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너의 이름

[스튜디오24] 이승열 인터뷰 - 서두름 없는 집중력의 시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이 긴 걸 이렇게 한자한자 타이핑하다니…나도 분명히 제정신은 아니야-_-_-_- 하지만 인터뷰 내용은 좋다!!!!





서두름 없는 집중력의 시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 새 앨범 <V> 발표한 이승열 그리고 '결국 음악'


4시에 시작한 인터뷰가 5시 57분에 끝났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감사하게도-모두 몰입한 만남. 
녹음의 한 장면 한 장면으로 들어가 본 듯한 '느낌적인 느낌?' 그걸 경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결단이 필요하다. 그와 세상 사이 놓인 다리, 그것을 과감히 건너가는 것. 경험한 이들은 이 다리가 견고하며 또한 그 끝이 열려 있음을 알고 있다.


-에디터 한명륜, 코포레이션 플럭서스뮤직




 # 서두름 없었다, 흐름에 몰입했을 뿐.


새 앨범 <V> 발매를 축하한다. 이승열 하면 과작의 뮤지션으로 알려져 있는데, 1, 2, 3집 간 공백이 4년이었던 것에 비하면 절반이다.

이승열 : 글쎄, 특별히 서두르거나 한 건 없다. 다만 집중력이 좋아졌다고 이야기할 수는 있겠다. 곡을 만드는 과정에 물 흐르듯 빠져들었다고 할까. 3집 <Why We Fail>을 2011년에 내고, 그렇게 다음 해까지 공연을 했다. '울림'이라든가 소리의 구상 자체에 대한 '공상'을 시작한 게 2012년 말쯤이었다. 그런 아이디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거기다 이전에 같이 하던 밴드 이외 다른 멤버들의 섭외도 순조로웠다. 앨범 제작에 있어서 3박자가 아니라, 그 외의 것이 모여 4, 5박자가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게 힘 안 들일 수 있어서 천만 다행이다.


페이스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지.

이승열 : 3월에 SXSW(South by Southwest)에 갔었다. 이 스케줄이 지난해 말에 확정됐다. 여기에 맞춰서 앨범을 낼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회사 측의 권유가 있긴 했는데, '푸쉬' 수준은 아니었다. SXSW 일정이 확정된 후로 물리적으로 좀더 속도를 냈는데 그래서 지금 적기에 앨범이 됐다. 앞서 말했듯 일련의 과정들이 잘 맞아떨어져서 시기를 크게 지나치지 않고 잘 나왔다. 적당한 긴장이 집중력과 속도를 내게 된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솔로로서는 4번째 앨범이다. 그런데 제목의 'V'는 로마자로 5를 뜻하기도 한다. 제목에서 의도한 바가 있는지.

이승열 : 가벼운 의미다.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숫자 매기듯 하다 보면 내가 60 넘어서도 앨범을 낼 텐데, 그럼 두 자리 숫자가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버거울 것 같았다. 순서에서 이탈해 그런 강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 한국의 '보노'라는 수식어, 초기의 영국적 영향 벗어날 때


앨범의 테마가 신화적이다. 전체의 그림을 그릴 때 염두에 두었나.

이승열 : 전혀 그런 의도는 없다. 생활에서, 내가 하는 일을 바탕으로 나온 직관적인 테마라고 보는 게 좋다. 물론 첫 곡 'Minotaur'라든가 'Cynic' 등은 신화적 소재, 주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Minotaur'의 경우 신화적인 테마를 시작점으로 잡은 게 아니다. 이 곡의 데모를 친구에게 들려주었더니 18-19세기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Joseph William Mallord Turner : 영국 미술계의 '터너상'은 이 화가를 기념한 것-편집자 주)의 <미노타우루스 호의 난파(Shipwreck of the Minotaur)>가 떠오른다고 하더라. 작품도 마음에 들었지만 거기서 역으로 발생되는 아이디어가 악상이 됐다. '추잡하다'라는 가사도 소와 간음한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미노타우루스의 비극적인 운명이 아이디어가 되기도 했고. 오히려 신화적인 요소는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마지막에 얻어진 상징성이라 보는 게 맞다.


그리스적인 느낌이 강한 도리안 선율도 인상적이다. 아무래도 먼저 들어보는 청자의 입장에서는 주제와 연관시킬 수 밖에 없었는데.

이승열 : 아마 그렇게들 생각할 수 있었을 터다. 그러나 나는 어떤 스케일의 이름을 생각하며 멜로디 라인을 잡지는 않는다. 물론 스케일의 명칭과 그 멜로디의 형태는 다 인지하고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연역적으로 나온 건 아니다. 최근 5, 6년간 영미권의 음악보다 제3세계 음악을 많이 들었다. 그리스나 남부 유럽의 음악도 포함돼 있었을 것이고, 그 영향으로 인해 귀납적으로 나온 멜로디라면 아마 그런 스케일들의 적용이 맞을 것이다. 현상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내가 그 동안 들었던 영국 음악이, 내게 영향을 미치기에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달까. 아프리카 음악에서 한국의 트로트나 일본의 요나누끼(4, 7이 배제된 5음계) 멜로디가 들리기도 하고.


에디터 세대인 90년대 학번에게는 이승열 하면 '한국의 보노'라는 그 수식어가 보편적이었다.

이승열 : 이제 지칠 때도 된 거지(웃음). 어찌 됐건 내 음악의 근본은 록이며, 블루스며, 그런 것들인데, 그런 것 역시 기저에는 민속 음악이 지닌 어떤 에너지랄까 그런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도 되나(웃음).


'Who'를 들어보면 호흡의 꺾임이라든가 리듬감이 민요적인 면도 느껴진다.

이승열 : 사실 한국인으로서 내가 록을 기반으로 한 음악을 하면서 제3세계의 음악을 한다면 그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현상인 것 같다. 그런 부분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를 잡아내 들어주는 청자들이 있다면 감사할 일이다(웃음).



# 매력적인 악기 단보우


새로이 참여한 멤버들이라면?

이승열 : 크레딧에 보면 두 명의 외국인 이름이 있다. 모로코인인 오마르 스비타르, 베트남 전통악기 단보우 연주자 프헝이다.


앞으로의 공연 때 이 연주자들도 계속 함께 할 예정인지?

이승열 : 그렇다. 프헝은 작년 7월과 12월의 단독공연, 그 사이의 페스티벌에 참여했고, 오마르는 12일 단독공ㅇ연에 참여했다. 2013년 들어서는 EBS <공감>에서 두 사람 모두 함께 했다. 이후로도 단독공연과 페스티벌 무대에서 계속 관객들과 만날 수 있을 예정이다. 사실 앨범 발매 전에 이 셋업으로 공연을 진행해 왔기 때문에 낯설지 않으실 터다.


록 뮤지션들이 각 나라의 민속악기에 관심을 갖는 경우는 대중음악사상 드물지 않은 일이다. '단보우'라는 베트남 전통악기에서 록적인 영감을 얻었다고 들었는데.

이승열 : 프헝이라는 연주자가 라디오에서 국악 오케스트라와 연주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됐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서 1분 정도 무반주로 솔로 연주를 하더라. 헨드릭스의 퍼포먼스 같다는 표현을 쓰면 과장이겠지만 어찌 됐건 에너지에 감탄했다. 그 당시에는 단보우라는 악기를 몰랐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하모닉스(배음)도 굉장하고 해서 페달 스틸 기타 같기도 했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단선율이었다. 기타는 아님이 분명한데 앰프를 거쳐서 증폭된 소리고, 그러면서 어택도 강하고. 그 자체고 록적, 아니 록 솔로잉이었다.


'개가 되고'의 마지막 솔로잉도 단보우의 그 솔로 악기로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인지.

이승열 :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곡에 있어서 시그니처가 되는 주된 리프 등은 원래 악상을 따라야 하지만 중후반부(3분 50초대)의 그 솔로는 임프로바이제이션이 맞다. 프헝의 장기였다.


처음에 들었을 때 마치 기타리스트 에릭 존슨의 하모닉스 솔로잉 같았다. 단보우라는 악기가 들어가 있는 걸 알기 전이어서, '설마 이런 역동적인 멜로디를 하모닉스 주법으로 다 친 건가'하고 놀라워했다.

이승열 : (웃음)절대. 하지만 그만큼 단보우의 음색이 록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단보우를 직접 연주해 볼 계획은 없는지.

이승열 : 그렇지 않아도 원래 레슨을 받아 볼까 하는 생각으로 섭외를 했다. 프헝을 처음 만날 때는 '팬'의 마음이었달까. 지인을 통해 단보우도 한 대 구해두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레슨비용이 만만찮더라(웃음). 그래서 차라리 연주를 부탁하는 게 낫겠구나 싶었다. 한국에 계시는 분인 걸 알았으니까. 그런데 언젠가는 배워서 연주를 해 보고 싶다. 줄이 한 줄이고 멀리서 보면 줄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가늘다.


아시아의 단현 악기들이 록 솔로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메가데스 출신 기타리스트인 마티 프리드먼도 중국의 얼후 애호가 중 한 명이고.

이승열 : 기타 연주자이거나 기타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보이더라. 특히 픽업으로 받아서 증폭시키니까 에너지도 있고.



# 울림(ambience), 그 기록의 과정 : 사람>기계


이번 앨범은 울림 자체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알고 있다. 특히 홍대 카페 공연장인 벨로주에서 6트랙이 녹음됐다고 들었는데, 벨로주의 어떤 점이 '이 곳의 소리를 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는지.

이승열 : 크게 두 가지인데 우선 지난 해 1월, 일렉트로닉 뮤지션 카입Kayip(이우준, 3집 공동 프로듀서)과 조인트 공연을 한 적이 있다. 내가 DJ처럼 3집의 음악을 갖고 평소에 유지하던 밴드 셋업이 아니라 랩탑 등 여러 사운드 메이킹의 툴을 이용해 <Why We Fail>의 음악들을 소스로 해 가공한 결과물들이 한 공간에서 어떤 앰비언스를 갖는가 하는 게 궁금했다. 유앤미블루 시절부터 이승열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도 역시 공간감에 관한 것 아니었나. 몽환적이고, 싸이키델릭하고. 그런 느낌을 현재의 내 감성으로 만져본 다음 그것이 갖는 울림을 느껴 보고 싶었다. 힘든 만큼 보람 있었는데, 그건 이번 앨범의 울림에 대한 단서가 됐다.

벨로주라는 공간의 공명이 이상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도 이 곳의 민상용 엔지니어(싱어송라이터, 드러머)를 알게 된 것이 컸다. 사실 그 전에 네이버 <온스테이지>에서 만난 그에게 반했다. 애티튜드랄까. 선입견이 없되 원칙이 있으면서 또한 여러 가지 시도에 대해 열려 있다. 그렇게 그 분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냉정히 벨로주는 지하공간인데다 커튼을 치긴 했지만 콘크리트벽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민상용 엔지니어에 대한 믿음이 '벨로주라면 편하게 공연하고 녹음할 수 있겠다'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결과는 물리적인 면에서도 그렇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흡족했다. 벨로주를 선택한 두 번째 이유다.


녹음의 실제적 과정이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이승열 : 2012년 말에 민상용씨를 찾아가서 '4월에 했던 공연을 토대로 이러한 곡들이 나왔고, 그래서 이 느낌을 살려서 이 장소에서 녹음을 하고 싶다'고 정중히 부탁했다. 녹음은 3일 정도 진행됐다. 그런데 사전연습이 흥미로웠다. 플럭서스 지하에 차고를 개조해 만든 스튜디오가 있다. 직사각형의 공간이라 멤버들이 한 쪽에 치우치기도 한다. 해서 네 귀퉁이에 모니터를 놓는데 이게 서라운드 아닌 서라운드가 된다. 간단한 오버에드 마이크로 수음(受音)을 하고, 기타는 직접 연결로 하기도 하고. 그런데 이 공간에서 밸런스가 맞으니 매우 재미있는 울림이 발생했다. 이걸 바탕으로 벨로주에서 녹음을 시작했다. 하루에 2-3프로(1프로는 통상 3시간 30분) 정도. 앰프는 홀보다 바닥이 좋다는 등의 실험도 했고, 보컬은 콘솔을 연결해 직접 녹음을 하거나 작은 앰프를 따로 가져가 소리를 잡기도 했다. 가져간 사운드카드로 다시 뽑기도 하고, 약간 부족한 부분들은 약간의 보정을 했다. 가공적 효과를 배제하되, 노래 부분은 플럭서스 스튜디오에서 살짝 덧칠을 하기도 했다. 약간의 복잡한 층을 갖게 되긴 했지만 결국 결론은 기계보다 사람이 중요하더라.


벨로주의 녹음이 6트랙이라고 했는데 몇 번인지.
이승열 : 크레딧의 글씨가 작아서 안 보이기도 한다(웃음). 1번 'Minotaur'부터 6번 'Fear'까지다.



# 기타리스트, 그의 또 다른 정체성


이승열은 팬들에게 분명 기타리스트라는 정체성도 강하게 갖고 있는 인물인데. 영향 받은 기타리스트가 있나.

이승열 : 아무래도 유앤미블루 시절에는 기타리스트였다고 볼 수 있겠지. 전면에 확 나서는 기타 플레이보다는 공간감을 갖고 벨벳 같은 질감으로 전체를 채우는 그런 플레이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피터 가브리엘의 <Us> 앨범 수록곡인 'Diggin' in the Dirt'같은 곡. 이 곡의 세션을 담당한 데이빗 로즈, 아비브 페이의 연주가 기억에 남는다. 다니엘 라누아도 좋아하고. 이펙팅으로 인해 발이 엄청 바빠 보이는 존 스코필드도(웃음). 그런데 스타일을 말하자면, 야구에서 좋을 때와 나쁠 때의 차이가 확 두드러지는 그런 투수, 그런 연주자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짜릿한 게 있다.


이승열 하면 텔레캐스터가 떠오르는데.

이승열 : 유앤미블루 시절부터 사용해 온 텔레캐스터다. 1997년에 구입한 건데 아주 고가는 아니지만 그게 의외로 좋은 기타다. 미국에서 만들고 마감 작업을 멕시코에서 한 건데, 그래서 시리얼의 알파벳이 AMX다. 넥이 플레임드 메이플(병변으로 인해 결에 특별한 무늬가 생긴 단풍나무. 플레임드, 퀼티드, 버드아이 등의 종류가 있다. 보통 더 고가 -편집자주)이다. 그 가격대에 없는 옵션이었다. 픽업(집음 장치)은 몇번 바꿨다. 원래 넥 포지션엔 텔레캐스터 특유의 양철 커버가 아닌 일반 싱글코일 픽업이었는데, 기억이 정확치 않지만 텍사스 스페셜이었던 것 같다. 브릿지 포지션의 픽업은 시모어 던컨의 핫 레일로 싱글형 험버커 픽업에서 PRS의 드래곤으로, 다시 베어너클의 야드버즈 모델. 그런데 리마인드시켜줘서 다시 바꿀지도 모른다(웃음).


인터뷰가 뮤지션을 자극하게 됐다. 악기 욕심은 있나.

이승열 : 처음 달려 있던 픽업으로 1, 2집을 녹음했다. 그 사운드가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공연할 때 바꾼 거다. 악기 욕심은 없다. 사실 좋은 악기를 찾아낼 수는 있다. 그런데 그 가격을 주고 투자하기에는 좀 꺼려진다. 사실 아직도 특정한 모델의 기타는 미국에 비해 구하기 어려운 편이고 비싸다. 인터넷이 발달하긴 했지만 어쨌든 관세를 물고 그런 불편이 있다. SXSW 갔을 때는 호텔 근처에 그런 센터들이 있었는데. 도보 5분 거리에. 그래서 국내에서는 국산 브랜드를 많이 쓴다. 공방에 가서 직접 쳐보고. 코로나의 텔레캐스터 등 국산 악기를 많이 갖고 있다. 디테일 면에서 아쉬운 면은 없을 수 없지만 그래도 사운드적인 면에서는 훌륭할 정도로 발전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승열 시그니처를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온다면.

이승열 : 정중히 거절하겠다(웃음).


'Satin Camel(바다였던)'을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한다. 에디터의 지인들도 이 곡에 호감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승열 : 반갑다. 나 역시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그런데 만약 후반부 솔로잉에 대해서라면 공은 윤상익 씨에게 돌려야 한다. 이 음반에서 'Bluey'와 'Cynic'을 제외하면 솔로는 다 윤상익 씨의 연주다. 나는 그 외 잡다 지저분한 것들을 맡았지(웃음).


공간계 사운드의 이미지가 강한데. 영향받은 부분이라면.

이승열 : 처음 샀던 '꾹꾹이', 즉 컴팩트 페달이 보스의 OD-1이었다. 86년도 모델. 그리고 펜더의 사이드킥이라고 할 수 있는 스콰이어. 공간계에 매료된 건 역시 핑크플로이드, 유투, 폴리스의 앤디 서머즈 등의 영향이랄 수 있겠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힌트를 얻었던 건 한국에 돌아와서 (신)윤철 형님이 추천해 준 아트록 계열 음반들을 듣게 되면서부터였다고 할 수 있겠다. 킹 크림슨도 나중에 들었고.


신윤철 씨와는 그 전부터 친분이 있었는지.

이승열 : 아니다. 한국에 들어오고 송스튜디오에서 처음 뵈었다. 3집 녹음을 준비하셨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공간계 사운드에 대해서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미국에는 언제 갔는지, 어디서 지냈는지.

이승열 : 84년, 만 14살 때 갔다. LA 올림픽과 대홍수가 있었던 해다. 나는 뉴욕에서만 지냈다.


당시 20세기 후반 세계 대중문화의 첨단 도시였는데.

이승열 : (웃음)그랬겠지. 그런데 뉴욕이란 데가 물론 미국 다른 지역 거주자들에겐 정신없는 도시일지는 모르나, 아시아의 대도시들만큼 정신없고 변화가 빠르지는 않다. 그 안에 다양한 양태들이 있다. 진보, 첨단의 면이 있는 반면 보수, 전통적인 면이 있고. 물론 음악적인 면에서는 확실히 풍요로웠다. 음반가게가 대형 슈퍼마켓만 하고 거기 들어가면 각종 음악들, 샘플링된 CD도 들어볼 수 있고. 라디오도 다양했다. 거의 기타 전문지 같은 정보를 전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부터 케이시 케이섬 등의 가수들이 영어권 각 국가들의 히트가요들을 전해주고. 데이빗 샌본과 하이럼 블럭 등이 기타를 연주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SNL> 밴드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확실히 음악에 대해서는 풍요로웠다.



# 블루스, 꿈이 남아 행복해


'Bluey'는 보컬이며 솔로잉 모두 멋진 블루스곡이다. 2011년 '그들의 블루스를 시작으로 한 블루스 연작임을 밝힌 바 있는데, 후에 이를 따로 묶어서 발표할 계획이 있는지.

이승열 : 아, 그거야말로 꿈이다. 블루스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꿈은 꿈일 때 좋지 않은가. 아닌가? 이뤄지면 더 좋으려나. 여하튼 그걸 생각하면 행복하다. 할 수 있는 게 남아 있다는 거. 내가 하는 음악의 한계나 식상함이 왔을 때 돌아가 기댈, '낙향처' 같은 곳. 그게 블루스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나는 블루스 싱잉singing이 안 된다.


왜? 사실 블루스 연작의 시작이라고 선언하기 이전부터 이승열의 블루스적 요소는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나.

이승열 : 마이너 블루스가 안 된다는 거다. 메이저 블루스는 괜찮다. 그런데 마이너는 '없는' 것 같다. '그들의 블루스'는 메이저 블루스 아닌가. 델타 블루스 같은 느낌도 나고. 할 수 있다, 없다를 떠나서 내게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일종의 꿈이다.


앨범이라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러한 컨셉으로 먼저 공연을 가져 보는 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승열 : 그러자면 스탠더드, 고전을 60~70% 채워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사실 내가 에릭 클랩튼의 야드버즈 시절 곡을 악보와 교본을 통해 접한 적은 있다. 그런데 그 이전의 어떤 원형이나 고전 같은 건 사실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다.


'그들의 블루스'를 한대수 선생과 작업했다. 그 분도 미국 생활을 오래 한 분이다. 록이나 블루스에서 한국어 가사가 가진 가능성 혹은 한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나.

이승열 : 글쎄. 그런 이야기는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묻자면, 블루스의 가사가 투박한 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미국 블루스 고전 가사의 배경은 동네 선술집 그런 느낌인 것 같다.

이승열 : 그런 면이 있다. 그들은 그게 생활이라는 거다. 블루스라는 게 뜬구름으로, 즉 경험 없이 할 수 있는 그런 얘기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조금씩 블루스 신이 형성되고 있지 않나. 내가 대화할 때도 문어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지적인지 칭찬인지는 모르겠지만, 칭찬이겠거니 생각했다. 블루스 가사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하자면, 토착어(vernacular)라는 개념, 즉 매일 쓰는 말로서의 언어가 노래 속 이야기에 반영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좋은 예가 김대중의 '300/30'이다. 보증금 300에 월세 30짜리 방을 찾아 돌아다니는 이야기, 그걸 또 입에 잘 붙는 음운으로 만들었더라. 좋은 쪽에서 '묘했다'.



# 언어 이전의 울림, 한국어 가사의 강박 벗다


한국어로 가사쓰기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 여기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다.

이승열 : 그렇다고 들었다. 발성과 입 모양의 문제 아닐까. 노래를 하는 데 에너지가 들지 않나. 애초에 이런 문제까지도 발생하는 거다. <Why We Fail>의 '솔직히'는 'Secretly'를 3키 내린 버전이다. 원래 영어로 흥얼거리며 써 두었고 부른 노래를 한글로 부르려니 그 자모가 소모하는 에너지가 키를 유지할 수 없게 하는 거였다. 특히 한국어는 연음이 어렵다는 점에서 리듬 타기도 어려운 점이 있다. 데모에서 영어로 녹음한 곡들에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그런데 이 곡은 팬서비스 차원이다. 실제 공연 때는 'Secretly'를 자주 불렀다. 팬들의 요청에 의해 실린 곡이다.


스튜디오 레코딩에서 제거된 자신의 '흠'도 담고 싶었다고 들었다. 흠 아닌 흠인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이승열 : 흠 맞다(웃음). 고음 부분에서 가성으로 갈 때 확 '뒤집어지는' 그런 느낌이 있는데 거기서 껄끄럽게 넘어가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날 때가 있었다. 그런데 뮤지션에게 그 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대로 뮤지션의 감정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흠이라 생각하게 된 건 '그냥 넣죠'라고 조금 떨떠름하게 반응하더라(웃음).


요즘 국내외에서 많은 음악 거장이 떠나고 있다. 무슨 생각이 드나.

이승열 :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 봤다. 누가 세상을 떠났다고 할 때 눈물이 찔끔 날까. 아마도, 에릭 클랩튼?(웃음) 그만큼 친근해서일 거다. 만나본 건 아니지만 타블로이드 보면 세탁기 옆에서 세탁물 들고 동네 아저씨처럼 서 있는 사진이 나오기도 하고, 그게 너무 자연스러운 거다. 그런 모습이 너무 좋았다. 그런 전설 같은 사람이 말이다.


2011년 공연도 왔었다.

이승열 : 그런데 가진 않았다. 가면 너무 아는 사람이 많아서(웃음). 인사하고 긴장해야 하는 자리처럼 됐다. 공연을 즐길 수가 없는 그런 분위기. 에릭 클랩튼 같은 뮤지션이 오면 출동하시는 분들 있지 않은가. 싫다기보다 편하지 않은 그런 거다. 경직되는 나를 발견한달까.


장필순 님과 과거에 만남이 있었는지.

이승열 : 유앤미블루 시절에 한 번 뵌 적 있다. 그 '천둥벌거숭이' 시절에 모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을 때 DJ가 장필순 선생님이셨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뵈었고, 감사 인사 전하려고 통화했을 때 여전히 그 수줍은 목소리로 '소주 한 잔 해요'라고 말씀해 주시더라.


함께하는 공연을 기획해 봐도 좋을 것 같은데.

이승열 : 이것만도 영광이었다(웃음). 가능하면 앨범에 모시는 방법을…아 제주도에서 하면 되겠구나(웃음). 그분이 운영하시는 클럽에서.



# 키워드는 상상력이다


'Cynic'은 변칙 튜닝을 했다고 알려졌다.

이승열 : 후반부만. 전반부는 일반적인 튜닝이다. 'Cynic'의 뒷부분과 'Satin Camel', 'Who'는 변칙 튜닝된 기타를 이용해 한 세트로 연주한 것이다. 스피커에서 들어 보면 오른쪽에서 들리는 사운드가 이 부분인데, 이 곡은 원래 TBS EFM의 라디오 프로그램 징글(로고송)으로도 만들어진 곡이다. 그 당시 기타로 이리저리 곡을 만지면서 스케치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PD님이 사용을 의뢰하더라. 그래서 '나중에 곡으로 만들 건데 그걸 양해한다면 OK', 그래서 만들어진 리프다.


피아노로 작곡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는데, 건반의 화성을 구현하려는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물인가.

이승열 : 나 그렇게 복잡한 사람 아니에요(웃음). 학구적이라고 할 수도 없고. 사실 어떤 변칙 튜닝에 대한 매뉴얼이 있지 않다면 이런 아이디어는 하루 종일 악상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정말 모래사장에서 바늘 하나 건지듯 찾은 거라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무식한' 작업이지. 하루 종일 고민해서 건져지는 건 한 마디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래도 그 한 마디가 갖는 의미로 인해 즐거울 수 있는 게 나라는 음악인의 스타일, 혹은 나 자신이 아닐까 싶다. 그런 미분화된 작업을 힘들어하지 않고 즐기는 성향이 있나보다. 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그 과정이 엄청나게 힘들지 않나. 하나 만들고 찍고, 다시 설치하고 구상하고 다시 찍고. 그런데 나는 그게 힘들지 않다.


지난 앨범에서 새 앨범 <V>를 예고하는 곡이라면.

이승열 : '나 가네'나 '기다림의 끝' 같은 곡에 집중해서 들은 청자라면, 나름 이번 앨범의 앰비언스를 먼저 나타낸 거라고 할 수도 있겠다.


혹시 수록되지 않고 다음을 기다리는 곡은? 그리고 다음 앨범 시기가 빨라질 수도 있나.

이승열 : 다행히 없다. 모두 앨범으로 소화해 냈다. 다음 시기라…조금 걱정이 된다. 4년에서 2년으로 줄었는데 2년에서 1년은 짧은 게 아닌가. 원래 이번 앨범에 아까 언급했던 카입과의 조인트 공연에서 내가 맡았던 부분을 따로 내서 더블 앨범으로 발매할 생각이 있었다. 물론 무리였지(웃음). 그런데 프로젝트로라도 진행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로가 놓지 않는 그런 끈이 있는 것 같다.


곡들이 대곡이 됐다. 풀밴드 원테이크로 녹음하는 과정에서의 부담이나 고민은.

이승열 : 부담은 없었다. 틀릴까봐(웃음)? 그런 건 없었다. 체력도 오히려 문제가 안 됐다. 팬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 이승열 공연은 '둘째 날이 진리'라고. 즉 따로 리허설을 하기에는 비용이라든가 시간의 문제가 있는데, 둘째 날 같은 경우는 그런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에너지를 적절하게 쓰는 법을 알고 있는 거고. 28회 연속공연을 한 달간 하는 동안 무리가 없었다. 물론 내 음악이 차분한 것도 있고. 'Satin Camel' 정도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4, 5테이크 정도가 소요됐는데 마지막 날 거의 잠자는 느낌으로 불렀다.


요즘 중견 뮤지션들 중 이러한 방식으로 음반을 녹음하는 케이스가 더러 있는 것 같다. 어떤 동기가 있다고 보나.

이승열 : 음, 이건 한국 음악 전체에서 일반론적으로 추출해낼 수 있는 문제 같다. 하나 하나를 나눠서 녹음하고 직접 콘솔에 악기를 연결해서 시그널을 뽑아내고. 세션맨들은 편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뮤지션이 자신의 색깔을 나타내는 데 있어 빠르게 하기, 그리고 다듬기가 답은 아니다. 특히 믹싱의 과정에서 소스를 레코딩한 뮤지션만큼 엔지니어가 정교하게 듣고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예컨대 나는 홈 레코딩으로 데모를 정교하게 만든다. 악보를 정교하게 그릴 수 없으니까. 그런데 그걸 제한된 시간 안에,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라고 하는 거? '아니 될 말씀'인 거다, 내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하는 엔지니어도 부재하고. 또한 기술이 발전한다고 하지만 다양화하는 뮤지션들의 크리에이티브에 발맞춰서 가고 있느냐, 그건 별개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요컨대 상상력의 부재다. 상상으로도 어떤 사운드의 존재를, 그 개연성을 인정할 수 있고 뽑아낼 수 있다. 그런 노력이 부재하는 것 같아 아쉽다.


페스티벌이 참 많다. 어떻게 보나.

이승열 : 많은 게 나쁜 건 아니다. 단지 프로그램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겠다. 사실 페스티벌은 했던 곡을 계속 들려주는 것도 있지만 새로운 곡을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하면 좋을 텐데, 한국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페스티벌은 또 다른 놀이공간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으니까. 나는 페스티벌이나 공연 때 이번 앨범의 거의 모든 곡을 공개했다.


해외 페스티벌을 보면 뮤지션들이 신곡을 공개하는 자리로 삼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그에 호응하기도 하고.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풍토가 좀 아닌 편인데, 어색하진 않았나.

이승열 : 물론 내 팬들은 내 노래를 잘 알고 있으니 괜찮은데, 아무래도 한국에서 페스티벌은 앞서 말했듯 아는 노래 나오면 그걸 즐기는 게 되는 모양새이기도 하다. 사실 그게 나쁜 건 아닌 것 같은데. 여기서 공연 프로그래밍의 묘라든가 그런게 발휘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점도 있다. 기획자들도 참 어려울 것 같다. 요즘 페스티벌은 아무래도 신작 앨범 낸 뮤지션들을 많이 부르는 경향이 있는데, 이미 앨범에 나온 곡을 다 선보인 나는 작곡을 다시 해야 하나(웃음). 에디터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데 보다 넓은 범위의 청중을 생각하면 이번 앨범은 새로운 것이고, 이승열의 새로운 음악을 즐기려는 팬들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이승열 : 음, 확실히 고민해 볼 부분이기도 한 것 같다.


교류하는 젊은 후배 뮤지션들이 있는지.

이승열 : 한국의 블루스 신 이야기를 했지만 TBS EFM <Indie Afternoon> 진행하다 보면 괜찮은 뮤지션들이 많다. 특히 괜찮은 핑거 스타일 기타리스트들이 한국에 더러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최근에 앨범을 발매한 드린지 오가 뛰어났다.


젊은 후배 뮤지션들을 보며 안타까운 점이나 조언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이승열 : (웃음)글쎄. 한데 이런 건 있다. 명성이나 성공, 자기의 포지션을 위해 너무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정치적인 수사로 일관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왜 저럴까 싶다. 나쁘다기보다 무언가를 좇아간다는 위태로운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너무 착하기만 해도 답답하다. '약게'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 영미문학관


EBS FM <영미문학관>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도 열심히 듣는다. 어떻게 인연이 됐는지, 그리고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면.

이승열 : 2008년 전신 격인 프로그램이 있었다. 심야에 하는 <잉글리쉬 북카페>. 그러다 지난 해 저녁 9시부터 한 시간 정도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의 섭외가 와서 진행하게 됐다. <북카페> 함께 진행하던 최세희 작가가 다시 연락해 줘서, 고맙게도. 며칠 전 <모래요정 바람돌이>의 원작을 낭독했다. 모래요정이 물을 너무 싫어하는 존재더라. 최근 낭독한 작품은 이디스 네스빗의 <Five Children and It>. 대홍수 이전의 고대에 관한 그런 기억이 투영된 인간의 무의식을 그린 작품인데, 그걸 낭독하다가 모레, '바다였던' 하다가 'Satin Camel'을 떠올리기도 했다(웃음). 마침 우리 프로그램의 에세이도 준비 중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잭 런던의 단편들이다.


9회 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늘 이해해주는 아내에게 감사한다"는 소감이 기억에 남는다. 아내 되시는 분만 이해할 수 있는 이승열의 면모라면.

이승열 : 내가 좀 기분이 왔다갔다하는(moody) 편이다. 내가 왜 밤에 혼자 술잔을 비우는가, 내가 내 부모님에 대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가, 그런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포커페이스가 아니라서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는 편인데 그런 걸 잘 이해해 준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같은 계열에 계신 분인가.

이승열 : 아니다. EBS TV 쪽에서 17년간 장기근속 중이다.



# 찾기 어려운 다리지만, 건너오길

이승열의 음악을 듣다 보면 '절망'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른다. 자신의 음악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단어라고 생각하나.

이승열 : 오히려 일말의 희망이라도 잡을 수 있는 무엇? 주변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인다. 절망을 계속 외치고 비틀어 놓아도 그 안에서 희망적인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는 여지. 주변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다보니 내가 오히려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 중의 하나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뮤지션 이승열을 모르는 어린 세대들에게 자신을 설명한다면?

이승열 : 음……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들과 나 사이에 다리가 없는 게 아닐까. 아니 다리가 없다기보다 찾기 어려운 다리가 아닐까 싶다. 나는 나의 음악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한다. 그러한 나를 알아보는 데는 청자의 노력도 필요하다. 음악이란 쌍방향의 것이다.


본인은 겸손해하지만 앨범의 노트, 그리고 보도자료의 구술 내용(최세희 작가 정리)을 보니 미학적 사고가 깊은 것 같다. 책을 저술할 생각은 없나.

이승열 : 음, 이런 생각을 해 봤다. 중고 CD 사이트에 내 2집이 올라오는 경우가 있더라.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음반인데. 물론 주인이 열심히 듣고 그걸 다른 사람과 나누고자 기쁜 마음으로 내놓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확률이 적다고 생각하니 좀 슬퍼지더라. 그런데 책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그 책이 짧은 시간 안에 중고로 나오는 그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 부분이 정리된 다음에 가능할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 음악전문지, 좀더 확고한 정체성으로 살아남기를


한국에는 음악전문 매체가 거의 살아남지 못했다. 뮤지션으로서 어떤 부분이 과제라고 생각하나.

이승열 : 음, 몇 년 전 뮤지션들이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들을 게 있어야 산다'고. 물론 부당한 면도 있지만 강한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 뮤지션들의 책임이 있었다. 매체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뉴욕에 있을 때 보던 매거진이 <빌리지 보이스>다. 상당히 심도도 있고 어려웠다. 그런데 미국 크리틱의 그러한 특성이 미국 매거진을 있게 했다고 생각한다. <스튜디오24>라면 더 어려워도 괜찮다.


본 매체의 독자들에게 한 말씀 전하신다면.

이승열 :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리고 에디터와의 만남도 반갑게 생각한다. 매체의 모든 스태프들에게 건투를 기원한다. 확고한 정체성으로 반드시 살아남기를 부탁하고, 바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