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ZM의 이승열 [V] 앨범 리뷰 + 덧붙이는 문장들.

2013. 6. 5. 14:04💙/너의 이름


< V >의 관건은 대중과의 합일을 얼마나 이끌어낼까 라는 것이다. 동시대의 그 어느 음반들보다도 (덧붙이자면 아티스트의 그 어느 전작들보다도) 작품으로의 접근성이 현저히 낮다. 주류 시장의 영역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되고 철저히 유리될 앨범이다. 일찍부터 봐오지 않았던가. 혼란스럽게 하거나 무감각하게 만드는, 실험성 가득한 음악이 얼마나 많이 중심권에서 배제되어왔는지를. 당장부터 제 가치를 인정받았던 경우가 오히려 특이 사례에 가까웠다.

음반 자체로만 보면 < V >는 다시 보기 힘든 작품이다. 우리나라 대중 음악사에 있어서도 지표로 자리할 만하며 이승열의 디스코그래피에서도 매그넘 오퍼스의 지위를 다툴 공산이 충분히 높다. 무엇보다도 각양의 접근법과 다각화된 관점을 배태시켰다는 점에 있어 앨범의 가치는 수직 상승한다. 소리를 왜곡시키고, 전개를 붕괴시키고, 이형의 사운드를 대입시키는 일련의 과업을 적재적소에서 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수준 이상의 역량과, 보통의 위치보다 더 앞선 지점을 내다보는 감각이 없다면 분명 나오기 힘든 결과물이다.

매력적인 선율이나 캐치한 훅 라인이 없이도 찬사를 차지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앨범은 그야말로 아티스트가 가진 예술성의 결정체다. 6, 7분에 달하는 러닝 타임으로 곡을 끊은 과감함도 여기에서 비롯되었고 오묘한 소리를 내는 베트남의 전통 현악기 단보우를 배치한 실험성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더불어 알베르 까뮈(Albert Camus)의 소설 <이방인>의 대목을 읊는 'Minotaur'의 가사는 어떻고 분위기의 격변을 드러내는 'Fear'에서의 전개 방식은, 아랍 풍의 느낌을 구사하는 'We are dying'의 사운드는 또 어떠한가. 즉흥이라는 무기와 전위라는 수식으로 무장한 음악의 향연 그 자체다.

전반적으로 자유도가 높아진 형상이다. 명확한 자기 영역을 가졌음에도 일정한 형식미에 매어있던 이전의 작품들과 달리 이번 앨범은 굴레로부터 완연히 탈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편성의 최전방에 자리해야한다는 보컬의 통상적인 틀을 깨기 위해 사운드 속에 목소리를 파묻어버린 방법론도 물론이거니와 더 나은 공간감을 구축하기 위해 공연장 벨로수와 소속사 플럭서스 스튜디오 두 곳에서 원 테이크 방식으로 녹음했던 시도도 마찬가지다. 표현에 있어 이승열은 '일정'이라는 존재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음악의 확장을 막는 그 어떠한 벽도, 경계도 모호함이라는 이름 아래 이미 제 기능을 잃어버렸다.

곡마다 빛을 발하는 음악성과 음반 전반의 높은 완성도가 완벽에 가까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대중과의 거리도 넓혔다는 점이 명백한 앨범의 난제로 자리한다. < V >는 쉽게 들을 수 없는 음반이다. 얼마의 만족을 획득할 수는 있어도 전체의 공감은 이끌어 내기 어렵다. 소구력을 이끌어낸다면 전작 <Why We Fail>의 '솔직히'를 새로이 부른 'Secretly'나 그 다음 트랙인 'Bluey (Feat. 장필순)' 정도에서 가능성이 한정되며 나머지 트랙은 합을 맞추는 데 있어 어느 정도의 시간을 요할 것으로 보인다. 위험도가 분명 내포되어있다.

굳이 비교를 했을 때, 상호작용의 성격을 가진 콘텐츠로서의 기능은 세 번째 앨범 <Why We Fail>에 더 잘 녹아있다. 앞선 1, 2집보다도 음악의 영역을 대폭 확장시켰을 뿐더러 동시에 대중과의 합일점도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이다. 직전에 언급한 두 곡이 전작과 비슷한 색채로 놓여있다는 사실은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물론, 그런 스타일의 음악을 요구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열을 가리겠다는 의도도 더더욱 아니다. 다만 이 지점에서 대중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팝 아티스트의 역할론을 어느 정도 고려해보자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이승열이 보여준 실험은 어떤 아티스트들보다도 훌륭하다. 그리고 이러한 신선함에 우리는 오래 전부터 목말라 있었다. 여지를 남긴 완벽한 작품이자 여백을 남긴 만전의 작품이다. 모순의 대작이기에 < V >는 더욱 찬란하다.


2013/05 이수호 (howard19@naver.com)




* 다 읽고 나서, 내가 덧붙이는 문장 몇 개.
 
1. 대중과의 합일은 애초부터 이 음반의 목적이 아니므로 고려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물론 오라버니가 너무 외면받으신다면 마음이 아프기야 하겠지만, 어차피 외면할 사람들은 외면하고 이해할 사람들은 이해할 거라고 생각함. 그리고 오라버니 역시 오라버니의 이 작업을 '다수의 대중들'이 좋아할 거다 혹은 좋아했으면 좋겠다 따위의 생각 같은 거 안 하실 거라고 예상함. 
 
2. 각 곡의 길이가 매우 길다는 건 이 앨범을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는 하나의 근거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요즘 나는, 그것이 이 앨범을 '트랙별로' 듣지 않고 '앨범으로' 들어야 하는 이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함. 각각의 트랙이 가진 매력도 크지만, 그 트랙들을 하나의 앨범으로 이어서 듣고 있을 때의 충만함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각각의 곡을 떼어서 듣는다면 앨범 전체를 이어 들을 때 느껴지는 전율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추측함.

3.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2의 이유 때문에 Secretly를 들었을 때의 감동도 더 커진다고 생각함.

4. WHY WE FAIL과 V 중 무엇이 더 훌륭한 앨범인가, 같은 얘기야말로 쓸모없음.

5. 이 앨범에 대해 '이러한 신선함에 우리는 오래 전부터 목말라 있었다'는 문장에서 호명된 '우리'란, '음악/가요를 즐겨 듣는 일반 대중'이나 '기존의 이승열과 이승열의 음악을 좋아해온 팬들'이 아니라 '평론가/평가자들'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오히려 평론가/평가자들이 이 앨범에서 뮤지션이 의도한 것 이상의 어떠한 의미를 굳이 찾아내려고 쓸데없이 애쓰는 사람들일 수 있겠다는 걱정도 한편 듦. 개인적으로는 3집처럼 일부의 평론가/평가자들에게는 오해를, 일부의 '음악/가요를 즐겨 듣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격찬을 받을 수 있는 앨범일거라고 생각함. 그런데 내가 잘 모르겠다, 고 판단하게 되는 지점은, 이 앨범을 '평론가들이 그동안 기다려온 신선함'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하는 점. 그런 말은 평론가/평가자들의 이른바 '부심'을 채워주는 기능 말고 다른 무엇도 할 수 없을 것 같음.
 
6. 어쨌든 이 글 마지막의 '모순의 대작이기에 더욱 찬란하다'라는 문장은 꽤 마음에 든다.

7. 오라버니에 대해 쓰는 건 참 어렵다. 오라버니라는 사람(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 사소하지만), 오라버니의 음악, 오라버니의 공연, 오라버니가 부른 노래…그 무엇에 대해 쓰더라도 말이 길어지고 길어지고 길어진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할 말은 많고, 자제는 잘 안돼. 흐허허허허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