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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

[100beat] 이승열, 규정하기 힘든 이끌림

이승열롹커님의 백비트 인터뷰.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제까지의 승열오라버니 인터뷰들 중 가장 사진이 마음에 드는 인터뷰란 점에서 길이길이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ㅋㅋㅋㅋㅋㅋㅋㅋ 원문은 여기!

 

이승열, 규정하기 힘든 이끌림

by  on  • 10:30 am


조금 거리를 두고 그를 몇 번 만나긴 했지만, 깊은 대화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달변가였다. 굳이 구분하자면 말을 능수능란하게 가지고 논다기보다는, 뚜렷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쪽에 가까웠다.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쪽에 가까웠다.

 

(이번 앨범을) 이미 익히 그리고 수 차례 듣고 있겠지만, 이번 음반은 청자에 대한 배반이라기보다는, 그간의 이야기와는 ‘기묘하게 다른 이야기’라 해두는 것이 좋을 그런 음반이다. 나는 대략 다섯 번 정도를 듣고 질문지를 만들고, 그를 만나러 갔다. 하지만 인터뷰 정리를 다 마친 지금도 이 음반을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를 그런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그건, 대다수의 ‘멋진 앨범’들에 대해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모종의 감정, “규정하기 힘든 이끌림”이라 억지로 이름붙일 수 있을 것이다.

 

반갑다. 시작해보자. 이번 앨범은 음악가에게 일종의 분기점이라는 4집이고,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은 전작의 어덜트 컨템포러리를 완전히 배신한 결과물로 나타났다. 스스로도 작정하고 만들었는가?

음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조금 변했다. 앨범을 애초에 이런 식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구상한 건 아니었고, 취미가 다양하지 못하고 음악하는 일이 거의 전부이다 보니 좀 더 편해지고 좀 더 이기적인 마음이 발동한 것 같다. 일전에 한대수 선생님과 작업했을 때, “그분에 대한 느낌이 어떠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짐이 없으신 것 같다”는 말만 되풀이했었다. 사실 그 외엔 (선생님을) 잘 알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짧은 기간 동안 그분에 대한 느낌은 겨우 그 정도였는데, 그 말을 하면서도 “거침이 없다는 게 과연 나에게도 적용되는 것일지”에 대해선 계속 생각해봤다. 나는 파격적인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누구를 놀라게 해서 희열을 느끼는 장난을 즐기지도 않는다. 앨범을 준비하면서 “음악을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보여준 건가?”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는 했다. 혹자는 내가 “금욕주의자가 아니냐?”고 하더라. 그런 말을 듣고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그 생각을 조금이나마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음… 결론을 말하자면 그런 상념 저런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 풀어지면서 “더 이상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고민은 더 이상 ‘고민을 위한 고민’으로 남게 되지는 않았다.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준비한 결과물이라기엔 너무나 많고 방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언제부터 작업을 시작한 건가?

전작이 2011년 여름에 나왔다. 그 전에 이미 완성된 채로 라이브로는 계속 연주를 했던 곡들이었다. 전작 발매 기념으로 한 달 공연을 하고 같은 해 나머지 부분을 슬슬 웜업warm-up하기 시작했다. 2012년 초부터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2011년 말부터 2012년 초에 자연스럽게 전 앨범의 홍보도 끝난 상황이었고. 1년 정도 걸렸다. 2012년 초반부에 윤곽이 나왔고, 후반부에는 연주를 많이 했다. 꽤 빨리 나온 셈이다. 곡이 나오지 않는다거나, 막혀서 지연되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스튜디오 라이브 음반의 효과를 내려고 노력했다고 알고 있다. 맞나?

라이브 앨범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고려를 했다. 먼저 구상했던 바를 말하자면,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개별적으로 하는 작업을 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3집 작업할 때도 풀 밴드로 일반적인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동시적으로 연주를 하기는 했다. 그런데 역시 스튜디오는 울림 자체를 가려서 쓴다. 그런 울림들을 잃고 싶지가 않았다. 그게 (인터뷰어가 질문한) 라이브적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라이브 앨범을 처음으로 구상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런 효과들이 생각했던 만큼 잘 나왔다고 느끼나.

우선 “예스”다. 일단 시도를 해서 이러저러한 데이터가 나온 거니까, 나중에 다시 해 볼 수도 있는 여지도 있다.

 

벨로주에서의 녹음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벨로주의 메인 엔지니어인 민상용 씨와 미팅을 두세 번 정도 했다.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알려드리고 나서, “밴드가 고정적으로 하는 리허설 장소가 이 회사(플럭서스) 지하에 있고, 그 셋업이 이런 식인데 아마도 그것의 장점을 벨로주에 적용하면 어떻겠냐”는 말부터 해서 스케줄링에 대한 것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 과정에서 내가 구상 중이었던 데모를 들려 드렸다. 녹음을 할 사람과 녹음 당할 사람이 미팅을 서너 시간씩 한 셈이다. 그 작업을 하고 테스트 녹음을 하루 진행했다. 마이크 포지셔닝부터 여러 가지 디테일한 작업을 결정하는 회의 말이다. 그 다음 주 3일 정도, 하루 일곱 시간씩 녹음했다. 한 곡당 한 4~5 테이크take 작업했고, 그 중에 하나를 골라 썼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깔끔했던 작업이었다.

 

그렇다면 엔지니어 분이 상당히 고생했을 텐데.

“다시 하라면 할 수 있을까?”라는 농담 섞인 말씀을 하셨다.(웃음) 그래도 믿었다. 앨범화를 목적으로 한 작업은 처음이셨지만, 네이버 온스테이지에서 엄청나게 많은 아티스트들과 작업했던 분 아닌가. 그 장점을 충분히 발휘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면에서는 작업하면서 음악적으로는 자신과 좀 다른 바가 많았다고 느끼신 것 같긴 했다. 왜, 재즈 밴드 트리오가 와서 녹음하면 어느 정도는 매뉴얼이 있지 않나. 그런데 내가 주문했던 것은 울림(앰비언스)를 사운드랑 섞어서 그림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조금 혼란스러우셨을 거다.

 

지금 답변 중에 이번 앨범을 독해하는 키워드가 나온 것 같다. 그것을 울림 내지는 공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언어화되기 이전의 음, 혹은 구체화되기 이전의 음’을 드러내 보이려고 노력했다는 생각이다.

어느 정도는 그런 것들이 분명히 의도된 게 있다. 악보를 보면서 짜인 계획이나 약속대로 간 게 아니었음은 분명하고, 임프로비제이션을 배제한 채 그 틀대로 몰아갔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 계획이 분명히 있긴 했었다. 연주자들이 곡을 받은 다음, 살짝 그것을 조정한다고 하면 (처음 구상했던 것보다) 많이 틀어지더라고. 하지만 뭐… 우연의 결과물일 수도 있고. 달리 말하면 치밀한 계획의 결과물일 수도 있는 거지.

 

충분한 답변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트랙들의 제목이 흥미로웠다. 제목들도 서로 이질적이고 충돌하는 느낌이다. 예를 들면 물감을 확 뿌린 느낌? 하나의 콘셉트로 묶이기보다는. 그런 타이틀을 붙이는 것에도 신경을 썼는가?

어느 정도 맞다. 하지만 유치원에 다니는 천진한 아이가 작업한 것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억지로 했다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나온 것 같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내 의도에 대해 살을 붙이는 것이겠지만, 곡이 원하는 제목이라는 것만 충분히 느껴진다면 내가 어떤 시점에서 그걸 떠올렸건 간에 그 제목을 쓰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온 제목들은 곡이 태어나면서부터 나온 것이다. ‘Minotaur’ 같은 곡은 웹의 피드백을 살짝 참고한 것이고, 하지만 ‘We Are Dying’, ‘Satin Camel’, ‘Who?’ 같은 트랙들은 그냥 자연스럽게 태어난 타이틀이다.

 

순간순간 그런 타이틀이 떠올랐는가?

그렇다. ‘We Are Dying’은 멜로디를 육성으로 흥얼거리는 와중에, 가사도 거의 동시점에 완성되었다. 후렴구에서 반복되는 ‘We are dying…’은 초반부터 나온 것이다. 당연히 글자 그대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곡이다. ‘Who?’에 물음표가 붙은 이유는 침해당하는 느낌이 두렵거나, 혹은 무엇을 받아들여야 되는데 그게 편하지 않는 착란증세?(웃음)를 말한 것이다. ‘Satin Camel’은 꿈꾸듯이 본 광경에 대해 그린 곡이다. 비록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그에 대해 상상해볼 자유는 있으니까. 왜 어렸을 때 단어의 조합을 구상해서 말을 만들지 않나. 그런 느낌이랑 비슷한 것 같다. 요즘 흔한 게 이런 작업 아닌가. 자영업하시는 분들도 가게 네이밍을 이런 식으로 하기도 하고. 새로운 단어조합을 가지고 마구 뭔가를 만들어 내잖나.(웃음) 내 작업도 그런 말장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Secretly’는 예전 곡이었는데, 3집에 수록되었던 ‘솔직히’라는 곡이 내가 이 가사를 번안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었기 때문에 옛날 제목을 쓴 것일 뿐이다. 음…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Bluey’는 데모 때 제목을 그냥 가져온 거고.

 

이제 곡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1번 트랙 ‘Minotaur’부터 8분으로 뻗어나간다. 이 곡은 구슬프기도 하고, 미묘하게 마음을 끄는 즐거움도 있다. 그 두 감정이 미묘하게 꼬인 느낌이라고나 할까? 당신의 설명만큼이나 양가적인 느낌의 곡이다. 어떻게 구상했나.

도입부에 나오는 코드 진행은 3집 작업 초반에 습작으로 기록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파일을 열어 보면 기타 한 대의 진행만 있다. 그것을 잊지 않고 있다가 곡을 만들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에는 어디에 써야 하는지를 몰랐겠지만. 내 귀로 들었을 때 이 곡은 3등분되는 곡이다. 중반부에 대해서 밴드 멤버들도 “웬 뽕 느낌이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선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보통 곡을 만들어 놓고 멜로디를 붙이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추잡한 인생에 더할 나 있다면…’이란 글귀에 곡을 입히고 싶었다. 이 ‘추잡’이라는 단어가 묘한 느낌이 있다. 아버지, 할아버지 시대에서 보았던 그런 모습들이었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그런 쪽으로 (만들어봐야겠다는) 모드가 발동했을 수도 있고. 그 와중에서 그런 ‘양가성’이 탄생한 것 같다. 곡에 대해 말해보자면 신스 질감으로 만들어낸 소리가 곡을 우울한 분위기로 리드해 나아가는데, 그 뒤론 살짝 기쁨이 느껴지는 요소들이 부가되어 있다. 세 번째 파트가 첫 파트에 대한 변주인 것 같고. 그 다음엔 다시 팍 떨어뜨리지만. 이 곡은 오랫동안 오마르의 내레이션이나 보컬 없이 연주된 적이 많다. 오마르가 이방인의 구절을 앞부분에 읊고, 후반부에 ‘아~~~아~~~’ 나오는 구절이 들어가면서 완성된 것이지. 여운으로 끝나는 건 꿈에서 깨어나는 듯한 느낌을 말한 거다. 개인적으로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고.

 

이미 여러 인터뷰에 실린 내용이지만 2번 트랙 ‘We Are Dying’에서는 베트남 악기 단보우danbau가 사용되었다. 어떤 효과를 노렸나.

단보우 연주자 프엉을 만난 후, 나도 소위 송라이터니까 “단보우를 위한 곡을 쓰자. 이 곡에선 네가 자유롭게 튀어나와도 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헌데 단보우는 단선율 악기고, 리프를 연주해야 하니 그 뉘앙스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도입부에 나오는 멜로디를 먼저 단보우 연주자처럼 먼저 써 봤다. 그리고 나선 물라투 아스타케 이야기를 간간히 했다. 그 사람도 각종 악기를 떡 만지듯 주무르는 분 아닌가. 그러니까 단선율로 곡을 버무리는 게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온 거지. 물라투는 나에 비하면 마스터 경지에 도달한 분이지만. 그 모든 과정을 거친 뒤, 정신을 가다듬고 작업에 착수했다. 어떤 분은 “007 사운드 트랙 느낌”이라는 말씀도 하셨다.(웃음) 내가 좋아하는 유의 진행이었던 것 같다. 듣다 보면 살짝 인스트루멘틀로 갔다 오지 않나. 원래 너무 반듯한 느낌이어서, 그렇게 빠졌다가 돌아오는 장치를 마련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1번과 2번을 순차적으로 서두에 배치한 거지.

 

트랙 순서에도 신경을 썼군?

그건 철저히 계산적으로 했다.

 

4번 트랙 ‘개가 되고’ 정도 되면 거의 주술 내지는 주문이다. 이 곡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국산 싸구려 기타를 하나 구입했다. 이게 굉장히 좋은 기타다. 원래는 장난용으로 샀었다. 도입부에 나오는 기타는 묘한 느낌인데, 굳이 시타르sitar에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그 악기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렇지만 기타가 기타 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재미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기타 치는 사람들 무지 많지 않나. “나는 이렇게 갈래”라는 의도도 있었지. 곡을 쓰는 입장에서도 “미라레솔시미레~”에서 벗어나 보겠다는 (어쩌면) 얼토당토않은 생각도 있었고. 작업하면서 재미있던 곡이다. 사비savvy는 거의 들리지도 않는다. 아마 주문 같다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그런 진행들은 철저히 계산된 움직임은 아니지 않나. 상상력이나 영감의 힘이 중요했을 것 같다.

나는 그것밖에 없다.(웃음) 100% 귀로 판단하고. 시도해보고 아닌 게 어떤 건지에 대한 데이터가 입력이 되어 있으니, 판단 기준도 확실했던 게지. 그런데 혹 음악을 전공했나? 아무래도 내게 “이건 그런 거다”고 지적할 게 많을 것 같아서.(웃음)

 

하하. 전혀. 그럴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사석에서 말하기도 했지만, 나는 인터뷰를 통해 리뷰 혹은 인터뷰가 나오면 그것을 통해 역으로 내 정체에 대해 파악하는 게 있다. 그래서 물어본 거다. 말로 풀어 설명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인 거니까. 좀 더 전문적인 귀를 가진 사람들이 풀어주는 것들을 취하고 싶은 욕심도 살짝 있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내가 지금 보도자료에 입각해서 인터뷰 하는 건가?”에 대한 의식도 하고. 발매 초반에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인터뷰도 해야 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마음이) 편해져서 풀어진 상태이다 보니 툭 던지면 들어오고, 툭 던지면 내뱉는 그런 상황이다. 재미있다.

 

다음 곡에 대해 물어보겠다. ‘Fear’는 기타가 아니라 처음부터 피아노로 출발한 곡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진행 방향이 뒤바뀐 거 아닌가.

피아노는 원래 기타만큼 자주 치지도 않고 편하지도 않다. 하지만 피아노라는 악기를 무턱대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특히 그 울림에 대해서. 집에도 피아노를 가지고 있고. 음… 피아노곡은 여러 가지로 다르다. 작업도 그렇고 임하는 태도도 그렇다. 그렇게 작업했을 때 나온 결과물은 좋은 의미에서 좀더 ‘여성적’인 것 같다. 티피컬typical한 의미에서 ‘여성적’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말이 가장 근접한 의미인 것 같다.

 

(정확할지는 모르지만)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 앨범에서 가장 대중적일 수 있지 않을까?

꼭 스타일을 지칭하는 건 아니지만 편안함과, 공격적인 뉘앙스보다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여성적인 부드러움 이런 것들. 무엇보다 내가 필요로 해서 넣은 곡이다. ‘개가 되고’, ‘Minotaur’, 이런 곡 쓰다가 보니까. 이런 곡이 들어가도 괜찮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수록한 거지.

 

‘Who?’는 두 가지 버전으로 실렸다. 평소 이승열의 시각에서 혹시 사족이라고 판단하지는 않았나?

만약 정상적으로 갔다면 벨로주 버전만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두 트랙을 모두 싣자는 것은 내 의견이라기보다도 전략적 시각 혹은 레이블의 시각에 기인한 것이다. 소리라든가 질감 측면에서 한 번 더 스튜디오 퀄리티로 녹음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견해가 나왔던 거지. 심지어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앨범이) 좋긴 하지만 (앨범 전체를) 스튜디오 퀄리티로 끌어 올려야만 말이 되는 거 아닌가?” 뭐 싸움이 일어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에 대해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해야 한다면 접겠다.(웃음)”고 말했다. 그래서 나온 절충안이 ‘Who?’ 정도만 어떻게 스튜디오로 돌려서 재작업해보자는 거였지. 개인적으로 스튜디오 버전에서는 벨로주 버전처럼 잡다한 보컬 이펙트를 실시간으로 미친 듯이 구현하면서 가보지 말자는 욕망이 있었다. 좋은 마이크에, 음차단이 다 된 상황에서 노래를, 연주를 기록해보는 작업을 적어도 이 곡 안에서만은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던 거다. (두 곡을) 대비시켜 보면서 뭐가 다른 건지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스튜디오 작업을 많이 하면 할수록 곡에 정이 떨어지는 스타일이다. 이 앨범에 실린 트랙 중 가장 안 듣게 되는 곡도 이거다. 음… 1집과 2집 때 스튜디오 작업하면서 보낸 시간은 상상 못할 정도다. 여기 계신 분들도 스튜디오를 “네가 가장 많이 사용한다”고 말씀하실 정도니까. 이제는 그런 작업에 좀 물린 것 같다. 3집 때부턴 스튜디오 안에서 너무 몰입한 채 곡을 다듬는 방식으로는 가지 말자는 생각을 해왔었던 거지.

 

후반부에선 장필순과의 공동작업 ‘Bluey’가 눈에 들어온다. 애초부터 장필순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나?

곡은 이미 2009년에 존재했었다. 아직 미완성이었지만 말이다. 1절만 나와 있었다는 거지. 어차피 이 곡은 1절과 2절이 동일하고 뒤에 아우트로outro가 살짝 생긴 거니까. 개인적으로 기타를 배운 이유가 블루스 기타를 연주하고 싶어서였다. 아마 13, 14살 때쯤이었을 것이다. 물론 블루스만 파면서 음악을 파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 (블루스에 대한) 로망이 남아 있다. 이런 곡들이 뜬금없이 만들어지긴 하는데 그걸 앨범화할 기회가 없었고, 3집 때부터 서서히 저지르기 시작한 것 같다. ‘그들의 blues’ 같은 곡은 우연하게도 “이런 곡이 있는데, 이걸 한대수 선생님과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라고 툭 던진 말이 좋은 반응을 일으켜서 곡작업으로 연결된 경우다. 이번에도 비슷한 케이스다. 이런 고민은 사실 무거운 고민은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작업을 수줍게 던져놓을 뿐이니까. 장필순 씨는 아주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장필순은 블루스 싱어는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 나는 그분에 대해서는 짧은 기억만 가지고 있다. 아마 대학교 2학년 때였을 거다. 그분의 어떤 음반(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을 빌려서 한 2~3개월을 자기 전에 꼭 들어야만 잠이 오던 시기였다. 일종의 ‘베드타임 프렌드bedtime friend’ 같은 거였지. 그분에 대해서는 그런 기억만 가지고 있다고 해야 진실일 것이다. 그 후 그분의 음악적 행보에 대해선 지식이 없다. 그게 부끄러운 것 같진 않지만 올바른 태도 같지도 않고. 아무튼 그냥 내 판단을 믿은 거다. 그냥 그분이 해줬으면 좋겠고, 더 이상 다른 고려를 해야 할 만큼 이 곡에 대해서 심각성을 느끼지 않았으니까. 이래저래 사람을 수소문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사람 아니면 안 돼. 처음부터 그랬던 거지. 내가 직접 전화를 드리면 여러 설명을 할 것 같아서 회사를 통해 그쪽 회사(푸른곰팡이)와 컨택했고, 애초에 써놓았던 데모를 보내 드렸다. 분명 “좋다”고 하실 것 같았다. 이런 저런 디렉션 없이 음원만을 보내 드렸는데, 그 음원에 화음까지 쌓아 놓으셨지 뭔가. 워낙 코러스도 오래 훌륭하게 하셨던 분이니까. 초반부의 목소리 톤을 듣는 순간, 예전에 느꼈던 장필순의 질감이 나타났다. 누군가는 그러더라고. “후반부 지르는 부분이 나오는 그분의 나중 음악 성향이다. 혹 알고 있었냐?” 결국 덤으로 하나 더 얻은 셈이다.(웃음)

 

미국 음악의 뼈대가 블루스 아닌가. 스스로도 미국 생활을 오래 해서 그 지점에 대해서는 공감할 것 같고. 블루스가 이승열 음악에 있어 특정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느꼈다.

언젠가 장르 뮤지션으로 살고 싶다면, 블루스 색채가 어울릴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또 어느 인터뷰에서는 “블루스 싱잉에 자신이 없다”고 말한 적도 있다. 음… 그런 것 같다. 블루스는 지금까지 이어진 오랜 전통인데 현대적으로 들리기도 하고, 주술적으로 들리기도 하는 음악이다. 심지어 악보로 콕 집어내는 음악도 아니고. 그런 것들에 대한 열망이 있다. 하지만 또 클리셰적인 측면도 있기 때문에 그런 건 또 싫었고. 어떤 장르라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본질이 있든 없든 아직 도전해보지 못한 것들, 모종의 미개척지라고 해야 할까?(웃음) 끝까지 도전 안할 지도 모르는, 저기 어디 있는 신기루 같은 것. 개인적으로 지난 몇 년 동안 보컬 멜로디가 들리는 (요즘) 음악에 상당히 지쳐 있다. 그런데 1940~50년대 LP(LP로 음악을 듣지는 않지만)로 녹음된 블루스맨의 목소리와 연주를 들으면 그렇게 얇은 소리들이 흘러나올 때 묘한 자극을 받는 게 있다. 요컨대 이런 거지. “아 좋다. 이렇게 음악이 상업화된 채로 만들어지지만, 그 시작만큼은 그런 게 아니었구나.” 그런 정신만큼은 상기가 되는 거지. 뭐 “그런 정신을 본받자”까진 아니지만 개인적으론 위안이 된다. 다 떨어져 나가고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이걸 생각하면 위안이 되겠다 싶은 정도.

 

마지막 트랙 ‘Cynic’은 아무리 들어봐도 끝내는 곡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하하하. 잘 봤네. 1집의 ‘푸른 너를 본다’, 2집의 ‘아도나이’, 모두 앨범을 위해서 썼다기 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썼던 곡이다. 불안한 마음가짐으로부터 나온 곡인데 비교적 쉽게 들리는 곡이기도 하고, 이 정도면 “내 곡이라도 해도 좋지 않을까”하는 자신감을 느꼈던 곡이기도 하다. 그런데 ‘Cynic’은 그 목적이 미세하게나마 다른 것 같다. 자신감은 갖고 썼지만, 앨범의 마지막 트랙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엔 나도 동의한다. [V]는 사실상 두 앨범인데, 6번까지가 파트 1이라고 한다면 그 이후의 트랙은 색깔이 모호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고 싶진 않았다. 만약 그런 지적이 나오더라도 동의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2집 활동을 할 때, 이미 ‘기억할게’가 타이틀로 정해진 상태에서, ‘Buona Sera’라는 곡으로 살짝 방향을 선회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Buona Sera’를 타이틀곡으로 해보자고 주장했었다. 그래서 그 곡으로 방송에 나간 적도 있고. 소위 ‘감’이라는 게 없는 것 같다. 음… 이 곡에 대해 말하자면 굳이 미화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라디오 에어플레이 시간에 맞는 대표곡이라는 게 있어야 되기 때문에,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곡이다. 어떤 점에서는 그런 고려를 해야 하니까. 그렇기 때문인지, 그런 고려가 없었던 엔딩곡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곡을 쓸 때의 느낌은 1~6번까지의 느낌과 큰 차이는 없었다.

 

그 ‘시닉’은 본인을 칭하는 말인가.

그렇다. 나를 비유한 거지. 성향이 좀 그랬던 것 같다. 젊었을 때는 더 삐딱했고, 아직도 잘 숨기고는 있지만 그런 기질이 있으니.

 

그 곡에서의 독특한 기타 튜닝은 어떻게 나온 건가?

‘개가 되어’는 일렉트릭으로 했지만, ‘Who?’, ‘Satin Camel’, 그리고 ‘Cynic’의 특정 지점에선 어쿠스틱으로 작업했던 튜닝 세트를 동일하게 쓰고 있다. 그로부터 얻어진 것이다. 그걸 어떻게 나왔냐고 물으면….(웃음). 스트링 컴비네이션은 D-F-D-F-F-D로 진행한다. 나는 추적자다. 그냥 따라가는 거지. “아! 음… 오!” 누군가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본다면 아마 “오! 음! 아하~” 이런 소리만 들릴 것이다.(웃음)

 

전체적으로 보컬을 일그러뜨린 것 같다. 가사 전달이 잘 되지 않는다며 애교 섞인 불평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다. 그런데 그건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유앤미 때도 그랬던 바다. 스튜디오에서 일반 가요를 제작해서 결과물을 내는 레이블들은 목소리가 선두에 나서고 가사나 다른 것들이 다른 것들을 보조하는 정도로만 존재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그 지적이 일리가 있긴 하다. 그런데 나는 그 삼각대형으로 “전진!”하는 것 같은 작업이 피곤하다. 원래 듣고 싶은 것 위주로 작업하다 보니, 그렇게 편곡을 안 하는 것 같다. 평소 지론이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다른 것들의 중요성도 함께 느끼고 싶다는 것이기도 했고. 그 때문에 그런지 나는 이런 작품을 만들지만, 대중들에게는 목소리로 더 어필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는 거겠지. 그런데 이 곡에서 가사가 잘 들리면 이상할 것 같지 않나? 묘할 것 같다. 간혹 나중에 리마스터링을 한다거나 새로운 믹싱을 한다거나, 아니면 언젠가 우연치 않게 기회가 된다면, 이 곡들 중에 몇 곡은 스튜디오 버전으로 (여유와 명목, 그리고 의미가 있다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여러 언어(영어, 아랍어, 프랑스어)와 소리, 파장들이 뒤엉키고 섞여 ‘모든 곳에 있는, 하지만 아무 곳에도 없는’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스스로는 이번 음반의 키워드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다고 보는가.

작년 4월에 이런 시도를 처음으로 단독공연에 올린 적이 있다. 그 공연 타이틀은 ‘Want You at Veloso’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더 살이 붙은 모양새로 ‘Muddle’이라는 공연을 했고, ‘Mumbo Jumbo’라는 공연을 했다. 관객들에겐 늘 (출시될) 음반의 성격에 대해 힌트를 준 셈이다. 처음에는 중립적인 타이틀로 “오세요” 그랬다가, 계속해서 ‘혼돈’, ‘뒤죽박죽’이라는 간판을 내걸었으니까. 12월 공연에서는 이 앨범과 근접한 공연을 보여주기도 했었고. 단서는 처음부터 제공되었던 셈이지. 공연이란 게 만인이 관람하는 게 아니기도 하거니와, 우연찮게 공연을 봤던 분들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만약 (그분이) 우연하게 들어온 분이었다면 “뭐지? 이 밑도 끝도 없는 느낌은?”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단서들을 따라온 분들이었다면 “아! 이게 다음 결과물이네”라고 말했을 거다.

 

미스터리 책 봐도 나름 저자가 이런저런 단서를 흘린 다음, 독자에게 도전장을 보내지 않나. 독자들이 단서들을 조합해 스스로 트릭을 풀 수 있다고 믿었나?

믿었다기보다는 줄 수 있는 만큼 단서를 준 것 같았다. 내가 편한 정도에서 “너무 눈치 보지 않고 [V]라는 타이틀의 음반을 내놓을거야”라는 거였지. 그간 단서를 잘 모았던 분들은 “아. 드디오 이게 앨범화 되는구나” 정도로 판단할 것이고. 단서를 보지 못한 분들은 이곳저곳에서 그런 것들을 찾아보고 조금 늦게 알게 되는 거지.

 

어쨌든 본인 입장에선 페어플레이를 했다고 느끼는 건가?

공정성의 문제라기보다는, 나조차도 이 퍼즐을 풀어가는 입장이니 동참하라는 거였지.(웃음) 하지만 절대로 손목을 잡고 끌어당기진 않겠다는 거였고.

 

동료 중 누군가는 이번 음반은 그냥 데모들을 모아서 낸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것이 칭찬인지 힐난인지의 여부를 떠나, 상당히 잘 본 편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녹음이 끝나고 민상용 씨와 커뮤니케이션 된 가믹스본을 최초로 회사 관계자에게 공개했을 때, 바로 그 비판이 나왔다. “아이폰으로 잘 녹음한 데모 같다”고 말이지.(웃음) “아이, 뭔 소리에요”라고 답했다. 믹싱이 더 진행될 거니까 맡겨두라고 말하면서. 결과적으로 한 5차까지 수정하고 믹싱해서 발전시킨 게 이 앨범이다. 기간은 한 40일 정도 걸렸고. 믹싱, 마스터링 모두 흡족하게 마무리되었다. 앨범으로부터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이 정도라면 만든 작가 입장에서도 만족해야 될 것 같았고. 왜 그런 말 있지 않나. “acquired taste”라고. 계속 먹다보니까 좋아진다고. 그런 게 있었던 것 같다. 너무 입에 짝짝 달라붙는 것은 살짝 의심해야 되지 않을까. 이렇게 궤변을 늘어놓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혹 이게 데모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너무 비현실적인 사운드스케이프에 노출되어 있는 게 아닐까? 그러면 우리가 사운드 테크놀로지를 어느 경지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건지. 아마 그 분은 사운드의 질감을 말하는 거였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 지적이 두렵지만은 아닌 게, 데모와 정규를 주변인에게 들려주었을 때 “데모가 훨씬 좋네”라는 평을 받은 적도 있다. 아마 그 뉘앙스가 “무성의하다”는 거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어떤 면에선 “앨범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과연 어느 정도의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가?”는 접근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아티스트는 어떤 트릭을 써서라도 스튜디오 퀄리티를 뽑아내야 하겠지. 앨범이 소비되지 않는 현 상황에서 말이다. 아, 제작비도 줄이고 싶었다. 시간적으로 필요 없는 과정들. 새나가는 돈들. 스튜디오에서 무작정 시간을 보내는 걸 자제하고 싶었던 게지.

 

혹 완벽하게 정련된 요즘 음악들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건가?

아니다. 테크놀로지는 늘 현대적인 창작자들에게 단짝이었다. 그것을 잘, 오버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목적에 가져다 쓴 사람들로부턴 좋은 작품이 나왔던 것 같다. 문제는 다량의 고만고만한 것들이 ‘쉽게’ 포장되어 나온다는 점이다. 포장술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네. 잘 팔리는 물건으로 포장하는 테크놀로지. 그런 물건에선 테크놀로지의 의미가 무엇을 창작한다기보다는… 참, 일종의 예술도 사기인데…(웃음) 미세한 지점이지 않나. 지금은 예술의 영역도 너무 소비자 쪽으로 모든 것이 치우쳐 있고. 놀랄 만한 테크놀로지가 주기적으로 (마치 자연재해나 천재지변처럼) 발생한다. 어떤 사람 혹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말이다. 그런 것들이 계속 탄생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익숙해진 틀 안에서 뭐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것뿐이지. 앞으로 또 무언가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나온 다음에야 왈가왈부할 수 있을 거겠지. 그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개인적으로는 타이틀 [V]에 대한 설명이 흥미로웠다. 이런 타이틀은 기존 통념에 대한 배반이다. 한 번 더 반복을 요청해도 되겠는가.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넘버링numbering이 굉장히 싫다. 왜 넘버링을 해야 하는 지도 잘 모르겠다. 굳이 나는 안 해도 되겠다. 안하고 싶다. 왜냐하면… 내 것이니까. 좀 더 장난스럽게 말하자면 이렇게 해야 우리가 이야기할 거리가 생기니까?(웃음)

 

그간 많은 상을 받았다. 그것은 이승열에게 격려로 다가오는가, 부담을 안겨주는가?

언젠가 상을 받고 소감을 이야기해야 하는 자리에서, “등을 툭툭 두드리며 ‘수고했어!’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엔 그런 답변을 했지만, 상을 받았기 때문에 경계되고 부담스러운 게 생기긴 한다. “‘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조심한다고 해도 분명히 어깨에 힘이 들어갈 것이고, 경력사항에도 (내가 쓰든 회사가 쓰든) 그런 내용이 기재될 것이고. 하지만 어느 정도 되는 커리어에 그런 것도 없다면 힘이 빠질 것이고. 그러니까 상 받는 순간 외에는 내 일 아닌 것처럼 보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좀 더 민감한 건 팬들이 (앨범에 대해 받는) 느낌이다. 앨범 전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특정한 곡만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 그런 것에 더 민감해진다. 과거에는 수상 후보에 지명되면 상 받을 거라는 기대를 했다. 아마 60~70살 먹은 거장이라도 설렐 것이다. 내게도 그 정도는 허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상 주는 분들의 입장이란 게 궁금하고, 수상자를 선정하는 회의장면을 보고 싶다.(웃음) 그런데 나보다 10~15년 늦은 음악 열심히 하는 후배들이 “선배는 상도 받으셨잖아요?”라는 뉘앙스로 물어보면 좀 마음이 불편해지긴 하더라고. 음… “무슨 말이지? 너희도 결국 이렇게 되고 싶다는 이야긴가?” 또 선배에 대한 격의가 전혀 없이 나를 아주 편하게 대하는 후배를 보면 또 살짝 불쾌하기도 하고.(웃음) 상이 주는 느낌은 묘한 것 같다.

 

여기저기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뮤지션 외 여러 일을 병행하는 것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달프지는 않은가?

다행히도 내 성향에 해가 되지 않는 콘텐츠와 포맷의 일이 있더라고. 이를테면 EBS에서 고전 읽어주는 것도 그런 일이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일이지. 다른 라디오는 운 좋게도 인디 음악을 틀어주는 프로다. 성향에 맞는다. 또 영어도 리프레시refresh할 수 있다. 정말 좋은 점만 열거된다. 가끔 바쁜 일이 몰리는 것만 제외하면. 그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이 나를 더 샤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특정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지 않았다”는 본인의 말로부터 “편지는 송신인을 떠나면 그의 것이 아니다”는 말이 생각난다. 그냥 자유로워지고 싶었는가?

그렇다. 음… 메시지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주인이 아닌 것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을 거고. ‘음악 창작자의 입장이란 공중에서 뭔가를 캐치해내는 정도인 것 같다’는 표현도 들어 봤는데, 작품이 100% 내 것이라고 해서 그게 온전히 내 메시지라고 할 수도 없고. 내가 이렇게 캐치한 것을 바탕으로 편지를 쓰듯 풀어냈다고 해서, 그것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메시지라는 것에 대해 확실히 말하는 것에 주저하게 된다. 어떤 경우에도 “이번 음반의 메시지는 반전(反戰)입니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없다.(웃음) 음악을 떠나 내 생활 자체가 그렇다.

 

전작의 수록곡 ‘Why We Fail’, 그리고 이번 음반의 ‘We Are Dying’ 등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실패’와 ‘좌절’, 그리고 ‘허무’가 최근 작업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런 단어들이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분쇄해 버렸다. 항상 가지고 싶다가도 늘 까먹는 것이 ‘문서분쇄기’다. 앨범에 대한 기억이 어느 정도 있다가 그게 자연스럽게 증발하거나 없어진다. 그게 비워져야만 또 새로운 게 나올 수 있는 것 같고. [Why We Fail]을 만들고 나서 분명히 정리된 게 있다.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갔으니, 언제든 그립다면 CD에 넣고 한 번 들으면 되는 것이지.

 

연대기를 죽 흩어 보면 연속보다는 불연속에 가깝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이승열이라는 일관성은 유지되는 것 같다.

혹 이런 의미인가? 총 6장의 음반을 내면서, 그 음반들이 각 다른 의미를 다른 언어로 하고 있는데 식상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내 옷을 입은 모양으로 나온 느낌이다?(웃음). 혹 반대 의견도 있지 않을까? 또 “이승열다운 앨범이 나왔네.” 하지만 그 말이 더 듣기는 좋다.

 

이번 음반과 관련해 혹 소속사가 근심하고 있거나 하진 않나?

1집 때도 근심이 있었을 것이고, 2집 때도 근심이 왔을 거고. 3집 때 살짝 “혹시” 했다가 “아, 역시나”하는 모양새였을 것이고. 만약 이 소속사가 영리하여 타이밍이나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저돌적으로 하는 곳이었다면, 나도 이곳에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리적으로 그런 건 맞지 않으니까. 한 예를 들겠다. 좀 된 이야기지만 [라라라]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아마 실현될 가능성도 없었겠지만, 방송노출을 통해 좀 더 많은 분들에게 알려진 후 기획사의 방침은 “우리 이렇게 전략을 짜서 이 바람을 타 보자”가 아니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언질도 없었고, 나는 이후 유앤미블루의 판을 낸다고 했다. 방송이 나간 후 공연에서는 심지어 2~3배의 티켓 세일즈가 이루어졌는데도, 회사는 전혀 그런 모드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를 걱정할 것 같은가?(웃음) 회사는 나를 소속인으로 데리고 있으면서, 큰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 이제 (소속사와) 10년 되었으니까 내 입장을 아는 거지. 오히려 이렇게 실어주길 부탁한다. 나는 소속사에 ‘득’이 되는 사람이다.(웃음) 물질이 아니라면 다른 측면에서라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음악 못 할 것 같다. 무대 위에 올라가서 2시간~3시간 동안 내 음악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모순적일 것 같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제작자들은 나처럼은 아니어도 내 음악을 열렬히 지지해 주고 있고 애정이 있는 분들이라는 걸 믿는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음악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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