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열오라버니팬으로 유명(까진 아닌가-_-)하시기도 한 배순탁씨 100자평이 제일 마음에 든다하하하.
맨 마지막 문장의 '탐구자'라는 말이 오라버니와 잘 어울린다. 그 앞부분은 뭐 그냥……
* 선정단 백자평
배순탁 : 이승열의 팬이라도 일부는 처음에 당황했을 것이다. 음악적인 야심으로 가득한 이 앨범은, 누군가에겐 지울 수 없는 인장을 새길 수 있는 반면, 누군가에게는 끝내 다가서지 못할 미지의 영역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만큼 극단적인 반응을 추수할 수밖에 없는 음반이고 보면, 평론가의 의무는 이런 유의 아티스트와 앨범을 믿고 지지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의 음악적인 국경은, 그 어떤 경계도 없이 사방으로 활짝 열려있다. 이 앨범이 그에 대한 증거다.
최지호 : 지금까지의 이승열이 ‘90년대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원칙주의자들의 꼿꼿한 선비정신이랄까? 그런게 음악을 심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나 같은 비판적 지지자들까지도 수용한 신의 한수라는 생각이다. 단보우를 매개로한 동양적 스케일과 변칙 튜닝, 노래를 소리의 차원으로 강등시켜버린 것 등등 지금까지의 자신을 버리려고 한 노력이 가상하다. 또한 이것은 장르를 해체하고 에너지만 남긴 21세기 모던 록의 흐름을 잊지 않는 트랜디한 방법론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혼돈 속에서도 이승열은 구성하고 정리한다. 곡마다 지향하는 바가 뚜렷하다.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는 뮤지션의 결기가 느껴지는 탄탄한 작품이다.
최지선 : 이 음반은 공간/장소(또는 이를 지우려는 일)에 대한 관심이 투영되어 있다. 즉흥과도 같은 순간들을 스튜디오 라이브와 클럽 라이브를 통해 각기 병치시킨 레코딩처럼. 단보우 등을 동원한 동양적인 사운드도 마찬가지 맥락 같다. 예의 캐치한 선율이나 중저음의 낭만적인 목소리 대신 채택된 풍경이 때로 낯설 수도 있고, 자의식 과잉이라는 논제를 거론할 이도 있겠지만 이 시도는 이승열에게 또 하나의 선명한 궤적으로 남을 것임에 분명하다.
이경준 : 숨이 턱 막히는 이 음반을 두고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해하기보다는 공감할 수 있는 앨범이라고 말이다. 앨범의 주인이 이승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에밀]의 글귀를 빌어 이렇게 적을 수도 있겠다.
김광현 : 선의의 기준이라도 어떤 원칙이 오래되면 자신을 검열하게 되는데 이승열은 이번 정규 4집에서 그간의 원칙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거칠다. 그래서 듣는 내내 나를 채찍질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진혼곡은 아니지만 여러 장치들이 사지(死地)로 떠난 자를 기리는 것 같다.
* 앨범리뷰 : 김현준(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위원)님의 앨범리뷰
약간의 농(弄)을 섞자면, 대한민국처럼 음악하기 힘든 나라에서 이승열보다 부러운 이가 또 있을까 싶다. 그 역시 많은 고민 속에 제 자리를 지켜왔겠지만 앨범을 마주한 뒤 얻은 첫인상이 그렇다는 건 부정하기 힘들다. 옳고 그름이나 성패를 떠나, 이승열은 자신이 하고픈 음악을 아무 거리낌 없이 시도하고, 녹음하고, 본인의 이름을 걸어 하나의 작품으로 세상에 툭 던져놓는다. 그것만으로도 뻔뻔하다 싶은데, 듣는 이들로 하여금 적지 않은, 긍정적인 단상까지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야말로 성실한 오피니언 리더의 이상적인 모습 아닌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새 앨범 [V]에 대한 반향이 충분히 있었을 법하다. 따라서 이 매체의 편집자가 굳이 내게 리뷰를 맡긴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봤다(18년째, 나의 글쓰기는 재즈 비평에 국한돼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게 [V]는 적잖이 재즈적으로 들린다. 곡의 근간은 미리 잘 정돈해 두었겠지만 이를 풀어가는 방식은 매우 직관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질 개연성이 높았음에도 굳이 그 흐름을 끊지 않았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이승열 자신의 말처럼 [V]는 결국 라이브 앨범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V]가 내게 친숙하게 들린 가장 큰 이유는, 소닉(sonic)의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게 맞겠다 싶은 앨범 전체의 사운드였다. 믹싱 등 후반작업의 결과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어쩌면 이승열이 추구했던 것은, 새로운 차원의 사운드와 그걸 연출해내기 위한 방법론의 확대, 혹은 이런 시도만으로도 하나의 앨범을 완성해낼 수 있을 것이란 믿음,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이승열을 얘기할 때마다 따라오는 '탁월한 노래만들기(songwriting)‘와 관련해, 그 짐을 성공적으로 벗어버린 점도 [V]의 높은 성과 중 하나다. 이 부분이 의도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새로운 사운드의 연출이 작품 전체를 이끌어냈다는 것만큼은 명료해 보인다.
그런데 이런 시도는 ‘90년대 이후의 현대 재즈를 통해 이미 적잖이 진행돼 왔다. 실제로 [V]의 비트와 리듬을 유럽의 이븐-필(even-feel) 정도로 대체해 보면 꽤 유사한 연출이 가능해진다. 그럼에도 이승열의 시도가 성공적으로 보이는 것은 단순히 그가 한국의 음악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누가 들어도 이승열이란 느낌을 줄 만큼 매력적인 스타일이 전혀 다른 질감의 그릇에 고이 담겼다가 이내 밖으로 쏟아져 나오지 않는가. 그 소리를 마음으로 주워 담는 작업이 아주 색다른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기대하지 못했던 기쁨이다.
[V]가 이승열의 종착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작업이 스스로에게 적잖은 의미를 찾아내게 했다면, 내친 김에 몇 걸음 더 디뎌보는 건 어떨까 싶다. 지구 반대쪽에는 아직 우리 음악계의 손길이 닿지 못한, 꽤 그럴 듯한 레퍼런스들이 도사리고 있다. 반드시 그걸 취해야만 새로운 음악이 가능한 건 아니지만, 왠지 이승열이라면 한 번쯤 관심을 가질 것만 같다. 평자라기보다 호의적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이승열은 이미 한 자리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탐구자가 된 지 오래, 바로 이 부분이 그에 대한 신뢰의 핵심 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