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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소박한 박스

헌책(방)의 추억.

책을 사 주는 데 인색하지 않으셨던 부모님이 돌변하신 건 중학생이 되기 얼마 전이었다. 32권짜리 외국문학전집을 집에 들여놓으시고는 이걸 다 읽을 때까지 새 책을 사주지 않으시겠노라 선언하신 것.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도스토예프스키니 톨스토이니 고골이니 발자크니 디킨스니 하는 '세계적 작가'들의 이른바 대표작들을 축약본도 아닌 원본으로 웬만큼 읽어치울 수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뭐, 결과적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ㅎ) 문제는 32권을 끝내 다 읽지 못했다는 것. 술술 잘 나가던 진도가 미시마 유키오의 <설국>에서 막혀 버렸다. 안되겠다 싶어 가야바타 야스나리의 작품들을 먼저 읽으려 했는데, 아이고, 이것도 영 읽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30권째에서 스톱.

이후 부모님께 새 책을 사달라고 조르는 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지금 같으면 뭐 어때! 하고 학교 도서관이나 동네 공립 도서관에 갈 수 있겠지만 내가 졸업한 중고등학교에 도서관 따위는 없었고, 집 근처에 괜찮은 공립 도서관도 전혀 없었다. 내 선택지는 내가 (적은 용돈을 쪼개고 쪼개 모으고 모아서는) 직접 사는 것, 친구에게 빌리는 것, 대여점에서 얼마씩 돈을 주고 괜찮아보이는 책을 빌려 읽는 것 이 세 가지였다.


이런 십대를 보내고 대학생이 되었으니, 책에 욕심 없는 인간이 될 수 있었겠는가. 맨 처음 대학교 중앙도서관 2층 열람실에 들어갔을 때가 아직도 기억나는데, 열람실 저쪽 끝에 꽂혀 있는 책들부터 이쪽 끝에 꽂혀 있는 책들까지를 주욱 훑어보며 정체 모를 뭉클함과 설렘을 느꼈다. 수업이 한창 재미없던 1학년 1학기 때는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갔다가 강의실에 너무 가기 싫어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책을 쌓아놓고 잤다 깼다 하며 읽은 적도 많다. 당연히 갖고 싶은 책도 많았는데,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서점들이 마구 생기면서 '무작정 신간 질러보기'는 최고점을 찍었다. 당시에는 신간 10% 할인 제한이 없었고 지금보다 돈 버는 게 덜 힘들었기 때문에 더 과감하게 돈을 썼던 듯.

책 앞에서 쩨쩨하게 굴었던 건 1, 2학년 학기초였는데, 수업 교재를 구입하려고 서점에서 서성거리던 순간에는 그렇게 돈 쓰기가 싫었다. 멀쩡한 책도 교재라고 하면 마음에 안 들었다(그래서 나는 '아무리 예쁘고 재밌고 쉬워봤자 교과서라면 싫음'이라고 말하는 애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개강날 교수님이 자기가 쓴 책의 제목과 출판사 이름을 알려주고 한 학기 동안 교재로 쓰겠다고 말하면 '책 한 권 더 팔려고 수업하는 교수 같으니…'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어 마음이 삐뚤어졌다. 본인의 저서를 교재로 쓴 교수님들의 수업이 영 별로였다는 것은 이 생각을 확신으로 바꿔 놓았다. 그래, 이렇게 내게 책을 팔아먹으려 한다면, 나는 새 책을 사지 않겠어!란 심술맞은 다짐을 앞세워, 학교 근처 헌책방을 순례했다.
 

학교 근처에는 헌책방이 꽤 많았다. 학교 정문 바로 맞은편의 정은서점부터 신촌로터리의 공씨책방, 길 건너 골목 안에 숨어있던 숨어있는책, 홍대 앞에 있던 온고당 등. 가장 자주 갔던 곳은 공씨책방과 숨어있는책이었다. 공씨책방에선 허 웅의 <국어음운론>을 건졌고, 핫뮤직의 샘플 시디들을 구입했었다. 숨어있는책에선 여성문학학회의 <여성문학연구>를 여러 권 구입했었다.


<국어음운론>에 빼곡히 적혀 있던 필기.

이 담담한 글씨체가 참 좋아 보였다.

 
하지만 사실 헌책방에서 구할 수 있는 수업 교재는 별로 없었다. 2학년 2학기 때부터는 전공 수업이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져서(물론 학교에 가는 것 자체는 징그럽게 싫었지만) 수업 교재 사는 게 그다지 아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내가 좋아했던 교수님들은 본인의 저서를 수업 교재로 강요하지 않는 분들이셨고 오히려 나는 스스로 교수님들의 책을 사서 읽어보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하하하하. 이것이 교육의 효과-_-?

헌책방에서 가장 많이 샀던 건 소설책이었다. 신경숙, 은희경, 전경린, 공지영, 조경란, 윤대녕, 김영하, 황석영, 쥐스킨트, 쿤데라…아, 진짜 마구 샀고 닥치듯 읽었다. 지금은 그 책들 중 많은 책을 남에게 주거나 빌려주었다 받지 못했거나 중고서점에 팔아버렸지만, 그때는 가을의 다람쥐처럼 책을 모으고 쌓아 두었다. 가끔 사고 싶은 책을 너무 많이 발견한 날은 울 것 같은 기분으로 헌책방 한구석에서 책을 골랐다. 한꺼번에 일고여덟권씩을 사면 무거워서 집에 들고갈 수가 없었으니까ㅠㅠ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단 한 가지였다. 책이 얼마나 깨끗한가. 표지가 구겨지거나 벗겨지지 않아야 했다. 전 주인의 도장이 찍혀 있는 것도 안 됐다. 표지를 넘겼을 때 누군가의 글씨가 쓰여 있어도 안 됐다. 중간중간에 낙서처럼 기록이 남아있는 것도 사양. 새 책에 가까울수록 좋았다. 나 자신이 책에 줄을 긋거나 글을 쓰지 않는 성미인 탓에, 알 수 없는 누군가의 흔적을 보면 불편하고 거슬렸다. 새 책같아 보일수록 가격이 비쌌지만 그래도 진짜 새 책보다는 훨씬 저렴했으니까.

가끔 책꽂이에서 꺼낸 책에 그 책을 산 사람의 글씨가 떡하니 남아 있으면, 살 것도 아니면서 그 글씨를 빤히 들여다보곤 했다. 보통은 서명과 함께 책을 산 날짜와 살 때의 감상이 쓰여 있었다. 때로는 이 책을 소중히 여겨 달라는 내용이 짧은 편지처럼 적혀 있기도 했다. 그럴 때면, 왜 이 책의 주인은 소중한 누군가가 자신에게 애틋한 마음을 담아 선물한 책을 헌책방에 팔아야만 했을까 궁금해졌다.

책 선물이란 게 그렇지 않나, 받는 사람에 대해 더 생각하게 만들고 더 신경쓰게 만들고. 보통은 내가 좋아하는 책을 선물하니까, 그 사람이 이걸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나, 내가 너무 유치하거나 너무 재미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어쩌나, 제목이랑 표지만 보고 짐이 늘었다며 한숨을 쉬면 어쩌나, 다른 선물을 할 때보다 걱정하게 되지 않나. 최소한 나는, 책을 선물할 때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을 그 사람이 아주 조금이라도 느낌으로써 나의 영혼과 그의 영혼이 일치되는 순간이 단 1초라도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희망하기에, 더 조심스러워지고 조금은 수줍어진단 말이다. 

그렇다면 선물받은 책을 헌책방에서 돈과 바꿔간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 책을 선물한 이의 존재가 더이상 소중하지 않아졌거나, 선물한 이의 마음이 더이상 애틋하지 않아진 걸까. 책꽂이에 꽂힌 책을 넘길 때마다 선물한 이가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지거나 어두워져서 아예 책을 치워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게 아닐까. 서글퍼지곤 했다.


…이렇듯 갑작스럽게(!!) 헌책방에 대한 포스팅을 하고 있는 건, 이번 알라딘 신간평가단 선정도서가 헌책방의 헌책에 관한 도서이기 때문이다(참고로 내가 페이퍼에서 추천한 책은 아니다ㅋ). 다른 리뷰들을 보니 책 속에 소개된 헌책들의 이야기들을 많이 했던데,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내 손을 거쳐갔던 헌책들이 더 많이 생각났다. 한밤중에 헌책방에서 샀던 옛날 책들을 다 꺼내 들쳐보기도 했고, '나도 남들처럼 책에 뭔가를 적어보자'고 노력했던 한 때(아마 대충 스물한두살 때였을 거다ㅎ) 끄적였던 것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너무 오글거려서-_- 지우개로 빡빡 지워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바로 일어났지만ㅋㅋㅋㅋㅋ

생각해 보니 헌책방에 가 본지도 꽤 오래됐다. 신촌에 생긴 알라딘 중고서점을 작년에 여러 번 다녀왔고 얼마 전 일산에 알라딘 중고서점이 문을 열어 두어번 가보긴 했지만, 진짜 헌책방에 가본 건 몇 년 된 것 같다. 홍대에 갈 때마다 여러 헌책방들을 지나치는데 예전처럼 쉽게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한다. 정은서점은 그새 문을 닫았다.

지금의 내게 헌책방은, 과거의 어떤 시기를 나타내는 이정표가 되어 버린 걸까. 
20대 초중반, 헌책방 문을 열고 들어가 책꽂이 가득 들어찬 헌책들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먼지 냄새를 맡고 있으면 문득 마음이 녹아내리며 무장해제되던 순간들은 더이상 현재진행형이 아닌 걸까. 하긴 지금의 나는 그때만큼 책 욕심이 많지도 않으니, 상자 속의 초코파이가 다 떨어질 때까지 먹어치우는 어린애처럼 눈에 보이는 책을 마구 사모으던 그때의 나는, 이미, 사라져 버린 거겠지. 다시 볼 수 없는 어딘가로, 영영 떠나 버린 거겠지. 하, 갑자기 또 서글퍼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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