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연] 표적
'그러려고 태어난 영혼은 없다'는 부분에서 아득해졌다. 너무 맞다. '그럴 만 해서 그렇게 된' 존재는 없다. '그렇게 된 것'이 삶의 목적이었던 존재 역시 없다. 그런 것은 없다. 표적 -안희연 (2019년, 문학과사회) 얼음은 녹기 위해 태어났다는 문장을 무심히 뱉었다 녹기 위해 태어났다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녹고 있는 얼음 앞에서 또박또박 섬뜩함을 말했다는 것 굳기 위해 태어난 밀랍 초와 구겨지기 위해 태어난 은박지에 대해서도 그러려고 태어난 영혼은 없다 그러려니 하는 마음에 밟혀 죽은 흰쥐가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흰쥐, 한 마리 흰쥐의 가여움 흰쥐, 열 마리 흰쥐의 징그러움 흰쥐, 수백 마리 흰쥐의 당연함 질문도 없이 마땅해진다 흰쥐가 산처럼 쌓여 있는 방에서 밥도 먹고 잠도 ..
2020.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