 둥글다는 건 더욱더 새빨간 거짓말이야. 코리아의 바다는 마라도 끝에서 떨어지고 나의 바다는 네 발치 앞에서 끊어질 뿐이야.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바쁘게 돈다는 것도 물론 거짓말이야. 다만 우리는 매일 밤 잠들었다가 매일 아침 깨어날 뿐이지. 잠들지 않는 사람은 없어. 우리가 잠들면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이곳에 깨어 있지. 우리가 외투를 벗고 잠들면 그곳 사람들이 옷을 벗고 물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여름을 펼치지. 왜 우리 뒤통수에 눈이 없는 줄 알아? 그건 그들의 낮을 볼 수 없게 하기 위해서야. 하지만 우린 전화를 걸 수는 있어. 우리의 밤에서 아르헨티나의 낮에게. 나의 겨울에서 나의 대칭점의 여름에게. 여보세요 ..
2006.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