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 장미와 가시
장미와 가시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라고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도 어찌 가시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해도 장미꽃이 피기만 한다면 어찌 가시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리요 눈먼 손으로 삶을 어루만지며 나는 가시투성이를 지나 장미꽃을 기다렸네 그의 몸에는 많은 가시가 돋아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한 송이의 장미꽃도 보지 못하였네 그러니, 그대, 이제 말해주오 삶은 가시장미인가 장미가시인가 아니면 장미의 가시인가, 또는 장미와 가시인가를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라는 기대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내 눈 앞에 장미꽃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그냥 나는 가시투성이가 된 채 죽을 수밖에 없더라도, 누..
2010.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