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삼성] 영화음악감독 방준석 - 열심히 살아라! 어떻게든 열심히 사는 것이 좋은 것이다.

2007. 12. 16. 19:47🌜/푸른 달, 멍든 마음


영삼성 홈페이지(http://www.youngsamsung.com)에 올라온 <나의 20대 - 영화음악감독 방준석>편.



 

 

You & Me Blue

내가 전문적으로 하는 일은 영화음악을 만드는 일이고 학부와 석사과정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어렸을 때 칠레로 이민을 갔고 미국에서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마쳤지만, 음악을 해야겠다 싶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You & Me Blue라는 밴드를 만들었습니다.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좋은 평을 얻었기 때문에 저와 멤버였던 이승열에게 지금까지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되었습니다. 이 후, 다른 일을 하다가 영화음악을 하게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사이사이 다른 음악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어부밴드 활동도 10년째 하는 활동 중의 하나입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피아노, 바이올린 연습이 어릴 적에는 너무너무 싫기도 했지만 중학교 때 밴드를 시작하게 되면서는 내내 밴드생활을 해왔습니다. 틈나는 대로 음악적 수업을 받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음반시장이 지금과 다르기도 했고 음반을 내는 것 자체가 목표였으나 막상 음반을 내고 보니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냥 음악을 하자'

대학교를 마치자마자 음악을 하자고 뛰어들었다가 대학원에 다닌 이유는 부모님을 안심시키려는 이유 하나와, 음악판이 쉽지 않고 험한 판이니 생업을 병행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대중적으로 흥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음악을 하는 상황은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홍대 라이브 공연이 처음 시작하던 때라 밥벌이가 잘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기 길을 잘 가있는 대학원 친구들을 보면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20대 아주 초반인 3학년 때 방학 3개월 동안 인턴으로 회사생활을 했습니다. 이유인 즉, 무엇보다 사회의 조직생활을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적응을 잘했습니다만, 내가 해야 할 것은 이것이 아니구나 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음악을 놓으면 굉장히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나는 어쩔까 생각을 하다가 어느 순간 음악으로 올인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94년 첫 앨범을 냈습니다. 당연히 앨범은 많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끝일 줄 알았지만 이제 어떻게 하지 하는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러니 했던 것은 명반 100선 등에 2장의 앨범이 다 꼽힐 정도로 평은 항상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 사실 때문에 주위의 부추김을 받기도 했습니다만 인정 섞인 기대와 고달픈 현실 사이에서 참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20대는 그러한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그냥 음악을 하자'. '정말 안 되면 섬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이 있더라고 음악을 하자'고 내 결정에 책임을 지겠다는 결정을 하고 나니 굉장히 평온해졌습니다. 내가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길이 보인 것이 20대 후반이었습니다.

 

'진실성' - 즐거운 무게

영화음악가로서 나는 바람직한 모델 같지는 않습니다. 실용음악과가 많이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작곡과 학생의 태반이 영화음악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나로서도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도전하고 싶었던 영역이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이해는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영화음악계로 유입되는 사람이 많지는 않습니다. 자기색깔도 없고 굉장히 한정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홍대의 젊은 지망생들을 보거나, 소비되는 음악들을 볼 때, 자기 역할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영화음악은 어떻게 보면 기획상품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일환으로 음악을 한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음악의 품질은 높아졌을지언정 재미나 색깔은 없어 보입니다.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단지 세대차이에서 기인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교육시스템의 문제가 많습니다.

음악을 하는 선배로서 나의 역할은 충고를 던져주고 개선점을 짚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영화음악을 하고 있다는 점은 백 번 행복합니다. 모든 인간은 울타리를 치고 있게 마련이지만 가능한 한 울타리를 없애려고 애씁니다. 나한테 의미가 있는 결과물을 만들겠다는 결론을 갖고 있습니다.

얼마 전 같이 작업하던 감독님과의 얘기 중에 '진실성을 갖고 하자'고 서로 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가 작업하는 영화의 장르에 따라 영화음악을 맞추고 그 틀 속에서 음악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은 갇힌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거창할 수도 있지만 매번 존재의, 전면적 접근을 통해 음악을, 영화를 만들어내자는 것이 그 '진실성'의 의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상적인 틀은 옳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소통의 에너지는 나의 힘

일이 너무 많아서 스스로에게 '할 것만 하라'는 요청을 하는 중입니다. 음악을 하는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보릿고개 같이 어려운 시기에 일이 넘치는 것은 참 고마운 일입니다. 영화음악을 십 년째 하는데 좋고 재미있습니다만 허탈감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께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시스템에서는 의지만 있으면 먹고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앞으로 갈 수 있는 힘이 뭐냐고 한다면, 음악, 영상이 어우러져 영사되는 순간의 에너지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의 뿌듯함일 겁니다. 나의 지향점은 음악이든 뭐든 갈수록 부여되는 책임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이고, 여전히 인간에 대해서 더 많은 탐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냉소적이거나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시각틀의 깊이를 만들며 본질을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POLYMATH

'성공' 또는 '이 정도'라는 것은 나한테는 의미가 없습니다. 어른대우가 불편하기도 하지만 불평할 수는 없습니다. 음악감독으로 계속 살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영화도 만들고 싶고 다시 밴드도 하고 싶고 아예 다른 일을 하고 싶기도 합니다. 하나도 제대로 못할 수도 있겠지만, 얼마 전에 뭔가를 보다가 'polymath'라는 단어를 다시 발견했습니다. 이전에는 수학을 하는 사람이 철학을 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요즘에는 허용이 되지 않습니다. 잘 하는 것 한 가지만 해야 하는 시스템이라지만 인간이란 한 가지를 잘 할 수도 있고 그 한 가지를 여러 개 수행하는 능력을 가졌다고도 생각합니다.

 

나의 교사

가장 또렷한 기억 중의 하나는 98년, 미국재즈음악의 출발지이기도 한 뉴올리언즈의 관광명소 Conservation Hall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당시 그대로를 재현해서 공연을 하는 곳인데 연주자 대부분은 할아버지들입니다. 내가 공연을 보러 간 날, 백발의 흑인 할아버지께서 맨 앞에서 노래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음악을 한답시고 설치고 다니던 때였는데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게 한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 연세에도 꿋꿋하게 처음의 자세를 견지하는 모습이 내 마음을 움직였고 눈물이 날 것 같았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관광객에게 음악을 들려줄 뿐이지만 음악을 대하는 그 분의 태도에서 음악과 인생에 대한 자세를 배웠던 것 같습니다. 허름한 홀에서 그토록 경건하고 겸손한 태도가 나를 가르쳤습니다.

 

관계관리법

누구나 그렇듯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이십대로 돌아가면 '나'의 시각, 자세, 자유로움 등이 부딪치는 경우도 많았고, 전달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얼마 전에도 어떤 영화를 진행하던 중 관계적인 어려움에 맞닥뜨리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같이 일하던 분과 불편하다가 급기야 틀어지게까지 되었습니다. 작업을 같이 못했지만 시사회 때 그 감독님이 꼭 와달라고 먼저 전화를 주셨습니다. 결론은, 관계를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 잔머리를 굴릴 수 있지만 알면서도 넘어가주는 것이 좋은 관계를 만드는 진심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잔머리 굴리는 관계의 생명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겸손하게 수용하는 자세뿐인 것 같습니다.

또 진실성 없는 관계를 유지한다면 일이 되지 않습니다.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일 이외의 소통이 가능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표면적이거나 가식적인 것 저변의 진실이 관계를 지탱하고 확대하는 비결인 것 같습니다.

 

음악감독 방준석의 20대

사실 20대에 관한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고생스러웠던 것도 아닌데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습니다. 현실이 힘들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힘들었습니다. 그 때 밴드를 하고 있었는데 상업적으로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이 없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모든 것을 스스로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라 경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통역, 번역 등의 여러 가지 일들을 하기도 했습니다. '락' 을 하는 사람으로서 자유, 저항의 성향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방침 때문에 '현실적 요구'에도 저항하며^^ 현실을 무시한 측면도 있었습니다만, 그 생활을 지탱하게 했던 것도 락커로서의 자존심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 부분에 관한 한 고집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Q&A] 방준석의 20대 집중탐구

Q. 성실한 학생이셨나요?
A. 경영학 수업도 받았지만, 어려서 외국에 나갔기 때문에 한국사회, 역사에 대한 궁금함이 많았습니다. 그와 관련한 다른 과의 수업을 많이 듣기도 했습니다.

Q. 20대 예술가의 머리 속을 채운 건 혹시 돈?
A. 그랬다면 다른 길을 갔을 겁니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고집스럽게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활동은?
A. 음악-앨범을 만드는 것이 내게는 큰 도전이었기 때문에, 20대 10년 중 음악을 만드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또 하나는 공연이었는데 홍대의 블루데블에서 공연을 주기적으로 했습니다. 라이브클럽이 몇 개 없을 때였는데 거기서 우리 팀과 자우림 등이 활동했었습니다.

Q. 연애는?
A. 열심히 했습니다. 연애야 일상이었죠. 지금은 개와 고양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Q. 아쉬움?
A. 나는 내 20대를 긍정적으로 봅니다.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것을 다행스럽게 여깁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만, 만약 성공했다면 지금 다른 것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이 활동했던 친구들을 보면, 자기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대개 어떤 위치에 한 번 이르면 더 갈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들을 보았습니다.혼란스러움은 다르게 표현하면 끊임없는 추구 속에 있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좀 더 가벼웠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Q. 다시 20대를 산다면?
A. 더 치열한 전투를...

Q. 20대에 꼭 해야 하는 것?
A. 여행을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도 가보고 가지 않는 곳도 가보고, 그 지역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이 인생의 자산이 되는 것 같습니다.

Q. 20대를 정의한다면?
A. 어렵습니다. 20대만이 가질 수 있는 소박함과 순진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어떤 때는 내게서 그런 점을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다시 갖고 싶은 생각을 가끔 합니다.

 

뭐든지 열심히!

20대에게 감히 내가 '조언'하는 것은 가당치 않고, 다만 내 경험을 나눈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브라이언 이노'라는 예술가가 있습니다. 그 사람과 그가 속한 그룹의 몇 명이 제기한재미있는 시도는, 시, 공간의 단위를 다르게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일 년 단위가 아닌, 단기 몇 천 년보다 더 큰 단위로 시간의 개념을 확장한 일이었습니다. 사회의 시스템이 개인을 고립시키고 자유를 폐쇄하는 것 같습니다. 자유로운 사고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에너지 축적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20대보다 지금이 더 자유롭습니다.

20대들이 속한 사회가 흘러가는 방향, 트렌드, 교육방식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개인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기주관을 가지는 것 또한 개인이 정신 바짝 차려서 애써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흐름대로 살면 좁아지게 마련입니다. 정보에 색깔이 있다면 정보의 색깔을 정하는 기제도 있을 겁니다. 대개의 정보라는 것은 열 가지 색이 있다면 열 가지 색을 고루 보여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 연대 사회학과에서 특강을 했습니다. 요즘 학생들에 대해서 궁금했습니다만, 예측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안타까움으로 남습니다. '자기생각' '자기스타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디어와 미디어를 넘어서는 더욱 거대한 시스템이 생산한 복제일 뿐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사람의 본질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넓게 보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겁니다. 내 20대도, 지금 내가 20대를 보듯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깨달음도 있었습니다. 나를 포함하는 우리는, 대부분이 지금,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 가장 똑똑할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굉장한 착오였습니다. 지혜라는 것은 시, 공간을 포괄하며 여러 곳에 편재합니다. 인간만의 것도 아닙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있던 것이지요. 어떻게든 열심히 사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설령 방향감각이 없다 하더라도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열심히 가다가 아니면 또 열심히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 경험이 얼마만큼 전달될는지 모르겠지만, 하나의 시각으로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