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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소박한 박스

『엄마. 나야.』, 그리고.

엄마. 나야.




라는 책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된 건 다른 책을 주문하러 알라딘에 갔을 때였다. 앞부분 조금밖에 읽지 못했던 진은영 시인과 정혜신 박사의 대담집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덕분에 세월호에서 희생된 학생들의 생일을 안산에 있는 치유공간 이웃에서 챙겨주시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던 터였다. 생일 모임 때마다 시인들이 아이들의 목소리를 빌려 '생일 시'를 써준다는 것도 그 책을 통해 알게 됐었다.


사실 그 때는 반신반의했었다. 진은영, 정끝별, 김소연, 김민정,허수경, 신미나, 나희덕…같은 시인들이 이렇게 아이들을 잊지 않고, 아이들을 위한 시를 써 주고 계시다니 참 감사하다…는 마음이 우선이었지만 마음 한 켠에는 과연 그 시가 정말 아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시일까? 하는 생각이 남았다. 아무리 시인들이 아이들의 눈과 귀로 세상을 듣고 본 후 쓰는 시라고 해도, 그 시는 그 시인의 시이지 아이들의 시가 아니잖아. 그런데도 정말 그렇게 위로가 될까? 부모님들께 내 아이의 이야기 같다는 느낌을 줄까? 그냥 연극 같거나, 드라마 같다고 느껴지지는 않을까? 하는 의심이 자꾸 생겼다. 정말 같잖게도 말이다. 아이들과 부모님을 위해,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인 주제에.


그러던 차에 저 책을 보고, 어, 저거, 혹시? 하며 책 소개글을 읽었다. 생일시를 묶은 책이라고 했다. 궁금했다.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던 의심의 진위를 확인하고 싶었다. 슬퍼서 못 읽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별로 안 했다. 이것 역시 같잖은 소리지만, 금요일에 돌아오렴이나 눈먼 자들의 국가, 멈춰버린 세월,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도 많이 울지 않고 읽었었으니까. 이것도 잘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틀렸다.




직장 사무실로 책이 도착한 날. 출퇴근길에 팟캐스트를 듣지 않을 때는 책을 읽으며 길을 걷는 습관이 있는 나는 이 책과 닥터 프로스트 8권 중 무엇을 읽을까 하다가 이 책을 선택했다. 목도리를 칭칭 동여매고, 장갑을 끼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욜훈의 음악을 들으며, 이 책을 들고 걸었다. 표지를 보고 마음이 아파 잠시 멈췄다가, 이제는 더이상 낯설지 않은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읽어보며 더 마음이 아파졌다. 정혜신 선생님과 이명수 선생님이 시인들에게 보냈다는 '생일시 청탁글'이 INTRO로 실려 있었다. 훑어본 후 책장을 넘기니, 첫 시로 곽수인 학생의 생일시가 실려 있었다.


그리고 나서부터는.


내가 몇 편이나 시를 더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순서대로 몇 편을 읽다가 문득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을 때 오래 기억에 남았던 건우가 떠올라 김건우 학생의 생일시를 읽고, 며칠 전 페이스북에서 유경근 씨의 게시물을 봤던 게 떠올라 유예은 학생의 생일시를 읽었다. 그러고 나니 얼굴이 눈물범벅이라 시를 더 읽는 건 고사하고 길을 걸을 수조차 없었다. 내가 워낙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긴 하지만, 이렇게 길에서 울고불며 책을 읽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단 말이다. 너무 슬퍼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와 이거 너무 슬프다, 어떻게 하지, 나 너무 슬프다, 이렇게 슬플 줄 몰랐는데…"를 되뇌이다 결국 더 읽기를 포기했다. 눈물 콧물을 닦고 나니 찬바람에 얼굴이 찌릿찌릿 아파왔다.


더이상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 엄마. 나야.가 책상 위에서 해를 넘겼다. 나는 과연 이 책을 이 겨울에 다 읽을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모르긴 몰라도, 그날 퇴근길에서 울었던 것보다는 몇 갑절을 더 울어야만 마지막 시까지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읽지? 어떻게 해야 덜 울고 읽지?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보니




2016년 1월 1일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626일째 되는 날이다. 아직 배조차 못 꺼냈다. 아홉 사람을 바다에 두고서도 염치 없게 사건 마무리를 운운하던 이들은 '더 이상은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는 약속까지 해가며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문제를 마무리하시겠단다. 이쯤 되면 그들이 어느 나라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인지, 궁금해질 정도다. '국민'들을 이런 방식으로 대하는 게 나라라면 도대체 나라란 왜 있는 거지.


그래서, 올해의 첫 포스팅은 더더욱 세월호로 하고 싶었다. 나는 아직도 4월 16일을 잊지 않았고, 그날 '전원 구조'됐다는 인터넷 뉴스를 보며 느꼈던 안도감과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새벽까지 뉴스를 보며 '도대체 구조가 되고 있는거야?'라며 느꼈던 답답함이 생생하고, 매일 아침 오늘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며칠째인지를 확인한 후 노란리본 뱃지를 옷에 달고 출근하니까. 나라는 내게 그 날을 잊으라고 해도, 바닷속에 있는 아홉 사람이 뭍으로 나오고 유가족들이 원하는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때까지 그 날을 죽어도 잊지 않을 거니까. 올해도 이 노래들을 듣고, 또 듣고, 또 들을 거니까.




이승열 - A Letter From



이승환 - 가만히 있으라



루시드 폴 - 아직, 있다



김창완 밴드 - 노란 리본



조동희 - 작은 리본



김인영 - 잊지 않을게



신용재 - 사랑하는 그대여



잊지 않아요, 세월호. 절대로.

REMEMBER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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