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 우리는 매일매일
2010. 1. 19. 17:42ㆍ흔드는 바람/베끼고
우리는 매일매일
흰 셔츠 윗주머니에
버찌를 가득 넣고
우리는 매일 넘어졌지
높이 던진 푸른 토마토
오후 다섯 시의 공중에서 붉게 익어
흘러내린다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열쇠 잃은 흑단상자 속 어둠을 흔든다
우리의 사계절
시큼하게 잘린 네 조각 오렌지
터지는 향기의 파이프 길게 빨며 우리는 매일매일
흰 셔츠와 붉은 버찌, 푸른 토마토의 붉음, 흑단 상자와 시큼한 오렌지…아찔하도록 강렬한 이미지들. 푸른 토마토로 하루를 시작한 아침의 나는 매일 오후 다섯시 쯤이면 붉게 흘러내리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매일 실패한다. 매일 넘어진다. 눈처럼 하얀 셔츠를 늘 더럽힌다.
하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이 처연하면서도 선명한 기록이, 서글프고 아름답다. 우리는 매일매일, 아마 내일도 매일매일.
+ 시집 맨 앞에 수록되어 있는, 진은영님의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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