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카프라노스] 맛에 빠진 록스타 (2010, 마음산책)
2010. 11. 13. 23:57ㆍ흔드는 바람/읽고
바쁘고 피곤하다 보니 책도 잘 못 읽어, 참으로 오랜만에 도서관엘 갔다. 거기서 나온지 네 달 정도 됐는데도 뻔뻔하게(!) 신간 코너에 꽂혀 있던 이 책을 발견했다. <맛에 빠진 록스타>라는 제목보다 먼저 들어온 건 '알렉스 카프라노스'라는 지은이의 이름. 설마, 이 알렉스가, 내가 아는, 그 알렉스? 프란츠 퍼디난드의 그 알렉스 카프라노스? 아니, 알렉스의 책이란 말이야? 세상에, 알렉스의 책이 나왔는데 몰랐단 말이야? 아이고 세상에나 오호 통재라. 시간이 아무리 없어도 이건 읽어야겠다!
...하고 짬짬이 읽기를 3일째, 오늘 드디어 마지막 장을 덮었다. 으하하.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알렉스가 2집 작업을 마치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던 와중에 <가디언>을 통해 연재했던 칼럼을 엮은 것이라 한다. (2005년 9월부터 연재되었다고 하여 책을 다 읽은 후 바로 검색을 시작, 원문을 열심히 긁어놓았다. 오랜만에 영어공부좀 하겠군!) 2006년에 출판되었다고 하니 벌써 나온지 4년이 다 되었네그려. 그래서 '프란츠 퍼디난드의 거침없는 세계음식기행'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솔직히 책의 제목과 부제는 참...좀...'이래야만 했을까' 싶은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너무 진부한 느낌을 주잖아? 그래서 책을 펴기 전 3초쯤 읽고 나서 허탈해지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다. 세계음식기행이라니, 마치 M모 방송국의 '요리보고 세계보고' 같은 느낌이 확 들지 않는가. '안녕하세요 오늘은 영국의 피쉬 앤 칩스를 먹어보도록 하겠어요 호호호 어머나 역시 맛있네요 호호호 그럼 다음 나라 프랑스로!' 따위의 틀에 박힌 말과 과연 이게 모형인가 실제인가 싶도록 때깔좋은 음식 사진들이 머릿속에 스멀스멀 떠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책은 그만큼 진부하지 않았다. 음식은 모험이라고 프롤로그에서 알렉스가 얘기한 것처럼, 이 책은 알렉스의 '맛기행'보다는 '모험'에 가깝다. '오늘의 스페셜 요리 : 나를 믿으시오'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는 스시 레스토랑, '성게는 심한 감기에 걸렸을 때 나오는 누런 콧물처럼 생겼다'는 묘사-성게를 먹고 싶다는 마음이 싹 사라지게 만드는!, 개구리 뒷다리는 친숙했고 바싹 튀긴 벌레는 파삭거리는 맛이 나 감자칩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소감, 생선의 뇌로 만들었다는 핀란드의 빵 이야기 등등.
사실 나는 어떤 식당에 가더라도 모험보다는 안전을 선호하는 편이다. 선택 자체를 동행한 지인에게 맡길 때도 많고. '어차피 배 채우려고 먹는 거, 괜히 잘못 골랐다가 돈 버리느니 그냥 아는 걸 먹겠다'는 게 기본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떤 음식 앞에서도 아무래도 좋다. 난 이제 미식 모험가니까. 라며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음식에 대한 나의 사고가 너무 편협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음식은 기쁨을 주고, 어떤 음식은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고통을 안기는 음식도 있다. 나는 음식이 그저 배고픔을 가시게 해주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음식은 그 이상의 것이다. 음식은 모험이다. 그러고 보면 '잘못 고른' 음식도 '잘못 고른' 음식 나름대로의 맛을 가진 것이고, '잘못된 선택'이라 내가 믿었던 것들도 어찌 보면 맛에 대한 새로운 경험인 건데, 난 너무 소극적이었던 것 아닐까. 이런 건 재미없는데.
또 이건 참 뻔한 감상이지만-_-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알렉스의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것 역시 즐거웠다. 난 좋아하는 뮤지션이 생겨도 그의 음악만 열심히 들을 뿐 '그'라는 인간에게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애인이 누구든 부모가 어떻든 그냥 남의 얘기일 뿐이고 그저 음악만 신나게 듣는다; 그런 탓에 프란츠 퍼디난드의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프란츠 퍼디난드의 멤버들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선 별로 아는 게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기분이 든다. 기대했던 것보다 글이 훨씬 유쾌하고 발랄하면서도 신랄하고 날카롭고 지적이어서 더 좋았다. 설마 번역 때문에 '지적인 느낌이 추가된 것'은 아니겠지?ㅋㅋ
더불어 앤드류가 그렸다는 표지와 책 속의 그림, 뒷표지에 쓰여 있는 김중혁 씨의 추천사(라기보다는 짧은 독후감?) 역시 마음에 든다. 특히 모르는 음식 이름이 더 많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식당들이지만 책 속에서 맛 좋은 냄새가 난다라는 구절에 크게 공감한다. 알렉스 카프라노스를 만나면 프란츠 퍼디난드의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 Take Me Out! 나도 데려가줘!라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용감한(프란츠 퍼디난드의 보컬에게 프란츠 퍼디난드의 노래를 불러주겠다니!!!!!!!) 구절 역시 유쾌하다. 마치 프란츠 퍼디난드의 음악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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