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 강연회 <책, 영화, 위키, 그리고 인권> @창비카페

2012. 9. 26. 22:33흐르는 강/소박한 박스

 

지난 3월, 강정마을을 위한 시노래 콘서트 '구럼비, 우리의 무한한 혁명에게' 때 가 보고 한 번도 못 가 봤던 인문카페 창비에 반년만에 다시 갔다. 창비에서 열린 김두식교수님 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서ㅋ 아직 내게는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카페들이 '마음 편히 찾아갈 수 있는 곳'보다 '출판사와 관련된 행사 있을 때 가는 곳'에 가까운데, 나중에 행사 없을 때도 좀 마음 편히 가봐야지. (근데 말이 쉽지 다들 홍대쪽에 몰려있는 데다가 내가 홍대에 가는 건 거의 공연을 보러 가는 것 때문이니 굳이 카페에 갈 필요가 없...아 쓸데없는 얘기를 또 길게 쓰고 있군-_-)

 

각설. 이날의 강연회는 일반적인 북콘서트가 아니라 교육노동자-뭐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쓰는 용어이긴 하지만-를 대상으로 하는, 게다가 특정 교과를 전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회라, 아무래도 학구적이고 시의성 짙은 성격이 아닐까 했는데...생각보다 훨씬 유쾌했다. 참석한 사람들도 꽤 많았고! 

 
김두식 교수님. 내 자리는 좀 뒷쪽이었는데, 줌을 최대한 땡겨서 찍은 것.

강연회의 제목은 <책, 영화, 위키, 그리고 인권>이었는데, 교육과 인권에 대한 여러 '고민의 지점'들을 던져주는 내용이었다. 기억나는 말씀들을 랜덤으로 적어보면서 간단한 감상을 덧붙이자면......(간단히 메모하며 듣기는 했지만 당연히 워딩 그대로는 아니다. 뉘앙스를 전달하는 정도일 듯)

 

* 교육자 집안 아이들의 공통점 : 공부를 못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공부 이외의 다른 길이 허용되지 않고 모험이 쉽지 않다, 규범에 얽매여 살 가능성이 높다, 육두품(ㅋㅋㅋㅋㅋㅋ)으로서 매사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늘 평가받는다는 느낌을 갖고 살아간다.

- 매우 동감! 특히 마지막 것 매우매우 동감!! 그래서 나는 교사 집안의 자녀들을 만날 때면 약간의 안쓰러움과 '이해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교사 부부는 매우 비추한다ㅋㅋㅋㅋㅋ 한 사람만 교사여도 피곤하고 답답할 텐데 세상에 어머니 아버지가 다 교사라니. 세상 사는 게 얼마나 갑갑할까.

 

* 나는 어떤 사람인가. 직업 선택 자체가 '자기가 누구인지' 보여준다. 내가 쓴 글과 내가 만나는 사람 역시 '나'다. 중산층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란 사람으로서의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그 한계를 조금이라도 극복해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대한문에 있는 쌍용차 분향소에 간다. 분향소 앞에 앉아 있으면 그냥 지나가는 사람과 거기서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이 확연하게 나뉜다. 처음엔 어색하고 낯설어도, 그런 경험을 해 보는 것이 내 경계를 넓히게 해 준다. 모두에게 자신의 경계를 넓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  이건 내 한계인데, 나는 결국 비관으로 낙관하는 인간이라,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고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로 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인간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그 인간의 의지나 바람이나 기질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건 그 인간을 둘러싼 상황/배경/세계이고, 그 상황/배경/세계라는 건 특정한 개인의 의지나 바람이나 기질로는 좌지우지할 수 없는, '거대한 그 무엇'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억울하다는 마음이 아주 조금 들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특정한 개인의 의지나 바람이나 기질이 어떠한 행동/실천으로 꾸준히, 집요하게, 끈질기게 나타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추상을 형상화해 상황/배경/세계의 일부로 편입시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나 역시,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경계를 넓히려는 작업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계속 쿡쿡 찌른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경계에 압사당해 나라는 존재 자체가 뭉개질테니까.


* 인권 영화를 어떻게 그렇게 많이 봤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세상에 있는 모든 영화가 인권 영화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이 인권에 대한 이야기다.

-  그렇기에, 세상의 하잘 것 없어 보이고 쓸모없어 보이는 그 무엇에서도, 이야기를 찾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꼭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더라도.

 

* 체사레 베까리아Cesare Beccaria의 <범죄와 형벌>이라는 책이 있다. 볼테르가 주석을 달아 유럽에 전파시킨 책이다. 이 책에, 범죄 예방의 가장 좋은 방법은 형량을 높이고 잔혹한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고 예외없는 처벌을 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인간은 해악의 크기에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비록 극미한 것일지라도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공포를 느낀다. 요즘과 같이 형벌의 강도를 높이자는 얘기가 쉽게 많이 나오는 때일수록 그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사실상 사형 폐지국인 한국에서 형벌의 강도를 높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관대한 형벌일지라도 사면 등의 예외를 두지 않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한국에서 확실하고 예의없는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사면권이 남용되고 있지는 않은가? 범죄를 양분하는 시각은 과연 온당한가? 주가조작 등 화이트칼라들의 범죄가 이른바 Street Crime이라 불리는 폭행, 협박, 강도 등보다 더 관대한 처벌을 받고 있는 것은 합당한가? 개인의 범죄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국가의 폭력이다.

-  들으며 크게 공감했다. 관대한 처벌일지라도 예외없이 실행하는 것, 그것이 무시무시하지만 예외를 많이 두는 처벌보다 훨씬 유효하다는 말씀은 사회적으로도 매우 유효한 수칙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에서의 삶에도 매우 큰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이고. 저 말씀을 들으며 은진수나 이건희를 떠올린 게, 나뿐만은 아니겠지. 국가란 내가 늘 섬겨야 하고 받들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언제라도 내게 폭력을 가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무조건적인 애국을 타인에게 주장하거나 주입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테다.



* 인권은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야 한다. 최근 한 드라마로 이슈화되기도 한, '김수근'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 드라마 속의 '공간사옥'이라는 곳을 만든 사람이고, 한국 건축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런데 그가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장본인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바뀐 그곳은 고 김근태씨가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고문을 받았던 곳, 고 박종철 열사가 죽음을 맞은 곳으로 유명하다. 설계 당시부터 오직 '고문만을 위해' 계획되고 지어진 까닭에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복도에서 보면 쭉 놓인 방문만 보일 뿐 층계나 엘리베이터처럼 외부로 나갈 수 있는 통로를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그 건물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절망이었던 것이다. (여러 방문 중 어느 하나를 열면 층계가 나온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 자체를 꺾어버렸다고) 

- 이날 들은 말씀 중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사람이 김수근이었다니, 하아......전혀 몰랐다, 전혀. 이래서 더 배워야 하는구나. 더 공부해야 하는구나. 더 알아야 더 보인다는 건 정말 맞다.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을, 또다시 떠올렸다. 

 
 

* 오늘날은 오독의 시대다. 비정규직과 교육이라는 두 바퀴를 돌리는 것으로 움직이는 사탄의 시스템이 존재한다. 그 속에서 교사의 역할이란 결국 아이들에게 자극을 주고 호기심을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완전평준화 같은 정책/제도적 해결책도 필요할 테고, 두 번째 기회를 주는 문화로의 전환 등 사회/문화적 해결책도 필요할 테고, 바깥에서 연대를 구하려는 개인적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하나의 원칙을 정해 놓는 것도 좋겠다. '무조건 안 때린다' 같은. 결국 교육이란 '거칠 것을 다 거치고 좋은 관계가 되는 것'일지 모르니까.

-  교육이 '해결책' 대신 '문제'로 전락한 지금, 사탄의 시스템 속에 종사하는 개체가 되어 버린 지금, 결국 내가 할 일은 지금 내가 선 이 곳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래디컬한 선택을 하는 것이리라. '아이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해주어도 되는가?' '어디까지 진실을 말해주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생길 때는, 그 '진실'의 제한선을 먼저 그어놓고 시작하려 들지 말고, 섬세하게 진실의 다층을 살피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내가 진실이라 생각하는 것이 어떤 시각에서, 누구의 입장에서 진실인가? 내가 전하려고 하는 진실은 벽의 편인가 알의 편인가? 이것부터 생각해 본다면, 쓸데없는 갈등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루키아저씨의 말마따나, Between a high, solid wall and an egg that breats against it, I WILL ALWAYS STAND ON THE SIDE OF EGG.

 

'뜨거운' 이야기들을 가볍지 않으면서도 흥미롭게 들려주신 김두식 교수님.


보너스! 로, 이날 받은 김두식교수님의 사인 인ㅋ증ㅋ 언젠가부터 작가들 사인을 자꾸 받네. '저자사인본' 같은 데 별 취미 없는 삶을 ***년간 살아왔는데...흐음. 김연수작가님의 영향인가ㅋㅋㅋㅋㅋㅋㅋ 
 

『불편해도 괜찮아』의 후속작, 『욕망해도 괜찮아』
김두식 '드림'이라는 말의 느낌이 참 겸손해서,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