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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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옮겨가는 초원
나이를 먹을수록 좋아지는 시인들이 몇 있는데, 그 중 한 분이 문태준씨. 어제는 갑자기 문태준씨 시에 꽂혀서 이 시 저 시를 찾아읽어보며 너무 좋다는 말만 계속했다. 그 말 말고는 뭐 할 말이 없더라; 그 많은 '좋은 시들' 중에서 블로그에 옮겨보고 싶은 시는 바로 이 시, 「옮겨가는 초원」. 매년 새로운 팀원들과 팀을 이루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보니, 전 팀원들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애틋함을 느끼게 되곤 하는데, 이 시가 약간 그런 느낌이었다. 물론 내 상황에 빗대기에는 너무 애틋하고 아름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초원 양편으로 멀찍멀찍이 물러나 외면할 듯이 살자'라는 구절의 의미가 가슴이 찌릿할 정도로 와닿아서, 많이 뭉클한 마음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더랜다. 역시 시인이란 아무나 되는..
2020.02.25 -
[문태준] 감나무 속으로 매미 한 마리가
감나무 속으로 매미 한 마리가 검푸른 감나무 속으로 매미 한 마리가 들어섰다 감나무를 바싹 껴안아 매미 한 마리가 운다 울음소리가 괄괄하다 아침나절부터 저녁까지 매미가 나무에게 울다 간다 우리의 마음 어디에서 울음이 시작되는지 알 수 없듯 매미가 나무의 어느 슬픔에 내려앉아 우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나무도 기대어 울고 싶었을 것이다 나무는 이렇게 한번 크게 울고 또 한 해 입을 다물고 산다 '가재미'를 펼칠 때마다 지난번에 못 봤던 시가 새롭게 보인다. 신비로운 책이다. 이번에 시집을 펼치는 내가 지난번에 시집을 펼쳤던 때의 나와 다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오늘의 나는, 많이 울고 싶었던 걸까. 나의 마음 어딘가에서 울음이 시작되고 있었던 걸까…한번 크게 울고, 또다시 입을 다물 수 있었으..
2010.11.13 -
[문태준] 당신에게 미루어놓은 말이 있어
당신에게 미루어놓은 말이 있어 오늘은 당신에게 미루어놓은 말이 있어 길을 가다 우연히 갈대숲 사이 개개비의 둥지를 보았네 그대여. 나의 못다 한 말은 이 외곽의 둥지처럼 천둥과 바람과 눈보라를 홀로 맞고 있으리 둥지에는 두어 개 부드럽고 말갛고 따뜻한 새알이 있으리 나의 가슴을 열어젖히면 당신에게 미루어놓은 나의 말은 막 껍질을 깨치고 나올 듯 작디작은 심장으로 뛰고 있으리 천둥과 바람과 눈보라를 홀로 맞으면서 부드럽고 말갛고 따뜻한 새알을 품고 있는 개개비의 둥지가 나의 못다 한 말이라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지? 너무 애틋하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시집에 수록된 다른 시들은 아래와 같음.
2010.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