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정혜신, 김수행, 조한혜정, 박원순, 서중석 외] 거꾸로, 희망이다 (2009, 시사IN북)

2010. 7. 16. 23:38흔드는 바람/읽고

거꾸로, 희망이다
김수행 외 지음/시사IN북
 
<거꾸로, 희망이다>는 2009년 시사IN에서 개최한 신년강좌 <혼돈의 시대, 위기 속에서 길을 묻다>를 활자화해 묶어낸 결과물이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출판한다는 편집인의 말처럼, 이 책은 현실이 '전혀 희망적이지 않다'는 진단으로부터 시작한다. 생태적 상상력이나 문화적 상상력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현재의 한국에서 위기의 심리를 극복하고 대안경제를 지향하며 자본의 미래를 전망하려 한다. 그럼으로써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역사의 위기를 헤쳐나가려고 하는 것이 이 책의 지향이 아닌가 싶다.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되기 전 '그 강연자'에 맞춰 특별히 지명되거나 짝맞춰진듯 한 사회자(이면서 본인 역시 또 한 명의 강연자 역할을 한다)가 강연자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데, 보통의 강연집에서는 잘 보지 못한 형식이라 신선하게 느껴졌다. <녹색평론>의 김종철-시인 이문재, 정신과 의사 정혜신-딴지일보의 김어준, 서울대 경제학과의 (현재로선) '마지막' 비주류경제학 교수 김수행-진보신당 칼라TV 대표 정태인, 문화인류학 교수 조한혜정-생태경제학자 우석훈,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원순-시민운동가 하승창, 역사학자 서중석-생활정치연구소 이사 정해구라는 조합은 흥미로운 편이었다. 여성 인터뷰어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좀 아쉽기는 하다.

강연이 끝나고 일 년 반이 지난 지금 읽은 책이긴 했지만 특별히 시의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혼돈의 시대라는 거겠지 싶어 약간 씁쓸하기도 했지만; 이 책에 실린 여섯 가지 문제 의식들이 생겨난 이유가 오직 'MB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동체에 대한 협력과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본의 지배 하에 개인의 이기적인 욕구를 최대한으로 추구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현재의 '문화' 때문에 심화되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어느 새 한국 사회에서 너무나 보편화되어 문제라고도 생각되지 않는, 그런 문제들인지도 모르고.

이 정부에 대한 실망 혹은 절망은 이제 말하기도 귀찮은 일상이 되어 버렸고-_-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휩쓸려 자본의 노예가 된 '국가'의 현실은 항상 나를 무릎꿇게 하는 것 중 하나이므로 특별히 새로울 것 없었다 하더라도, 몇몇 강연자들의 생태적 사고는 꽤 기억에 남는다. 내가 생각해 왔던 귀농이 얼마나 추상적이고 특이한(!) 것이었는지 새삼 느꼈다. 또한 '농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폐교나 '베트남 신부' 따위를 (짜증나게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내 모습에 나 스스로가 짜증을 내면서-_-; 한 번도 농촌에서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음을 깨닫고 내 사고의 경직성을 반성해 보았다. 도시를 떠난 삶을 상상조차 없을 만큼 도시에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나는, 이제까지 귀농이라는 것을 '큰 마음 먹은 사람들이 아주 오래 열심히 준비한 끝에 결심하고 이루는 엄청난 일'이나 '은퇴한 후 자연친화적으로 자신의 삶을 새롭게 살아나가는 것' 정도로만 여겨 왔었던 것 같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로 귀농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삶의 현실적이고 선택가능한 대안으로서 '농촌'에 대해 사고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낯설면서도 매우 신선했다. 물론 김종철이 제시한 농촌 공동체와 박원순이 제시한 블루오션으로서의 농촌은 서로 다른 지향이겠지만, 말이다.

물론 내가 지금 당장 농촌으로 돌아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농촌에서 누릴 수 있는 '공동체 내에서의 관계를 통한 삶'을 지금의 내 삶 속에서 어떻게 구체화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지금 가진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거기에 '좋은 것을 몇 가지 더해보자'라는 식으로 안이하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나 역시 자본주의의 삶 속에 매몰되어 전복적인 상상력을 거의다 잃어버린 건 아닐까. 이런저런 고민이 들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김종철의 말처럼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으로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각자의 자존심을 지켜나가면서 우리의 생활방식을 근원적으로 전환시켜서 이 근대적인 시스템에서 해방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것. 여성적 윤리를 발휘하여 누구든 소외시키지 않고 다 함께 공생공락하자는 것. 조혜정의 말처럼 푸코가 말하는 '소수를 살게 하고 다수를 죽게 내버려두는 체제'에서 탈출해 '우정과 환대의 공간'을 확장시켜가는 세계에서 내 자신을 살게 하기 위해서는, 박원순의 말처럼 끊임없이 우리 삶의 어떤 양식이나 목표, 비전들을 재검토하면서 김수행의 말처럼 계속 투쟁해야겠다는 것. 

여성주의와 생태주의의 결합 혹은 만남에 대해서 공부해봐야겠다. 사는 게 아무리 갑갑하고 짜증나도, 갇혀 있지 말고, 생각을 하면서,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살아야겠다는 결심도 해 본다. 급하게 마구 달려가지 말고, 주위를 찬찬히 돌아보면서, 숨을 골라 가면서. 그러면, 거꾸로 서 있는 희망이 보이겠지. 그렇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