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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소박한 박스

잘 지내나요, 마왕.

히든싱어 신해철 편을 보고 있다.  첫 화면을 볼 때부터 눈물이 났는데 계속 그렇다. 닦으면서 보고 있다. 사실은 두 번째 보고 있다. (그리고 굳이 덧붙이자면, 재즈카페 빼고는 다 맞혔다) 

 

 

작년 이맘때도 참 많이 울었다. 10월말부터 11월 내내, 그냥 이름만 봐도 눈물이 났었다. 삶도 그렇게 치열했던 그에게, 죽음도 왜 그런 방식으로 왔었어야 했을까. 왜 그는 이런 방식으로 이렇게 빨리 가야만 했을까. 참 억울했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놀라기도 했었다. 이렇게 나에게 신해철이 이렇게 중요했던가? 나는 고스를 듣지도 않았고, 넥스트 공연 한 번 가 보지 않았고, 그의 모든 말과 모든 행동을 다 좋아하지도 않았었는데.

 

근데, 그 시절에는 그랬다, '가요 좀 듣던' 나는 공일오비와 넥스트와 전람회와 토이를 들었고, 윤상과 윤종신과 김현철과 이승환을 들었고, 유앤미블루와 자우림과 노브레인과 크라잉넛을 들었고, 삐삐밴드와 원더버드를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0대 소녀의 허세이기도 했다. 모두들 좋아하는 서태지도 좋지만  뭔가 더 좋은 게 있을 것 같았으니까. 인디를 찾아 듣고 홍대 클럽에 갈 만큼 적극적이진 못했지만 H.O.T나 S.E.S를 좋아하는 애들과 '한묶음'이고 싶진 않았다. 나 참, 굳이 그럴 것까진 없었는데.

 

매일매일 대여섯 개의 카세트테이프를 갈아 끼우며 노래를 듣고 또 듣던 소녀 시절. 어느 날 신해철 목소리가 듣고 싶어지면 하루종일 무한궤도, 신해철 솔로, 넥스트, 노땐스 앨범, 정글스토리 앨범, 모노크롬, 크롬을 듣고 또 들으며 숙제를 하고 문제를 풀고 일기를 끄적이고 편지를 쓰다 잠이 들었다. 친구와 어제 FM 음악도시에서 들은 사연을 얘기했고, 불멸에 관하여와 the ocean 중 뭐가 더 좋은지에 대한 결론을 지으려다 실패했고, 정글스토리도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도 안 봤으면서 '영화에 비해 OST가 너무 고퀄'이라 떠들었고, 친구가 써준 HOPE 가사를 다이어리에 끼워 놓고, 독서실 책상 앞에는 해에게서 소년에게 가사를 붙여놨었다. 남들이 뭐래도 네가 믿는 것들을 포기하려 하거나 움츠러들지마, 힘이 들 땐 절대 뒤를 돌아보지마, 앞만 보며 걸어가야 해,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 마, 변명하려 입을 열지 마, 그냥 웃어버리는 거야,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 너의 날개는 펴질 거야…아아, 아이고, 아아.

 

아직도 실감이 안 나는데. 포털사이트에서 '신해철'이라는 이름 아래 사망 연월일과 '향년 46세'라는 단어를 놓아둔 게 소름끼치는데. 1주기다. 벌써 1년인가, 아니면 아직 겨우 1년인 건가. 시장, 교주, 마왕. 그가 다시 태어나면 한 번 더 결혼하겠다던 아내분도, 그와 똑같이 생긴 지유도, 그의 웃음을 닮은 동원이도, 그가 없는 세상을 360일 넘게 살았는데, 겨우 1년밖에 안 된 건가. 그 시간 동안 여기 있는 사람들보다 그가 흘린 눈물이 더 많을 것 같다는 건, 내 허튼 상상이었으면 좋겠는데.

 

 

 

마왕, 잘 지내나요. 종종 당신이 생각납니다. 때때로 많이 그립습니다.

 

 

 

작년 신해철 추모 한겨레 기사 : 여기

올해 신해철 추모 한겨레 기사 : 여기

팬클럽 철기군에서 준비한 신해철 1주기 타임라인 : 여기

 

 

그리고, 가끔 신해철이 생각나면 훑어보는 신해철 트위터(https://twitter.com/cromshin)에서, 몇 개 가져와 봄.

 

 

 

 

631개의 트윗 중, 거의 초반부의 트윗. 이런 류의 피식, 웃음 나오게 하는 트윗들로는 이 아래의 것들이 있다.

 

결론은 언론이 잘못ㅋ 이거 왠지 유형같다?

 

으하하하하하. 쓸모의 면에선 여자팬이 압도적인 것이다.

 

시아주버니 챙기는 제수씨들ㅋㅋㅋㅋㅋㅋㅋ

 

'와서 보구 웃어.'라고 말해놓고 진짜 웃으면 화낼 거면서ㅋㅋ

 

'아이돌 출신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며 한심해 했을 남궁연씨 표정이 떠오른단 말이다.

 

 

 

사람들이 '신해철답다'는 단어를 들을 때 바로 연상할 수 있을 것 같은 뉘앙스의 문장들.

 

개인의 삶과 가치를 규정하는 것은 악 그 자체다. 모욕은 가능하지만 통제는 불가능하다. 인상적인 문장.

 

자유의 가치를 잘 알던 상식적인 인간-내가 생각하는 신해철은 딱 그 정도였는데. 엄청나게 과격한 인간도, 이념에 경도된 불순분자도, 건방지고 예의 없는 날라리도 아니었는데. 왜 어떤 이들은 사람들이 그를 볼 때마다 색안경을 끼게 했을까.

 
 

그리고, 애정 어린 진지함.

 

열띤 목소리로 20대 개새끼들 운운하던 사람들 떠오른다 하아…

 

 

 

 

가르치려 하지 않는, 이런 충고, 좋은 충고.

 

자신을 전부 걸 만한 싸움이 올 때까지!

 

값싼 격려는 하는 것도 받는 것도 거절합니다.

 

'발작하는 사회 분위기', 5년 후인 지금은 더 지독하다.

 

누구 눈치도 보지 말고 누리고 즐기라는!

 

그릇된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노는 게 낫다.

 

이 달에는 대선이 있었지.

 

정말 열망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혼내는 대신 닥치고 힘내라고 다독인 그.

 

 

 

누군가는 그가 나이 들어 무뎌지고 둥글어졌다고 했다. 이혼도 하지 않고 행복한 아버지인 양 살고 있는 게 그답지 않다고 했다.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그다운 게 뭔데? 아내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면 무뎌지는 거냐? 라고 비웃어주고 싶었다. 사랑을 준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 사실은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것이었음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지유와 동원이를 통해 그가 깨달았다고, 나는 상상한다.

 

TV에서 지유와 동원이를 볼 때마다 어쩌면 애들이 저렇게 사랑 많이 받은 티가 날까 생각하면서, 사랑을 많이 받는 아이는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말을 해도 반짝반짝 윤기가 나는구나 감탄했었다. 부디 지유와, 동원이, 아버지의 사랑을 잊지 않고, 잘 크고, 잘 자라길.

 

 

 

 

 

조심하는 게 사랑이에요, 하아.

 

 

저 이빨을, 지유는 나중에 발견했을까. 발견한 지유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리고.

 

함께였고, 외롭지 않게 해 주었던 당신의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제 인생의 일부, 특정한 시간에 함께 해 주어서 고마워요.

 

이 뉴스를 듣고 그의 트윗을 보았을 때는 몇 달 후 그런 일이 생길 줄 상상도 못했지.

 

정말, 있을 때 잘해야 한다. 모든 것이 그렇다.

 

 

 

 

 

10월 27일 이틀 전날 밤, 마왕,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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