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924 Let's Rock Festival 첫날 - 짙은

2016. 9. 29. 00:30흔드는 바람/즐기고

사실 승열오라버니가 나오시는 페스티벌 가면 그냥 승열오라버니 나오시는 무대에 처음부터 쭉 진치고 있기 때문에(그렇지 않으면 맨 앞줄을 사수할 수 없으니까ㅠㅠㅠㅠ) 다른 무대들을 다 포기하게 된다. 다행히 승열오라버니 앞쪽 출연진이 좋으면 복 받은 날인 거고, 앞쪽 말고 다른 무대가 좋은 거면 그냥 어쩔 수 없이 보는 거고. 렛츠락 라인업 봤을 때는 러브스테이지 대부분이 내 취향과 좀 동떨어져 있어서 아 이를 어쩌나 했었는데(물론 그렇다고 해서 토요일 피스스테이지가 내 취향이었던 것도 아님ㅋㅋㅋㅋ)  막상 타임테이블 나오니 정말 기쁘게도 러브스테이지 출연 뮤지션 중 오라버니 말고 보고 싶던 짙은이 바로!! 오라버니 앞에!! 으하하하하하하!!!! 타임테이블 나왔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렛츠락 사랑한다고 트윗도 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로★★★★★그★★★★★짙은★★★★★with★★★★★기타★★★★★

 

김필 무대가 끝나고 짙은의 세션분들이 먼저 올라오셨는데 그때 김필의 팬분들이 빠지셔서 나는 중앙으로 조금 더 이동. 짙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또 우르르 몰려왔었고. 짙은은 또 워낙 짙은이라서(+_+) 당연히 팬들이 많을거라고 생각했다. 나처럼 다른 뮤지션을 보러 온 사람들 중에서도 짙은 좋아하는 사람들은 엄청 많을 테니까. 뭐랄까 인디 음악 듣는 사람들, 특히 러브스테이지에 오른 뮤지션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냥 디폴트로 당연히 좋아할 뮤지션이 짙은 아니었을까.

 

세션분들이 한참 준비를 하고, 뭐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좀 늦어져서 원래 시간보다 5-10분쯤 늦어 짙은이 올라왔다. 올라와서 노래를 시작하는데 첫 소절 나오자마자 사방에서 신음이 쏟아졌다. 모든 게 희미해 보이는 밤이야, 우린 어둠 속에 숨어 길을 나섰지-가 나오는 순간 모든 게 희미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달까. 나 역시 '짙은' 한숨을 토해냈다. 어휴, 세상에, 짙은이야, 어쩌면 좋아, 싶으면서 바로 무장해제되는 기분. 공연 보는 내내 "아 진짜ㅠㅠ" "아 세상에ㅠㅠㅠ" "아 어떡해ㅠㅠㅠㅠ" 류의 감탄사를 수십번 뱉어낸 듯. 마지막 좋은 날-에서 또다시 "아아아ㅠㅠㅠㅠㅠ"라며 부르르 떨었고.

 

 

어디로, 저 너머로. 누구와, 우리 둘이. 안개 속을 지나서, 마을에서 멀어져.
내 눈은 그댈 찾기 위해 빛나고 내 손은 그댈 잡기 위해 존재하는 것… 이렇게 글로 쓰면 뭐래-_- 싶기도 하지만 막상 짙은이 저걸 부르면 너무 좋다고ㅠㅠ

 

 

안개의 뮤직비디오를 배경으로 시작된 공연은 안개, sunshine, twosome, 고래, 해바라기, 잘 지내자 우리, 백야, try 순서대로 진행됐다. 안개 끝나고 인사하더니 바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하면서 sunshine 시작할 때는 정말 눈물날 뻔 했음 엉엉엉…내 어둠의 끝에서 문득 찾아온 햇살처럼 부드럽게 나른하게 간지러운 목소리로 막 노래를 불러대는데 엉엉ㅠㅠ you're my sunshine은 당연히 합창으로 울려퍼지고 엉엉엉ㅠㅠㅠㅠ 하 진짜 한곡한곡 지날수록 마음이 더 물컹물컹해져서 나중에는 무슨 젤리처럼 되어버릴 뻔. 와 진짜 너무 좋고 너무 좋아서 너무 좋아요 하는 기분이었다. 공연 끝나고 저 노래들 다 다시 듣고 싶어서 애플뮤직에서 짙은 검색했더니 tv show밖에 안나와서 마음슬퍼졌었음ㅋㅋㅋㅋㅋ

 

안녕하세요 짙은입니다-

 

 

사실 성용욱씨의 목소리 상태는 그닥 좋은 것 같지 않았다. 락킹했다기보다는('렛츠락!!!!!!'을 꽤 자주 외치기는 했지만ㅋㅋㅋㅋㅋ) 좀 결이 거친 느낌. 고음 부분이 짱짱하게 올라가지도 않았고. 특히 twosome 때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앞부분에 딜레이된 것 때문에 세 곡을 거의 쉬지 않고 이어서 하느라 그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짙은 음색 자체가 워낙 꿀이다보니 그런 거침 따위 다 묻히는 느낌. 그래서 고래도 좋았고ㅠㅠ 해바라기도 좋았고ㅠㅠㅠㅠ 심지어 잘 지내자 우리를 부를 때는 정말 제대로 삑사리가 났는데도 거슬리지 않았다. 본인도 삑사리 난 다음에 '제가 이렇게 노래를 하게 될 줄 모르고 27년간 피아노랑 기타만 쳐서 이렇다. 노래는 10년밖에 안했다'라며 웃겨주었고ㅋㅋㅋㅋ

 

김필보다는 사진을 덜 찍었지만(노래를 더 들었다는 것…아니 물론 김필 노래를 안들었다는 건 아니고;;;) 그래도 어쩄든 찍었으니 쭉 올려보자면.

 

 

해바라기 전.
두 손을 모으고-

 

어느 새 하늘은 섧은 어둠으로 빛나고-
난 어딜 봐야 하는지 아직 알지 못하는 해 지는 해바라기-

 

 

짙은 음악을 한참 많이 들었을 때가 1집 때부터 백야 앨범 때까지. 그러니까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지난번 직장에서 근무할 때. 곁에가 실려 있는 첫 번째 앨범도 정말 좋았고 save가 실려 있는 wonderland도, 고래가 실려 있는 백야 앨범도 다 너무 좋았었다. 그러고 보면 가장 최근작인 diaspora 앨범을 제일 덜 들은 셈이다. (물론 그 앨범의 노래들도 다 좋아하긴 한다) 굳이 따지자면 wonderland와 백야 앨범의 노래들을 특히 많이 들은 것 같긴 하지만 지금도 생각나면 쫙 몰아서 듣곤 하고, 여전히 좋아한다. 

 

그래도 뭔가 내게 짙은은 2000년대 후반, 그 시기를 함께 보낸 소중한 노래, 라는 인상이 있다. 막 들어간 직장 생활이 힘들고 괴롭고 짜증나서 다 부숴버리고만 싶었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때, 퇴근길에 짙은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저녁의 인도 위를 하염없이 걸었던 기억들. 어제는 오늘을 살고 다시 오늘은 하루를 잃고 거울 속 모습만 비추던 날들…이라는 가사에 마음이 땅속까지 뚫고 들어갈 듯 가라앉다가도 고단한 하루의 끝에 서 있을 때 You make me feel alright….이라는 가사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던 때. 어떤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도 못한 채 그저 하루하루가 마음에 차지 않고 답답하고 갑갑했던 날들. 그 어리석었던 나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던 그 목소리. 짙은의 목소리.

 

그래서겠지. 짙은의 목소리를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리움이 밀려 왔던 건. 그 시절이 그립지 않음에도,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마음에서 솟아올랐던 건. 그 과거로 돌아가라면 싫다고 할 거면서도, 짙은의 노래를 따라부르며 나는 향수에 젖어 버렸다. 그 노래 가사들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았음을 확인하면서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그래서 try도 좋고 해바라기도 좋았지만 이날 이 공연에서는 백야가 더 좋았는지도. feel alright을 불러줬다면 feel alright이 더 좋았을 거고, 곁에를 불러줬다면 곁에가 더 좋았을 거다. 더 예전으로, 더 예전으로 돌아갈 수록 그리움이 커졌을 테니까. 하지만 그래도 try는 좋았다. 아주 오래 보고 듣고 싶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짙은의 예전 노래를 좋아하듯이, 앞으로의 짙은 노래들도 계속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냥 옛날에 많이 듣던 음악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꾸준히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짙은의 음악이라고. 새로 나올 노래들은 diaspora 앨범의 노래들보다 더 챙겨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노래들도 나에게 위로를 주고, 힘을 주었으면 좋겠다. 성용욱씨 오래오래 좋은 음악 만들어주시길. 고마워요 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