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22. 23:53ㆍ흐르는 강/소박한 박스
이 글 전체가 뒷북이거나 뜬금 없는 소리일 수도 있는데, 올해 들어 내가 하기 시작(했지만 싹이 튼 지는 오래 된 듯)한 고민 혹은 생각이라 블로그에 좀 적어두려고 한다. 나중에 통째로 없앨 수도 있겠지만 그건 뭐ㅋㅋ 그때 하기로 하고.
월요일이니 편한 일주일을 위해서는 직장에서 야근을 좀 했어야 했는데 일찍 왔다. 소닉붐X아르마딜로 들으려고.
그저께 본 줄리아드림 공연의 여운이 남아서 어젯밤에 poulzzak님이 찍어 올리신 신도시 공연 영상 중 댄스뮤직(솔직히 이런 건 하루에 열번씩 봐야 한다. 그래서 "링크"도 걸어놓을 거임!!!!)을 계속 돌려 봤다. 아니 이놈의 여운이 당최 없어지질 않잖아요. 근데도 그 음악이 너무 좋은데다가 음원은 없어서ㅠㅠ 오늘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자마자 영상을 몇 번 더 돌려봤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는 casus belli 들으며 나도 모르게 헤드뱅잉하다가 오랜만에 '저여자 미친여자…???'하는 누군가의 표정과 맞닥뜨리고. 하아. 엄청 정신 없는 오전을 보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침이 평화로운 편이었어서 보통은 월요일 아침에 못하는 일, '직장에서 타임라인 훑기'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줄리아드림 앨범에 대해 박근홍씨가 최근 소닉붐X아르마딜로에서 코멘트한 내용을 읽게 됐다. 3, 4곡을 앨범 두 장으로 늘린 것이라는 요지의.
나는 그 코멘트가 마음에 안 들었고 전혀 동의할 수 없었지만 승열오라버니 덕분에 평론가나 리스너들의 평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된 지 오래된 터라(보통은 다 맘에 안 들어서 '어디 뭐라고 하나 보자' 같은 심정으로 읽기 때문에ㅋㅋㅋ)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 정도의 느낌. 그럼에도 어찌저찌 글을 따라가다가 결국은 박리더님이 페이스북 페이지에 쓰신 글까지 읽게 됐는데 그러고 나니 마음이 슬퍼져서(진심) 오늘은 좀 일찍 퇴근하여 소닉붐X아르마딜로를 찾아들어야겠다고 생각함.
근데 방송을 제대로 못찾아서ㅋㅋㅋㅋㅋ 32-2회를 다 들어버렸다. 이 방송이 밴드 디스커버리 특집이었는데 거기서는 황경수씨도 박근홍씨도 줄리아드림에 대해 좋은 얘기를 하셔서 어 내가 뭘 들은 거지 하고 혼란에 빠짐. 밴드 디스커버리에서 우승할 것 같은 팀을 선정하는 거였는데 줄리아드림이 독보적이다, 연주하는 퍼포먼스와 사운드에서 굉장한 이미지를 준다, 대단하다, 같은 멘트가 이어져서 뭐야 이걸 듣고 박리더님이 화냈을 리가 없잖아…심지어 다른 밴드에게 못할 말을 하지도 않는데??? 하다가 32-2회가 아니라 32-1회라는 걸 깨달음. 내참ㅋㅋㅋㅋㅋ
32-2회. 밴드 디스커버리 내용.
그리고 문제(!!)의 32-1회.
박리더님이 분노하신 건 소란의 고영배씨가 피처링한 에이퍼즈의 싱글 '좋아'에 대해 진행자들이 평하는 부분 때문. 근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나도'가 더 정확하려나) 그 싱글을 좋아하지 않았다. '매번 여자에게 차이는 한 찌질한 남자가 첫눈에 반한 여자에게 떨리는 마음을 표현해 고백하는 노래'라는 컨셉은 더욱 좋아하지 않았다. 나따위가 뭐라고 이런 말을 쓰는 게 좀 미안하지만; 그냥 가볍게 듣는 가요 같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싫을 것까진 없으나 굳이 여러 번 찾아 들을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좀 과하다 싶은 멘트도 확실히 있었지만('ㄷㅊ 있으신 기타 치는 여자분' 같은 말은 진짜 싫지만 이 나라에서 저 정도면 뭐-_- 양호한 편이지ㅠㅠ) 어떤 사람은 저렇게 싫어할 수도 있겠지 뭐, 정도의 감상이 처음엔 들었다.
그러나 '정말 ㅈ같았어요.' '모든 게 ㅈ같아요.'라는 말은 열심히 음악을 만든 뮤지션 당사자에게는 분명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이겠지. 특히나 황경수대표가 이 음악에 대해 좋은 평가를 했던 걸 생각해 본다면 어떤 전문가에게는 매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음악을 또다른 누군가가 '특별한 이유를 대지 않고 너무 싫다며 욕했다'는 데 대해 충분히 화를 낼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박리더님이 (심지어 줄리아드림 욕을 들은 것도 아닌데) 화를 내신 거나 소닉붐X아르마딜로에서 그런 말을 한 거나 자유로운 자기 생각의 표현이라고 본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싶긴 한데.
마음이 복잡해진 이유는 나 역시 어떤 상황에서는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해 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놓고 욕은 안하겠지만! 그리고 창작자라는 사람들을 기본적으로 존중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분명 어떤 공연을 보거나 어떤 음악을 듣고 나서 '하 뭐야 이거 이상해 별로야' 같은 말을 한단 말이다. 그리고 나서 그게 너무 거지같거나 재미없다고 쓰기도 했겠지. 어떤 창작자에겐 충분히 상처가 될 수 있는 것이더라도. 세상의 모든 창작자가 다 '창작했다'는 이유만으로 지지받을 수는 없어! 라는 생각으로. 물론 그 '별로다'라고 느끼는 데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참 좋겠지만, 사실 좋고 싫은 건 근거가 없기도 하다. 내가 꽂히면 좋은 거고, 영 느낌이 안 오면 안 좋은 거니까. 심지어 느낌이 안 오는 데서 그치지 않고 불편하거나 거슬리면 싫은 거겠고.
이건 나 자신이 오랜 동안 단련됐기-_- 때문이기도 한데. 기본적으로 나는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리가 없으며 세상에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만큼 존재하고 나를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내 힘과 의지론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좋게 봐주거나 나에게 잘해주는 건 애초부터 바라지도 않고;; 그냥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잘해주는 게 내 정신 건강에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좋게 봐주기도 하겠고 누군가는 그래도 계속 관심 없겠고 누군가는 그래봤자 싫어하기도 하겠지만, 그거는 뭐 그 누군가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지. (대신 그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정성이나 애정의 표현을 받을 땐 무지하게 사소한 것일지라도 매우 감동한다. 어쩌다 보니 이런 인간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이 반대의 역도 성립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걸 누군가가 되게 나쁘게 말한다면 엄청 슬프거나 속상하거나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걸 다 좋아할 순 없으니까, 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러다 보니 평론이든 평가든 코멘트든 감상이든,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누가 맘에 안드는 말을 해도 '흥 어디 뭐라고 떠드는지 보기는 할 테니 실컷 해보세요' 같은 태도로 임해 왔는데. 사실은 그 태도 자체도 엄청 폐쇄적인 것 아니야? 하는 생각이 새삼 들어 버렸다. 어떤 것에 대해서는 나 역시 너무 쉽게 싫어하면서 또 너무 신중하지 못하게 평가했을 거라는 생각도 함께. 그 평가가 누군가에게는 엄청 큰 상처일 수도 있는데.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딨냐, 삶이 상처인데, 자기 상처는 자기가 알아서 극복해야지, 같은 생각으로 말하고 행동했겠지.
같은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엄청 복잡해지고 말았다.
사실 요즘 줄리아드림을 파고 있긴 하지만, 저는 줄리아드림 팬이 됐어요! 같은 문장을 쓰는 데에는 매우 주저하게 된다. 몇달 전 요즘은팟캐스트시대를 듣다가 유형이 말했던 문장 하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인데.
유형이 자신의 팬이라는 청취자의 사연을 소개하며 "우리 같은 사람들의 고충이 팬을 선택할 수 없다는 거다."라는 내용의 말을 (조금은 가벼운 뉘앙스로) 했었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난 뒤로 이제까지 나 자신이 누군가의 팬이라는 이유로 짐이나 피해나 부담이 되지는 않았던가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다.
승열오라버니 단공 때나 페스티벌 때의 기억 몇 개만 떠올려 봐도 금방 각이 나온다. 지금도 공연 때마다 감정이 격해지지만-_- 어렸을 때는 흥분의 강도가 훨씬 셌고 딴세상에 갔다 오는 일도 너무 많아서 주위에 굉장히 민폐를 끼쳤을 거란 말이다????? 물론 나야 내게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만끽한 거지만, 내 주변에 앉았던 누군가는 나때문에 공연 내내 울음소리를 들어야만 했을 거고(하, 타…) 누군가는 너무 시끄러워서 너무 불편했겠지. 그보다 더 어린 시절에 야구장 다닐 때는…어휴. 더하면 더하지 못했을 리 없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때 내가 텅빈 야구장에서 얼마나 소리소리를 질러댔는데.
지금은 예전보다 나이도 먹었고-_- 여러 풍파도 맞아봤고-_-_- 하다 보니 그때보다야 좀 주위를 신경쓰게 됐긴 한데. 그래봤자 여전히 '나 아닌 팬들'에게 무심하여(좋아하는 존재에게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다 소모된다ㅠ) 분명히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있을 거다. 그래서 종종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저 사람만은 내 팬이 아니었으면 좋겠는' 사람이 되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누군가는 무슨 죄입니까. 자기가 팬을 선택한 것도 아닌데. 남에게 막 피해주고 상처주는 사람이 자기 팬이라니 너무 싫잖아요.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에게 무조건 고마워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문장을 계속 쓰고 있으려니 오라버니가 내 특정 행동이나 나라는 존재 자체를 싫다고 느꼈던 순간도 분명 있었을 거라는 확신이 점점 짙어져 갈수록 심란해진다ㅠㅠ)
근본적으로는 나라는 존재가 조금 더 성숙해지고 단단해져서 주위 사람들도 신경쓰고 배려하는 동시에 나 자신의 즐거움도 충분히 누리고 나의 감정도 공들여 느끼는 사람이 된다면 제일 좋겠지만. 나는 계속 부족하고 앞으로도 부족한 인간일 거라ㅠㅠ 쉽게 좋아하고 쉽게 빠져들면서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점점 어려워진다. 내가 좋아할 그 누군가에게 내가 부끄러운 존재일까봐.
아, 다 유형 때문이야. 왜 저에게 이런 굴레를 씌운 겁니까. 저는 기껏해야 한명의 XSFM 청취자일 뿐인데. 엉엉.
'흐르는 강 > 소박한 박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0224 한국음악발전소 뮤지스땅스 :) (0) | 2017.02.25 |
---|---|
권김현영 & 손희정: '대한민국 넷페미사' (벙커1 특강) (0) | 2017.01.15 |
안녕, 클럽 타打. (0) | 2016.09.16 |
『엄마. 나야.』, 그리고. (0) | 2016.01.01 |
잘 지내나요, 마왕. (0) | 2015.10.25 |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문인 1217인 성명 (0) | 2015.10.20 |
11개월 전, 김연수소설가님의 글. (0) | 2015.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