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트리트] 임진모가 만난 사람들 - 방준석

2007. 12. 26. 01:30🌜/푸른 달, 멍든 마음

국내 영화음악 부문에서 '방준석'이라는 이름이 갖는 지분은 작지 않다. 먼저 영화만큼이나 음악적인 측면에서 대중들에게 강하게 소구된 이준익 감독의 작품 <라디오스타>, 그리고 올해 추석의 화제작 <즐거운 인생>의 배경음악을 꾸려낸 인물이다. 그가 쓰고 극중 박중훈과 노 브레인이 부른 <라디오스타>의 '비와 당신'은당시컬러링에서 수위를 차지하며 다수의 팬들에게 다가가는데 성공했다. 올해는 <즐거운 인생>과 비슷한 시기에 <두 얼굴의 여친>이 개봉되어 방준석의 활약상은 한층 돋보인다. 명백한 '히트 영화음악가'.


그에게 음악계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영화음악 분야에서의 포효만이 아니라 그가 그 이전에 록 그룹 '유앤미블루'에 몸담았다는 점도 부분적으로 작용한다. 동갑내기 이승열과의 의기투합의 산물인 이 실험적 그룹은 국내에 유투(U2)와 같은 모던 록의 정착 가능성을 확인해 주었다는 점에서 역사에 기록된다. '유앤미블루'이후 방준석은 영화음악 쪽으로 활동궤도를 수정, 10년의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10월 8일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만난 방준석은 내내 예의와 겸손한 자세를 지켰지만 대화에는 적극적으로 임했다. 답하는 것 못지않게 묻는 것도 많았을 정도. "이런 저런 의견을 듣고 싶어서도 한 번 뵙고자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진중한 얘기 속에서도 소년 같은 미소를 연신 흘린 그는 "영화 <즐거운 인생>에서는 얼굴도 드러냈는데 본인이 보기에는 어떠냐?"는 질문에 부끄럽다는 듯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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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여친>과 <즐거운 인생>이 이어져서 그런지 다작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 작업은 시간을 두고 한 건데, 영화 개봉이 겹쳐서 그런 것뿐입니다. 개봉은 투자배급사가 정하니까 이런 경우가 간혹 있죠. (지금까지 몇 편 정도를 했느냐고 묻자) 스무 편 정도일 거에요. 10년에 스무 편이면 적당한 편이죠.


<라디오 스타>에서 이준익 감독이 요구한 것은 뭐였나. 그 분은 아마추어 수준에서는 굉장한 음악광으로 알려져 있는데.
- 일단 노래죠. '비와 당신'이라는 노래요. 길게 설명한 것은 아니었고, 콘티 면에서 노래 흐름이 이 정도였으면 좋겠다는 건 세 가지였어요. 80년대적인 것 그리고 콘티에 맞게 하고, 멜로디는 친근하게. 곡의 구성상 세졌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점증 구조에 분명히 기억 나는 멜로디를 말하는 것이었겠죠.


'철저하게 영화에 맞춰서 곡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던데 1980년대의 어떤 가수를 염두에 두고 쓴 건가.
- 오히려 그렇게 되면 함정이 되잖아요. 누구를 딱 연상시키니까요. 영화는 분명히 그것에 영향을 받을 거구요.

이준익 감독은 <라디오 스타>를 통해 간추린 록의 역사를 꾸미고 싶었던 것 같다. 준석씨와 영화에 들어갈 레퍼토리에 대해 상의는 있었나?
- 계보적인 것. 우리나라 안에서의 록의 줄기를 짚으시고 싶으셨는데, 거기에 그렇다면 후보들이 많잖아요. 많은데, 솔직히 보셨으면 알겠지만, 신중현이라는 인물이 있고, 순서에 따라서 배치를 시키셨는데, 고르려다 보니까 물론 같이 상의는 했지만, 자연스럽게 어쩔 수 없이 추려지는 게 있더라고요.

<즐거운 인생>에서 밴드가 연주하는 '한동안 뜸했었지'와 '불놀이야'는 직접 선곡한 건가.
- 독자적으로 초이스하는 건 없어요. 감독님, 기획팀과 같이 의논해서 시나리오를 보고, 분위기를 보고서 맞겠다 하고 접근하죠. 그리고 또 감독님 또한 좋아하시는 노래가 있잖아요. 저야 오히려 객관적인 면에서 봐야 하는 것이 있고요.

사실 두 곡은 이준익 감독이 골랐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상황이 있을 때, 방준석 씨는 그런 레퍼토리를 주장할 사람일 것 같지는 않다. 다른 더 좋은 선곡이 있을 거라고 보면서도 영화의 친숙함과 익숙함이라는 것에 자신의 의견을 묻어버리는 것 아닌가. 그런 갈등은 없나.
- 지금 한국 영화 상황에서 보다 뵈까요, 말씀하시는 대중적 취향 쪽으로 갈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까 오히려 거꾸로 가는 것 같아요. 그렇게 거꾸로 접근을 하는 편이 저한테는 효율적이기도 하고. (거꾸로 아닌 낮추는 거 아니냐고 하자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유앤미블루 때의 작약하는 젊음의 자유, 조금은 기성 문법이나 스타일 등에 구애받지 않았던 때와 철저하게 대중성과 상업성에 고개를 숙여줘야 하는 영화작업의 특성. 비록 시차는 있지만 행여 그런 차이와 갈등을 인식하지는 않느냐 하는 질문이다.
- 종종 이런 분이 계세요, 예전에 유앤미블루를 좋아하셨다고 하는 분들이 '아, 좋았어요' 하시다가 나중에는 막 따져요. 어떻게 이럴(영화음악으로 감) 수가 있느냐. 저의 합리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업적 요소도 필요한 것은 같아요. <즐거운 인생> 같은 경우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대사가 있는데요, 그게 막상 영화에서는 빠졌어요. '세상에 더 개겼어야 되는데...' 그런 곳에 연결고리를 걸어 놓고 그리고는 '그 의도만 잃지 않으면 된 거다' 하죠. 그게 합리화일 수는 있죠.

지금까지 영화음악가 중에 제일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누군가.
- 어제 방송에서도 얘기를 했었는데요, 의외로 그런 게 별로 없었어요. 이 사람은 이래서 좋다 그런 건 없었고, 오히려 단순한 이유에서, 저희 집에 예전에 <대부(Godfather)> LP판이 있었거든요. LP판이 다 해야 4장, 5장밖에 없던 시절이었죠. 당연히 니노 로타(Nino Rota)를 굉장히 많이 들었죠. 노스탤지어 연결선 때문에 좋아하는 걸 수도 있어요.

방준석 영화음악을 간단하게 정의한다면.
- 제가 영화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 영화음악의 공식이라는 게 물론 있겠죠. 그런 걸 가르쳐주는 교육 기관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보진 않거든요. 공식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사실 제가 영화음악가라고 말하기도 좀 민망해요. 그냥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마침 음악을 하는 사람, 그렇게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럼 영화를 좋아했다는 것이 유앤미블루에서 영화음악으로 방햐을 바꾼 이유였나. 또 계기는 뭐였나.
- 제가 의도적으로 바꾼 것도 아니었고요. 계기라면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 유앤미블루의 곡이 사용이 된 걸 겁니다. 거기 엔딩 크레디트에 저희 노래가 들어갔어요. 개인적인 면에선 저한텐 꽤 큰 순간이었죠. 내가 만든 음악이 영화에서 나왔을 때의 느낌은 각별한 것이죠. 그런 식으로 영화 삽입 작업을 몇 번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 거죠.

첫 작품이 뭐였나.
- 조영욱 음악 감독님하고 같이 작업을 했었어요. '97년에 <접속>을 막 하신다고 할 때 연결이 되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맞지 않아 같이 작업은 못 하고, 그 다음에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스릴러영화 <텔 미 썸딩> 스코어를 맡았죠. (예정되어 있는 작품을 묻자) 이준익 감독님이 바로 또 들어가세요. 역시 음악을 소재로 한 '님은 먼 곳에' 입니다.

<두 얼굴의여친>은 어떤 포인트였나. 방준석 씨의 이전 작품하고는 캐릭터가 다른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 처음에 시나리오 받았을 때 이런 영화라고 들으면 '아 이런 것이겠구나'라는 예측이 되거든요. 그리고 감독님이 이전에 무슨 영화를 하셨는지 여쭤보면더 추측이 되고요. 그런데 <두 얼굴의 여친>은 '로맨틱 코미디'고 감독님은 <방과 후 옥상>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얼핏 '어? 제 과가 아닌데.' 했어요. 시나리오를 딱 봤는데, 인물이나 관계 같은 것이 마음에 들었어요. 저는 굉장히 슬프게 봤어요. 코미디가 오히려 저는 도전의 대상이거든요. 감독님이 점잖으셨고 제가 만든 젊은 영화 <...ing> 같은 음악이면 좋겠다고 하셔서 하게 됐어요. (결과는 만족하냐고 묻자) 원래는 뒤에서 약간 저를 자극하는 콘티가 있었는데, 그게 들어 내지더라고요.

로맨틱 코미디야말로 영화음악의 주요 장이라고 본다. 그 계열 영화들에서 스코어나 삽입곡들이 빛을 발한다. 그런데 한국 영화의 경우는 과잉 상업성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측면이 발견되지 않는데.
- 어떤 면에서는 회의가 느껴지죠. 그래서 유 앤 미 블루 이후에 솔직히 '직업'이 된 거죠. 저한테는 일의 측면에서 데드라인도 항상 있고, 요구에 맞춰지는 것을 수용해야 하는 면도 있고. 그런 면에서는 제가 원래 하던, 하고 싶던 일이랑은 굉장히 다른 일이었어요. 그래서 이런 저런 비상구를 찾아요. 여건의 성숙을 기다리죠.

지금까지 한 작품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은.
- 만족스러운 거는 말이 안 되는 것 같고요. 그래도 좋았다는 것들은 몇 개 있어요. 나중에 영화를 보면서 느끼거든요 저는. 객관성을 가지고 봤을 때 <너는 내 운명>은 개인적으로 좋았고요, 약간 좀 다른 측면에서 <주먹이 운다>도 저한테는 좋았어요. <라디오 스타>는 빼놓을 수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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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의 빙햄턴 대학 1학년 때 만난 방준석과 이승열은 밴드 록에 대한 공유 지점을 확인하고 국내로 돌아와 '유앤미블루'를 결성한다. 당시 전설의 베이스주자 송홍섭이 제작한 그들의 데뷔 앨범 는 '유투(U2)식 모던 록'의 실험이라는 점에서 평단의 극찬을 받지만 대중과의 접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았던 '96년의 2집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실험적인 음악을 바라보지 않고 보편적인 기준만이 횡행하는 국내 음악계의 현실에 좌절한 이승열은 미국으로 떠나버렸고 그룹은 '97년초 자연 해산되었다. 홀로 남은 방준석은 상기한 대로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지울 수 없는 너'가 삽입된 것을 계기로 영화음악에 새 둥지를 텄다. 이후 영화 <꽃을 든 남자>에서 동명 타이틀곡을 부른 것을 비롯해 <텔 미 썸딩>, <해변으로 가다>, 그리고 대박을 터뜨린 <공동경비구역 JSA> 등등, 이제는 어엿한 중견 영화음악가.
하지만 올해 제천영화제에서도 만나 여러 곡을 불렀듯 돌아온 이승열과의 '유앤미블루' 재결합 가능성은 아직도 살아 있다. 이에 대해 인터뷰 내내 신중한 입장을 보인 방준석은 '분명한 지향'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해 아직도 갈등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는 대답 대신 의견을 듣고자 했다.


유앤미블루가 어떻게 남아 있는가.

- 저한테도 승열이한테도 그렇고 어쨌든 계속 따라다녀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유앤미블루는 저희에겐 굉장히 현실적으로 멀리있는 존재고, 얘 혼자서 누가바퀴를 달아줘서 혼자서 알아서 굴러다니는 느낌이에요. (부적이라고 하자) 네, 딱 그거에요. 뭔가를 찾고 싶다는 건 아니고요. 승열이와 제가 음악을 하고싶은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단지 옛날을 회상하는 건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이제 같이 하면 돼!'라는 얘기가, 저희가 해석하기에는 상업적인 얘기로 들리고 설득력이 없어요.


이제 회상의 장이 아니고 확대된 자아가 이뤄진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 핑크 플로이드, 유투 이런 밴드들을 보면, 그것 또한 어떤 코드에서는 상업적으로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믿고 싶은 것은, 출발점은 새로운 제시나 아니면 저항이라든지 지금의 나른한 저를 의식적으로 깨우는 그런 것들이었다고 봐요. 얼마 전에 펜타포트에 가서 뮤즈 공연을 봤어요. 그런데 영상을 보고 가사를 조금씩 들어보니까 얘들도 굉장히 좌파적인 애들이에요. 그런 측면인 거죠, 저는. 그게 어떻게 보면 상업적인 코드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 어딘가는 얘네들의 고민이 내재되어 있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방준석이 꼽은 명반을 소개한다면.

- 명반이라기보다는 제가 찾게 되는 음반들. 명반이라고 하면 객관적인 의미가 부여되는데, 저한테 감정적인 의미에서 소중하다든지 그런 것들을 따져봤을 때는요, 일단 편안함에 있어서는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그 중에서도 를 자주 들어요. 요즘에는 제프 버클리(Jeff Buckley)의 도 좋고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을 많이 듣게 돼요. (유투는 없냐고 묻자) 유투는 항상 있긴 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9.11 사태 때에 성조기를 옷 품에 넣고 있는 걸 본 뒤로는 러브, 헤이트가 조금 교차해요. 항상 인정하고 좋아하기는 하지만. (웃음)




- 오이스트리트 2007년 11월호, <임진모가 만난 사람- 방준석 편>. 출처 없는 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