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음과모음(2)
-
[박세미] 현실의 앞뒤
자음과모음 2020년 여름호에 실린 박세미시인의 시. 박세미시인님의 시 참 좋다. 뭘 읽어도 좋다. 현실의 앞뒤 우리는 모두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한 걸음걸이를 가졌지 얼마나 각자가 위태로운지 나의 경우, 손을 최대한 부산스럽게 흔들어 발의 게으름을 위장하는 식이란다 친구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발에게 들려주는 애원 지금 나는 앞뒤를 생각하고 있어 오늘 아침 긴 다리를 가진 새가 성큼성큼 걸어와 내 옆에 섰어 새는 어느 것에도 눈길을 주지 않고 숲의 끝을 응시하기만 했지 그 눈빛에는 위태로움이 없어 나는 그만 발을 멈추고 말았어 흔들던 손도 내려놓았지 꽤 오랫동안 우리는 한곳을 바라보았어 나는 생각했지 사실 이 숲에 늪은 없었던 거야 하고 그 순간 새가 날개를 푸드덕거렸고 곧 날개를 완전히 펼치고 내 위로 솟..
2020.10.01 -
『파도가 바람의 일이라면(김연수, 자음과모음)』속 '점들'.
좋아하는 책이나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고 감상을 적는 건 어렵지 않다. 책을 혹은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무언가를 쓴다는 '노동'을 즐겁게 할 마음 자체가 들지 않으니까. 이야기를 읽고, 그것이 허구임을 알면서도 이야기 속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생각을 정리해 보는 작업을 자진해서 하고 싶게 하는 책. 그런 책과의 만남은 참 기쁜 경험이다. 하지만 매우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고 감상을 적는 건 어렵다. 주인공이 어떤지, 배경은 어떤지, 내용은 어떤지, 하나도 알아보지 않고 오직 작가 이름만으로 선택하는 책을 읽기 전에는 불안함과 싸우게 된다. 이 책이 내 기대보다 못하면 어떡하지? 그 작가가 맨날 또는 자주하는 그 얘기를 반복하는 데 불과한 책이면 어떡하지? ..
2012.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