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가붕가레코드]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2009, 푸른숲)
2010. 6. 23. 19:23ㆍ흔드는 바람/읽고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붕가붕가레코드 지음/푸른숲 |
처음 이 책의 광고를 봤을 땐 이렇게 생각했다 : 얘네는 인제 책까지 내?
나중에 이 책을 다시 보곤 이렇게 중얼거렸다 : 책을 너무 빨리 냈어.
이 책의 제목을 본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 장기하가 쓴 책이야?
또다른 지인은 이렇게 투덜댔다 : 책 제목 하고는 참......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던 이 에피소드들이, 이 책을 읽기 전 사람들이 가장 쉽게 가질 법한 '붕가붕가레코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첫째, 일천한 공연과 음악 활동에도 불구하고 지능적으로 자신들을 알린 탓에 인디 음악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인제는 '우리 이렇게 성공했어요' 류의 에세이까지 출판하기에 이른 성공자들. 둘째, <장기하와 얼굴들> 이외에 딱히 내세울만한 대중적 뮤지션을 키워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일찍 책까지 펴내어 자신들의 성공을 널리 알리고자 했던 '일군의 자뻑 심한 무리'. 셋째, 장기하네 회사, 장기하의 회사, 장기하로 돈 번 회사. 넷째, 뭐하는 애들이고 뭔 생각을 하는 애들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붕가붕가'와 '딴따라'라는 이름의 느낌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는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지멋대로인 애들.
처음 '붕가붕가레코드'라는 회사 이름을 들었을 때의 나는 네 번째였다. 그러다가 <브로콜리 너마저>를 알게 되었고, 이렇게 이상한 이름을 가진 회사에서(이름만 보고는 취향이 묘한 남자들 집단일 거라고 예상했다) 이렇게 괜찮은 노래가 나온다는 사실에 놀라 급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나중에 <눈뜨고 코베인>에서 드럼을 치던 장기하가 (살을 쫙 뺀 모습으로) 새 앨범을 낸다는 소문을 듣고 재미있는 앨범이 되기를 바랐다. '싸구려 커피'는 재미있었고 개인적으론 '정말 없었는지'와 '달이 차오른다, 가자'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망의 '2007년 쌈싸페'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을 처음 만났다. 솔직히 그때는 정말 충격적으로 재미있었다. 그 해의 다른 숨은고수들도 괜찮았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처럼 공연장을 '자기 판'으로 만든 뮤지션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날 출연한 그 누구와 비교해도 그들은 '재미있었다, 분명히'.
근데 그 이후엔 그냥 그랬다. 장기하는 내 생각보다 너무 유명해졌고, 나는 예의 '너무 유명해진 뮤지션에게 취하는 경계와 의심'을 지우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의 '나 서울대생임'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물론 서울대생인게 죄냐, 서울대생이어서 서울대생이라고 한 걸 어쩌란 말이냐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_-) <브로콜리 너마저>는 더이상 붕가붕가 소속이 아니라 했고, <술탄오브더디스코>나 <치즈스테레오>의 음악은 (죄송합니다만) 나를 반하게 하지 못했다. 술탄의 '여동생이 생겼어요'나 치즈스테레오의 '오 예'를 종종 듣긴 했는데, '음 재밌네' 정도였지 '와 재밌다!' 정도는 아니었다. <생각의 여름>은 다들 너무 좋다고 해서 좀 꺼려졌고(이상한 습성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아침>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태일 때 그들의 책이 나왔으니, 처음엔 좋다구나 하면서 낼름 읽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엔 '<장기하와 얼굴들>이 붕가붕가의 전부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중이고, 장기하는 너무 유명해져서 자기 스스로 좀 짜증나지 않을까? 하는 데까지 장기하에 대한 생각이 발전(?)했다. 게다가 <생각의 여름>도 괜찮고 <술탄오브더디스코>도 더 괜찮아졌고 무엇보다 <불나방스타소세지클럽>이 나를 너무 즐겁게 해준데다가 <아마도이자람밴드>의 앨범을 기다리게 되었으니, 붕가붕가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머리가 활활 불타오르던 때도 다 지나간 것이다. 그래서 한층 편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서론이 엄청 길었다는 느낌인데-_- 어쨌든간 다행히도 이 책은 재미있었다. '싸구려 커피'를 맨 처음 들었을 때 받았던 느낌 같았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갖고 있었던 '붕가붕가레코드 이래서 맘에 안들어...하나 둘 셋 넷 다섯' 정도의 항목들을 무력화시키기에 큰 부족함이 없는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항상 붕가붕가 홈페이지의 프로필 란에 '여러분의 현금이 저희에겐 힘이 됩니다'라는 멘트를 띄워 '자본주의적 욕망을 감추지 않는 야심가로군...'하고 정체를 짐작케 하던 곰사장이 사실은 노력과 근성 양자가 모두 부족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깜짝 놀랐다. 애초에 적자를 볼 것 같은 일은 아예 벌이지를 않았었던 붕가붕가레코드가 어쩌다가 대범하고 대담한 인디음악의 선봉자로 오해받게 된 걸까.
그 답은 '노는 걱정을 하느라 그 걱정을 미처 못했다'는 곰사장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노는 데 한껏 걱정들을 하느라 어디에 취직해서 어떻게 벌어먹고 사느냐 하는 장대하고 심오한 걱정을 할 틈이 없었다. 자꾸만 일을 벌이다 보면 이전에 생긴 걱정은 다른 것으로 바뀌고, 이렇게 끝없이 바뀌는 걱정을 상대하고 있으면 먼 일은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앞일을 걱정할 때를 놓쳐버렸다.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 소심한 탓이었다.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무조건 낫다."
이것이 붕가붕가레코드를 지속하게 했던 명제다.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계속 앞뒤를 재고 있었다면 시작하지 못헀을 것이다. 할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어 멍 때리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기어나올 수 있었던 까닭은 어느 순간 하고 싶은 게 다시 생겼을 때 그걸 붙들고 해보는 게 안 하는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먼 미래의 생계 문제를 제외하고는 잃을 게 아무것도 없었던 붕가붕가레코드였다. 그리고 소심했던 탓에 먼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소심했으되, 적극적으로 소심했던 것이다.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무조건 낫다."
이것이 붕가붕가레코드를 지속하게 했던 명제다.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계속 앞뒤를 재고 있었다면 시작하지 못헀을 것이다. 할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어 멍 때리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기어나올 수 있었던 까닭은 어느 순간 하고 싶은 게 다시 생겼을 때 그걸 붙들고 해보는 게 안 하는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먼 미래의 생계 문제를 제외하고는 잃을 게 아무것도 없었던 붕가붕가레코드였다. 그리고 소심했던 탓에 먼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소심했으되, 적극적으로 소심했던 것이다.
그 '적극적'인 소심함과 의지박약 덕분에, 붕가붕가레코드는 개성넘치는 그들의 음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캬아, 이거야말로 전화위복 아닌가. 위에 인용한 두 구절로 말미암아, 내가 가지고 있었던 붕가붕가레코드에 대한 선입견은 90% 이상 사라져 버렸다!
더불어 붕가붕가레코드가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나름의 비판들-서울대 출신 엘리트 집단이다, 실제보다 '있어 보이는 척' 하는 음악을 한다, 뜨고나니 장기하 버릇없어졌다 등등등-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며, 어쩔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선 예의 소심한 태도로 묵묵부답할지라도 개선의 여지가 있는 데 대해선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읽은 후 얻은 보람(?)의 하나이다. 쌈싸페 숨은고수에 지원한 사람들의 음악을 하나하나 다 듣는 고행을 지속하고 있는 줄 정말 몰랐다. 장기하를 섭외하겠다는 '치킨 광고'까지 들어왔다니, 언론과 자본에 얼마나 시달렸을지 안 봐도 뻔해 없던 연민까지 느껴졌다. 쯧쯧.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즐겁다는 것이다. 소심해서이건, 생각이 없어서이건, 노는 걸 너무 좋아해서이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함으로써 즐거움을 느끼고 살아갈 힘을 얻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책 속에 펼쳐져 있다. 도저히 이걸 가지고 밥 벌어 먹고 살만한 자신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게 너무 하고 싶으니까, 이걸 하는 게 너무 좋으니까, 그 마음 접지 못해 이걸 통해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는 게 얼마만인가. 심지어 이놈의 세상은 어떡하면 더 돈을 벌고, 어떡하면 더 멋진 스펙을 쌓고, 어떡하면 더 빨리 자기 연봉을 올리느냐가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처럼 이야기되는 곳인데 말이다. '재미있게 살자'는 것이 삶의 목표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꽤 긴 시간 동안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재미를 도외시해 온 터라 그런지, 그들의 사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는 내 가슴은 어느샌가 부러움으로 가득 차 버렸다.
군데군데에서 튀어나오는 곰사장(& 깜악귀)의 자학성 개그를 비롯, '극소심한 이들'이 잘 구사할 것 같지 않은 명랑하고 재치넘치는 문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을 주었다. 이 책을 통해서만 특별히 만날 수 있는 붕가붕가레코드 특집 컴필레이션에 수록된 음악들을 감상하며 듣는다면 더더욱미가 넘칠 책. 자알 읽었다. 고맙다. 건승하길 바란다. 더불어 술탄오브더디스코의 무한한 발전을 기원한다ㅎㅎ
http://blueingreen.tistory.com2010-06-21T10:23:310.3
'흔드는 바람 > 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몬스터 주요 사건 정리! (1) | 2010.08.02 |
---|---|
[커트 보네거트]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2010, 문학동네) (0) | 2010.07.28 |
[김종철, 정혜신, 김수행, 조한혜정, 박원순, 서중석 외] 거꾸로, 희망이다 (2009, 시사IN북) (0) | 2010.07.16 |
[오가와 이토] 달팽이 식당 (2010, 북폴리오) (0) | 2010.06.18 |
2010년 1-3월, 읽은 책들. (0) | 2010.05.03 |
[박 상] 이원식 씨의 타격폼 (2009, 이룸) (0) | 2010.02.16 |
[위화] 무더운 여름 (2009, 문학동네) (0) | 2010.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