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위크] 한국에서 영화 음악가로 산다는 것 - 방준석

2007. 7. 18. 11:29🌜/푸른 달, 멍든 마음


무비위크 2004년 9월 기사. 이 특집 기사(한국에서 영화음악가로 산다는 것) 때문에 덜컥! 구입했었던 책 :) 

한 쪽 가득 실린 준석님 사진을 보니 이만원이더라도 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더라는 ㅠㅠ



 

한국에서 영화 음악가로 산다는 것

커다란 스크린 화면이 적합한 음악과 조우했을 때의 멋진 궁합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황홀경의 그 무엇과 같은 감정을 선사한다. 그 황홀경의 화학 작용을 만들어내기 위해 불철주야 작업실에서 땀을 흘리는 7명의 영화 음악가들을 만나봤다. 한국에서 영화 음악가로 산다는 건 대체 어떤 의미일까. 각기 다른 그들의 고민과 원칙, 그리고 거기에 담겨진 솔직한 속내에 귀 기울여 봤다.

 

 

방준석 - 경계를 넘어, 삶과 예술을 좇다

한 장르에 고착되지 않고 변화하는 방준석의 영화 음악처럼 실제의 그도 한 우물에 정체되지 않으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영화 음악가, 아니 뮤지션이었다. 그는 어찌 보면 구분할 수 없는 자신의 삶과 예술 사이에서 ‘투명한 막’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영화 음악’이라는 바다에 빠지다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이 두 가지 영역을 경계 없이 넘나들며 자유롭게 즐겼던 것 같다는 방준석 감독.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받았던 영향 덕분일까. 그는 처음으로 오리지널 스코어 영화 음악 감독으로 크레딧을 달았던 <텔미썸딩>을 작업했을 때의 흥분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큰 스크린에서 영화 화면이 음악과 접합했을 때의 느낌이 정말 파워풀하더라고요. 그 때 영화라는 매체가 굉장히 큰 물이구나, 재미있는 곳이구나 하고 느꼈죠.”


주체적인 고민을 공유하는 작업
그러나 열매가 단 만큼 인내는 쓴 법이다. 방준석 감독은 영화 음악이 매력 있는 영역임에는 틀림없지만, 상대적으로 그 환경은 열악한 곳이라는 지적 또한 잊지 않았다. 특히 후반 작업으로 주어진 시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란다. 

“영화가 완성되어 갈 즈음에는 영화 자체에서 생기는 그 영화만의 기운이라는 것이 있어요. 뭔가를 제대로 해 내려면, 그 기운을 흡수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런데 많은 경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제대로 소화도 안 된 상태에서 음악을 만들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런 때가 가장 안타깝죠.”

안타까운 감정도 오래 눌러두면 곪아 터지는 법. 그는 결국 그 감정의 수렁에서 벗어나 올 초부터 새로운 결의를 다지게 됐다고 했다. 때로는 임기응변식으로 버티는 데 사용됐던 ‘센스’에 의존하지 말 것. 자신에게 주어진 울타리와 역할 안에서, 영화를 함께 하는 사람들과 좀더 주체적인 고민을 공유하는 영화 음악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런 다짐의 시발점이 될 첫 번째 작품은 최민식 류승범 주연의 <주먹이 운다>가 될 것이다.

 

땅의 넓이를 알게 해주는 학습
“음악적 발전이라는 건, ‘센스’ 혹은 ‘끼’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만 가지고 가기에는 바닥이 금방 드러나게 되죠.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 부족한 것도 많이 보이고, 정말 배울 게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적어도 내가 딛고 있는 땅이 얼마나 넓은지는 알아야 하잖아요.”

이런 깨달음의 결과, 그는 시간을 쪼개서 자신이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관심분야의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재즈 및 국악 이론, 그리고 그와 관련된 새로운 악기도 전문가를 통해 배우고 있고, 심지어 지난 6개월에 걸쳐서는 본가가 있는 뉴욕에서 연기도 공부했다. 새로운 음악 공부도 흥미롭지만, 연기 공부를 통해서 배우가 어떤 감정과 느낌을 가지고 그 장면의 연기를 하는지 전보다 훨씬 잘 감지하게 된 것이 그가 얻게 된 가장 신나는 수확 중 하나란다.

  

그의 비상구, 어어부 밴드
영화 음악 외에 그가 꾸준히 해 왔던 활동은 기록의 차원에서 혼자서 하고 있는 개인 작업 외에 프로젝트 그룹 어어부 밴드의 활동이다. 각기 다른 음악 활동을 하면서 매 프로젝트 때마다 5명이 한 팀이 되어 움직이는 이 밴드 활동은 방준석 감독에게 굉장히 큰 ‘비상구’와 같은 역할을 해 왔다.

“영화 음악으로 고갈되는 것을 어어부 밴드를 통해서 채워왔던 것 같아요. 벌써 8년째 활동하는 건데요, 제가 음악을 하는 데 있어서 많은 것을 받아 넣을 수 있는 통로나 다름이 없는 활동이에요.”

이런 저런 경계를 넘어서서 자신이 받아들이는 것과 만들어 내는 것 사이의 투명한 막이 되고 싶다는 그의 열정이, 그의 차분한 말투와 함께 더욱 멋지게 영글어 가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FILMOGRAPHY

<달마야, 서울가자> <...ing> <후아유> <공동경비구역 JSA> <텔미썸딩> <주먹이 운다> 외


* 영화 음악가 공통 질문

1) 자신의 음악 세계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준 뮤지션은?

- 알려진 사람이 아니다. 몇 년 전 뉴올리언즈에 갔는데, 거기에서 그분을 만났다. 뉴올리언즈에 가면 보존홀이라고 옛날 재즈, 블루스 뮤지션들이 연주를 하던 홀을 그대로 보존해 놓은 곳이 있다. 지금도 거기에서 사람들이 연주를 하는데, 백발이 성성한 흑인 할아버지가 트럼펫을 불면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분이 연주하는 장면을 보고 통곡하면서 울었다. 강하게 한 대 후려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순간 내 자신이 너무 창피했다. 그 때의 그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아마도 평생 못 잊을 것이다. 그분이 연주하시던 겸허한 자세며 그 견고함이란….


2) 최고로 꼽고싶은 OST는? 

- <대부>의 OST. 집에 좋은 전축이 처음 들어왔을 때, 그때 있었던 몇 안 되는 LP 중의 하나가 <대부>의 영화 음악이었다. 그래서 그 영화 음악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듣곤 했다. 영화 음악을 먼저 듣고, 영화를 나중에 보게 된 셈이다. 마침내 영화를 봤을 때, 그 때 그 화면과 함께 했던 음악이 주는 느낌이 너무나 셌다. 개인적인 감흥의 센 정도로는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내 추억의 OST다.


3) 꼭 한 번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혹은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감독은?

-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추고 싶은 사람은 박찬욱 감독, 앞으로 해 보고 싶은 감독은 허진호 감독이다. 박 감독은 영화를 떠나서 사람 자체가 주는 기운이 너무 좋은 사람이다.


4) 영화 음악가로서 당신에게 특별한 영감을 주는 배우가 있다면?

- 너무 많다. (한참을 생각한 후) 굳이 꼽자면, 메릴 스트립. 특히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의 그녀의 모습이라니! 아까 말했던, 내가 궁극적으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다는 투명한 막이 그녀 안에서 보였다. 무언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를 표현하고 연기하는 모습이 기막히게 좋았다.


5) 자신이 직접 작업한 영화 음악 앨범 베스트 3 

- 없다.  

 

- 원문 링크 : www.movieweek.co.kr/magazine/200409/15/20040915100108887020000020300020301